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특파원 중국문화를 말하다 - 베이징 특파원 13인이 발로 쓴 최신 중국 문화코드 52, 개정3판
홍순도 외 지음 / 서교출판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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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으로 특허 분류 체계를 통일 시킬 목적으로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협정'이 체결 되었다. 이는 1975년 10월 공표되었다. 이 전 1954년 12월 19일 유럽조약이 작성되고, 유럽의정서에 의해 특허의 국제 분류 됐다.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883년 공업소유권 보호를 위한 파리협약 됐다. 우리는 특허에 대한 저작권을 기준으로 그 국가가 세계에 기여한 바를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저작권을 허가 없이 사용하는 것을 불법이라고 단정하고, 그러한 국가에게 '짝퉁 제조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겨주었다.

우리가 말하는 '특허'는 서부(유럽)의 임의에 의해 결정되었다. 누구도 종이, 화약, 나침반, 마취약 등에 특허를 운운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특허법상 존속기간은 20년이다. 이 또한 서구의 일방적 규정이다. 저작권 보호기간 70년도 마찮가지다. 이 법들은 현재 상식이고 인류의 과학에 공헌한다고 한다. 이 모든 상식 또한 시대상의 상식일 뿐, 시대가 달라지면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

의미야 없지만, 산업 혁명 이전까지 동아시아는 서구 유럽보다 문명국에 속했다. 1820년 청나라 국내 총 생산은 전세계 생산의 1/3에 달했다. 중국 내륙을 기준으로 중국 역사를 설명하자면, 한나라나 명나라, 송나라, 원나라 , 명나라, 청나라 모두가 각 시대마다 세계 총생산의 1/3을 담당했다. 현재 미국의 GDP가 전 세계 GDP의 25%를 넘고 있지 못하니, 중국이라는 대륙국가의 저력이 보인다.

내가 말하는 '중국'은 '중화민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무너진 뒤 공산당과 국민당의 충돌에서 국민당이 이겼다고 하더라도 아마 중국은 다시 성장했을 것이다. '중국 대륙'이 갖고 있는 힘은 엄청난 인구이다. 인구는 생산력을 갖추며 동시에 대단한 소비력을 가진다. 우리는 이런 중국과 근접하기 때문에 엄청난 혜택을 누려왔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사책에서는 종주국인 중국에 '조공을 받쳤다'라는 식의 서술만 하고 있다. 하지만, 조공은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 관계에서 종국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정기적으로 중국에 사절을 파견하여 바치는 예물이었다. 이는 시대상 관행이고 질서였다. 다만, 이는 일방적 헌상이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조공에 대한 답례로 하사품을 반드시 보내야 했다. 만주, 몽고, 안남, 서장, 일본을 비롯하여, 유럽국가들인 영국과 프랑스 또한 19세기에 이르러 중국과 통상하기 위해서 조공을 받쳐야 했을 정도다. 중국이란 시장을 열기 위해 주변국은 조공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열어주는 시장의 혜택을 얻어갔다. 이런 시대 보편적인 질서 속에서 '조선'은 모범국이었다.

조공을 많이 보내던 국가는 더 많은 하사품을 받게 되었디. 이는 현대의 질서에서 수출과 수입으로 불린다. 우리는 '책봉'이라는 그 시대 질서에 충실하게 임하였다. 그 또한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다. 책봉은 동아시아 외교의 편입을 증명하고 국제적인 승인의 관계였고 이에 대해 종주국은 주변국으로 부터의 안전을 중국에게 보장받고 상호불가침의 외교적 약속을 보장받았다. 대통령이 취임하고 해외 순방하는 것과 빗슷하다. 특히 최우방국이라는 타이틀로 우리는 미국 대통령을 극진하게 대하고 있다.

