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변증법 -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하여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지음, 김민예숙.유숙열 옮김 / 꾸리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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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대학교육을 받은 가정주부와 전통적인 가정주부의 차이점이란 결혼지옥marital hell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전문용어일 뿐이었다.106





이런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당신 말이 옳다고 체념조로 받아들이면서도 속에선 무언가 울컥한다. 이미 쌓여 있는 “교화된 여성”의 자기고백에 내 버전도 얹어야 뒤끝없이 받아들일 수 있으려나. 출산과 양육이라는 본인의 선택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성의 변증법>이라는 제목 앞에서 감상을 늘어놓는 것이야말로 무람한 짓이 아닌지. 본인의 선택이지만 본인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 또한 책에서 이미 입증하고 있는 바, 내 결혼지옥marital hell도 오래 전 시작한 걸까.


남자를, 콕 집어 말하자면 내 배우자를, 계급적 존재로 보게 되면서부터.


그가 나를 동등한 인간으로 본다는 것이 이 관계의 중추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나는 그를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서부터.


“그러나 어느 이야기가 나를 받아 줄 것인가.”
(<탈혼기>, 유혜담)


여전히 나의 당사자성은 타인에게 전유될 뿐이다. 나는 피해자로 호명되고 싶은가. 가부장제는 절대적 가해자이고 나는 맥없이 무력할 뿐인가. <페미니즘, 한계에서 시작하다>의 스즈키 스즈미는 우에노 지즈코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피해 알리기, 피해자 벗어나기 사이에서 고민하는” 스스로의 속내를 고백한다.


그럴 때 저는 짓밟힌 사람이라는 딱지가 진부하고 또 단순하다고 느꼈습니다. 심지어 피해자라는 말이 방해가 된다고 여겼어요. 피해자란 말에 “엿이나 처먹어”라 내뱉으면서 부당하고 폭력적인 힘과 맞서 싸우기, 이게 모순으로 보일지언정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19


서구 사상에 내재한 성차별주의의 핵심을 분해하면서 “혁명”을 향해 돌진하는 파이어스톤의 언어는 통쾌하다. “급진”의 맥락을 더듬어서라도 좇아 읽는 것은 짜릿하고, 미진한 나의 상상력을 확장시켜준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여성과 아이들이 겪는 특권적인 노예제도(보호)는 자유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조절 self regulation이 자유의 기초이고 의존은 불평등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141
“키우는” 아동에게 찔끔찔끔 자율성을 얹어주면서 생색내는 “보호자”인 나는, 통쾌하다는 본인의 감상과 행동에 바로 옮기지 못하는 실상의 거리가 실감 나 새삼 부끄럽다. 이런 식으로 매번 나를 향해 돌아오고 마는 화살.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 기인한, 내가 자초한 자기처벌일까.


남성들의 양육 불모성, 아동기라는 개념의 맹목적 강화, 그에 따른 모성의 신화화에 동의하면서도, 단지 출산과 양육을 전면 반대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사이버네틱 코뮤니즘, 인공생식은 기존의 믿음 체계를 부순다는 점에서 가히 위력적이지만 압제, 혹은 타성이라는 이분 세계 속에서 본인이 피해자인지 아닌지를 점검하는 여성들에게 문체만큼 실질적인 돌파구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책을 읽기 전에 변증법을 간단히라도 이해해보려고 읽어본 청소년 철학서에서는 변증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변증법이란 정-반-합이 경합을 통해 이뤄가는 논증이며 이전의 단계가 단순히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부정을 거쳐 질적 발전을 이루는 비유하자면 나선형의, 사유방식이라고.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은 남았지만 파이어스톤의 이 책이 내게 그 “지양”을 개시해주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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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1 2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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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1 2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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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1 22: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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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31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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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1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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