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배불리 먹지 말 것 - 성공과 행복을 이루고 싶다면!, 개정판 세기의 책들 20선, 천년의 지혜 시리즈 4
미즈노 남보쿠 지음, 서진 엮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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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통 관상가이자 명리학자인 미즈노 남보쿠는 '사람의 운명'을 '식생활'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그는 과식을 하면 인생이 망가지고 절제를 하면 운명이 길해진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다소 '동양철학적 이론'에 기인하고 있지만 음식과 운명의 상관관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적게 먹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판단력이 좋아진다. 반대로 많이 먹으면 정신이 혼탁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진다. 실제로 '식곤증'의 발생 원인을 보면 알 수 있다. 식사 후에는 위와 장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소화를 돕기 위해 많은 혈액이 위와 장으로 몰리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든다. 뇌의 산소 공급이 줄어들면 졸음이 느껴지는 것이다.

식사 후에 소화기관으로 피가 몰려 뇌의 활동이 둔해지는 현상을 주기적으로 느낀다면 뇌는 어떻게 되나.

만성적인 뇌혈류 감소는 신경전달 물질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주기적으로 뇌로 들어가는 산소와 포도당 공급이 줄어들면 일시적인 집중력 저하와 뇌기능 저하가 일어난다. 기억력 감퇴, 집중력 저하, 만성적인 사고력 저하 또한 학습과 업무에서 효율이 저하된다. 인생이 변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식사 후에는 부교감신경이 활성화 된다. 부교감 신경은 휴식 중에 활성화 되는데, 휴식과 소화를 담당한다. 몸이 긴장을 풀고 소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혈압과 심박수를 낮춘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만족감'을 갖지만 대체로 현대인들에게 이런 만족감은 때로 '게으름'이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다시말해서, 먹는 음식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실제로 '원시인류'는 '육식'을 시작하면서 '뇌'의 크기가 커졌다. 육식은 에너지가 밀집된 음식이라 적은 양으로도 많은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었다. 채식의 경우는 소화가 오래 걸리고 칼로리가 적은 편이다. 반대로 고기는 소화가 빠르고 에너지가 풍부하다. 즉 적은 음식으로도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뇌발달을 가능하게 했다. 진화 과정에서 '식습관'은 중요했다. 원숭이가 인간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하나가 '식'의 변화다.

다만 현대인에게 '고기'가 좋지 않다. 이유도 같은 원인이다. 너무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면 뇌에서 에너지 과부하가 걸린다. 실제로 칼로리를 30%를 줄인 실험군의 인지능력이 더 좋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즉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적당히'에 머무는 것이다.

빵이나 밥, 면과 같은 탄수화물은 '식곤증'을 유발한다. 고기나 생선, 두부와 같은 음식도 인슐린을 자극하여 졸음을 유발시킨다. 다시말해서 이런 음식을 폭식하거나 과식하게 되면 일상 생활에서 내려야 할 판단에 오류가 잦아진다. 반면 섬유질이 많은 채소는 혈당이 급격하게 오르지 않는다.

미즈노 남보쿠의 설명에 따르면 '음식'은 그 어떤 '보물'보다 값지다. 금은보화가 없어 죽은 사람은 없으나 '한끼 식사'가 없어 죽은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이런 값진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면 시간의 차이가 발생하겠지만 반드시 '변'으로 나온다. 즉 '값진 것을 똥'으로 만드는 이 일을 반복하는 것은 '빈곤'해지는 길 중 하나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입은 화장실이다. 입으로 넣었던 것은 다시 뱉어내도 더럽기는 마찬가지다. 그 맛있고 좋은 음식을 결국 변소에 갖더 버리는 일을 하는 셈이다. 시간 차이는 있겠지만 반드시 입으로 들어간 것은 '변기'를 향하게 되어 있다.

'음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것에서 '절제'는 중요하다. 흔히 '검소함'이라고 하는 것은 절제력의 결과물이다. '검소한 사람'치고 '과식'이나 '폭식'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절제 능력은 식사를 통해 알수 있는데, '남보쿠'는 사람의 식생활을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배가 모두 차지 않은 상태에서 숟가락을 내려 놓는 일은 보통사람에게 힘든 일이다. 그만한 절제력은 성공과 출세, 발전과 행복, 운과 부귀영화, 자식과 가문의 안정, 건강과 긴 수명에 필수 요소다.