현대 '한미 상호 방위 조약'과 '수출', '수입'이라는 단어만 살짝 바꿔 부르자면, 현대의 국제질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시기, 미국의 역할은 중국이였고, 소중화 역할을 하고 있던 국가는 조선이었다. 그 질서는 청나라가 빠르게 무너지며 바뀌었다. 그 뒤로 2세기 동안 패권대륙은 동양에서 서양으로 넘어갔다. 사실상 동서양의 문명 충돌이라고 볼 수 있는 '아편 전쟁'으로 전근대적 중국의 질서가 영국이라는 합리주의로 교체 되었다. 그로 중국이 세웠던 국제 질서는 서양에 의해 재편되었다.

불과 2세기 밖에 되지 않은 국제 질서가 영세적이라고 하기엔 인류 전체의 역사 속에서 너무 작다. 인류의 역사에서 동양은 항상 문명의 중심이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국력은 보통 군사력과 그 국가의 생산력에 비례하는데, 군사력과 생산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구'이다.

나는 중국이 언젠가 다시 그들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란 걸 믿고 있다. 내가 말하는 중국은 앞서 말한 시진핑 주석이 운영하고 있는 '중화민국'이 아니다. 청나라는 여진족의 나라고, 원나라는 몽고의 나라였듯. 그 대륙에 입성하게 되는 정권의 운영능력의 유무에 따라 중국은 엄청난 매력이 있는 나라다. 때문에 우리는 최소한 '중국'에 대해서 만큼은 잘 알고 있어야한다.

첫 중국인과 식사를 하게 된 것은 뉴질랜드에서 였다. 어쩌다보니 중국인들만 있는 모임에 나만 덜렁 참석하게 되었다. 하루종일 이곳 저곳을 끌려다니며, 엄청난 중국어를 듣고 나니, 내가 중국을 유학 온 건지 뉴질랜드를 유학 온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러다 중국식당을 들어갔다. 책에서 설명한대로 중국 식당은 대체로 둥근 원형을 갖고 있다. 그리고 서로 둘러 앉아 밥을 먹는다.

이것이 인상 깊은 건, 다름 아닌, 동학농민 운동 당시의 사발통문이 생각 났기 때문이다. 그 누가 먼저가 될 수도 누가 위와 아래가 될 수 없도록 사람의 이름을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쓰지 않고 둥근 사발 모양으로 감싸듯 쓴 글들은 그들이 철저히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 중 하나라는 인식을 주었다. 어쩌면 누구나 비슷한 거리에 눈을 맞추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게 한 이런 자리는 상석이 존재하는 우리나라 밥상 문화와 전혀 달랐다.

식탁을 휘~ 휘 돌려가며 먹을 만큼 떠먹는 음식 문화에서 오랫동안 차까지 마시며 한참을 이야기 하는 문화는 중국이 식사 문화와 술 문화가 얼마나 그들의 인맥 형성에 큰 도움이 되는지 알려주었다.

책은 '중국 문화'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전자책과 병행하며 읽었는데, 재판되는 과정 중 내용이 수정 되었는지, 전자책 내용이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생겨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은 중국의 뇌물에 관한 내용이다. 뇌물 규모가 '억' 단위만 되어도 매스컴에서 난리가 나는 우리나라와 달리, 그 규모가 기본 '조'단위가 되어지는 중국의 규모는 엄청나다.

공무원들이 공금으로 벌이는 술값으로만 매년 85조 원을 쓰는 나라라는 사실은 정말, 이 나라가 얼마나 큰 규모의 나라인지 실감도 나지 못하게 한다. 술값으로 85조라니.. 85조면 현대차(33조)+LG전자(14조)+포스코(17조)+SK(14조)를 더하고도 6조가 남는다.

세계 3대 투자자로 불려지는 '짐 로저스'는 앞으로의 미래가 아시아에 있다며, 싱가포르로 이민을 갔다. 자신들의 두 딸에게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배우게 하기 위해서 이다. 그는 앞으로 한반도가 가장 역동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그 시작을 통일로 보았다. 물론 현재로서는 다소 현실성 있어 보이지 않는 가정이긴 하지만, 중국가 국경을 맞닿게 되면, 우리는 중국, 미국, 일본으로 통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 이다.

