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베트남 성장하는 곳에 기회가 있다
이정훈 지음 /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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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베트남은 딱 1회만 갔다왔다. 가장 놀라웠던 건 베트남의 1인당 국민 소득이었다. 나는 베트남 뿐만 아니라 태국도 방문했었다. 물론 내가 다녀온 곳이 그 국가의 모든 걸 대변할 수는 없지만 내가 느꼈던 건 두 국가 모두가 비슷한 동남아 국가의 이미지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태국과 베트남은 아는 사람을 다 알만큼 엄청난 격차가 있는 나라다. 태국은 세계 GDP규모가 23위인 나름 동남아의 경제대국이다. 인구도 7000만 정도로 남북한을 합한 정도의 규모가 있다. 태국의 1인당 GDP는 7588달러 수준으로 꽤나 높음 편이다. 반면 베트남은 조금 다르다.

베트남의 1인당 GDP는 2500불 정도 수준으로 '스리랑카'나 '앙골라' 보다 적다. 적도기니나 가봉에 1/3 정도 수준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것 보다 경제력이 많이 적다. 하지만 베트남은 앞으로 매우 기대가 되는 나라이다. '다이나믹 코리아', 우리나라는 이미 베트남의 가능성을 아주 오래 전부터 엿보고 있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숫자가 8,300개가 넘고 투자규모도 누적이 677억달러 정도이다. 이는 전체 외국인 투자자의 18.7%이다. 투자자는 당연히 투자 대상이 성장할 때 수익을 얻는다.

고로 베트남의 성장은 우리나라의 성장에 간접적 영향을 주고 받는 다고 볼 수 있다. 경쟁국가 일본과 비교 했을 때도 대한민국의 베트남 사랑은 독보적인 편이다. 이런 베트남의 장점은 우리가 이미 중국의 성장에서도 확인 했다 싶이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과 젊은 인력이다. 베트남은 거의 1억이 넘는 인구를 자기고 있고 인구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다 알고 있을 만한 세계 유례없는 '황금 인구비'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9,727만명으로 전 세계 14번째 인구 대국이고, 베트남의 8090년대 생인 2,30대의 소비자층은 베트남 전체 인구대비 35%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젊은 나라는 풍부한 노동력 이로도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가능성도 엿볼수가 있다. 전체 인구증 53%가 인터넷을 사용하며 그중 90%가 사셜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다. 그 수치가 우리나라의 절대수치와 비교해서도 절대 지지 않는다. 이는 엄청난 시장이다. 또한 베트남의 중산층 혹은 고소득층 인구는 2014년 1,200만명에서 2020년에는 33,00만 명으로 증거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생산국만이 아니라 소비국으로서도 꽤나 큰 규모이다. 우리나라 내수에 맞먹는 규모가 중산층 혹은 고소득 층인 국가인 샘이다.

이런 시장과 공장이 이토록 대한민국에 가까운 것은 어쩌면 행운에 속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동쪽으로 기술 강국인 일본과 서쪽으로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의 중국을 끼고 있는 황금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커다란 수혜를 보았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일본 시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중국 공장에서 물품을 생산한 후 완제품을 판매하는 전략을 취했다. 다만 이제는 중국과 미국의 무역갈등이 심화하면서 우리가 찾은 새로운 대한이 필요한 시기다. 기술적인 면에서 우리는 일본과 기술 격차가 많이 줄었다.더 이상 중국과 일본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좋은 이유가 생겼다.

