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권 carte blanche
포카리 focarii[난롯가(가정)의 여인들]
로마의 붕괴 후에도 교회만은 그대로 살아남아 나름의 권리를 갖는 권력으로 등장했다. 이는 서양의 섹슈얼리티 전반에 끔직한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여성에게는 더욱더 그랬다. 저술가 엘리자베스 피셔가 『여성의 창조:성적 진화와 사회의 형성』에서 주목했듯이 "그리스도교는 여성에 대한 유대인의 불신을 받아들였고 히브리인의 윤리를 좀더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그리스도교 나름의 여성에 대한 억압을 가미했다. 중요한 것은 금욕이 이상화되면서 그것이 신체에 대한 혐오와 성행위에 대한 심각한 저주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이다." - P112
또한 막달라 마리아는 그리스도교의 또 다른 마리아의 효과적인 대응점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예수의 삶에서 이 두 여인이 갖는 상대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는 신속하게 여성적 원칙들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점점 더 여성 혐오적인 태도를 보였다. … 서에 대한 공포가 그리스도교의 바탕이 되었고, 이는 신흥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몰락해가는 로마 제국의 도덕 생활과 감각적 삶에 대응한 결과였다.
이 가튼 금욕주의가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두드러진 요소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그리스도교의 전파자들은 초기의 가부장적 사고에 내재된 성 혐오의 전통에 크게 기대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가장 고결한 인물은 바로 성 바오로였다. …여성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대한 태도에 따라 여성은 신흥 종교를 통해 어느 정도 자유와 권위를 누렸다. 여성은 가르치기도 하고 성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 바오로 덕분에 그리스도교가 남성 중심의 위게적인 권력 구조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을 위한 종교적·이데올로기적 도구로 이용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이용되었다. 바오로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텍스트들을 왜곡해쏙 이는 후대 그리스도교교리의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여성 혐오 역시 교회에 의해 제도화되었다. - P115
교회의 권력 추구와 섹슈얼리티의 부정은 나란히 행해졌다. … 교부들은 일부일처제의 법칙을 꾸준히 조롱해온 남성의 실제 세계를 통제해야 했고 그들은 이를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교인이 매춘부를 박해하고 고문하고 ㅓ벌할 수 있는 권한을 얻기까지는 수세기가 걸렸지만 교회는 이미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혐오를 전례없는 수준으로 제도화했다. 이후 종교의 주요세력은 사회의 성적 죄의식과 위선을 떠넘길 배설구로 여성죄인을 선택했다. 여성은 다시 한 번 선과 악으로 구분되었다. … 인류를 죄와 회개의 끊임없는 고리 안에 가둔 죄의식의 확산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암흑 시대가 물려준 문화적 유산이었다. 서양 사회는 이제 경우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일을 시작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