명청교체기는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누르하치가 흥경성에서 후금을 건국한게 1616년이고, 후금과 명이 전쟁을 버린게 1619년, 그리고 조선에게 형제국의 고나계를 군신 관계로 바꾸길 요구한 것이 1636년이니, 사라므로 치자면 한 세대가 흘러간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의 등소평이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표방하다 1978년 개방 정책을 시행한 뒤로 40년 정도가 흘렀다. 이제 G2라는 자리로 올라가 미국의 옆구리까지 차올라와 있다. 언제 세상이 뒤집어 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순히 영어를 가르치는 일만으로 수 천억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고 수 천 명을 동시에 입실 시킬 수 있는 레스토랑이 많은 이 나라는 내가 유학 할 때, 조차 놀랍게 만들었다. 실제로 내가 유학하던 시기, 비행기 값은 200만원이 훨씬 넘는 금액이었다. 학교에서 일주일 짜리 단기 방학이 있었는데 당시 같이 유학하던 친구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일주일 짜리 단기 방학동안 부모님을 봬러 중국을 간다고 하던 그 친구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듯 말했다.

"니들은 왜 안가?"

"돈" 때문 이라는 것을 녀석은 생각도 못해 본듯 했다. 외국에 조금만 거주하면 이런 일은 쉽게 볼 수 있다. 참 별거 없던 녀석이 외국에서 뚜껑이 열리는 BMW 스포츠카를 타고 나타나는가 하면, 난데 없는 명품을 들고 다니는 일은 부지기수다. 대충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지출 수준은 대략 상식적으로 가늠이 되지만, 중국친구들의 지출 수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대다수가 그렇진 않고, 아주 극소수가 그러하였지만 말이다.

나는 제갈공명, 유비, 장비가 나오는 삼국지 소설을 좋아했다. 충의와 지략이 넘쳐나는 그 세상을 보고 중국에 호감을 가졌다. 하지만 유학 후 만나게 된 비매너적이고 시끄럽고 지저분하던 중국인들에 너무나 실망했다. 하지만 그렇게 중국에 색안경을 끼고 살던 어느날 갑자기 천지가 개벽한 듯 중국의 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명과 청이 교체 되던 그 마지막 순간까지 청을 오랑케라고 부르던 우리 선조들의 시선을 나는 갖고 있던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이 교체가 되던 되지 않던, 우리가 중국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은 몹시 불리한 일이 아닐까 싶다. 책은 400쪽에 가까웠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대략 만 2일 정도 걸려 읽었는데, 읽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책이다. 저자는 딱딱하게만 서술하지 않고 재밌는 필력을 자랑하며 글을 서술해간다. 그 이유로 딱딱할 뻔 했던 중국 문화에 대한 설명이 재밌고, 그의 경험은 마치 중국에서 경험한 기억을 훔치듯 알찬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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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지는 병, 조현병 -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닐 때
황상민 지음 / 들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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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는 비판적 사고를 갖는 것이 좋다. 아마 무조건적인 비난이거나 개인의 소견이나 생각이 많이 담겨져 있는 에세이가 아니라 이처럼 저자가 본인의 전공에 대해 썼을 때는 독자가 갖는 의문에 대해서도 좋게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옳다. 읽기만 해라'는 것은 '독재'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끔, 생각과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는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 또한 독서에서도 적용 가능한 사상이지 않을까 싶다.

읽은 책은 '황상민 교수'의 '만들어지는 병, 조현병'이다. 책을 읽으면서 일부는 공감을 하고 일부는 의문을 갖는다. 일단 책의 내용은 일관적이다. '정신과 전문의들도 정확한 진단이 어려운 '조현병'을 너무 쉽게 진단 내리고 무차별 적인 약물 치료만을 강요한다.'라는 통일된 주제를 고수한다.