음식을 탐하는 것을 두고 '남보쿠'는 불에 뛰어드는 걸 좋아하는 날발레와 같다고 말한다. 불에 들어가면 '타닥'하고 타버릴 것을 알고 있으면서 '본능'을 절제하지 못하고 몸을 '불속'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고로 그는 음식을 앞에 둔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두라고 말한다.

'애초에 음식이란 생명'이다. 다시 말하자면 '음식'은 '타생명'을 섭취하여 자신의 생명을 얻는 일이다. 고로 음식을 버리는 행위는 '생명'을 경시 여기는 것이다.

고대부터 인간은 '신'에게 받치는 '생명'을 받치곤 했다. 즉 음식을 신께 바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밥 세공기를 먹는 사람이 두 공기만 먹고 나머지 한 공기는 신께 받친다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줄여 나가는 것이다. '남보쿠'는 이를 '공양'이라고 했다.

참 역설적이게 나는 이 책을 야식으로 배가 불러 잠을 설쳤던 다음날 아침 읽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식'을 할 때는 그 음식의 맛을 느끼며 먹지만 과식이나 폭식을 할 때는 그 '맛'의 예민함이 사라지는 듯하다. 결국 '소식'이라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도 맞지만 인생 전반의 '운'을 길들이기 위해 중요한 습관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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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 번 당신만의 책을 써라 - 당신을 위한 고품격 책 쓰기 수업
우희경 지음 / 밀크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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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튜버가 말하길, '개나 소나 책을 쓰니까, 요즘 출간하는 책은 질 낮아서 볼 수가 없다' 라고 한다.

그 물음에 답하길, '책 안보는 핑계를 잘도갖다 붙이는 구나'다.

'개나소'나 책을 쓰면 그대로 읽을 가치가 있다. 최소한 나는 사서 볼 것 같다. 굉장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을 가치가 있다는 건 지나친 '엘리트주의'다. 말그래도 '경력자'만 뽑으면 '신입'은 어디 가서 경력을 쌓나.

지금처럼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는 시대에서 더 많은 작가의 글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비록 일정 부분 '질 나쁜 글'이 많아지겠만, 이또한 좋은 징조다.

'책을 써보라', 주변에 이야기하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소재'가 없단다. 다만 '소재'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유튜버 '국가대표 쩔템'은 '모기 잡는 컨텐츠'를 가지고 영상은 그저 모기를 잡는 여상이지만 40만 구독자를 가졌다.

유튜버 '프응TV'는 양봉을 하며 일상을 담은 채널이다. 해당 채널의 구독자는 103만이다. 채널 중 '토치로 말벌을 태워 죽이는 영상은 무료 조회수가 1280만 뷰에 이른다.

세상이 유튜브에는 관대하면서 유독 '책'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이렇게 장벽을 높게 세워두니 사람들이 책이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윌리엄 쿠피'의 '파리잡는법'이라는 책이 있다. 제목처럼 '파리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혹은 다른 동물들의 여러 습관을 분석한 에세이다.

'피에르 토마 니콜라 위르토'의 '방귀의 예술'이라던지, 특수청소부의 경험을 담은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청소', 혼자 노는 법을 알려주는 '강미영' 작가의 '혼자놀기', '이종구' 작가의 '고독한 놀거리 마스터'도 있다. 지방에서 용접노동자로 일하는 '천현우' 작가의 '쇳밥일지', 택시기사 '표용덕 작가'가 쓴 '택시기사가 쓴 세 종류의 이야기'도 그렇다. 공장노동자로 일하며 초단편소설을 쓴 '김동식' 작가의 상상력도 재밌다.

당사자들에게는 일상이지만 해당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신선한 이야기다. 시장가치는 시장이 판단하는 것이지, '공급자'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공급자는 그저 시장에 상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다. 결코 스스로의 가치를 스스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1등에게만 권한이 주는 것이 아니다. 100등도 101등보다 알면 가르쳐 줄 수 있고, 200등도 201등을 가르쳐 줄 수 있다. 본인의 스승을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 '독서'의 즐거움인데, 괜히 자신에게 맞지 않는 스승을 선택하고 '스승' 따위는 필요없다고 성급한 일반화해서는 안된다.

성장하고자 하는 사회는 '도로, 철도, 항만, 공항, 통신, 방송' 등 사회인프라가 잘 운영되어야 한다. 이런 '인프라'에 '정보'도 분명 한 몫 하고 있다. '기록 이전 시대인 선사시대'에는 정보를 저장할 수단과 방법이 없어, '정보 소유자'가 죽으면 정보는 소멸했다. 다른 동물들이 문명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다. 다만 북아프리카와 중동 사이에서 최초의 문자가 만들어지고 사회는 문명을 이루고 발전해 왔다.

