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빅토리안 10
모토 나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레이디 빅토리안>의 표지를 봤을 때, 언젠가 본 듯한 낯익은 그림체에 저도 모르게 손이 갔다. 그리고 찬찬히 보기 시작했는데, 아아 이게 웬걸! 이 작가는 수 년전 내가 해적판으로 봤던 <아늑한 사랑로망>을 그린 작가가 아닌가! <레이디 빅토리안>의 그림이 훨씬 세련된 까닭에 한번에 깨닫지 못했지만, 특유의 아기자기한 인물들의 표정이나 감정, 전개방식은 그대로라 동일작가임을 알았다.

영국에는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 귀족들이며 사교계 데뷔며 티타임과 발달한 언론-그것들은 어쩐지 눈길을 잡아끌고 묘하게 심금을 울린다(최소한 나에게는). 모토 나오코 또한 그 매력에 사로잡힌 작가인 모양으로, 그녀의 전작 <아늑한 사랑로망>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 배경은 영국이었다. 게다가 현대가 아닌 영국적 낭만의 향취가 가장 짙은 19세기!!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라는 양 바퀴로 영국이 최고의 전성가도를 달리던 그 시기는, 극심한 빈부격차라는 비극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끔찍하게 매력적이다.

<레이디 빅토리안>을 보다 재밌게 보려면 19세기 영국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농촌에선 목양 붐으로 농부들이 땅을 잃고 도시로 쫓겨나고, 그 때문에 도시엔 값싼 노동력이 넘쳐나 산업자본가들이 횡포를 부리게 된다. 그로 인해 빚어지는 자본가(신사)와 노동자(근로자, 빈민) 간의 엄청난 생활수준 차이, 화려한 대영제국의 뒷면에 가려진 어둠. 주인공인 벨은 시골목사의 딸로 가난한 레이디다. 그녀가 당시 젊은 여성이 자립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인 가정교사로서 대도시 런던에 뛰어들고, 옛날부터 동경하던 잡지사의 사장과 작가를 만나며 본격적인 얘기가 전개된다.

작가인 아젠트 그레이는 은발의 화려한 미남이지만, 말투가 험하고 행동거지가 건달같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정체가 후작가 영양이자 사교계의 꽃 레이디 에셀이라는 것이다. 여장남자라는 매력적인 소재지만, 단지 '상업성'만을 고려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에셀'이 되기 전의 '아젠트'의 모습은 구빈원 출신의 고아소년으로 실로 비참하며, '에셀'이 되어 상류층에 진입한 후에도 구빈원 시절의 괴로움이 그의 행동이나 마음에 계속 영향을 끼친다. 이런 그(그녀?)의 모습을 통해 당시 런던의 사회상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한다. 귀엽고 예쁜 그림과 활기차고 모험 가득한 내용이지만, 역사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이 녹아있다.

뭐, 그렇다고 이 책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당시 유행하던 드레스와 신사복, 사교계에서 불리던 귀족들의 다양한 호칭, 흥미롭고 다채로웠던 언론플레이 등 흥미롭고 가벼운 소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가로운 시간에 홍차와 함께 보기 좋은 만화~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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