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너와 나의 인간다움을 지키는 최소한의 삶의 덕목
엄성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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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치열한 시대, 계산은 빠를수록 좋다.

손해 보지 않고, 시간 낭비하지 않고, 언제나 이득이 되는 쪽을 고르는 것이 좋다. 다만 단기적으로 그렇다는 의미다. 세상은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뤄져 있다.

이게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이라 '뜬구름' 잡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은행은 '신용'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 보이지 않는 '신용'을 담보도 '돈'을 빌려준다는 개념은 '신용'이라는 것이 보여지는 것보다 더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이라는 것도 사실 그렇다. '돈'이라는 것은 '종이'혹은 '디지털 숫자'일 뿐이다. 이것이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이유는 실제로 그 '종이쪼가리'에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신뢰'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돈이 가진 실체는 '금'이나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집단적 믿음' 대문이다. 신용, 신뢰, 평판 이런 것은 어떤 의미에서 진짜 '자산'이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라는 것은 굉장히 일차원적인 자산이다.

원시 사회에서는 '신용'이 없어 오직 물물교환을 통해서만 거래가 이뤄졌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오롯하게 집중하면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국경선은 지도 위에 그어진 선일뿐, 실제 그곳에 가면 아무것도 없다.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집단적 상상위에 세워진 질서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도 사회가 만든 공동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인권, 법, 계약 모두 종이 위에 문장에 불과하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언어가 만들어낸 질서이며, '유발하라리'의 말에 의하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지혁명의 결과'이다.

우리 인간은 인지 혁명을 겪으며 사회적 허구에 가치를 부여했다. 고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가 주는 추상적 신뢰를 얻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신용'을 담보로 '자동차'를 구매할 수 없다. '무직자'의 신용을 담보로 집을 판매하지 않는다. 대체로 '사회적 평판'은 아주 중요하다.


'겸손', '감사', '효', '신뢰', '정직' 이 다섯가지는 '어른'이 되기 위해 필요항 덕목이다.

겸손, 신뢰를 축적하는 태도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게 아니라 상대를 먼저 보겟다는 의지다. 겸손한 사람은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에게 비난이 아니라 기회를 더 준다. 겸손은 관계 안에서 신뢰가 무형 자산을 천천히 축적하는 방식이다. 감사, 공동체를 순환시키는 에너지다.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은 단지 예의 바른 게 아니다. 그는 받은 것을 의식하고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감사는 신뢰를 환기시키고 타인의 기여를 복리처럼 늘려준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회적 관계에서 신뢰를 끊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효, 책임을 자발적으로 감당하는 성숙이다.

효는 단순한 전통 윤리가 아니다. 인간이 가진 관계의 뿌리를 인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태도다.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가정을 버티려는 의지력은 사회전체에 신뢰 기반과도 연결된다. 효는 책임감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자, 가장 직관적인 공동체 윤리다.신뢰, 모든 보이지 않는 자산의 핵심이다.

신뢰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없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계약서가 법적 효력을 지니는 건, 종이가 아니라, 그 종이에 부여된 신뢰 때문이다. 신뢰는 속도보다 깊이를 만든다. 겸손한 사람, 감사할 줄 아는 사람, 효를 실천하는 사람, 정직한 사람은 결국 신뢰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정직, 평판의 원천이다.

정직은 단기적으로 분리해 보인다. 다만 신뢰와 평판의 기본 재료가 정직이다. 거짓말로 얻은 이익은 항상 그 유통기한이 짧다. 정직한 사람은 오래 기억되고, 위기에 살아남는다. 그리고 어디서나 필요로 한다. 결국 윤리란, 내가 얼마나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겸손, 감사, 효, 신뢰, 정직은 보이지 않지만 실질을 지배하는 자산이다.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그 자산을 어떻게 축적하며 살것인가에 대한 조용하고 단단한 지침서다.

요즘 같은 시대에 계산적이고 약삭 빠른 집단이 언제나 승리를 쟁취하고 더 많은 것을 얻어갈것 같지만, 사회가 복잡해 질수록 우리는 '인지혁명' 아래에서 더 정교해진 '사회적 허구 시스템'에 종속받는다. 다시말해 어쩌면 과거보다 더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과거에는 기껏해봐야 품앗이나 두레 같은 방식으로 '신뢰'를 사용했겠지만, 지금은 비즈니스, 정치, 사회를 포함하여 사용되지 않는 부분이 없다.

