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나라의 앨리스 네버랜드 클래식 1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엘 그림, 손영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보다 대중적이지 못하다. 영어원판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말장난도 많거니와 철저히 영국 풍습에 기인한 인물 간의 대화, 그리고 곳곳에 은밀히 숨어있는 딱딱한 교훈 및 체스식 전개가 세계인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방해요소가 된 탓이다. 그러나 이런 방해요소는, 그것을 마스터만 한다면 오히려 흥미요소로 바뀌어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비할 데 없이 재미나게 만든다.

먼저 체스! 거울나라의 세상은 무수한 시냇물로 수직수평으로 양단된 네모낳고 평평한 땅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선으로 칸이 나눠진 체스판과도 같다. 앨리스가 만나는 하얀여왕과 붉은 여왕은 대단히 빠르게 움직이고 앞으로는 가지 못한다. 이것은 체스말 중 '퀸'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얀기사나 붉은 기사는 말머리 모양의 투구를 쓰고 있는데, 체스말로 기사는 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폰(병사)'에서 시작해서 '퀸(여왕)'이 되기 위해 체스칸 8칸을 지나간다. 그리고 그 칸마다 다양한 거울세계 인물들을 만나는 것이다. 체스말들의 특징과 체스규칙을 알면 작가 루이스 캐럴이 살짝 '비틀어놓은' 체스판같은 거울세계가 다시없이 흥미진진해진다.

영어식 말장난도, 우리말로 번역된 걸 읽고 있노라면 '아아, 무슨 소리야, 이게. 지루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어의 원어로 바꾸면 마치 시와 같은 운율이 살아날 뿐더러 무척 재밌는 '놀이'가 되는 것이다. 일례로 거울나라의 곤충들을 살펴보면 '버터바른 빵 나비'와 '불붙은 건포도 잠자리'가 있다. 이것을 영어로 바꾸면 '버터브레드 버터플라이', '스냅드래곤 드래곤플라이'가 된다! '나비(버터플라이)'와 '잠자리(드래곤플라이)'에 맞추어 앞에 '버터바른 빵'과 '스냅드래곤'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맛있는 연상이 아닌가. 보트를 타고 나누는 양부인과 앨리스의 대화에 있어서도, '노를 헛저어 배를 뒤집는다'와 '게를 잡는다'는 뜻이 두 가지인 동일한 단어를 두 사람이 계속 다르게 이해해서 우스운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것들은 분명 '영어'로 읽지 않으면 이해할 수도 재미를 느낄 수도 없는 말장난이다. 그렇기에 번역자가 충실히 번역을 해놨지만 역시 영어원판을 구해서 보고 싶어진다.

한 번 식사에 두 번 푸딩을 먹지 않는 것이나, 오후 4시쯤 티타임을 갖는다거나, 파이를 자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나 건포도를 브랜디에 담갔다가 불붙여서 먹는 스냅드래곤 놀이 등은 철저히 영국의 생활습관이다. 인물들의 대화 곳곳에 스며있는 이 풍습들은 확실히 이질적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흥미롭기도 하다.

체스칸 한 칸을 넘어갈 때마다 붉은 여왕, 하얀여왕, 기사, 기차를 탄 사람들, 말하는 꽃들, 이상한 곤충들, 험프티 덤프티, 트위들덤 트위들디 같은 기이하고 야릇한 존재들이 새롭게 등장한다. 게다가 그 중 많은 이들이 시를 외우기 좋아한다. 길고도 긴 시를 말이다. 8번째 체스칸에 다다라 결국 여왕이 된 앨리스는 앨리스의 만찬을 가지고..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처럼 꿈에서 깨어남으로써 모험을 마무리한 앨리스, 그러나 거울 나라의 존재들과 나눈 대화나 겪은 일들을 그녀는 잊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말이다. 인생이란 한갓 꿈이 아니련가? 라는 루이스 캐럴이 앨리스를 위해 지은 시의 마지막 행처럼 나는 지금 앨리스처럼 꿈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거울 나라에서 줄창 잠만 자던 붉은 왕의 꿈 속에 있는 것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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