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 전7권 세트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김번 외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십여년 전이었다, <반지전쟁>이라는 5권짜리 판타지소설을 접한 것은. 당시만 해도 판타지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의 풍토에서, 이 기이하고 낯선 책을 읽은 것은 하나의 경이를 맛보게 했달까. 그만큼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의 감동은 컸다. 그러나 한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 많고 복잡한 호빗이름 덕에 처음을 넘기기가 힘들었던 단점도 있었다. 대개의 사람들이 1권에서 딱딱하고 복잡하다고 포기해버리던데, 이번에 새로나온 <반지의 제왕>은 그 점을 보완했다. 어떻게?

그것은 톨킨의 번역지침을 충실히 따름으로써 톨킨 원래의 해학적이고 유쾌한 문체를 살렸다는데 있다. 호빗마을의 묘사에서, 배긴스 등의 '성'은 고유명사라기보다 특성을 나타내는 단어에 가깝다. 즉, 방아간지기/골목쟁이 등으로 말이다. '이름'다음에 오는 성은 그 호빗의 마을에서의 지위랄까, 그런 것을 나타내고 있기에 성을 통해 그 호빗의 특성이 단번에 드러난다. '프로도 배긴스는 프로도 골목쟁이가 아냐!'라고 주장하고 싶은 분들은, 친숙한 것에 대한 집착을 벗고 원작의 묘미를 즐겨야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문학작품 봉순이 언니가 영국에 번역된다고 치자. 그 때 '달동네'가 영문에'daldongne'로 번역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마치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말이다.

달동네는 동네이름이 아니라 빈민가라는 뜻이다. 그럼 그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로 적절히 번역되어야 원작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다. 스트라이더, 배긴스...마치 고유명사처럼 번역되었었지만, 이것은 모두 틀린 번역이다. 씨앗판에서 성큼걸이니, 골목쟁이로 번역되었다고 이상하다며 화내는 것은, 제대로 된 번역판을 접한 영국인들이 왜 'daldongne' 가 '빈민가'로 번역되었냐고 화내는것과 같다.

예문판, 황금가지판, 씨앗판을 모두 읽은 나지만 씨앗판에 가장 점수를 주고싶다. 물론 나또한 10년이나 잘못된 번역에 길들여져왔으니만큼 향수와 거부감이 일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읽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아집을 버리고 봤을 때 씨앗판은 몰랐던 톨킨의 유쾌 글풍을 보여주었다. 이제야 제대로 톨킨의 문학세계에 한 발 다가섰다는 느낌이다. 시의 운율 따위는 아랑곳않는 황금가지판에 분노하며(영화의 흥행에 급급히 출간한 티가 역력한;), 예문판의 매끄러운 문장을 그리워했던 나다. 이번에 다시 예문판 때의 번역자들이 뭉쳐 기대보다 훨씬 멋지게 새로이 번역해주어서 얼마나 고맙고 기쁜지 모른다. 이 분들에게 특히 감탄하는 점은, 단순히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성을 살리려고 무척 애쓰며 또 훌륭히 결실을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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