베트남은 우리와 역사적으로 상당히 비슷하다. '한'의 역사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보다 어쩌면 더 심한 픽박을 받던 나라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천년 넘게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벗어났다하면 프랑스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해방할 때 쯤에는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였다. 어쩌면 역사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입장에서 적국이었지만, 어쨌거나 베트남인들은 대한민국에 크게 악감정이 없어 보였다. 그 이유는 그 전쟁에서는 대한민국이 패전국과도 같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자신들이 자주적으로 국가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대단한다. 그것도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말이다. 또한 아주 오랬동안 타 민국과 국가에 지배를 받던 베트남은 이제야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고 있다. 삼성전자의 베트남 생산비중은 전체 생산능력의 57~70%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게 좋은 생산국이 대한민국과 지금처럼 친밀도를 높여가며 역사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데에는 우리는 또 다른 감사함을 느껴야 할 지도 모른다. 기존 무역 상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과 비교하면 대한민국과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을 빼고는 정치적으로 겹치는 일도 많지 않다. 책에서 소개하는 롯데마트에 관한 설명은 내가 베트남현지에서도 꽤나 많이 들었던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의 문화에 대한 공부도 충분히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듯하다. 또한 베트남의 삼성이라고 불리우는 '빈 그룹'의 경우는 베트남의 초대형 그룹이지만 실제로 아직도 투자여력이 충분한 기업이기도 하다.

베트남을 방문하면 어쩐지 대한민국의 어느 시골을 방문한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사람들의 정서나 감정 혹은 문화에 있어서 이질감이 없다. 아마 쌀 농사 짓던 농경민족으로써의 유대감 같은 것이 그들에게 느껴지는 듯 하다. 이 책은 베트남의 IT산업이나 인공지능 등 앞으로 4차 사업혁명에서의 베트남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는 나 또한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 책은 1회 정독이 아니라 수 차례 공부해야할 만큼 중요한 내용들이 잔뜩 있었다. 올 추석을 기회로 이 책을 한 번 더 정독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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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키즈가 온다 - 뉴노멀형 신인류 보고서
유종민 지음 / 타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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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세상에 대한 첫 인상을 얻게 되는 시기, 초등학교 저학년 IMF가 터졌다. 뉴스에서는 온갖 '부도'에 관한 내용이 터져 나왔고 망해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대출을 통한 과감한 투자가 미덕이던 시대를 지나 '투자'는 '위험'이라는 인식이 세상에 빠졌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었다. 내 또래들은 2008년 대학 생활을 했다. 이제 사회 생활을 시작할 나이 미국에서 시작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세계적 금융위기로 번졌다. 내 또래가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코로나 금융위기가 다시 터졌다. 세상은 우리 세대를 '트라우마 세대'라고 불렀다.

트라우마 세대의 무의식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돈'에 대한 인식은 IMF가 절대적이다.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나 코로나 위기에 대한 위기감 보다 IMF에 대한 인식이 강렬하다. 의식보다 무의식이 관장하던 시기에 받은 충격과 부모가 갖고 있던 인식의 변화가 아이에게 얼마나 깊은 인상을 남기는지 나와 내 또래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 또래는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또다른 트라우마를 세긴다. '코로나19' 금융이나 경제 관한 내용이 아니라 '사회 문화'에 관한 내용이다.

나의 또래들이 하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을 살펴보면, 아이 영상이 많다. 아이들은 어김없이 외출시 마스크를 하고 있다. 얼굴을 반이나 덮은 아이와 어른들은 카메라 렌지를 쳐다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사진으로는 알 수가 없다. 아마 마스크 뒷편으로 싱긋 하고 웃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얼굴'이다. 얼굴은 그 만큼 중요하다. 그 사람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우리는 얼굴과 목소리로만 판단한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외모에 집착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얼굴 표정을 살필 수 없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마스크는 부모의 표정을 숨기고 아이들은 부모의 표정을 통해 감정 전달을 받지 못한다. 부모 뿐만아니라, 외부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어른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무의식적으로 학습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가 IMF를 겪고 모두가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에 목숨을 거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성인이 되고 나서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나의 쌍둥이 녀석들은 이제 막 36개월을 접어들었다. 아이들의 인생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세월 간 코로나19는 사회의 문화를 바꾸었다. 낮선 사람의 접촉에 대해 극심한 불쾌감을 보여주기도 하고,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유튜브를 통해 언어와 문화를 배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왜 쓰는지 이해가 되니 않는 마스크를 써야하는 답답함을 갖고 살아야하고 그것을 쓰지 않았을때 왜 혼나야하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밖을 나갈때 양말을 신는 것처럼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의 당연한 의복 문화가 되어버린 이들이게 코로나 19가 사라진 뒤에도 마스크 문화는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코로나가 얼마나 더 지속 될지 모르겠지만, 그 용도를 넘어 이제는 패션아이템이 될 지도 모른다. 마스크 착용은 양말 착용과 같이 새로운 의복 문화로 자리잡고 사람들은 감정을 표출하는 표정을 짓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을 까 걱정도 된다.

