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돌 1
전민희 지음 / 자음과모음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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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돌은 어쩐지 고풍스럽고 하품이 날 것같은 제목으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제목이다. 그러나, 막상 1권을 펼쳐들자 나는 10분도 안 되어서 이미 세월의 돌에서 도저히 발을 빼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시작부터 시원하고 날렵한 문체로 마치 주인공인 파비안이 스노우보드를 타고 눈쌓인 산을 타고 내려가듯 이야기가 전개된다. 손님을 얼르고 설러서 물건을 팔아넘기는 데 가히 천재적인 장사꾼 파비안의 솜씨에 푸하하 웃다가, 또 작은 산골마을에 등장한 이상한 존재들에 서서히 긴장하다가 마을파괴를 계기로 모험길에 나서는 파비안이 앞으로 어찌될지 저도모르게 빠져드는 것이다. 불과 반권 정도로 이 정도까지 많은 것을 드러내며 흥미를 느끼게 하는 판타지가 달리 있었던가? 수십권을 넘는 판타지를 봤어도 세월의 돌 정도로 강한 흡입력을 가진 소설은 얼마 보지 못했다고 단언한다.

마법이 사라진 현시대에 200년전 마법시대에서 건너온 유리카 오베르뉴라는 신비한 소녀. 그리고 그녀와의 만남 및 엘프 미카엘, 드워프 엘다렌을 차례로 만나 200년 전에 현재로 미룬 무엇인가의 해결을 위해 파비안은 여행을 한다. 아니, 모험을 한다. 곳곳의 풍물과 맛깔나는 음식 및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파비안 일행과 얽히게 되는 심상치 않은 대륙정세. 모든 것은 200년 전 대마법사의 봉인과 관련해서 돌아가고, 유쾌한 모험이 펼쳐지는 와중에 끊임없이 그러한 큰 흐름을 상기시킨다. 복선도 굉장히 오묘해서, 나중에 완결까지 보고 난 후 다시 한 번 읽으면 '아아, 이 때 이래서 나중에-'하는 감탄을 흘리게 된다.

곳곳에 삽입된 노래들은 아름다운 시처럼 기억에 남고, 주인공들의 때론 재미나고 때론 더없이 슬프고 아름다운 행보는 되돌이킬 때 얼핏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게 한다. 나는 세월의 돌을 몇 번이나 보았지만, 특유하고 정교하고 마음을 끄는 '다른 세계'는 볼때마다 새롭고 다정하게 다가온다. 작가인 전민희민의 섬세하고 정교한 문체는 더없이 매끄럽게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이끌어주고, 그래서 더욱 요즘 마구 쏟아지는 통신체와 엉망인 문법들의 여타판타지 속에서 가히 독보적으로 빛난다. 세월의 돌이 세계적으로 진출해도 하등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언젠가 여러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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