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인 일본에서 그것도 사람들을 피해 무덤가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나'는 밤늦은 시간 무덤들 사이를 오가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한국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무연고 묘지'를 찾고 있었고, '나'가 알려준 덕분에 한 번에 무덤을 찾게 된다. 그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관동대지진에 대한 오해로 무참하게 희생됐던 조선인들의 유골을 찾고 있는 것으로 이는 후손들의 DNA 정보를 바탕으로 가능하다. '나'와 그녀는 무덤을 매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 소설은 읽고나면 가슴이 먹먹해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한국적인 SF라니! 일본이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한국의 가장 깊은 정서 '한'을 건드리고 있다. 한은 '영구적인 절망이 낳은 체념과 비애의 정서(최길성, 1991)'이지만,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고 성취하려는 욕망 없이는 나타날 수 없는 감정으로 보고, 이러한 욕망이 결여된 한은 단순한 절망 혹은 복수심으로 연결된다(이어령, 2003). 한국 문학에서 한이 맺힌 인물을 공포스럽게 다루긴 하지만, 한 맺힌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맺힌 한만 풀어주면 그 인물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장화, 홍련」이나 옛날에 인기었던 전설의 고향 시리즈의 이야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한국 설화는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데가 있지만, 이야기 끝에 가면 우리에게 공포를 주었던 그 대상이 그럴 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게 되고 오히려 그를 공포의 대상으로 만든 한 맺히게 한 상황들,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살아있는 우리가 더 무서운 존재들이 되는 것이다.
이 소설 또한 한이 맺힌 사람의 이야기지만 공포스러운 데는 없다. 다만 이야기를 다 읽고나면 그 한 맺힌 사람의 깊은 슬픔을 이해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깊게 맺혀 있는 그리움을 풀리게 한다는 점에서 한국 문화적 정서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