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얼굴들
황모과 지음 / 허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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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얼굴들』은 황모과 소설가의 단편집이다. 여섯 편의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은 다른 사람들이지만, 이 세계와 저 세계, 현실과 죽음의 세계가 나뉘어있지 않고 연결되어 통하고 있다는 점이 이 단편들의 공통점으로 또 한 번 연결되고 있다. 함께 할 수 없을 거라 여기는 두 세계가 과학 기술로 연결이 가능한 것으로 나오지만, 어쩐지 환상적인 느낌이 강한 것은 이 소설이 자연스럽게 현실과 사후세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소설을 하나 하나 살펴 보자.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

타국인 일본에서 그것도 사람들을 피해 무덤가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나'는 밤늦은 시간 무덤들 사이를 오가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한국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무연고 묘지'를 찾고 있었고, '나'가 알려준 덕분에 한 번에 무덤을 찾게 된다. 그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관동대지진에 대한 오해로 무참하게 희생됐던 조선인들의 유골을 찾고 있는 것으로 이는 후손들의 DNA 정보를 바탕으로 가능하다. '나'와 그녀는 무덤을 매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 소설은 읽고나면 가슴이 먹먹해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한국적인 SF라니! 일본이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한국의 가장 깊은 정서 '한'을 건드리고 있다. 한은 '영구적인 절망이 낳은 체념과 비애의 정서(최길성, 1991)'이지만,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고 성취하려는 욕망 없이는 나타날 수 없는 감정으로 보고, 이러한 욕망이 결여된 한은 단순한 절망 혹은 복수심으로 연결된다(이어령, 2003). 한국 문학에서 한이 맺힌 인물을 공포스럽게 다루긴 하지만, 한 맺힌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맺힌 한만 풀어주면 그 인물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장화, 홍련」이나 옛날에 인기었던 전설의 고향 시리즈의 이야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한국 설화는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데가 있지만, 이야기 끝에 가면 우리에게 공포를 주었던 그 대상이 그럴 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게 되고 오히려 그를 공포의 대상으로 만든 한 맺히게 한 상황들,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살아있는 우리가 더 무서운 존재들이 되는 것이다.

이 소설 또한 한이 맺힌 사람의 이야기지만 공포스러운 데는 없다. 다만 이야기를 다 읽고나면 그 한 맺힌 사람의 깊은 슬픔을 이해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깊게 맺혀 있는 그리움을 풀리게 한다는 점에서 한국 문화적 정서가 깊다.

당신 기억은 유령

기억을 업로드할 수 있어 타인의 기억에 접근할 수도 있고, 특정 시각 정보에 후각, 청각 등 다른 감각 데이터를 짜깁는 '공감각 데이터 임베딩'으로 마케팅이 가능한 세계다. 치매인 할아버지가 기억을 잃으며 죽어가는 걸 보며, 할아버지를 통해 다른 사람의 기억이 '나'에게 전달된다. 모국인 한국으로 와 남편을 만나 갇힌 방에서 마지막을 맞이한 그녀에게 '나'는 공감뿐 아니라 공각까지 한다. 누군가를 깊이 이해한다는 건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그녀의 고통에 진심으로 동조하고 있다.

심리학 실험에서도 사이가 좋은 부부의 경우에 한 사람이 고통을 경험할 때, 그걸 보고 있는 다른 한 사람 또한 고통을 경험한다는 뇌 연구 결과가 있다. 사랑이란 그 사람의 고통에 조응하는 것으로 상대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게 한다. 내가 어릴 적 넘어져 무릎이 깨져서 울 때, 우리 엄마도 아파하고 걱정하는 얼굴을 하며 나를 안아줬던 기억이 있다.

탱크맨

아무리 기억을 지우고 재조작하더라도 인간의 선한 의지 내지는, 혁명 의지는 꺾을 수 없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 초반부는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방에서 시작하는데,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 시리즈 중 「핫샷」이 생각나게 하는 세계관이었다.

『블랙미러』, 「핫샷」

이 드라마에서도, 이 소설에도 혁명을 이야기하지만, 원인과 결과가 좀 다르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니시와세다역 B층

니시와세다역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지상에서 타면, 지하철로 연결되는 B1층 버튼 외에 B버튼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B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는데 우연히 '나'는 B버튼을 눌러 B층에 내릴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접하는 유령 같은 홀로그램들은 과연 어떤 존재들인가.