일단, 조현병이란 기존에는 '정신분열증'으로 사용되던 병의 이름이다. 정신이 통일되지 못하고 일관적이지 못하여 환청과 망상을 비롯한 논리부재를 동반한다. 이 질환은 정신의학상 '생물학적 뇌의 이상'에 의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즉, 외부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충격만으로 발발 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적 특성과 생물학적인 뇌 이상이 그 근간에 있어야만 발병이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집 안에서 누군가가 이 병을 갖고 있다면, 가족 중 다른 누군가는 이 병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 병은 실제 그토록 사악한 병은 아니다. 종교에서는 이 병에 대해 '악령'이나 '사탄'이 영혼을 오염시킨다고 생각한다. 때문이 이 병을 종교적으로 해결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역사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해왔다. 또한 현대에서는 이 병을 '잠재적 범죄자' 혹은 '사이코 패스', '사회의 악' 쯤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이는 매스컴의 영향이 크다.

이 병은 타인에게 위험한 병이 아니다. 이 병의 위험성은 타인이 아니라, 병을 갖고 있는 당사자에게 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칼을 들고 있는 주방장이 나를 찌르지 않을까 생각하는 자기피해적 망상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위축하게 만들지만, 누구에게 피해를 주진 않는다. 다만, 증상이 악화되었을 때, 혹은 그 망상의 자기 논리가 확실해 졌을 때, 간혹 조현병 환자들은 자기 스스로를 보호 하기 위해, 행동을 할 때도 있다.

이렇게 일어나게 되는 강력범죄들은 매스컴에서 크게 보도가 된다. 하지만 실제로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을 비조현병 환자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스스로 고립되는 이 병이 사회로 뻗어나가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조현병 환자가 가진 망상보다 더 큰 망상이다.

그런 이유에서 조현병 환자가 곁에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니라, 어쩌면 더 안전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의 병증 중 조현병을 치료하기 힘들게 하는 병증이 있다. 그 것은 바로 '병식의 부재'이다. 자신이 조현병에 걸려 있다는 인지를 하는 사람은 이 병이 호전되기에 상당히 긍정적이다. 하지만 스스로 병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조현병 환자는 실제로 치료는 커녕 병원에 가는 일 조차 꺼린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현대 정신의학과에서는 조현병 치료는 현대 의학상 약물 치료 밖에 존재 하지 않는다. 사실 이 부분은 아직 미지의 우주를 모두 연구하지 못한 것 처럼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어찌됐건,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조현병에 치료방식은 약물치료 밖에 없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들이 먹는 약은 복잡하게 돌아가는 환자의 뇌의 활성을 떨어뜨려 강제 휴식을 취하게 한다. 그로인해 행동이 느려지고 말과 지각이 둔해지며 계속해서 졸리고 무기력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뇌의 기능 일부를 저하시키면, 일단 조현병 환자는 스스로 만들어내던 망상을 멈춘다. 이는 누군가와 말싸움을 하다가 낮잠을 자고 다시 만나면, 화가 누그러뜨려지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뇌를 쉬어주는 역할을 한다. 저자의 말처럼 조현병 진료를 시작하면 의사는 약 부터 처방한다. 그리고 기약없는 치료가 시작된다. 이 기간은 최초 3개월로 시작해도 6개월, 1년, 2년, 4년 이런 식으로 늘어난다.

환자들은 약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게 되고 기존 정신분열증의 병증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정신병자로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의사가 기약하는 이 병의 기한은 '평생'인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조현병 환자의 뇌를 쉬게 해야 하는 일이 눈에 보이는 증상을 경감시키기 때문이다.

