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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 - 단편
마츠모토 토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젊음의 거리라 일컬어지는 대학로에 가보면 빈 터에 카세트를 크게 틀어놓고 이른바 '춤꾼'들이 모여서 축제를 벌이고 있다. 추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받아들이는, 그러나 어지간한 배짱과 실력이 없으면 감히 그 속으로 뛰어들지 못할 냉엄하고 열정적인 길 위의 공연장. 나는 율동과 음악과 생명력이 넘쳐나는 그 터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환호하는 구경꾼 중 한 명이다. 때때로 나도 가장자리를 벗어나 가운데로 뛰어들어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곤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몸치이며, 어설픈 동작은 춤이라 칭하기에 창피스런 수준이다.
마츠모토 토모가 <키스>이후 내놓은 <23:00>은 이런 춤과 그 춤을 추는 춤꾼들을 다룬 만화다. 여주인공 미도리의 오빠와 그 친구는 길거리 공연장에선 다들 알아주는 실력파 춤꾼들이며, 남자주인공 히가는 히가의 형들과 마찬가지로 춤에 대한 '센스'를 타고났다. 히가가 얼떨결에 미도리의 오빠와 팀을 결성하고, 그리고 길거리 공연장과 경연대회 등에 참가하면서 그 쪽 세계가 흥겹게 조명된다. 분명히 일본의 상황인데도 우리 나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서 조금 놀라운 한편으로 재밌게 느껴졌다. 혹시 중국이나 미국도 비슷한 거 아닐까, 춤의 세계는 만국공통인가, 그렇다면 춤이야말로 인류보편의 의사소통수단? 이라는 온갖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춤을 추는 사람들은, 춤꾼의 외모보다는 춤을 보고 매료된다. 히가나 미도리의 오빠가 외모적으론 다른 어떤 팀보다 월등한데도 사람들은 섣불리 그들에게 기대를 가지지 않는다. 다음에 이어진 춤으로써 그들에게 사로잡히고 열광한다.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세태에 역류하는 자유로운 정신들이 음악과 율동에 의해 유도되는 것일까? 춤을 추는 사람이나 그를 구경하는 사람들이나 옷차림을 보면 대개는 아주 자유롭고 개성적이다. 겉으로 드러난 만큼이나 그 내면도 자유로운 춤에 빠진 사람들. 그들을 동경한다. 나는 어떤지? 나도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 부디 그렇기를 바란다.
주인공 히가는 그야말로 타고난 춤꾼이다. 같은 동작을 해도, 무리 중에 있어도 움직임이 확연히 눈길을 잡아끄는 튀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게 되고 미묘하게 반해버리고 만다. 뭐, 적극적으로 대쉬한다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말이다. 남자를 혐오하던 미도리가 히가에게 반해버린 마음도 이런 게 아닐까? 어떻게 고작 춤 하나에 남자를 싫어하던 애가 남자한테 반하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춤이란 건 정말로 그 정도로 마력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의심스러우면 주말의 대학로로 꼭 가보길 권한다.
음악을 들으면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짜릿해지고 머리속이 하얘지면서 저절로 몸이 움직여버리는 히가. 그리고 그렇게 춤추는 히가를 바라보면서 히가가 말하고자 한 바를 공감한 미도리. 두 사람이 음악과 춤 속에서 서서히 서로에게 다가서는 모습이 <키스>와는 또다르게 맘을 울렸다. 피아노의 선율이 감싸도는 카에와 고시마 선생의 사랑, 그리고 댄스뮤직과 춤의 테두리에서 마주서는 히가와 미도리. 어느 쪽이나 마츠모토 토모 특유의 섬세한 감성이 녹아있는데다 담담하면서도 따듯해서 좋다.
<23:00>를 보니까 새삼 애인없는 처지가 서러워진다. 이번에 대학로에 갈 땐 그냥 친구긴 하지만 남자인 동기를 데려가볼까. 아니면 춤꾼 중 히가같이 멋진 애에게 눈 딱감고 접근해볼까. 격렬한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아무도 안 보는데서 한동안 몸을 흔들고 나면, 아마 그럴 용기가 날지도 모르겠다. 한 번 시도해볼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며 <23:00>를 덮고 24시로 향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