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캥거루를 위하여 1
이강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1월
평점 :
품절
내가 이 만화를 고교때 봤다면 이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캥거루를 위하여는, 캥거루와 톰(톰과 제리의 그 톰;)의 사랑 이야기고 그들의 내면적 성장에 대한 이야기고 서로 가식을 벗어던지고 다가서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캥거루 얼굴을 한 대학생 진홍은 고교 때 마녀로부터 캥거루가 되는 저주(?)를 받고 말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캥거루의 얼굴로 상황에 적응해 살아가던 진홍이가 만난 파격적인 여자애, 톰. 제멋대로고 자유연애주의자인 톰은 그러나 고교 때는 공부벌레에 내성적인 애였다. 늘 색안경을 끼고 있는 톰과 캥거루의 얼굴을 한 진홍 두 사람은 라이브콘서트장에서 처음으로 만나고 알고보니 같은 대학이었고 그리하여 서서히 친해지다가 결국 사귀고..진홍이 쪽이 실연을 당하고..마녀가 나타나 캥거루 마법의 정체를 말한다.
세상은 험난하고 사람들도 믿을 것이 못되고 그래서 맨얼굴로 살아가면 너무 아픈 게 진실. 그러나, 깨지고 아프더라도 맨얼굴로 맞서는 게 소중한 것을 정답일 것이다. 비겁하게 캥거루나 색안경의 뒤로 자신을 감추고서는 얻는 것 또한 가식적인 허울뿐일 테니까.
실연당한 진홍이가 카페 톰이란 좁다랗고 기다란 복도같은 카페에 앉아 벽에 걸린 열대바다의 액자를 보며 톰을 보고파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깊었다. 옆에서 마녀가 뭐라고 해대는 것도 무시하고 오직 헤어질 때 자존심 때문에 잡지도 않았던 톰에게 다시 시작하자는 고백의 말만 되뇌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톰을 보고싶어하는 그 진홍이의 모습. 그 때, 캥거루의 마법은 풀린 것이다.
진홍이의 맨얼굴은, 참으로 멋지다.-_-// 톰에게 아깝다고 생각될만큼. 톰은 마지막까지 색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진홍이처럼 언젠가는 벗겠지? 그리고 진홍이가 '나는 때때로 습관과 그 편리함으로 캥거루의 얼굴을 하고 세상으로 나아간다.'라고 했는데 하하..그래, 그런 것이다. 이상적인 해피엔드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빙긋 웃을 수 있는 그런 엔드. 캥거루를 위하여, 진짜 얼굴을 감추고 세상에 나가 사람을 대하는 데 지친 분들에게 정말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강주님의 깔끔하고 현대적인 그림과 감성이 뚝뚝 흐르는 대사의 향연에 심취해보는 것은 흥행 성적 높은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보다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