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거지 네버랜드 클래식 10
마크 트웨인 지음, 이희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나이의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운명은 천지차이다. 한 명은 더러운 런던 뒷골목에서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매일 맞으며 구걸해야 하는 거지신세, 또 한 명은 화려한 왕궁에서 최상의 교육을 받으며 호의호식하는 왕자님팔자. 하다못해 얼굴이라도 다르면 자신 탓으로 돌려보련만 어딜 보나 '똑같은데' 억울한 노릇이 아닌가. 자신도 그런 환경만 주어졌다면 얼마든지 왕자님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내가 거지 톰이라면 나는 그런 불합리성에 대해 분개했을 것이다. '운명'은, 인간이 원하는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왕자와 거지의 대조적인 입장으로 태어난 그들을 보며 느꼈다.

그러나 또하나, 그렇다면 운명은 완전히 내 손을 벗어나있는가? 그렇지 않음을 거지와 왕자는 서로의 옷을 바꿔입고 서로의 삶을 살아봄으로써 알게 된다. 왕자는 거리로 나가 세상의 잔혹함을 알게되고 마일즈 험프리라는 충직한 사람을 얻게 되고 그리고 거지는 수많은 지식과 교양과 지배층으로서의 경험을 얻게 된다. 그들이 '서로 바꿔보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저 세상 모르는 왕자와 비천하고 무식한 거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일단 바꾸는 행동을, 기존의 상태를 타파하는 혁신적인 모험을 행했고, 그 모험에서 최선을 다함으로써 새로운 운명을 쟁취했다. 거지는 유식하고 자애로운 고아원 원장으로서의 삶을, 그리고 왕자는 세간의 사정을 잘 알고 백성들을 위해 힘쓰는 멋진 왕으로서의 삶을 말이다. 그들은 안이하고 나태한 국왕이나 거지두목 따위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만나 그들의 의지로 모험에 뛰어들었고 그 모험을 힘껏 헤쳐나감으로써 자신을 변화시키고 운명을 변화시켰다. 태어날 때 인간에겐 어찌할 도리 없는 운명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 운명은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굴레가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유동성을 지닌 것이다. 고무풍선처럼, 숨을 얼마나 불어넣느냐에 따라 그리고 얼마나 조심스럽게 불어넣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지는 것이고 그 속의 자유로운 공간이 넓어지는 것이다. 유치한 비유일런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는 마냥 재밌게만 봤던 왕자와 거지지만, 커서 읽으니 새삼 운명에 생각이 미친다. 나 또한 그 강인한 소년들처럼 풍선을 터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크게 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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