이런 신뢰는 대체로 '시간'이 증명한다. 우리는 '척'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지속할수는 없다. 시간이라는 무한대의 자원 아래 우리는 모두 본성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고로 이러한 훈련을 통해 지속적으로 그것을 '삶'에 녹여낸 이들이 가져간 '신뢰'는 어마무시한 자산이 된다.

고로 '어른'이라는 것은 '시간'이라는 자원에 의해 자연히 드러난 인격적 침식의 결과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되면서 허물을 다 드러내놓고 산다. 모두가 실수를 하며 본성을 나타내고 경력과 이력으로 자신의 모든 세월을 보여준다.

고로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꼼꼼한 신뢰'를 쌓아하는 삶을 증명해는 것과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계산적이고 더 눈앞에 이익을 쫒을 것이 아니라 신뢰라는 무서운 자산을 쌓아가야 한다는 다짐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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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녀들의 수직사회 스토리콜렉터 122
우제주 지음, 황선영 옮김 / 북로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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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흥미로운 소재다.

기후위기로 바다에 잠긴섬...

그곳에서 계급으로 나눠진 사람과 사회..

서로 다른 색으로 나뉜 구역, 가족을 찢어놓는 사회...

기후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소설 '아름다운 소녀들의 수직사회'는 미래에 펼쳐질 변화를 상상한 소설이다. 해수면이 점점 높아져 정부는 국민을 등급으로 나눈다. 그리고 다른 색의 구역에 배정한다.

'초록, 노랑, 빨강, 검정'

그 구역들은 계급을 상징한다.

문제는 가족조차 같은 등급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적, 경제력, 지위 등을 기준으로 최상위권 아이만 입할 할 수 있는 '수직농장부속 학교'에 장리팅과 린위안은 배정된다.

초록색 구역,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여유로운 환경이다. 다만 그 안에서도 또다른 위계질서가 있다.

학교에서 만난 '진유롼, 진유홍 자매', 마커웨이. 이들은 확고한 서열을 갖고 있다. 외모나 말투, 부모의 배경, 친구를 대하는 태도까지 모든 것이 그렇다. 처음에 장리팅과 린위안은 그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 애를 쓰지만 구조는 이 우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제주 작가는 소설을 통해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 하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고, 서열은 어느 곳에서나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사회와 학교가 만들어내는 시스템은 너무도 쉽게 사람을 나누고 지워버린다. '아름다운 소녀들의 수직사회'는 그 인간 관계가 지워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실 따지고보면 위계질서는 언제든지, 어디에서나 있어 왔다. 하다못해 학창시절 교실배치에서도 보였다. 웃음소리 하나, 수업시간에 앉는 자리, 버스 좌석 위치까지 어쩌면 우리 인간은 '너와는 다르다'라는 것을 반드시 구분짓고 싶어하는 동물인듯 하다.

그런 본능은 실존 위기에 빠져 있을 때, 더 발생한다. 기후위기가 실제 위협 아래 어쩌면 인간은 가장 먼저 위계를 설정할 것이다. 기후위기란 시간의 문제 속에서 언젠가 받아 들여야 할 환경이 되어가는지 모른다.

다시말해서 우리사회는 어차피 만들어진 '위계질서'의 속으로 점차 우리를 분리 시킬 수도 있다. '설국열차'의 열차칸처럼 우리는 과거나 현재, 미래 할 것 없이 '그들'과 '우리'를 분류하고 결과적으로 점차 고립되어가는지 모른다.

지금도 세계 이곳 저곳에서 벌어지는 갈등 상황 속에서 우리가 가진 본성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흥미로운 소재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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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새로운 부의 지도 - 위기의 역사는 어떻게 투자의 판도를 바꾸었는가
홍기훈.김동호 지음 / 청림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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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는 역설이 있다. 바로 돈이 많아지면 돈은 가치를 잃는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돈이 많아지면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은 가난해진다. 가치가 없는 것을 많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자본주의의 특성상 돈(통화량)은 시장에 늘어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 설계'가 애초에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금융시스템은 '이자'를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다.

은행은 이자를 붙여 돈을 빌려준다. 가령 100만원을 빌려주면 110만원을 갚으라고 한다. 사회에 없던 10만원을 더 갚아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대출이 발생해야 한다. 그렇게 돈은 꾸준하게 시장으로 풀려나간다. 지속적으로 돈이 시장에 '이자'를 명목으로 풀어진다. 통화량이 증가한다. 돈의 가치는 줄어든다.

