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적인 정신분석에서는 딸들이 어머니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신에게 남근을 주지 않아서 원망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클라라 톰슨은 ‘남근 선망’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정치적 견해를 보여주는데, “남근은 우리의 문화에서 하나의 특정한 경쟁 상황, 즉 남성과 여성 간의 경쟁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의 상징이며 … 그렇기 때문에, 남근에 대한 선망이라 불리는 태도는 아무런 특권도 없는 집단이 권력집단에 대하여 갖는 태도이다”라고 말하였다. 279,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필립 호드슨은 일부 남자아이와 남성이 소위 ‘자궁 선망’에 시달린다고도 말했다.
“남자아이는 누나나 여동생과 비교할 때 자신에게는 생물학적으로 부족함이 있다는 걸 깨닫게 돼요. …반면 남자아이는 아기를 낳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창조의 신비에서 배제되죠. 진화 심리학의 표현을 빌자면, 남성의 정자는 여성의 난자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아이들은 테스토스테론의 이끌림에 따라 세상에서 자아를 실현하고 자기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 권력을 추구해요.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자기가 존재했음을 입증할 방법은 그것뿐이니까요.”
“제가 보기에 남성 성기를 선망하는 건 여자아이가 아니라 남자아이예요. 남성들은 침대 안팎에서 끊임없이 실력을 겨뤄요. 서열에 집착하고 임원용 주차 구역을 차지하려고 전전긍긍하죠. 점수를 매기고 기록해 두고요. 남성은 여성의 생물학적 창조성을 의식하든 못 하든 부러워하고 분하게 여겨요. (…)” 389, <평등하다는 착각>
모성에 대해 함부로 오해하고 숭배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치 온 우주를 감싸고 품을 거대한 자궁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성을 대단한 것으로 올려다 보면 안된다. 이 모성에는 섬뜩한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히 남자들은 힘들고 지치면 어린아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다시 엄마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온전히 다 안겨 출렁이고 싶어한다. 그 편안함과 부드러움이 늘 그립다. 하지만 일단 한 번 어머니 배 밖으로 나오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자궁은, 아니 자궁과 가장 유사한 곳은 무덤뿐이다. 자궁이 영어로 ‘womb’이고 무덤이 ‘tomb’인 이유이다. 모성의 이러한 속성 때문에 사람은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모성을 끊어내야 한다. 자신 내면의 무의식 세계로 하강해서 어머니와 연결된 심리적인 탯줄을 끊어내야 한다. 222, <빨간 모자가 하고 싶은 말>
조이스 박 선생님의 글은 <베오울프>에서 소년의 통과의례(남성성 혹은 정당한 권력 획득)를 짚어가며 원시모성과의 분리(두번째 조건)를 통한 소년의 성장에 대한 부분이라 조금 맥락은 다른데. 인간의 선망, 근원적 욕구, 그걸 추구/저지하는 사회상을 구현한 옛이야기 분석으로 나한테 개안을 주신 분이라(나는 강의로 들음) 가져왔다. 조이스 박 선생님 책 얘기도 꼭 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