심각해져가는 코로나 블루도 만찮가지다. 지난 블로그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코로나로 죽는 사람은 지금 것 300명이 겨우 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죽는 사람의 수는 1년에 1만 2천명이나 된다. 우리는 코로나를 막는데 선공했지만, 이미 취약한 자살률에 더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1년에 1만명이면 10년간 10만명이다. 율곡이이가 왜적을 물리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군인의 수가 10면명이다. 우리의 자살률은 여느 분쟁국가의 전사자 수를 훨씬 윗돈다. 우리사회는 불명확한 적과 이미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 있는 샘이다. 그 약점을 코로나19가 파고든다. 앞으로 아이들이 자라날 세대에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할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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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부업 - 누구나 하루 30분 투자로 월 100만 원 더 버는
김상은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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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로 딱히 부업을 하고 있진 않다. 다만 출판사에서 제공해주는 책 몇 권과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장소와 음식 제공을 받기는 한다. 그것도 그것만을 위해 매달리진 않는다. 다만 불필요한 욕심으로 진행하지 않고 나와 공급자 그리고 수요자에 모두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있을 때만 진행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책을 선택했을까? 얼마 전 나는 '디지털노마드'라는 책을 읽었다. 그 외로 '이제 개인의 시대다' 부터 시작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러 미래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읽었다. 내가 느낀 바는 하나였다. 이제는 개인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시기다.

우리는 대량생산의 시대를 넘어왔다. 공장에서 대량의 물량으로 물건을 찍어 공급하는 시스템은 공급가를 혁신적으로 낮췄다. 싸고 대중적인 물품이 전 세계로 쏟아져 왔다. Made in China는 그게 중국에서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공산품입니다'라는 의미로 해석 될 만큼, 중국제 싸고 가성비 좋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는 개성을 잃어버린 사회를 만들어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살며 요즘 유행한다는 옷을 교복처럼 입고 하루를 살고 요즘 핫하다는 영화를 보고 요즘 뜨고 있다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개성이 하나도 없는 시대에서 사람들은 정체성을 상실했다.

이제 '가성비의 시대'는 지났다. 사람들은 조금 돈을 더 들여서라도 나만의 개성을 표출해 내고 싶어한다. 자기의 색깔과 목소리를 내는 시대로 들어왔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들을 외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똑같은 마스크를 쓰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서비스들을 공급 받으며 이런 '집단'과 '대중'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사람들은 TV나 기성 신문과 같은 '대중매체'를 탈피해 자신의 색과 잘 맞는 '개인'을 찾는다. 그런 개인들은 '팬덤'을 형성하고 '영향력'을 갖는다. 그들을 '인플루언서'라고 부른다. 이 책은 파워블로거가 되어 수 억을 버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지 않다. 작은 용돈을 벌며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팬덤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개인의 시대에 가장 큰 수혜를 보고 있는 플랫폼은 유튜브다. 방송이라는 플랫폼을 대형 기업에서 개인으로 옮겨 온 이 일은 거의 혁명과도 같다. 수신료를 조금 내는 공영방송이나 그마저도 내지 않는 여러 채널의 방송국 채널들을 보면서 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 '수'라는 사실을 우리는 은연 중 학습했다.

