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의 문장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이 책 제목만 보고는 요즘 다양한 가족 형태가 생기니, 그 가족 형태를 소개해 주거나 다룰 줄 알았으나, 읽어보니 사실 아이의 처우에 대한 책이었다. 한국 사람들의 정상성에 대한 이상한 집착(사실 한국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정상가족 내에서 허용되는 '처벌'과 비정상가족 내에서나 발생할 것 같은 '학대'. 처벌과 학대가 서로 매우 다를 것 같지만, 실상 그 차이의 경계라는 것이 얼마나 가느다란 실 같은 것으로 나누어져 있는지에 대해,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정상 가족에 대한 집착은 여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쯤 되면 대체 가족이 뭐길래, 정상 가족이 뭐길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가족 중심 주의가 현재에까지 강하게 이어져오면서 남기는 폐해가 없는지 이야기하고 가족의 짐을 사회에서 함께 나눠들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 논의해본다.

인류학 전공자이자, 여성가족부 차관으로서의 저자가 자신의 인류학적 배경과 현실 정치에 참여하며 겪은 고민을 이 책에서 엿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최근 인류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커져 가는 가운데, 이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인류학 또한 인간에 대한 고민이 많은 학문인 것 같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신체 가학적 체벌이 행동 교정에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몇몇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리 선한 의도로 부모가 자식을 때렸다 하더라도 원래 때렸던 목적, 자식의 행동을 교정하는 데에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그리고 매를 맞은 당사자에게는 마음에 깊은 상처만 남을 뿐이었다. 물론 아이를 때리면 '일시 중지'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연속적인 관점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럼에도 왜 한국에서 '정상성'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체벌을 하는가.


넬슨 만델라의 말처럼 아이와 같은 신체적 약자에게 대하는 방식이 현재 한국 사회가 신체적, 사회적 약자에게 어떻게 가혹하게 대하는지 알 수 있으며, 얼마나 '정상성'에 대한 신화로 불안을 만들어내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신체 건강하고 지적으로 뛰어난 이성애자 성인의 남성'만 살기 좋은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사실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속한다 하더라도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건강한 사회란 신체가 건강하지 않더라도 지적으로 뛰어나지 않더라도 이성애자가 아니더라도 성인이 아니더라도 남성이 아니더라도 살기 괜찮은 사회여야 한다.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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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과학』 표지에는 제목 옆에 '복잡한 세상의 연결고리를 읽는 통계물리학의 경이로움'라는 설명구가 붙어 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잘 설명하는 표현이다.


이 책에는 우리의 일상이 담겨져 있다. 시민들의 저항운동이 비폭력적일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였고 페이스북에서 절친을 찾는 법이나 우정을 측정하는 방법,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와 시간, 지구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인 김범준 교수님이 과알못 독자들을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 하나 쉽게 설명한다는 느낌이 든다.)


통계물리학이란 '통계 방법론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알아내는 학문'인가, 문자 그대로 풀이해보긴 했는데, 김범준 교수님을 알기 전까지는 통계물리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터라, 실제로 뭘 연구하고, 어떻게 연구하는 지는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통계에 대해서는 조금 알게 되어, 오히려 통계보다 물리학에 대해서 더 감을 잡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물리학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걸 연구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걸 알았다. 사실 나도 심리학 석사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가까운 관계 내에서 자주 경험하는 '삐침'을 동료들과 연구했고, 내 석사 논문으로는 한국인의 매력전략으로서의 애교를 애착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연구했다. 가끔 뉴스에서 독특한 연구를 보긴 하지만, 실제로 하고 있는 분의 책을 보다니! 흥미로웠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지구의 공기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의 신체를 온통 둘러싸고 있는 공기, 그 단어의 뜻처럼 비어있지 않다. 가로세로 1cm인 작은 네모에 공기가 중력으로 만들어내는 힘은 대략 1kg 질량의 물체로 그 위를 누르고 이쓴 정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엄청난 질량의 공기에 우리는 눌리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공기의 압력이 모든 방향에서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기는 어디에나 모든 방향으로 존재하고 있어, 우리가 공기를 마치 '비어있는'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화성에 가거나 아님, 우주에 맨 몸으로 있다면, 공기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많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은 다들 말 안해도 알 것이다.


물리학의 범위가 참 넓은 것 같다. 심리학과 연관 있는 연구들엔 자연스레 더 눈길이 갔는데, 그건 이 책의 2장 '관계'에 소개된 연구들이다. 그 중 '우정의 개수를 측정하는 법'을 보면, 왜 SNS를 들여다보면,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이는지 김범준 교수님의 과학적 해설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경험하는 '나'는 단 한 명이라 제한적이지만, 전해 듣는 '친구'의 소식은 나보다 다양할 수 밖에 없고, '친구의 친구' 소식은 더 그렇다. 그러니깐 나의 행복 이벤트는 한 달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이지만, 친구와 친구의 친구(물론 그 중의 일부겠지만)에게선 매일 행복한 소식이 들려온다. 심지어 SNS에는 게시자 삶의 아주 일부분을, 찰나를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SNS로 인한 인지적, 감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심리학에서도 연구를 많이 하고 있는데, 한 마디로 말하자면 좋지는 않다.