자본주의는 '성장'을 전제로 한 시스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하지 않으면 '실업, 도산, 파산'이 늘어난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순간, 빌린 돈 보다 더 많은 돈을 갚아야 한다. 기한은 정해져 있다. 고로 모두가 풀려진 돈 이상의 것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치열해진다. 애초에 우상향하지 않으면 도산하거나 다른 대출을 빌려 대출금이 늘어나는 구조다.

즉, 가난한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더 가난해지고 성장하는 이들은 '우상향'의 기울기를 넘어선만큼만 더 부유해진다. 나머지는 멈춰 있거나 가난해진다. 성장이 없으면 시스템은 붕괴한다. 고로 경제를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돈은 꾸준하게 공급되어야 한다. 100만원을 빌려주고 110만원을 갚게 하려면 꾸준하게 100만원을 빌려주는 것이다. 물론 다시 받을 때는 110만원이다. 공급이 무한대로 늘어난다. 고로 시장에서 돈의 가치는 꾸준하게 줄어든다.

경기가 침체될 때 은행과 중앙정부는 돈을 풀어서 살리는 통화정책을 펼친다. 재난지원금이나 저금리, 양적완화 등 모두 그렇다. 100만원을 빌려간 이들에게 110만원을 갚으라고 했더니 그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결국 파산하고 도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 은행과 정부는 또다른 110만원짜리 100만원을 시장에 푼다. 불황이 오면 돈은 계속 많아진다. 돈이 많아지면 돈의 가치는 줄어든다. 돈의 가치가 줄어들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든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면 '돈' 말고는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진다.

사회적으로 '돈'이 많아지면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다른 자산의 가치는 올라간다. 고로 부를 얻는다는 것은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즉, '부'는 돈이 많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돈'이 많아지는 필연 속에서 '다른 자산'이 많아야 하는 것이다.

돈이 하찮아져야 '부'는 형성된다. 아이러니하기만 그렇다. 예전에는 '대학만 나오면 성공'이라는 말이 있었다. 대학 진학률이 70% 이상에 육박하는 현재에는 통용되지 않는다. 모두가 갖고 있으면 차별화되지 않는다. 과거 희귀 했던 것은 '기본값'으로 변경된다. '대학졸업장'의 가치가 떨어진 셈이다. 이유는 그렇다. 모두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희귀하지 않은 것은 가치가 없다. 모두가 가지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가치를 갖지 않는다. 그것이 시장 논리다. 한때는 자격증, 한 때는 유학, 한때는 SNS 팔로워 수가 그랬다. 가진 사람들만 가졌을 때, 그것은 빛이 난다. 다만 모두가 갖게 되면 그것은 희귀함을 잃고 평범함이 된다. 사장은 이처럼 '기준'을 찾는다. '희귀성'은 언제나 다음 장소를 찾아 돌아다니고 그 '희귀성'이 머문 자리에 '가치'가 생긴다.

계란 하나를 사기 위해 '지폐'를 '수레'에 퍼다 줬다는 '초인플레이션'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돈이 많아지면 한 수레의 돈으로 계란도 사지 못한다. 구매력은 줄어든다. 고로 돈을 들고 있다면 오래 들고 있어서는 안된다. 도이 흔해질 기미를 보이면 재깍재깍 다른 자산으로 바꿔야 한다. 다른 자산은 공급이 한정적인 것을 타겟으로 해야한다. '돈'이라는 것'은 공급이 무한대이다. 공급이 무한대인 것으로 공급히 한정적인 것을 구매하면 당연히 희귀한 것의 가치가 오른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비트코인, 주식, 금, 그림이 그렇다. 한정된 파이가 시장에 있고 무한대로 공급되는 돈은 그것을 살 수 있게 한다. 단 돈은 아주 조금씩 공급되기에 체감하기 쉽지 않다.

그걸 모르고 '돈'만 모아서는 부를 얻을 수 없다. 여기서 '부'라는 것은 상대적이다. 100억원과 100원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둘다 같은 비율로 줄어든다고 해도 100억원을 갖고 있는 사람과 100원을 갖고 있는 사람의 상대적 가치도 각각 다르게 줄어든다. 둘다 50%를 잃는다고 했을 때, 100억을 가진 사람들은 50억을 잃지만 100원을 가진 사람들은 50원만 잃는다. 자산의 가치도 같은 메커니즘이다.