시청자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시청자수에 목숨을 거는가? 모든 건 마케팅이다. 팔아야 할 물품이 쌓여가는 이런 자본주의는 어쨌거나 언제나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곤 한다. 그러다보면 결과적으로 경쟁이 생긴다. 쌓여 있는 재고는 새로운 소비자에게 한 번이라도 노출이 되어야 판매가 이루어진다. 그 노출성은 '시청률'로 집계한다. 이제는 방송채널보다 유튜브 채널이 더 많은 '시청자수'를 갖고 있다. 심지어 언제 어디서나 노출 시킨다.

대중매체는 서서히 사라져 갈 것이다. 그런데 왜 저자는 유튜브가 아니라 블로그를 추천했을까? 물론 시청각이 주는 자극은 글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편집하기 어렵고 시간도 오래걸리고 자신을 들어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블로그로 시작하는 편이 좋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감한다. 나는 수 개월 전 부터 1일 1포스팅을 하고 있다. 어떤 날은 일이 많아져서 밤 늦게 까지 포스팅을 못하는 날도 있다. 하던 일을 겨우 마무리하고 시계를 보면 11시 30분 정도가 겨우 지날 때도 있다. 그 짧은 시간에는 유튜브를 찍을 수 없다. 또한 밤늦게 찍을 수도 없다. 하지만 블로그는 쉽게 쓸 수 있으며 쓰고 난 뒤에도 쉽게 수정을 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다.

지금 핫한 플랫폼 기업은 한낫 거품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인간의 노동시간이 줄어들어야 하는 필연적인 역사가 우리 눈 앞에 있다. 산업혁명 시기,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기계를 부수던 노동자들의 러다이트 운동처럼 인공지능은 어쩌면 빠르게 우리의 일자리를 잠식시킬 것이다. 하지만 공학과 경제학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세상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두 가지에 의해 돌아가는 자본주의 시대다. 기계가 더 빠른 생산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 같은 산업국가는 내수를 빠르게 충족시키고 또 다른 수요처를 찾아야 했다.

발빠르게 찾지 못하는 수요처는 공급력 폭발에 의해 공황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 그런 이유로 산업혁명 이후, 유럽은 공황을 벗어나기 위해 배를 타고 남는 잉여물을 팔기 위해 해외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식민지로 부터 원자재를 공급받고 다시 그들에게 공급물량을 팔아치웠다. 그러다 더 이상 나눠 먹을 식민지가 부족하게 되자, 세계의 열강들은 서로의 식민지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 의한 자본주의가 세계화되면서 우리는 '소비'의 시대를 열었다. 옷 한 벌이면 한 계절을 무난하게 보내던 시기에 미국은 '마케팅'이라는 전략을 이용했다. 그리고 문화를 만들어냈다. 미국이 만들어낸 마케팅과 문화는 식사는 3끼를 먹어야 하고 누구나 자동차를 구매해야하며, 멋들어진 주택과 마당을 갖게 했다. 입지 않는 수 십 벌의 옷을 만들고 그래도 넘쳐나는 잉여 생산물을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꾸역 꾸역 소비자에게 집어 넣었다.

사람은 밥을 무한정으로 먹을 수 없다. 옷도 무한대로 사서 입을 수 없다. 그런 소비의 시대가 종말하고 이제는 플랫폼의 시대가 왔다. 사람들은 이제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신호에 기꺼이 돈을 쓰기 시작했다. 생산하고 소비하는 문화에서 소비가 턱 끝까지 차오르자 이제는 컨텐츠로 갔다. 넷플릭스를 보는 일에 사람들은 1만원을 쓴다. 점심을 한끼 억지로 먹이지 않아도 자본주의는 이상없이 돌아간다.

