사나운 새벽 4
윤석진 지음 / 청어람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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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이라는 이름 때문에 처음엔 생판 딴 작가인줄 알았으나, 최근 연재홈페이지를 커그홈으로 옮기면서 <사나운 새벽>의 작가가 이수영님이었음이 밝혀졌다. 정말 한바탕 대소동이 일어났었다. ^^; 그도 그럴것이 윤석진이라는 작가의 필체와 전개양상을 둘러싸고 "이수영님을 모방했다"느니 "그치만 문체가 훨씬 어눌하다"느니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수영님 특유의 것들이 여기저기 보여서 윤석진 작가가 수영님 영향을 너무 심하게 받은 거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정말 형언할 길이 없다. 그러고보면 책표지의 작가소개란부터가 심상찮았다. 이름: 윤석진,   취미: 동생 괴롭히며 깨부수기,  모토: 잘먹고 잘 살기 (이 간결하고도 허심탄회한 말투. 특히 이 모토....수영님 맞구나. ^^;;  수영님의 아기들 중 큰 아들내미 이름이 윤석진이라고 한다...크허허. )

이런 뒷사정으로 인하여 작가이름 윤석진에도 불구,  <사나운 새벽>은 귀환병 이야기와 쿠베린으로 유명한 이수영님 작품이다. (윤석진이 작가라면 이 어린애는 신동이 되겠지..한글과 소설분야의 신동..;)

음...사나운 새벽은 뭐랄까. 내가 보기에 일종의 실험물인 것 같다. 근래 청소년층과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깽판물을 향한 수영님의 도전이랄까.  유머러스한 면모가 많지만 근본을 파고들면 진지하고 독창적인 판타지를 써오던 수영님이다. 헌데 갑자기 깽판판타지의 일반요소를  두루 갖춘 사나운 새벽을 집필한 게다.  내가 처음에 윤석진 작가의 정체를 도저히 수영님과 연결시키지 못한 이유도 이런 판타지 경향의 차이 때문이다.

자. 사나운 새벽을 대강 한 번 살펴보자.  주인공 록베더는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마왕과 계약을 맺은 흑마법사'에다가 대륙 최고의 소드 마스터인 용병이다. 허나 생에 집착도 없고 아무런 열정도 없이 언제죽어도 상관없다는 허무주의자.  그에게 의욕을 불어넣으려 마왕과 블랙드래곤 오르게이드가 계획한 잠 속에 빠져든 후 기억을 상실하고 황태자 록그레이드로 깨어난 그는 자신의 정체가 진정 황태자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 와중에 엮이는 충실한 시종장 도노반, 개와도 같은 하인 벤, 아름다운 궁비들과 모종의 깊은 갈등관계인 황후 및 황제. 여기까지 벌써 용병물, 환생물(영혼이동물?), 황궁물 다 섭렵했다. 황궁을 빠져나와 페길시 반란에 끼어든 후로는 전쟁물. 페길시 반란을 해결하고 드래곤 에메타이트 에페의 레어로 가서 1년간 생활하는 시점에서는 드래곤물. 레어를 빠져나와 리베이드로 여행을 떠나는 4권 끝부터는 여행모험물의 돌입이 아닐까 한다.  자, 어떤가? 판타지 꽤나 읽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제일 많은 사람들이 쉽사리 손을 뻗는 자극적인 판타지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정말 감탄하고 싶은 것은 전형적인 온갖요소(소드마스터, 마법사, 드래곤. 황궁생활, 전쟁, 여행 등)를 다 사용하면서 그 혼합의 결과물이 독창성을 겸비한  매력적인 판타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전혀 생각도 못한 새로운 요소들(드래곤의 피부가 어릴 땐 아주 약하다든가 엘프로 태어난다든다 하는 점. 흑마법사가 되는 계약방법, 상상치못한 신기한 마물들)이 군데군데 가미되었다는 것외에도, 무엇보다 심리묘사가 이수영 특유의 그것이다. 진지하고..놀랍도록 예리하며 허를 찌르는, 놀랄만큼 생생함이 느껴지는 마음상태들.  록베더의 의심과 추리와 고뇌와 기쁨...어느샌가 그 안에 푹 빠져있는 내가 있다.  아마추어 판타지 작가들이 흔히 펼쳐보이는 상식을 벗어난 아집과 제멋대로의 생각들(나로선 정말 납득이 불가능한)이 아니라, 그럼직한. '아 인간이라면 이런 성격의 인물이라면 정말 이렇겠다'라고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 감정의 흐름들. <귀환병 이야기>와 <쿠베린>에서 익히 알게 된 매력이 여기 <사나운 새벽>에서 극대화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나운 새벽을 정말로 좋아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과 마주 대하고 있는 것 같은 현실감이 솟구치니까.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을 꼽자면 두 가지다.  첫째 표지. 표지가 정말 너무나 거쓱하다. ㅠㅠ; 이 책의 알맹이에 안 어울리는 그냥 그저그런 깽판물로 보인다..흑흑. 둘째, 수영님 답지않게스리 약간 어눌한 문체. 수영님의 초기작부터 거의 다 봐와서 알지만 호쾌하면서도 정돈되고 유려한 문체를 아주 예전부터 구사하셨다. 근데 어째 사나운 새벽은 모르고 보면 '글재주는 상당히 있으나 문체는 조금 서툰'  막 판타지에 발을 들여놓은 초보가 쓴 것같다. 작가이름이 윤석진인것과 같은 맥락으로, 새로운 초보판타지작가라는 인상을 주어 우리를 속이기 위해서(ㅡㅡ;쿨룩)가 아닐까. 또 정체가 밝혀진 지금에 와서도 통일성의 선상에서 쭉 유지하는 것 같고. 암튼지간에 이것도 뭐 신선해서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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