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대일출판사 세계명작 시리즈 121
제인 오스틴 지음, 유한준 옮김 / 대일출판사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오만과 편견. 너무도 유명하고 사람들 사이에 자주 회자되는 소설임에도, 현학적이고 사변적인 냄새를 풍기는 제목 탓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공강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다가, 문득 내가 앉은 큰 책상 위에 누군가가 꽂아두지 앉고 그냥 놓아둔 오만과 편견을 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건성으로 펼친 첫 페이지 이후 나는 다음 강의들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렸다.

19세기의 영국 사교계의 상황과 결혼시장을 이렇게 잘 동시대 작품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중류층 집안의 여러 딸들 중 한 명인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그다지 아름답지도 재능있지도 않은 탓에 그녀의 어머니는 애초부터 그녀의 신랑감의 기준은 낮게 잡는다. 아름다운 그녀 동생의 신랑감 기준은 아주 높게 책정하고 말이다. 어찌보면 차별이다, 너무하다 싶기도 하지만 실상 어머니는 현실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했을 따름이다.

엘리자베스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당시의 결혼시장 행태를 드러내던 오만과 편견은, 다시라는 남자 주인공의 등장으로 흥미진진해진다. 엘리자베스보다 훨씬 높은 지위와 재산을 가진, 이른바 '상류층 중의 상류층'인 다시씨는 엘리자베스의 매력에 끌리지만 아주 '오만'하게 그녀를 향한 호감을 표시한다. 그리고 그렇게 오만한 다시씨를 엘리자베스는 '그는 소위 상류층이니까'라는 편견을 가지고 실제보다 심하게 매도하며 싫어한다. 이렇게 각자의 문제-오만과 편견-를 안고 둘의 사랑은 시작된다.

제목의 의미를 다시씨와 엘리자베스의 만남에서 깨닫고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었다. '아아, 오만과 편견이 이런 거였군!'하고 말이다. 무언가 철학적인 의미에서 생각한 오만과 편견이 아니었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또 하나 깨들은 것은, 이 소설이 연애소설이다! 라는 거였다. 하도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이 오만과 편견을 얘기하길래 나는 당연히 헤르만 헤세적인 오묘하고 복잡한 정신의 문제라도 논하는 줄 알았었다.

이 책이 발표됐을 당시, 엄청난 화제성과 더불어 문란하다느니 하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지금의 시각에서야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확실히 그토록 '노골적으로' 연애와 결혼에 얽힌 사람들의 생각을 파고든 면은 당시 사람들을 뜨끔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오만과 편견에 드러난 사람들의 마음과 시각과 머리굴리는 양상은 적나라하고 지극히 현실감이 있다. 엘리자베스의 어머니는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이다. 결혼에 얽힌 여러 사람들의 입장과 시각이 충돌하며 엮어내는 드라마는 우리 나라 드라마 중 '보고 또 보고'를 연상시킨다. 물론 분위기나 느낌은 굉장히 다르지만 본질은 똑같달까.

이처럼 오만과 편견의 매력은 당시의 생생한 결혼에 얽힌 사교 면면에도 있지만, 엘리자베스와 다시씨의 사랑이 역시 최대의 볼거리이자 흥미요소라 할 수 있다. 거부당한 다시씨가 먼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엘리자베스네 가족을 모르게 도와주는 것이라든지, 그의 그런 겸손한 배려를 깨닫고 그를 사랑하게 되버리지만 한 번 거절했었기에 괴로워하는 엘리자베스는 보는 사람을 너무도 애타게 만드는 한편 끌리게 한다.

결국 우려곡절 끝에 서로의 오만과 편견을 뛰어넘어 맺어지는 그들의 모습은, 가히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달까! 그네들의 사랑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내 자신을 한 번 슬몃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금 혹여 내 인연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오만, 혹은 편견, 또는 그 외' 어떤 문제를 가지고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말이다. 오만과 편견을 읽고 나면 꼭 들곤 하는 생각이며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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