소비가 새로운 물길을 찾았다. 돈은 플랫폼 기업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누군가가 써야 원활하게 돌아가는 자본주의는 이제 모두가 과하게 소유하던 시기에 대한 갈증을 풀고 무형의 컨텐츠에 소비하게 했다. 인공지능이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내도 좋다. 이제는 인간은 무형의 공급을 만들어 내고 소비한다. 소비 패턴이 천지가 개벽하듯 달라진다. 지금 이런 시기에 우리는 온고지신 해야한다. 생산물과 컨텐츠가 교묘하게 뒤섞이는 오묘한 시기다. 우리는 새로운 부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컨텐츠의 시대이자 개인의 시대다. 지금부터 온라인 세상에 지분을 쌓고 있기 시작해야한다. 그 세상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기반을 다지길 시작해야한다.

TV가 생기고 나서도 라디오와 신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동차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자전거는 사라지지 않았고 비행기가 있어도 배가 사라지지 않았다. 블로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블로그를 이용하여 돈을 벌고 있지는 않지만, 나의 생각을 표출하고 저장하는 매체로 유용하게 사용 중이다. 꾸준히 사람들과 소통하다보니, 유튜브를 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가끔 말로 '휙~'하고 설명하면 쉬울 만한 걸 글을 쓰려니 몸이 근질 거릴 때가 있긴 하다. 다소 '상업적'으로 보이는 이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우리 모두가 혹할만한 내용이기도 하다.

커다란 부를 가져다 주진 않지만, 즐거운 취미를 하며 용돈이 생기는 일은 마다할 일이 없다.

책은 내가 적은 추상적인 이야기를 도입으로 실제 대입가능한 여러 실용적인 내용을 후반부에 소개한다. 목적이야 어쨌던 기왕 하는 블로그라면 제대로 배우고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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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5번의 무역전쟁 - 춘추전국시대부터 팍스 아메리카나까지
자오타오.류후이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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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완독하고 언제 쓰여진 책인지 다시 살펴보았다. 책의 마지막에는 최소 '미중무역전쟁'에 관한 언급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었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는 '자오타오'와 '류후이'라는 작가다. 둘 다 중국 작가들로써 무역 전쟁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의미가 다르지 않을까 싶다. 무언가 '미중무역전쟁'이라는 현대 세계의 흐름에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눈치가 가득 보이는 제목이었지만 작가 둘은 '미중무역전쟁'의 언급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책의 처음을 폈을 때, 몹시 신선했다.'현대 국가의 갈등 표출법'으로 인식하던 무역 전쟁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단번에 알았다. 책은 '고대'부터 '중세', '근대', '현대'의 시간 순으로 동양과 서양을 오가며 무역전쟁의 일화들을 열거해 나간다. 사실 따지고 보자면 전쟁을 치루면서 '무역전쟁'이 아니라 하더라도 '경제 전쟁'이 없을 수는 없다. 고대나 중세 전쟁에서는 화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보급'이고 '보급'이란 군량미와 같은 식량의 대다수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병이 20일 만에 한양에 도달했던 건, 육로의 보급을 피하고 남해를 돌아 인천 방향으로 해로 보급을 받기 위해서 였던 것도 있다.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이끈 수군이 이 해군 보급로를 차단하면서 고립된 일본군들이 패전했던 것 처럼, 전쟁의 기본은 보급에 달려 있기도 하다.