예전에 뉴질랜드에서 사용하던 노트북은 30만원짜리 도시바 노트북이었다. 조금만 켜서 영상을 보아도 곧 폭발할 것 처럼 발열현상이 일어난다. 계속해서 발열현상과 소음이 심하던 노트북은 귀를 '윙~ 윙' 하게 하고 방을 뜨겁게 할 정도로 심하다. 이렇게 발열이 심하면 종착에는 뜨거워진 하드웨어 때문에 소프트웨어 상의 문제가 생겨난다. 켜고 있던 동영상이 심하게 끊기고 인터넷도 버벅거린다.

이처럼 소프트웨어가 문제가 생겼을 때, 다시 조금이라도 이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방법은 하나다. 노트북 뚜겅을 덮고 컴퓨터가 식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다시 몇 분을 사용하면 된다.

여기서 노트북의 뚜껑을 닫는 행위는 조현병 환자에게 약물 치료를 하는 것과 같다. 약물을 꾸준하게 넣어줌으로써 과열된 하드웨어를 식혀주는 일로 조현병 환자는 뇌가 편해진다. 하지만 일상을 잃는다. 컴퓨터의 목적은 가만이 있기 위함이 아니다. 사용되어지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컴퓨터가 뜨거워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뚜껑을 닫아두어야 하는 걸까?

컴퓨터 발열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정상적인 하드웨어를 갖고 있는 컴퓨터가 엄청난 고사양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돌릴 경우이다. 이 경우는 평범한 컴퓨터라고 하더라도 발열이 일어난다. 그러면 다시 컴퓨터를 끄고 조금 쉬고 나면 괜찮아진다. 고사양 소프트웨어를 다시 켜서 빨리 마무리한다면, 다시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지기 부터 하드웨어 상, 고사양 프로그램을 돌릴 수 없던 나의 도시바 컴퓨터 같은 경우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 그런 고사양 프로그램을 돌리지 않는 방법 뿐이다.

사실 조현병의 주 원인은 유전적 뇌의 기형에 외부적인 스트레스 때문이다. 유전적 영향만으로 조현병이 발병하지 않고, 스트레스만으로도 이 병은 발병하지 않는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들 중 외부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겪는다. 그렇다면 이 컴퓨터 뚜껑을 끝까지 열어보지 않듯, 10년이고 20년이고 약물 치료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컴퓨터는 사용되어지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람도 마찮가지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정신 스트레스의 임계치를 인지하고 그 이상을 받지 않도록 잘 유지해 주어야한다. 스트레스를 내려 놓기 위해서, 명상이나 기도는 확실히 효과적이다. 하지만 태어나기를 감당 할 수 있는 스테체스의 범위가 작은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스트레스 임계치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도 고사양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다고 착각한다면, 이 병은 결코 낫지 않는다.

자신이 이 병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건, 가혹하지만 그들이 가져야할 숙명과도 같다. '고사양 프로그램'을 돌려야 꼭 좋은 컴퓨터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데스크탑보다 훨씬 떨어지는 성능의 스마트폰을 더욱 좋아한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더 많은 업무를 하고, 더 많이 사용한다. 조현병은 그렇다. 내가 감내하지 못할 일들에 대해 내려놔야한다. 주변 스트레스로부터 스스로 해방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한다. 그런 방법은 내부에서 진행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 하지만 외부에서도 가능하다. 저자와 같이 심리학자의 상담이나 교회나 절에서 기도와 수양으로도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

인터넷에 조현병으로 검색을 하면, 지금도 '영적치유'를 하고 있는 많은 교인들이 보인다. 그 방식은 사실 명쾌하기는 하다. 그들이 마음이 그것으로 안정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믿음을 곡해 시킬 여지가 충분히 있다. 때문에 조현병 환자가 종교에 빠지는 일은 상당히 무섭다. 믿음이라는 또다른 논리가 다른 망상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모쪼록 나는 생각한다. 조현병을 치료하는 방식에 현대의학을 절대 신뢰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교회나 절 혹은 성당에서 치료하는 방식은 더욱 위험하며, 가장 위험한 것은 스스로 그 병에 대한 인지가 있느냐다. 누군가 가까운 사람으로 부터 진자한 '조현병' 진단 권유를 받는다면 무서워하거나 치욕스러워 할 필요 없다. 다만 남들에 비해 스트레스 임계치가 낮구나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된다.