각자가 갖고 있는 정보가 저장되고 전달되면서 사회는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전임자가 아무런 인수인계도 하지 않고 '퇴사'하는 것만큼 막막한 것이 '사회생활'인데, 그런 깜깜이 사회보다는 '아이 돌보는 법', '파리잡는법', '여권 갱신하는 법' 등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는 사회가 옳은 세상이다.

우희경 작가의 '일생에 한 번 당신만의 책을 써라'는 '소재'가 없다고 생각할만한 많은 일반인들에게 '글을 쓸 수 있다는 독려'를 한다. 표면적인 지식이 아니라 꽤 실용적으로 출판을 돕는 정보가 있다. 본인의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개인적으로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사회는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회라고 본다. 인간을 '사회화 동물'이라고 부르는게 맞다면 최소한 다른 이들의 삶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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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가 묻고 니체가 답하다 - 비관마저 낙관한 두 철학자의 인생론
크리스토퍼 재너웨이 지음, 이시은 옮김, 박찬국 감수 / 21세기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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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욕구'로 움직인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싶고, 외로우면 이성을 만나고 싶어하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갖기 위해 움직인다. 이처럼 무언가를 끊임없이 원하고 이루려고 노력한다. 결국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다. 이를 '욕구' 혹은 '의지'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원하는 것을 이루면 우리는 만족감을 늘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잠시의 기쁨을 느끼지만 다시 공허함을 느끼고 다른 '원함'을 갖게 된다.

즉, 인간은 끊임없이 부족함을 느끼고 항상 공허함을 갖는다. 결국 완전한 만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쇼펜하우어는 고로 삶이 끊없는 고통이라고 봤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채우는 어떻게 보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저주 받은 챗바퀴를 돌리는 삶과 같다.

우리를 소진시키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이 챗바퀴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쇼펜하우어는 답했다. '의지', 즉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는 삶을 살면 된다. 다시말해서, '바람'이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움직이지말고 그저 그 자체가 의미가 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그냥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을 하되, 성취를 위한 무언가를 내려 놓는 것이다. 타인을 돕거나 자연을 감상하는 일은 '성취'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고로 '성취'를 목표로 하는 삶은 '고통'을 필연적으로 만들기에 '성취'라는 '욕구'를 덜어 내는 것이다.

그것이 쇼펜하우어를 가장 평면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럼 니체는 어떤 사람인가.

그 또한 아주 평면적으로 설명해보자.

니체는 '삶의 방식'에 대한 정의를 부정했다. 즉, 니체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삶에 정의'가 필요했다. 대개 그 '정의'는 '신'께서 내려 주신 경우가 많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신'은 '인간'에게 이래라저래라 간섭이 많다. 정해진 법칙이 존재하며 그 법칙에서 어긋난 삶을 '오류'로 정의 했다. 니체는 '이 생각'에 의문을 품었다. 종교나 전통적인 가치가 삶에 피로도를 준다고 봤다.

니체는 말했다. '신은 죽었다'

즉, 자신의 의지가 '신'이 내린 '삶의 정의'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봤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는 '초인'에 대한 언급을 했다. '초인'이란 누군가가 정해준 길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을 뜻한다. 가령 아무개가 '어떠한 삶을 살아라'라고 말해도 흔들림 없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택하는 사람이다. 이런 삶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낸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는 '초인'이 되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나는 '고통'에 맞서라고 말한다. 고통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를 '초인'으로 가도록 만들어주는 '주재'가 된다. 쇼펜하우어가 피해려 했던 그 '고통'이라는 '소재'를 니체는 직면해야 할 과제로 여겼다.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여겼다. 힘든 일을 겪을 때,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것이 니체의 생각이었다.

결론적으로 쇼펜하우어는 삶은 끝없는 고통이고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괴로움의 연속이라고 봤다. 고로 삶에서 '고통'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좋다. 니체는 답한다. '고통'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다. 피하지 말고 부딪쳐라.

쇼펜하우어는 '행복'하기 위해, '성취'하고자 하는 '의지'를 내려 놓으라고 말한다.여기에 니체가 답한다. 더 강한 욕망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얼핏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어떤 삶의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니체'는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 '어떤 삶을 취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여기서 의문은 '삶'은 '성장'보다 '행복'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는 '니체'의 철학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다만 '니체' 또한 '행복'을 말한다. '니체'는 진정한 행복이란 '편안함과 즐거움'이 아니라 극복과 성장에서 얻어지는 기쁨이라고 봤다.