책에서는 언급이 안됐지만, 1차 세계대전은 전쟁의 양상을 크게 바꾼 사건 중 하나였다. 야전에서 서로 총을 쏴 대던 전쟁에서 1차 세계대전에 '참호'라는 것을 이용하게 된다. 단순히 땅을 파서 땅 밑에 들어가 있어서 경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참호는 '전쟁을 장기화' 시켰다. 양쪽 군대가 참호 안에 들어가 전쟁 물자를 쏟아 부으며 대치를 하는 건 보급을 얼마나 오래 할 수 있는지,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전쟁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근, 현대가 되면서 경제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그 중 '아편전쟁'은 매우 흥미로운 전쟁 중 하나였다. 그 이유는 바로 '동양의 패권'과 '서양의 패권'이 대립하는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정보가 서로 부족하던 시기에 동양의 얼마나 무능한지 몰랐던 서양이 마음 것 동양으로 시장을 확장 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방적기로 찍어내는 값싸고 질 좋은 모직물을 만들어내던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아프리카를 비롯해 여러 식민지를 두며 자신의 시장을 확대시켰다. 예나 지금이나 전 세계의 대부분의 시장으로 확대하더라도 가장 탐나는 시장은 인구대륙의 '중국 시장'이다.

영국은 중국 시장으로 야심차게 진출했다. 하지만, 중국은 영국의 생각보다 문화국이었으며 청나라의 신문물이 영국에 소개되면서 획기적인 돌풍이 불었다. 그 중, 책에서도 소개된 '차'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결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영국에서 은이 무자비하게 방출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영국인들은 '차'의 매력에 푹 빠졌다. 거의중독 수준으로 영국이 청나라의 '차'에 빠져들자. 영국은 더 강한 중독성이 있는 상품을 '청'에 소개했다. 이것을 발단으로 청과 동양이 힘 없이 무너져 내렸다.

한국과 일본,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사우디 현재 세계는 꾸준한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전쟁은 거시적이고 정치적인 것 같지만, 이제 우리 실생활에서 피부로 느낄 정도의 깊이로 다가온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건, 다만 정치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는 사실은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후추에서 은으로, 은에서 석유로 사람들이 원하고자 하는 욕망을 표출하는 대상에 따라 무역이 일어나고 경쟁이 일어났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후추나 은, 석유가 아닌 '데이터'와 '플랫폼'의 시대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이유도 중세를 움직이던 후추나 차도 아니고, 은도 아니다, 근대를 이끌던 석유도 아니다. 이제는 데이터이다. 하웨이와 5G 그리고 Tictoc이 끊임없이 대두되고 넷플릭스나 우버가 언급되는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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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10주년 개정증보판)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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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력 추천!!!! 오늘도 꽉찬별 하나 나왔네요~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월스트리트저널, 시카고트리뷴, 보스턴그로브 추천', '주요 언론사 대서특필' 화려한 수식어로 휘장을 둘러 맨 책을 한 권 집었다. '10주년 개정증보판'이라는 확실한 보증 수표를 '떡'하니 붙인 이 책은 얼핏 보이기에도 분량이 조금 있었다. 스마트 시대 우리가 더 똑똑해 지고 있느냐의 물음을 예비 독자에게 던지며, 우리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스스로 생각해보게 한다.

제목은 직관적이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책을 집으면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함축된 단 한 개의 명사가 책의 제목이 되는 경우가 많다. '코스모스', '사피엔스', '총균쇠' 등 하지만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다소 이름이 길다. 하지만 책의 중앙에는 책을 대표하는 단 한가지의 단어가 적혀 있다. 'The Shallows'

Shallow는 '피상적인', '얇은'의 뜻을 가지고 있는 형용사이다. 이를 복수명사로 사용함으로 저자는 여타 다른 책들 처럼 '깊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라는 뜻의 제목을 썼을 것이다. 다만 그 단어를 번역하는 과정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단 한가지의 단어를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팩트풀니스'나 '코스모스', '사피엔스'와 같은 명작을 볼 때 항상 드는 생각이다. 명작들은 보통 소주제에 아주 탄탄한 주장을 일관적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한 주제를 이끌어가면 그 주제에 대한 어떠한 판단 없이 다시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이런 소주제들은 결론적으로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근거가 되고 주장하는 바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며 그 모든 소주제들이 결국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 책도 그러한 전개 방식이다.