우리나라에는 조현병 환자가 50만 명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 100명 중 한 명은 조현병을 앓고 있다. 이는 부끄러운 병도 아니고, 위험한 병도 아니다. 스스로 그 병에 대한 병식만 있다면 불치의 영역도 아니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조현병에 대한 나빴던 인식을 바꾸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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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인생론 메이트북스 클래식 1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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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19세기를 대표하는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다. 글을 가지고 하는 예술 행위가인 '작가'라는 그의 직업에서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글'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막연한 대작가의 선택력이 궁금했다. 그가 취급하고 선별했던 여러 글에는 동서양을 막론한 글들이 많다. 30대에 도박으로 부모의 유산을 모두 날린 그는 방탕한 생활에 빠져 빚을 많이 지고 살았다. 그는 성욕과 도박 등의 유혹에 너무 쉽게 현혹되었으며, 쾌락과 그 뒤에 찾아오는 환멸감의 윤회를 꾸준하게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질투심이 많고 남들의 존경과 세상의 찬사를 즐기는 세속적이고도 세속적인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차분한 '작가'라는 삶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그는 어느날 불연 듯, 깨닳음을 얻은 성인들처럼 인생의 무상함을 깨닳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하 탐구하고 고민했다. '작가'라는 타이틀은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일 뿐이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사상가의 면모가 있는 그는 다른 현인들처럼 인생의 '무상'함과 허망함을 깨닫는다. 이는 성경과 불경에서 또한 말하는 '인생'의 어느 부분을 닮아 있다.

그는 노년에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염세적인 책을 쓰기도 한다. 사실 평온한 인새을 살았던 사람은 인생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는다.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고 위 부터 아래까지 모두 경험해 본 이에게 우리는 물을게 많다.

그의 스크랩 북에는 어떤 글들이 스크랩되어 있는가. 나는 군대 시절 부터 항상 수첩에 글을 쓰곤 했다. 그 수첩에는 내 생각만 적는다기 보다 책을 읽다가 만나게 된 좋은 구절이나 얼핏 들었던 나를 자극하는 일들 혹은 말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가끔 그것을 꺼내 보다보면, 그 시절 내가 어떤 글과 어떤 말들에 자극 받고 살았는지 느껴질 때가 있다. 다소 지금은 공감하지 못하는 글들도 어김없이 적혀있는 그 수첩은 하루 하루 변해가는 감정에 따라 어떤 날은 뼈저리가 공감되고 어떤 날은 도저히 공감이 되지 않았다.

원래 삶이란 그런듯하다. 오늘 읽은 책은 감동적인 책이 내일은 무덤덤 할 때가 있고 방금 전에 듣던 감동적인 음악이 한시간 뒤에는 무덤덤 해질 때가 있다. 작년에 생각없이 부르던 노래가 올해는 뼛속을 울리는 노래가 되기도 한다. 멈춰버린 시계 바늘이어야 말로 하루에 두 번은 정확하게 맞는다던가.