고로 초기의 목돈 얼마를 만들기 전까지는 '저축'이 정답이고 그 이후에는 무조건 '투자'가 정답이다. 100원을 가진 사람들이 20%냐, 30%냐, 그 수익률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할 수는 없다. 그들의 목적은 일단 100원이 아닌 최소 1억 정도를 갖는 것이다. 목돈이 모이면 비로소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용한 부를 얻을 수 있다.

시장에 무한대로 공급되는 돈 중에서 목돈들은 결국 어떤 자산으로 향하게 된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꾸준하게 돈이 경쟁을 벌인다. 그러다보면 자산의 가치는 계속해서 올라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자산을 얻기 위해 꾸준하게 돈을 빌려주던 은행과 정부가 수도꼭지를 잠그면 폭탄을 돌리던 수많은 경쟁자 중 일부가 파산하기 시작한다. 파산하거나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르면 상당수는 다시 자산을 시장에 던진다. 자산의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 현상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 그것이 '버블 붕괴'다. 다만 그들이 던진 자산은 언제나 한정적 자원이다. 반대로 돈은 꾸준히 무한대로 늘어난다. 고로 버블이 붕괴되어 많은 이들이 파산을 하거나 도산을 하거나 실업을 할 때, 사실은 그때가 자산 가격이 가장 낮은 시기이며 그 시기에 자산을 매입하면 다시 한정된 자산의 가치는 시간을 따라 올라간다.

세상은 점점 더 많은 돈을 찍어낸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낼 것이고, 돈은 시장으로 흘러갈 것이고, 버블이 올 것이다.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부자가 된다. 이것은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이해다.

그렇다면 그러한 시스템을 역사가 꾸준하게 증명해내고 있는 가운데 어떤 포지셔닝을 취해야 할 것인가.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의 다음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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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비트코인과 화폐의 역사 -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 과거·현재·미래 사회의 돈 이야기
김지훈(제이플레이코) 지음, 김혜원 그림 / 체인지업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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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기 몇해 전, 서점을 갔다가 굉장히 독특한 제목의 책을 봤다. '코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열어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며칠 후, 강연장에서 강연을 마치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정리를 하며 퇴장하시는 분들과 인사를 했다. 그때 한 중년의 여성이 다가왔다. 겉보기에 굉장히 비싸 보이는 밍크코트를 입고 계셨다.

'굉장히 열심히 사시는 것 같은데, 제가 중요한 정보 하나 알려 드릴까요' 하시고 '비트코인'을 말씀하셨다.

'속는 셈치고 비트코인을 500만원 너치만 사 놓으세요'라는 말을 하셨다. 금방 잊어버렸다. 다음날 호기심에 지갑을 만들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코인은 아래로 아래로 움직였다. 얼마를 더 입금하고 잊어 버렸다. 다시 열어 봤을 때 코인은 엄청나게 올라 있었다.

그해, 주변에서 '비트코인'이라는 용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비트코인 방송을 했다. 심심찮게 뉴스에 비트코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치인 출신 작가와 과학자가 '비트코인'에 대한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고 법무부 장관의 여러 발언이 뉴스에 나왔다. 이렇게 레거시 미디어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코인'이라는 것에 되려 신뢰감이 생겼다. 이후 세계적인 투자자와 세계 최고 부자가 부정적인 미래를 말했다. 다시 얼마 계속되는 거래소 해킹 문제가 발생했다. 그때마다 비트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약간의 확신을 쌓아갔다.

그렇다면 과연 '비트코인'이란 무엇일까.

지나가는 그 많은 이벤트들이 본질을 흔드는데, 비트코인은 500만원에서 1억5000만원까지 상승했다. 무려 3,000%나 상승했다. 도대체 왜 비트코인의 가격은 올라가는 것일까. '돈이나 벌어보자'는 투기성 투자가 아닌 그 근본을 궁금해야 한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무엇일까.

비트코인은 디지털 코드다. 그 실체 없는 것에 돈을 투자하는 건 얼마나 멍청한 일이냐고 물는 사람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본래 화폐는 '명목화폐'라는 것이 존재한다. 인간은 좀더 편하고 가벼운 가치 저장 수단을 발견해내며 지금의 경제를 만들었다. 쌀보다는 은이 낫고 은보다는 명목화폐인 지폐나 낫다.

'실체가 없다는 것'은 굉장히 선구적 개념이다.