책은 최초 뇌가소성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뇌가소성'에 대해 저자는 우리의 뇌는 몰캉몰캉하니 유연하다고 말한다. '나이가 먹으니 머리가 굳었다.' 등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기방어적 거짓말에 대해 '그것이 거짓'이라고 명확한 근거를 갖다 댄다. '뇌가소성'은 성인의 뇌도 변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뇌는 신체적 성장이 멈추며 뇌의 성장도 멈춘다고 알려졌지만 기계에 익숙해진 우리가 기계와 같은 방식으로 뇌를 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꾸준하게 바뀐다. 우리가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지에 대하여 우리의 뇌는 맞춤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는 '니체의 타자기' 이와 엮어 나온다. 니체는 종이를 눌러쓰는 필기체 형식에서 타지기를 사용함으로써 글을 쓰는 방식을 바꾸었다. 이 집필도구의 방식은 니체의 문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체의 글은 짧게 끊어지는 문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동굴 벽화에 뭉뚱한 돌모서리를 긁어 표현하는 방식과 화려한 색도화지에 물감을 뿌려 그림을 그리는 두 방식은 모두 표현하는 자의 표현력을 바꿀 것이다. 쓰는 방식의 변화는 곧 읽는 방식의 변화이다. 우리는 그 밖에 시계, 지도 등과 같이 다양한 도구의 변화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모르는 길을 갈 때, 우리는 깊은 생각 없이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전방 100m나 신경쓴다. 깊은 사고를 하지 않는다면 기억이 감퇴한다.

나는 지금도 싱가포르 도심에 덜어 놓으면 대략의 구석 구석을 찾아갈 수 있다. 내가 싱가포르를 방문한 건, 두 세번이 고작이지만 싱가폴의 구석 구석을 알 수 있는 건, 시장 조사와 문화를 겪어보기 위해 두발로 직접 걸어봤기 때문이다. 나는 일반 관광객들이 결코가지 않을 듯한 싱가포르의 구석과 구석을 모두 다녔다. 단 2일의 거주기간이지만 지금도 걸어다니며 보았던 간판과 공사하는 도로까지 모두 기억에 남는다.

반면 5일이나 거주했던 베트남은 하나도 기억에 나지 않는다. 편리한 자동차를 이용하여 더 넓은 지역을 다녔고, 더 오래 있었으며 더 많은 것을 보았지만 일반 단체 관광 상품을 통해 구경했던 베트남에 대한 기억은 그닥많지 않다. 우리는 좋은 도구를 이용하여 더 효과적인 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빠른 자동차는 더 넓은 지역을 답사하게 해주고 더 시간을 아껴주며 걸어서 수 시간 가야할 거리를 수 분 만에 도착하게 해준다. 단, 그 구석 구석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

책에서 들었던 예시는 아니지만 나는 여행의 경험이 책의 내용과 상당수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10년 전 내가 처음 서울에 혼자 살게 되었을 때, 나는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대림을 거쳐 강남구 논현동까지 걸어왔던 적이 있었다. 그 단 하루의 기억으로 나는 서울의 위치에 대해 꽤나 빠삭해졌다. 물론 강북으로 넘어가서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도 눈을 감고 하나 하나 떠올리자면 버스를 타고 지나다녔던 기억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서울의 구석 구석을 묘사해 낼 수 있다.

나는 새로운 도시를 가게 되면 가장 먼저 그 도시 구석구석을 직접 걸어본다. 그러면 그 마을에 있는 편의점이나 공중화장실 쓰레기통 등의 위치가 파악이 된다. 그냥 택시를 타고 이곳 저것을 많이 다니는 것 보다 단 하루 날을 잡고 걷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기억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고생스러운 단 하루를 꼭 한 번 거친다.

