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일상의 여백 - 마라톤, 고양이 그리고 여행과 책 읽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들이 참 좋다. 평범한 듯 전혀 그렇지 않은 듯 보내는 그의 일상이 한껏 녹아있는 페이지들을 넘기다보면 어느샌가 그 속에 흠씬 빠져 저도 모르게 빙글거리고 있다. 정육점에서 산 갓 만든 따끈한 고로케를 빵집에서 산 갓 구운 식빵 사이에 끼워 공원에서 먹는다는 하루키, 심심하면 고양이랑 같이 장난치고 노는 하루키, 레코드와 술을 사모으고 즐기는데 일가견이 있는 하루키, 은행에 가서 자기의 직업을 자영업으로 해야할지 사업으로 분류해야할지 고민하는 하루키. 아주아주 평범한 일들이지만 그 특유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결합되어 읽다보면 무척이나 재밌다.

그런데 <하루키 일상의 여백>은 이전의 수필집들과 달리 하루키상의 일본생활이 아니라 미국생활을 그리고 있어서, 다른 수필집들과는 차별된 매력을 풍긴다. 그가 잘 가는 일본 초밥집이나 출판사관계자들 얘기 등을 더 볼 수 없는 것은 아쉽지만, 미국이라는 아주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하루키상의 이야기는 그 아쉬움을 상쇄할 만큼 흥미로웠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로 초빙되어 간 하루키는 널따란 정원딸린 집에서 아내랑 거주하며 미국교수들 및 학생들과 교제한다. 버몬트의 농원으로 여행가고, 재즈카페나 영화관에도 자주 들리며 마라톤에 참석하기도 하는 등 실로 미국에서 향유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즐기는 하루키!! 역시 하루키상은 어디다 데려다놔도 자기식대로, 일명 하루키답게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옆집의 미국고양이들과도 여전히 잘 어울리고 말이다.

가장 인상깊었던 일화는 어떤 미국인 운전사에게 욕을 먹은 하루키가 한 행동이다. 'You Scumbag'이라는 말을 들은 하루키상은 집에 와서 사전으로 Scumbag의 뜻을 찾아본다. [도덕심 없고 무가치한 인간에게 하는 욕설]이라는 해석을 읽고는 생각하길, '아, 나는 도덕심 없고 무가치한 인간이었구나. 어쩌면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했지만..'
푸하하, 정말 걸작이지 않은가! 욕으로 짐작되는 단어를 굳이 사전으로 찾아본다거나, 그 뜻을 알고서도 기분나빠하기보다 저렇게 담담하게 생각하는 그 하루키적 사고&행동양식!! 난 정말 이래서 하루키상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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