본래 '신용'이라던지, '금리', '대출'이라는 것도 모두 실체가 없다. 우리는 그 실체 없는 것을 담보로 '대출'도 받고 계약이나 거래를 한다. 꼭 토지나 주식이 아니더라도 '신용'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조금더 깊게 들어가보면 토지가 자신의 소유라는 것또한 실체없는 '법'이라는 공동의 허구적 상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중국'에는 '토지'는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 '개인'이 소유한다는 개념 또한 꽤 최근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비트코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트코인 비관론자들의 가장 큰 논리는 '실체 없는 코드'라는 것이다. '실체'라는 것은 굉장히 모호한 개념이다. '대한민국'에는 실체가 있을까. '종교'나 '기술', '회사', '특허', '법' 따위도 실체는 없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따르면 인간의 '인지혁명'은 허구를 믿는 능력 덕분에 일어났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믿으며 협력한다. '국가', '법', '종교', '회사', '주식시장' 모두가 허구다. 실체가 없다. 다만 수십억 인구는 이 허구를 믿고 협력하며 지금의 문명을 만들어왔다. 종이 위에 유화를 발라 놓은 것에 '예술'이라는 실체를 부여하면 그것은 모나리자가 되고 명작이 된다. 사람들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실체와 가치를 부여한다.

비트코인도 같은 원리다. 그것은 단순한 컴퓨터 코드다. 다만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코드가 가진 희소성, 탈중앙성, 신뢰성을 믿는다. 고로 가치는 발생한다. 모든 화폐는 결국 '신뢰'에서 출발한다.

원화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원화의 가치는 올라간다. 단순하다. 어떤 경우에는 '원화'의 가치보다 '비트코인'의 가치를 믿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비트코인의 가치가 '원화'의 가치를 넘어 설 수도 있다. 모든 가치는 그렇게 형성된다.

'금'이나 '은'도 그저 빛나는 광물일 뿐이다. 사람들이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면 가치가 생길 뿐이다. 결국 모든 화폐는 결국 '신뢰'에서 출발한다. 과거에는 금이 없었다. 금은 채굴이 어렵고 희소하다. 인간은 거기에 가치를 부여했다. 그 광물 덩어리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원화'보다 더 가치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원화'와 '금'을 바꾼다. 상대적 가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미래를 이야기 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워렌버핏'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다만 워렌버핏은 '가치투자'를 하는 사람이다. 적정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 때 그는 투자를 실행한다. 다시말해서, 그는 '주식'에 투자를 하는 사람이다.

과거 워렌버핏은 '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은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금을 사서 금고에 넣어두면 그 금은 거기서 그대로 있다. 땀을 흘리지도 않고, 아기도 낳지 않고, 이자도 내지 않는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바로 워렌버핏이 '비트코인'에 대해 한 말과 같다.

'비트코인은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지구상의 모든 비트코인을 25달러에 판다고 해도 사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비트코인의 투자 철학이 그렇다. 고로 비트코인과 워렌버핏을 연결 시키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금'은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광물일까. 그렇지 않다. 금은 교환이 꽤 불편한 가치저장 수단이다. 현재의 명목화폐는 금세공업자들에게 '금'을 맡기고 받은 영수증을 주고 받는 개념으로 시작했다. 금세공업자들은 현재 은행이 됐고 영수증은 화폐가 됐다.

기존 화폐에 대한 불편함이 생기면 점차 화폐는 진화하는 것이다. 조개껍데기에서 은으로 은에서 금으로, 금에서 달러로.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각국 정부의 돈 찍어내기에 의해 기존 통화시스템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미국의 달러도 무한대로 찍힌다. 희소 자원이던 '화석연료'도 거의 무한대에 가깝게 채굴된다. 그렇다면 무거운 영수중이 아니라 금세공업자가 내어 준 영수증으로 교환 방식을 바꾸었던 것처럼 금태환 폐지에 의해 달러가 독립해 낸 것과 같은 인류의 화폐 개혁이 일어나지 않을까.

비트코인은 총 2100만개라는 발행량 한도를 내새운다. 누구도 초과발행 할 수 없다. 중앙은행도, 정부도, 기관도, 그 누구도 주체성을 갖지 않고 오직 수학과 알고리즘, 분산된 네트워크 위에만 존재한다.

이 탈중앙화는 누구도 이 시스템을 조작할 수 없고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블록체인 위에는 모든 거래가 남고 전 세계 수 많은 컴퓨터가 이를 동시 검증한다. 고로 이 시스템을 조작하기 위해서는 전체 컴퓨터의 51%를 동시에 해킹해야 가능하다.