성취를 했을 때 얻어지는 '성취감', '자부심' 이런 것들이 진짜 행복이고 기쁨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피하고 도망가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맞서 싸우고 도전하면서 얻어진다고 봤다.

누구의 행복론이 정답인가.

그런 것은 없다. 철학은 '답'을 내놓는 학문이 아니라 그저 '질문'을 내놓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누구의 답도 옳지 않고, 누구의 답고 그르지 않다. 거기에는 애초 '답'도 없고 두 철학자 또한 답을 내린 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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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 - 茶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0
라오서 지음, 오수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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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서'는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찻집'이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50여 년의 중국 역사를 압축적으로 볼 수 있다.

극은 총 3막으로 이뤄져 있다.

제1막은 청나라 말기인 1898년 무렵이다. '왕이발'이 운영하는 찻집이 배경이고 찻집이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손님들이 모여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제 2막은 군벌 시대인 1916년 무렵이다. 청나라가 멸망하고 새로운 군벌들이 나타나면서 사회가 혼란스럽고 찻집도 쇠락하기 시작한다.

제 3막은 국민당 통치기인 1945년 이후다. 찻집은 거의 망하길 확실해졌다. 찻집 주인 '왕이발'도 몰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3막으로 희곡은 마무리 된다.

희곡은 중국 근대사를 축소판으로 보여준다. '찻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으을 통해 50년의 중국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근대사에 대한 단면을 '개인'의 일생으로 다룬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는 '중국 역사'를 다루고 있지 않다. '푸이'라는 '개인'의 서사를 담는다. 그 개인이 겪는 파고 속에 중국 역사가 모두 담겨져 있다.

개인의 '삶'과 '정치'가 분리된 듯 하지면 분명하게 이어져 있다는 인상을 두 작품 모두에서 가질 수 있었다.

극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고위 관리, 상인, 거지, 군인, 관상가 등. 등장하는 인물들이 오고 가고, 사건을 주고 받으며 당시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을 배경으로한 영화의 '마지막 황제'와 비슷하게 '미국'을 배경으로 하며 개인의 삶이 역사를 훑고 지나가는 '포레스트 검프'와도 겹친다.

소설의 배경을 다시 톺아보면 이렇다.

제 1막 청나라 말기는 변법자강운동이 실패하고 서태후가 권력을 장악하던 시점이다. 당시 중국 사회는 봉건 체제의 붕괴 조짐을 갖고 있어다. 서구 열강의 침탈이 가속화된다. 극에서 적잖게 '정치 이야기를 하지말라'거나 '서양'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을 보자면 1957년 극이 발표된 시점이 '중국 공산당' 집권 시기와 겹치기 때무느로 보인다.

찻집은 여전히 번성한다. 내부에는 개혁과 보수 사이의 갈등이 표출된다. 개혁에 대한 범위와 속도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던 구한말 우리 모습도 떠오른다. 왕이발의 찻집은 앞서말한 바와 같이 고위 관리나 상인, 거지, 군인 등이 어우러져 시대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제 2막은 군벌 시대다. 청나라가 멸망하고 위안스카이가 제정을 선포하려다 실패한다. 중국은 군벌들이 각지에서 권력을 차지하는 혼란기에 접어든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가운데 찻집도 쇠퇴하기 시작한다. 왕이발 역시 변하는 시대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찻집을 찾는 손님들의 모습에서도 사회적 계층의 이동이 보여지고 신흥 세력의 부상도 보여진다. 기존의 질서는 붕괴도고 새로운 권력이 등장한다.

제 3막은 국민당 통치 시기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일본이 패망하고 중국은 국공 내전으로 치닫는다. 국민당 정부는 부정부패로 신뢰를 잃는다. 공산당은 세력을 넓혀가며 찻집은 거의 폐업 상태에 이른다. 왕이발 역시 몰락한다. 50년의 시간이 흐르며 찻집은 더이상 과거의 활기를 찾지 못한다. 희곡은 찻집의 쇠락과 함ㄱ ㅔ중국 사회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며 끝을 낸다.

찻집이라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작은 공간에서 여러 인간 군상의 대화를 통해 정치적 변화와 개인의 삶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현대 우리도 미래에서 보건데 '역사'의 한 중심에 있다. 먼 이야기가 아니라 '스타벅스'를 가면 다양한 사람들이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야기 모두가 '역사'와 '정치'를 대변하는 이야기들이다.

