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카 Masca 1
김영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마스카>는 본래 윙크라는 만화잡지 공모전에 당선된 단편이었다. 나라 안 여인네들이 마왕성으로 잡혀가 돌아오지 않자, 그 사태를 타개하고자 대마법사의 제자가 나서 마왕을 설득하러 간다는 그런 이야기로 마왕이 결국 그녀에게 반해 마왕과 그녀가 맺어졌단 뉘앙스를 풍기며 끝난 귀여운 판타지. 그렇게 출발한 마스카는 장기연재로 돌입하면서 정말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저 꽤 괜찮다는 느낌만 주던 그림은 나날이 엄청나게 정교하고 인체묘사 등에 능란해졌으며 굉장히 '공을 들임'을 알 수 있달까. 지금에 와서 처음의 <마스카>와 비교해보면 짧은 기간 내에 이런 일취월장을 이루어낸 작가의 노력이 어느정도였는지가 확연해 문득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작금의 단지 돈을 위한 날려치기가 만연한 만화판에서 정말 순수하게 작품의 퀄리티를 보강하기 위한 그 노력이 대강대강을 선호하는 나자신을 반성하게도 했다.

아무튼, <마스카>는 감탄성이 나올만큼의 그림과 함께 내용 또한 방대한 스케일로 뻗어나가며 기존의 가슴 두근거리는 로맨스와 어우러져 갈수록 고조되는 흥미를 선사한다. 시간의 무게에 눌린 영생과 파괴의 존재 마왕과 순수하고 따뜻한 소녀 마법사 아사렐라, 그리고 아사렐라의 아버지이자 연인 엘리후. 이들 세 명의 도저히 결말을 알 수 없는 두근두근한 삼각관계의 향방은 두 남자 다 나름대로의 과거지사와 어우러져 절대로 아사렐라를 포기할 수 없는 절박함이 있기에 더 가슴을 죈다.

수만년의 시간동안 심장이 얼어붙어 있었던 마왕이, 죽을 수 없는 숙명의 존재가 '목숨을 걸 정도로' 하는 사랑. 그리고 몇 백년의 시간 동안 무엇인가에 열렬히 빠져본 적이 없는 '집착해 본 적이 없는' 대마법사 엘리후의 사랑. 아사렐라의 입장에서 누구를 택하기란 정말로 힘겨운 노릇이다. 보고 있는 내가 이렇게 조마조마 애탄데 그녀는 어떨지 정말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안 됐다(?)는 마음마저 들고 말았다. 마스카에서 제일 주된 것은 이들 세 명의 사랑 이야기지만, 그것을 압도할만큼 멋들어진 새로운 판타지세계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검은 용족과 괴수들과 불멸의 마왕들과 초자연에 선택받은 마법사-마스카-라는 존재. 그리고 보통사람들. 힘의 순위로 보자면 인간 위에 마스카족, 그리고 그 위에 마왕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행복의 순위는 어떨까? 초자연에게 선택받은 능력을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데 바치는 마스카족, 그러나 그런 겸손의 이면에서 사실상 인간들 위에 군림하며 의기양양해하고 그러면서도 더 강대한 힘을 가진 마왕을 경원하는 존재가 그들이다. 고등사고를 하는 존재라면 다 그렇겠지만 마스카족만큼 양면성이 두드러진 존재가 또 있을까. 뛰어난 사고력으로 그것을 모를 리 없는 그들이니만큼 자괴감도 더할 것이다. 마왕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스스로 원한 것도 아닌 파괴와 살육을 초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죽을 수조차 없는 힘과 영생의 존재다. 그러니 마음이 따뜻할수록 가장 괴로워지는 가엾은 '인간'이기도 하다. <마스카>에는 여러 마왕들이 나오지만, 그리고 각기 다른 성격과 행동들을 보여주지만 그들에겐 공통되는 고통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가장 괴롭고 행복에서 먼 존재는 바로 이들 마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마왕이 된다면, 자살조차 할 수 없는 그 숙명 속에서 나는 과연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마스카>는 말괄량이 어린 마법사와 두 멋진 남자와의 로맨스판타지다. 그리고, 또 다른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이며 세상 어느 곳이든 어떤 지위에 있든지 절대적으로 '더 낫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음을 보여준다. 현란하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잠깐 내가 있는 곳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즐기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최상의 행복을 선사해주시는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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