조금은 불편한 방식인 책읽기는 동영상 보기보다 수고스럽다. 더 빠르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도구를 두고 왜 고리타분한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걷기와 차타기와 비슷하다. 책을 읽는 건, 걷는 훈련과도 같다. 누가 뭐래도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보다 걷는 행위가 더 소상한 기억을 도출해낸다. 하지만 체력이 없다면 걷지 못한다. 책을 읽는 행위는 자꾸 걸어줌으로써 체력을 단련시키는 일과도 같다.

책에서는 인터넷과 신문물이 뇌를 쇠퇴시킬 거라는 우려를 꾸준하게 보여준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우리는 자동차와 전철, 비행기 등의 좋은 문물을 만들지만, 결국 운동량이 부족하게 된다. 운동량이 부족해도 해외여행이 언제나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운동량의 부족은 결국 '기술이 도달하지 못한 부분'을 미지의 영역으로 둘 수 밖에 없게 한다. 보통 남들과 다른 지식들은 소수에게만 발견된다. 남들이 쉽게 가보지 않는 것에 대한 인지는 경쟁력으로 작동한다.

파리 에펠탑에서 손가락으로 'V'자 표시를 하고 사진 한 컷 찍고, 콜로세움에서 V를 표시하고 한 컷을 찍은 빠른 두 개의 기억보다, 에펠탑 근처에서 머물며 그곳 주변 사람들의 구매성향이나 문화, 억양,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 맛있는 음식집 등을 하나하나 천천히 겪은 이는 경쟁력에서 차이가 난다.

누구나 맘만 먹으면 전자의 기억을 얻을 수 있지만, 체력이 단련되지 않았다면, 후자의 기억은 얻을 수 없다. 이에 빠르고 편리한 인터넷은 우리의 뇌를 게으르게 만든다고 한다. 책을 읽지말고 소리를 통해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직접 전달 받는 것이 진짜 지식이라고 주장하던 소크라테스와 책의 중요성을 설파한 플라톤의 경쟁구도도 재밌었다. 결국은 소크라테스 보다 플라톤의 주장이 옳았지만 책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상당한 동의 또한 한다.

웅변가 소크라테스와 작가 플라톤의 싸움이라는 표현이 너무 재밌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상당의 도움이 됐던건 지난 책인 '책의 책'이다. 역시 이 책과 저 책의 묘한 고리가 생기며 서로 지식이 연결되어지는 것도 독서의 매력이다. 책의 책에서는 노예에게 책읽기나 필사를 시키는 일을 시키기도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결국 노예들은 필사하고 책읽기를 했지만, 그들의 주인보다 더 많은 지식을 쌓았을 가능성이 높다.

책에서는 대중매체가 이제는 인터넷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제 긴 스토리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대부분이 긴 이야기보다 짧게 편집이 가능한 이야기를 방송으로 볼 수가 있다. 요즘 유행하는 트롯열풍 또한 그렇다. 대중매체는 이제 유튜브에 '짤'로 올릴 수 있는 짧은 컨텐츠 재생산이 가능한 컨텐츠를 생산해 내기 위해 노력한다. 스토리보다는 즉흥적이고 짧은 영상과 음악이 사랑받는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길게 들어주는 집중력을 잃고 빠르게 여러 이야기를 훑어보는 산만한 뇌로 진화하고 있다. 고요함의 의미와 사고의 일부였던 깊이 읽기의 관행은 점차 사라지고 계속 감소하다. 이는 소수 엘리트만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모두가 편리하다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던 시대에 매일 아침마다 운동장 한 바퀴를 더 돌던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얻으러 돌아다닐 수 있는 체력이 생기는 것처럼 꾸준한 독서력이 얼마나 요즘 같은 시대에 더 중요한지 알려준다.

모두가 뛰어갈 때는 내가 더 전력으로 뛰어야 하지만 모두가 뒷 걸음칠 칠 때는 조용히 걷는 것 정도만으로도 커다란 진보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은 두 권의 책을 읽은 사람에게 지배 당한다.' -에브라헴 링컨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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