간혹 거래소 해킹와 같은 이슈는 있으나 '비트코인'은 역사상 단 한번도 해킹된 적이 없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 '양자컴퓨터'가 개발된다면 어떠한가를 물을 수도 있다. 다만 양자컴퓨터가 개발되어 비트코인을 해킹한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비트코인을 포함한 달러, 원화를 비롯해 모든 신용 시스템이 다 무너진다고 봐야 한다.

전쟁과 각 세계 간의 분쟁, 경제재제 속에서 비트코인은 아마 더 발전할 것이다. 수많은 거래소 해킹, 규제, 정치적 발언, 부정적 뉴스 속에서도 시스템은 단 한번도 넘춘 적 없다. 2009년 첫 블록이 생성되고 2025년까지 참여자는 꾸준히 늘었다. 기관 투자자도 늘었고 일부 국가는 법정통화로 채택한다.

비트코인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굉장한 돈벌이 수단이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꽤 흥미로운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비트코인의 미래가 너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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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판소리 - 조선의 오페라로 빠져드는 소리여행 방구석 시리즈 3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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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가, 하여가, 단심가, 처용가...

학창시절 문학작품으로 만났던 작품들일 것이다. 아이가 요즘 어린이 고전을 읽고 있다. 그래서 더 반갑다. 그러고보니 판소리를 들어본 게 언제였던가, 싶다.

'판구석 판소리'는 출판사 리텍콘텐츠의 '이서희 작가' 글이다. 작가는 문화 예술을 쉽고 재밌게 풀어주는 작가로 활동 중이다. 제목 역시 '방구석 판소리'다. 역사적이고 예술적이면서 뭔가 박물관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혹은 예술의 전장에서 각을 잡고 들어야 할 것만 같은 판소리지만 방구석에서 편하게 들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신분을 넘어서는 사랑 이야기나, 부모를 위해 딸이 희생하는 이야기, 인생역전으로 신분 질서를 비틀어 내는 이야기, 왕을 속이는 권력 풍자까지...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나 영화와도 주제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는 언제고 같다. 아무리 수백년이 지나도 사람 사는 모습은 거기서 가긴가 보다.

책의 하단에는 QR코드가 있다. QR코드를 찍으면 유튜브 영상과 연결된다. 이야기를 글로 읽으며 귀로 듣는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오디오북'을 자주 듣는다. 눈을 허공에 두고 성우가 읽어주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러고보니 '판소리'는 조선판 오디오북이자 실시간 스트리밍 음악이지 않은가. 어쩌면 많은 조선 어린이들도 판소리를 통해 상상력과 문해력을 키우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음악인지 과학 연구팀은 인간의 뇌는 리듬과 스토리텔링이 결합된 음악을 들을 때 감정 공감 능력이 높아진다고 했다. 판소리는 그런 의미에서 복합적 자극제다. 청중은 소리꾼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북장단은 심장박동의 리듬을 갖는다. 스토리가 북의 리듬을 타고 심장으로 내리 꽂는다. 듣는 사람은 수동적 청자가 아니라 그 이상의 참여를 한다. 고로 판소리는 연극이자 음악이고, 책이자 대화인 셈이다.

이런 문화를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예전부터 즐겼다. 많은 이들이 판소리와 오페라를 비교하기도 한다. 실제 판소리는 오페라와 닮은 부분이 있다. 다만 부르는 이와 듣는 이가 누구인가하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서양의 오페라는 왕과 귀족의 극장 속에서 자라났다. 거창한 무대 장치와 웅장한 오페라도 필요하다.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없는 위에서의 문화다. 반면 판소리는 평민과 장동뱅이의 입에서 시작했다. 거창한 무대 장치나 웅장한 오케스트라도 필요치 않다. 그저 북 하나면 충분하다. 또한 앞에 앉은 사람들을 관중이면서 대화상대로 인지했다. 수동적인 시청이 아니라 '소통'의 대상으로 두었다. 접근성 면에서 아주 뛰어나다. 본래 문화라는 것은 보존이 아니라 참여로 살아남는다.

요즘 아이들은 고전을 어려워하고 멀리한다. 과거에는 언제든지 쉽고 가볍게 들을 수 있던 이야기들이 점차 거리감이 생기면서다. 조선인들은 시장을 가거나 길거리에서 쉽게 판소리를 들었다. 그런 접근성은 현재 우리 아이들이 손에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정도의 체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구석 판소리'는 고전을 우리 방구석으로 들여 오고자 한다.

문학 시간에 잠시 만났다가 평가문제로 받게 되는 고전이 아니라 이야기로 부르고 상상하며 즐기는 고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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