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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8
서문다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서문다미의 작품들은 강렬하다. 부러질 듯 가는 팔다리의 마른 캐릭터들인데도 그 눈속에 담긴 갖가지 감정들이 너무도 강해서 그들은 무척 뚜렷한 존재감을 가지고 어필해온다. 특히 증오라거나 놀람의 경우, 이렇게까지 그 감정이 여실히 전달되게 그릴 수 있는 작가는 달리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단지 인물들의 모습만으로 강렬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들! 껍질의 각인이라는 단편에서 거부당한 사랑에 책상에 엎드린 채 죽어간 소년의 이야기는 정말로 한참이나 뇌리에 들러붙어 떨어지지가 않았었다.
도박사의 경우도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모를 이야기를 늘어놓던 늙은 도박사가 다음날 젊어진 채 나타나며 미소짓는 그 못습이 어찌나 인상적이던지. 엔드는 서문다미가 손댄 작품 중 가장 장편인 연재작이며, 그녀의 장기인 미스테리한 분야와 인간들의 강렬한 감정이 한껏 드러나 시종일관 눈을 뗄 수가 없다. 평범한 고교생 문명인이 고교입학식날 이상한 꿈과 함께 잠에서 깬 직후, 그녀 주위에 모여드는 이상한 사람들과 얼굴이 똑같은 자매들을 만나며 펼쳐지는 엔드.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정체불명의 초능력부여물질인 엔드를 둘러싸고 현재의 모든 것이 시작되었으며 미래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
1999년 세기말에 시작된 이 작품은, 그 시작년도가 사뭇 의미심장하다. 노스트라다무스에 의해 인류멸망의 해로 예고되어진, 사람들의 머리 속에 필연적 파멸의 날로 상징화되었던 1999년. 1999년은 지났지만 인류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파멸의 날은 지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엔드를 둘러싼 힘있는 인간집단들과 개개인들의 끊임없는 싸움의 결과 인류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엔드의 아이들 중 하나인 문명인의 꿈에서 알 수 없는 존재들은 그녀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그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엔드를 둘러싼 암투라는 큰 줄거리 속에서 평범한 소녀이며 평범한 소녀이고 싶은 문명인과 그녀 주위의 친구, 가족, 동료, 또는 연인들이 펼치는 일상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 이야기 또한 무척 재미있다. 뉴헤븐이라는 초능력자집단의 인재 진시우가 처음엔 적으로 다음엔 연인으로 명인에게 다가서지만, 두 사람의 앞날은 순탄치 않아보이니 큰일이기도 하고. 아무튼 문명인을 포함한 엔드의 5아이들(여자) 각각에겐 가장 관련깊은 '남자'가 있어 독자에게 커플만들기의 묘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각자 다른 특성과 성격을 가진, 얼굴은 똑같지만 너무도 다른 그녀들의 이야기가 최중심에 선 <END>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 베스트 오십에 들어간다. 내가 읽은 만화가 수백단위를 돌파함(권수말고 제목으로만)을 생각할 때, 그것은 절대로 낮은 순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