이 소설은 첫번째 소설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 와 연결된 이야기로, 일본의 마루타 실험을 통해 죽은 이들의 애처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한다.

투명 러너

'나'는 '행님'을 직역해 부르는 '니상'과 함께 일본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언어와 나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둘은 이야기가 잘 통한다. 과거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광 현재 케이팝, 한국 드라마, 영화가 누리는 영광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런 문화적 매개가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게 단초가 된다는 것이 재밌었다. 그러나 진짜 '니상'과 '나'가 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소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모멘트 아케이드

제 4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기억을 다루고 생과 사의 경계를 허문다는 점에서 앞의 소설들이 다루고 있는 세계관들의 절정체라 할 수 있다.

다른 이의 '모멘트'를 지금 유튜브로 동영상을 보듯이 체험할 수 있는 이 곳에서 나는 우연히 아주 평범하지만 가슴 따뜻한 '모멘트'를 체험하게 된다. 이 소설은 그 '모멘트'의 주인에게 쓰는 편지로 구성되어 '나' 와 치매로 투병하다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언니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한다. 슬픔에 갇혀 살았던 나는 오랫동안 언니를 오해했고, 언니의 모멘트를 통해 언니의 마음과 그리고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집을 다 읽고 서평을 쓰다가 작가의 말을 뒤늦게 읽었는데, 소설에 실제 이야기도 있었다. 그럼, 이 소설집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SF라 할 수 있겠다. 작가님의 다음을 기대하며,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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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 리스트 컨선 안전가옥 오리지널 5
이산화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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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은 재밌게 읽었는데, 장편은 기대만큼 재밌지 않아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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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보게 해주세요 - 하이퍼리얼리즘 게임소설 단편선
김보영 외 지음 / 요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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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제대로 펼쳐서 읽어보진 않았지만,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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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에티오피아 시다모 디카페인 - 10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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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페인 향 괜찮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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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의 문장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이 책 제목만 보고는 요즘 다양한 가족 형태가 생기니, 그 가족 형태를 소개해 주거나 다룰 줄 알았으나, 읽어보니 사실 아이의 처우에 대한 책이었다. 한국 사람들의 정상성에 대한 이상한 집착(사실 한국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정상가족 내에서 허용되는 '처벌'과 비정상가족 내에서나 발생할 것 같은 '학대'. 처벌과 학대가 서로 매우 다를 것 같지만, 실상 그 차이의 경계라는 것이 얼마나 가느다란 실 같은 것으로 나누어져 있는지에 대해,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정상 가족에 대한 집착은 여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쯤 되면 대체 가족이 뭐길래, 정상 가족이 뭐길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가족 중심 주의가 현재에까지 강하게 이어져오면서 남기는 폐해가 없는지 이야기하고 가족의 짐을 사회에서 함께 나눠들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 논의해본다.

인류학 전공자이자, 여성가족부 차관으로서의 저자가 자신의 인류학적 배경과 현실 정치에 참여하며 겪은 고민을 이 책에서 엿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최근 인류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커져 가는 가운데, 이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인류학 또한 인간에 대한 고민이 많은 학문인 것 같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신체 가학적 체벌이 행동 교정에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몇몇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리 선한 의도로 부모가 자식을 때렸다 하더라도 원래 때렸던 목적, 자식의 행동을 교정하는 데에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그리고 매를 맞은 당사자에게는 마음에 깊은 상처만 남을 뿐이었다. 물론 아이를 때리면 '일시 중지'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연속적인 관점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럼에도 왜 한국에서 '정상성'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체벌을 하는가.


넬슨 만델라의 말처럼 아이와 같은 신체적 약자에게 대하는 방식이 현재 한국 사회가 신체적, 사회적 약자에게 어떻게 가혹하게 대하는지 알 수 있으며, 얼마나 '정상성'에 대한 신화로 불안을 만들어내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신체 건강하고 지적으로 뛰어난 이성애자 성인의 남성'만 살기 좋은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사실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속한다 하더라도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건강한 사회란 신체가 건강하지 않더라도 지적으로 뛰어나지 않더라도 이성애자가 아니더라도 성인이 아니더라도 남성이 아니더라도 살기 괜찮은 사회여야 한다.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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