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물농장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미합중국이 지구촌의 유일무이한 강자로 군림하는 요즘, 분해되고 잊혀진 미합중국의 천적-소비에트공산주의연합-이 가끔 생각난다. 소련이 건재했더라면 미국이 지금처럼 멋대로 전횡을 일삼진 못할텐데라는 심리랄까.
그러나 이런 생각에 제동을 건 게 몇 년만에 다시 읽은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다. 가볍게 여러 번 읽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책이라 무척 오랜만에 읽게 된 동물농장은, 그러나 과연 명작들의 속성이 그렇듯 다시 보니 더욱 감탄스러운 걸작이었다. 재밌는 우화처럼 인간동물농장주인을 쫓아내고 동물들이 농장을 차지해 운영하는 틀을 덮어쓰고, 그 속에서 교묘하게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길 기피하는 이념문제를 끄집어내고 있다. 1차 대전 후 자본주의 세력에 맞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빈곤한 나라 러시아, 그 곳이 바로 '동물농장'의 본색인 것이다.
볼셰비키당에 의해 왕정이 무너지고 공산주의 사회가 성립한 이래 러시아인민은 처음 볼셰비키가 제시한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왕정치하보다 가혹한 현실을 겪어야했다. 평등의 기치 아래 이루어진 절대다수의 빈곤화, 전인민에 의한 정치를 내걸고 이루어지는 소수 공상당의 전횡과 인권침해, 한층 심해진 사회적 통제와 억압.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격차와 불평등 등 제문제에 대항한 공산주의 사회의 실제란 그렇게도 조악했다. 이상이야 민주주의의 이상 버금가게 높고도 훌륭했지만 실제운영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은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돼지'로 치환시켜 역사적 사건들을 하나하나 풍자하고 있다.
기득권층인 동물농장의 인간주인 존스는 자본가계급, 그리고 동물농장의 동물들은 자본가에 착취당하는 인민 혹은 노동자 계급이다. 그 중 돼지들이 바로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혁명을 주장하는 공산당이랄까.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해 존스가 농장에서 쫓겨나자, 동물들의 지도층은 당연히 혁명을 주도한 돼지들이 된다. 진정한 혁명가 돼지와 음험한 권력욕을품은 돼지의 세력다툼이 일어나고, 승리는 후자인 나폴레옹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 때 주목할 것은, 나폴레옹의 승리 수단은 인민(동물들)의 지지가 아닌 '강제공권력(개들의 이빨)'이었다는 점이다. 이상을 위해서라곤 하나 폭력으로 달성된 혁명은 결국 또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는 법이라는 것을 조지 오웰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후 나폴레옹을 위시한 돼지들의 만행은 갈수록 목불인견이 되어간다. 결국에는 혁명을 위해 묵묵히 힘을 다한 늙은 말을 도축장으로 보내 그 대가로 인간-과거 자신들이 그렇게도 멸시하던-의 사치품을 사와 향유하며, 인간처럼 두 발로 걷는 연습을 하기에 이른다. 침을 튀기며 비난했던 자본가층의 탐욕스런 행태를 고스란히 흉내내는 공산간부들을 빈정거린 오웰의 탁월한 재치다. 동물들이 창문 틈새로 지켜보는 와중에, 인간농장주의 집 안에서 돼지들은 술을 마시고 같은 동물들의 고기를 뜯으며 인간의 옷을 걸치고 인간처럼 두발로 뒤뚱거린다. 얼마나 경악스럽고 꼴불견인 광경이란 말인가. 그 작태를 위해 인민들의 고혈은 얼마나 빨렸을 것인가. 동료가 희생당해도 자기가 그런 꼴을 당할까봐 말한마디 못하는 억압은 또 어떨 것인가.
유토피아를 꿈꾸며 혁명을 부르짖은 이상가들은 가련할지언정 공산주의라는 이상은 인간본성상 도달해서 실현시키기엔 너무 먼 꿈이다. 교과서에서든 어디든, '그나마 나은 현실의 정치체제'로 왜 민주주의를 고집하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달까. 자본주의와 결합되는 민주주의는 확실히 헛점도 많지만 '그나마' 우리 인간이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인 것이다. 조지 오웰은 아마도 민주주의를 비아냥거리고 공산주의를 우상화하던 당시 청년들에게 이 점을 따끔하게 주지시키고 싶어서 이 글을 썼던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