'비트코인', '트럼프', '러우전쟁', '비상계엄'은 적잖게 우리 일상 대화에 스며들어 있고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찻집'인 '스타벅스'에 방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한민국과 세계사'의 단편을 나타내기도 한다.

극은 짧지만 강렬하다. 찻집이라는 희곡은 단순 문학이 아니라 시대를 증언하는 한편의 기록이자 중국 역사를 이해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중국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으면 더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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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분을 찾습니다 - 나치를 피해 탈출한 유대인 아이들의 삶
줄리언 보저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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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되지말고, 피해자가 되지도 말되, 절대, 결단코 방관자가 되지도 말라."

홀로코스트 학자 예후다 바우어의 말이다.

2020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서아프리카 국가 출신 망명 신청자들을 대규모 추방했다. 서아프리카 국가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사회다. 고로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언론과 인권 단체의 비판이 거셌다.

줄리안 보저 역시 당시 그들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었다. 망명 신청자들을 다시 카메룬으로 추방 시키는 것은 직접적인 위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비판을 기사화 하던 중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법학교수를 알게 된다. '루스 하그로브'다. 줄리안 보저는 그렇게 그와 연락을 주고 받는다.

연락을 주고 받으며 그의 아버지가 1938년 빈이 게슈타포에 넘어간 후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그의 외가도 1906년 오데사에서 유대인 학살을 피해 탈출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줄리안 보저는 자신의 조부모가 나치 치하의 빈에서 아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멘체스터 가디언'에 광고를 실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멘체스터 가디언'은 현재 그가 일하고 있는 '가디언'의 전신이다.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과거 조부모의 광고'의 이야기는 그렇게 '루스'에게도 전했다. 그러자 '루스' 또한 자신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를 같은 방법으로 탈출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줄리안 보저'는 자신의 직업의 장점을 십분활용한다. '가디언'의 기록 보관 담당자에게 자신과 '루스'의 이야기를 전한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탈출시키기 위해 '가디언'에 실었다는 광고를 찾을 수 있는지 말이다. 그렇게 '기록 보관담당자'는 1938년 8월의 광고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는 '교습'이라는 여섯개의 토막광고가 있었는데, 개중 그들의 '성'을 찾는다.

"훌륭한 빈 가문 출신의 제 아들, 총명한 11세 남자아이를 교육시켜줄 친절한 분을 찾습니다. 보거 가. 빈 3구, 힌처슈트라세 5번지 12호"

기재된 주소지를 보고 그는 확신을 했다. 그의 가족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총명한 아이'란 '아버지'를 가리킬 것이다. 광고주는 자신의 조부모일 것이다. 역사적 배경에서 자식을 탈출시키기 그 흔적이 '광고' 속에 그대로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광고'는 '나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절한 사람'을 찾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렇게 광고에 실린 아이의 숫자는 총 여든 명이었고 이들 전부가 빈 출신이었다. '줄리안 보저'는 그들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이미 100년이 된 이야기, 당사자들을 찾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판단한 그는 당사자의 자녀를 찾기로 한다. 이렇게 3대에 걸친 흔적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

현대에서 시작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고 다시 과거에서 시작하여 현재로 거슬러 내려가는 이 추리 속에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인간성'에 대한 공감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친절한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여섯 다어 속에서 시작한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오스카 쉰들러가 나치의 탄압을 피해 유대인을 고용하면서 구햇던 것 처럼 줄리안 보저는 자신의 조부모가 남긴 흔적으로 과거 난민과 현재 난민이 겪는 공통된 운명을 발견한다.

2025년 다시 트럼프 행정부가 취임하면서 어쩌면 과거의 기억이 다시 새롭게 떠오르는지도 모른다. 난민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인류의 문제다. 우리 대부분은 1938년 빈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에 대해 '참혹한 역사'라는 평가를 내리면서 '현대'에 벌어지는 '난민 추방'에 있어서는 '국익'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다. 과연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미래를 결정하는 나침반이다. 줄리안 보저와 루스 하그로브가 그들의 가족사를 좇아가며 발간한 것은 단순한 광고나 기록이 아니라 인간성과 연대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과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는 가해자가 될 것인가, 피해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방관자로 남을 것인가.

그도 아니면 100년 전 작은 신문 광고 속처럼, 어떤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았음에도 행동하고자 하는 '친절한 사람'이 될 것인가.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책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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