과학자의 시선을 잠깐 빌려 내 일상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보시라!


복잡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단순화의 과정을 거쳐 현실을 ‘어림‘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 P49

사회에서의 압력은 대부분 힘 있는 쪽에서 없는 쪽을 향하게 마련이다. 양쪽의 압력 차이를 버틸 수 있는 튼튼한 가름막을 마련해 힘없는 이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 P161

개미 집단 안에서 한 구성원의 실수로 생긴 문제는 다른 구성원에 의해 신속히 해결된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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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파 - 2018년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박해울 지음 / 허블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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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은 『기파』는 박해울 작가가 약 6년 동안 품고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던 작품이다. 근미래(아직 오지 않았으나 곧 올 것 같은 미래)에 '기파'라는 이름으로 얽힌 인간 기파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로봇 이언을 통해 독자가 Humanity,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만든다.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지나친 사전 정보 제공으로, 읽는 재미가 반감될까봐 소설에 대해 조심해야겠다. 이 소설은 #SF #기파 #로봇 #인간성 #영웅 이란 키워드만 알고 읽는 게 가장 재밌을 것 같다.)

소설은 우주택배원으로 일하다 우연히 난파된 우주크루즈 오르카호를 발견해 기파를 구출하려는 충담의 시선과 충담이 오르카호에서 처음 만난 생존자 아누타의 시선, 기파 평전에 기록된 기파에 관련된 내용이 교차되며 소설이 진행된다. 이 세계에서는 가난한 자는, 잃어버린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해서 살 수 밖에 없으며, 기계나 로봇이 대중화되어 사용되고 부자들은 부의 과시를 통해 가능하면 가장 인간의 생체를 유지하고 살아있는 인간을 부리기를 원한다. 기계보단 인간, 살아있는 것을 원하면서도 편의는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부자들의 욕망이 초럭셔리 오르카호의 운행을 가능하게 했고, 그 살아있는 인간, 더 나아가서는 아름다운 인간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을 당한다. 그 희생에는 인간을 포함, 신체 일부를 기계로 가진 인간, 로봇까지 포함된다. 이 소설에서 충담과 아누타, 기파와 이언은 닮은 듯 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의 욕망과 기억을 가지고 교차되고 움직인다.

그리고 충담이 영웅으로 불리는 기파의 실체를 확인했을 때, 현재 우리가 아는 영웅(간디나 슈바이처, 마더 테레사 등)들이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의심하게 된다. (이미 밝혀졌지만 슈바이처나 마더 테레사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차갑고 몰인정한 모습을 보였다는 말들도 있고, 간디의 경우에는 친아들이 간디가 가족을 부양하는 의무를 저버렸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영웅이란 우리가 바라보고 싶은 대로 만들어진 모습일 수도 있다. 실제의 모습과는 다르게.


SF적 상상의 세계에서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기파』를 꼭 읽어보시길!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기시감이 없는 건 아닌데, 그러면서도 흥미롭다.

(그나저나 저도 SF를 쓰려고 합니다...)


고향 땅에서는 모두 나를 기다리네
구름 위에 떠가는 달이
맑은 모래 일렁이는 물이
내 소식 전해주리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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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 과학자님은 카이스트에서 부지런히 뇌 관련 연구도 하시면서 과알못 일반인들 대상으로도 강연을 부지런히 하셔서 여러 과학 강연을 통해 뵈었던 분이다. 지금 생각나는 건 작년 이맘때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올해 무중력지대 지밸리에서 했던 강연이다. 두 강연 다 송민령 과학자님만의 통통 튀는 매력과 깊이 있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송민령 과학자님의 새로운 저서가 나왔다고 했을 때, 배우 반가운 마음이었다. 솔직히 강연은 두어번 들었지만,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기에...



이 책은 송민령 과학자님이 과알못 일반인들에게 강연을 하시는 것과 같은 책이다. 뇌과학은 어떤 학문이고, 학문적 규정(과연 뇌를 알면 마음을 아는 것인가)과 뇌과학 분야 연구를 과알못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고 있다. (마치 카이스트 언니의 과외를 받는 느낌이랄까?)

사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뇌도 살짝 공부하곤 했는데, 그 때마다 뇌 부위 명칭 외우느라 내 뇌가 빠개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이상하게 이 책은 재밌다. 특히 내가 책을 읽으면서 재밌던 부분은 아래와 같다.

-감정에 대한 오해를 풀고 변연계 기능에 대해 설명하는 [감정은 '하등'하지 않다]

-락토바실루스 루테리라는 장내 박테리아는 정말 우리의 정서,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관련 연구는 소개하는 [장내 미생물과 사회성]

-내 목표를 위해 도파민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도파민의 기능적 설명과 함께 활용법을 제안하는 [목표를 이루는 '도파민 활용법']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와 함께 유명해진 '인공지능'과 뇌과학 연구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설명하는 [뇌과학을 통해 발전하는 인공지능]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 젠더 이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뇌연구로 설명하는 성별차의 오해를 분식시키는 [여자의 뇌, 남자의 뇌 따윈 없어]

마지막 소주제는 이전에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도 송민령 과학자님이 강연하셨던 주제와도 연결된다. 남성과 여성, 완벽한 성 구분은 생물학적으로도, 뇌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여성 안에 남성 호르몬이 다량 검출됐다거나 남성의 몸 안에 기능하지 않는 자궁이 발견된 사례 등 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많았다. 이 책은 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니, 이 책에서는 뇌에서는 생물학적 차이가 없다는 걸 여러 실험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다만, 성 고정관념이나 문화의 영향을 점화(priming)하면, 호르몬 분비부터 수행능력까지 달라진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사회 문화적 영향을 받아 스스로 규정한 성 정체성에 따라 호르몬 분비와 수행 능력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와우! 바라보는 대로 보인다는 점이 놀랍다.


또한, 이 장에선 과학, 의학 연구에서 여성이 어떻게 배제되었는지 언급하고 있는데, 이 장을 읽으면서 앞으로 여성 과학자들이 할 역할에 대해 기대가 크다.


뇌에 대해 궁금하지만, 어려울까봐 걱정했던 분들이라면 이 책으로 뇌에 대해 접근하기가 쉬우실 거라 추천합니다!! 눼눼!


뇌과학은 신경계의 원리를 탐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로서, 신경계와 직접 관련된 측정 가능한 대상만을 다루기 때문이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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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 빨간지구 - 기후변화와 인류세, 지구시스템에 관한 통합적 논의
조천호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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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이야기해줍니다. 기후변화는 식량과 물, 에너지, 환경, 보건 등 사회 기반 체계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파란하늘 빨간지구』 p11


대기과학자이며, 전 국립기상과학원 원장이었던 저자는, 국립기상과학원에서 30년 간 일하면 축적한 기후의 변화에 대해 지구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최근 '인류세'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여기저기서 많이 사용되는 걸 들었으나 용어의 뜻에 대해 정확하게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지구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자연의 거대한 힘과 겨룰 정도가 되는 인류세에 들어섰습니다. 인류세에서 물질적 진보는 세상을 더 문명화된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기후변화에 시달리는 지구에서는 무질서와 불확실성으로 과거에서 미래를 이어주던 끈이 닳아 없어져가고 있습니다. 이제 과거는 미래의 안내자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파란하늘 빨간지구』 p11



그리고 좀 더 정확하게 개념을 이해하고자 네이버 지식백과를 이용했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인류세Anthropocene란, 크뤼천이 2000년에 처음 제안한 용어로서,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이다.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의 환경체계는 급격하게 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지구환경과 맞서 싸우게 된 시대를 뜻한다. 시대 순으로는 신생대 제4기의 홍적세와 지질시대 최후의 시대이자 현세인 충적세에 이은 것이다. 인류세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인류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를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지구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하였고, 인류세는 환경훼손의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현재 인류 이후의 시대를 가리킨다. 인류로 인해 빚어진 시대로, 인류라는 말이 붙은 것이다.


충적세는 홀로세Holocence라고도 불리는데, 1만 2000년 전에 빙하기를 뒤로하고 맞이한 현재의 따뜻한 간빙기다. 홀로세는 인류가 자연과 조화로운 '완전한 시대'라는 뜻으로, 인류는 홀로세를 맞이하여 한곳에 정착을 해 농사를 짓고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가 7만 년 전 아직 빙하기였을 때, 아프리카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나선 이후, 아시아와 호주, 시베리아, 미 대륙까지 전 대륙에 퍼져나간 이후 처음으로 맞게 된 기후 안정기였다. 지금 한국이 지구에서 가장 뚜렷한 사계절이 나타나는 위도지만, 사실 이 정도의 기후 안정성을 가진 것이 지구의 원래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지구는 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하고 있고, 인류는 간빙기에 문명을 꽃 피우고 삶을 영위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지구의 모습, 세계지도가 오늘 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된 것은 약 7000년 전부터다. 그 전에는 해수면이 지금과 같이 높지 않아, 1만 5천 년 전에는 아시아와 북미 대륙이 붙어 있어 인류가 걸어서 아시아에서 북미 대륙으로 걸어서 이주하기도 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현재의 대륙과 해수는 1만 5천 년 전과 굉장히 다른 모습이고 점차 변화했다는 것인데, 그럼 성경의 구약에 나오는 인물들이 경험하고 인식하던 세계와 현재의 우리가 경험하고 인식하는 세계가 매우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지구에 살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지구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놀란 점이 소빙하기가 14세기에 시작되어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는 점이다. 현재 21세기이고, 약 2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빙하기였다니! 소빙하기에 유럽도, 아시아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우리 나라는 고려 말로, 많은 이들이 가뭄과 기근, 전염병으로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이 고통의 시기에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열어, 새로운 시대가 열게 되었다. 자연이 주는 고통으로 다른 나라들도 새로운 왕조가 시작되는 등 여러 역사적 변화를 경험했다.

유럽은 소빙하기에 기근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유입되었고, 전염병이 여러 도시로 퍼지게 되었다. 이 때의 전염병이 '흑사병'이었다.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 인구는 1/3, 파리와 런던에서는 절반 가량 줄어들기도 했다. 그리고 시작된 희생양 찾기는 마녀 재판, 마녀 사냥으로 이어졌고, 마녀로 오인 받은 여성들 뿐 아니라, 유대인들도 악마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소수민족인 유대인과 사회적 지위가 낮은 하류층 여성들을 그런 식으로 낙인과 혐오를 앞세워 죽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적으로 척박한 기후에서 인간이 선택한 삶의 방식과 자신의 안녕을 위해 손쉽게 지구 환경을 파괴하여 미래에 어떤 변화를 겪을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 인류가 지구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리고 지구-인간의 관계를 꿰뚫는 인상 깊었던 구절.


우리가 지금 일으키는 지구 위기와 기후변화 속에서도 생물권은 새로운 판을 벌일 것이다. 지구는 스스로 자신을 돌본다. 자연은 우리 없이 살아남을 수 있지만, 우리는 자연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

『파란하늘 빨간지구』 p57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와 방사능 폐기물로 인해 현재의 지구는 위협 당했고, 이런 양적인 변화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이고, 지구는 더 이상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 지구는 인간이 필요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지구의 환경이 필요했을 뿐. 그리고 그 대가는 미래의 인류가 겪는 문제다. (현재 우리가 과거의 사람들이 해놓은 환경 오염으로 고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인류세는 인간으로 인해 지구의 변화를 경험한 시대로, 인류가 인류의 운명을 구할 수 없는 걸 의미한다. 이 책에서 언급한 사례들을 읽어보면 SF에서 나오던 것처럼 한 명의 뛰어난 인간은 물론, (적어도 아직까지는) 거대한 과학 시스템으로도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적 예측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무엇보다 확실해지는 건, 인간의 한계, 미미함을 인정하는 것, 현재의 삶을 적절하게 포기할 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인류세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


지구가 기후변화의 위험에 직면해 있지만, 그 원인은 사뭇 간단하다. 이상화탄소를 과다 복용해서 건강을 잃은 탓이다. 지구공학은 여기에 약을 처방하는 셈이다. 가장 단순하고도 안전한 해법은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건강한 몸에는 그 어떤 약도 필요 없다. 지구공학을 만병통치약으로 찾을 게 아니라, 지구를 건강하게 회복시키면 된다.

『파란하늘 빨간지구』 p236

기후변화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이야기해줍니다. 기후변화는 식량과 물, 에너지, 환경, 보건 등 사회 기반 체계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 P11

지구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자연의 거대한 힘과 겨룰 정도가 되는 인류세에 들어섰습니다. 인류세에서 물질적 진보는 세상을 더 문명화된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기후변화에 시달리는 지구에서는 무질서와 불확실성으로 과거에서 미래를 이어주던 끈이 닳아 없어져가고 있습니다. 이제 과거는 미래의 안내자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 P11

우리가 지금 일으키는 지구 위기와 기후변화 속에서도 생물권은 새로운 판을 벌일 것이다. 지구는 스스로 자신을 돌본다. 자연은 우리 없이 살아남을 수 있지만, 우리는 자연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 - P57

지구가 기후변화의 위험에 직면해 있지만, 그 원인은 사뭇 간단하다. 이상화탄소를 과다 복용해서 건강을 잃은 탓이다. 지구공학은 여기에 약을 처방하는 셈이다. 가장 단순하고도 안전한 해법은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건강한 몸에는 그 어떤 약도 필요 없다. 지구공학을 만병통치약으로 찾을 게 아니라, 지구를 건강하게 회복시키면 된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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