가끔은 그저 그 자리에서 묵묵히 지키는 고전에서 우리는 뼛속까지 공감하기도 한다. 이 책은 한 번 훑고 넘어가기에는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꺼내보고도 다시 꺼내보다보면, 내 인생 어느 부분에서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그 시기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세속적이고도 세속적인 오늘날 현대인들이 그의 사상에서 배울 점이 무엇이 있는지 읽어 볼 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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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워도 괜찮아 - 다른 사람 시선 신경쓰지 말아요
오인환 지음 / 마음세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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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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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무궁화 - 국가상징 바로잡기
강효백 지음, 김원웅 감수 / 이담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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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는 감귤보관 창고가 많았다. 구멍난 현무암 돌덩어리가 더덕 더덕 붙어있는 흙벽의 제주 전통 건물 양식대로, 현무암 돌덩어리다 더덕 더덕 붙어있는 시멘트벽으로 만들어진 감귤보관 창고는 어디서든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2000년 대가 넘어가면서, 제주의 전통산업인 1차 산업의 규모가 3차 산업보다 작아지면서 제주는 3차 산업이 1차 산업이 배해 7배가 큰 산업이 되었다. 감귤을 보관하던 창고는 조금씩 제 역할을 잃고, 빈 공간이 되어졌다. 제주 이곳 저곳에서 놀고 있는 감귤보관창고가 생겨났지만 시간이 지나자, 제주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그중 제주다운 카페로 이름이 많이 나는 카페들은 대부분이 옛 감귤보관창고를 개조한 카페들이다.

농지와 창고 외에는 특별한 자본이 없는 제주도에 이런 카페가 들어선 이유는 특별한 리모델링 없이, 쉽게 이전 창고의 분위기를 살리며 커피를 팔 수 있는 것이었다. 카페들은 감귤 상자나 농장 주변에 있는 살아있는 감귤 나무들을 그대로 두면서 카페를 활성화 시켰다. 제주의 창고가 커다란 리모델링이나 재축조없이 값싸고 빠른 시간에 카페로 바뀔 수 있었다. 타지방의 세련된 카페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지만, 금전적으로도 저렴하고 빠르게 변화했던 제주는 3차 산업, 즉 관광산업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일본이 나간 자리. 일본이 36년 간, 통치한 자리를 재빠르게 또한 값싸게 새출발하는 장소로 만들어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해방당시 대한민국의 GDP는 2800달러로 세계적인 빈국이었으며, 겨우 국가의 틀을 형성해야 할 시기 2년 만에 세계대전 급 대규모 전쟁이 발발했다. 그리고 1953년 휴전 당시 대한민국의 GDP는 67달러로 세계 최빈국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비어있는 땅에 최대한 빨리 기틀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주의 감귤 창고처럼, 기존에 있던 것들을 긁어 보아 돈벌이 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일제의 잔재인지, 무엇이 한민족 고유의 문화이고 전통인지 구별할 능력도 여유도 없는 시대에 대한민국은 유신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 30년 간, 유신정부와 군사 독재 등의 정권이 들어서고 3S를 비롯한 우민화 정책과 공포정치가 시작했다. 누구도 정부가 하는 일에 건전한 비판이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날조의 역사가 덮히고 쌓이고, 다시 덮히며 우리는 근간을 잃어버렸다. 비단 일본만 욕할 일은 아니다. 전에 사용하던 창고 주인의 흔적을 모두 지우지 못한 건, 전 주인만 탓할 일은 아니다. 우리도 우리만의 사정이 분명하게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무궁화가 국가의 꽃이 아니다'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도 어린시절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살면서 무궁화를 실제 만나 본 적이 거의 없는 세월을 살면서, 학교에서는 무궁화가 삼천리 금수강산에 피어있는 우리나라의 꽃이라고 했다.

TV가 화면조정시간으로 넘어가기 전, 나오는 애국가는 태극기가 경건하게 펄럭이며 무궁화 꽃이 오버랩되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나는 무궁화가 왜 우리나라 꽃인지에 대해 궁금증을 해결할 틈도 없이, 정신 없이 바쁘게 흘러갔던 우리나라의 역사 처럼, 중고등 입시의 불구덩이로 던저졌다.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인가? 아닌가를 고민해 볼 겨를도 없이, 애국가 4절을 암기하고 시험 봐야 했으며, 굳이 대한민국 애국가에 '하느님'이라는 용어를 써야 했는가도 의문이었다. (*하느님은 하나님과는 다르다는게 주장. 하지만 문맥상, 유일신으로 보여지는 하느님 또한 또다른 의미의 하나님이라고 생각)

뭐가 맞는지 당쵀 알 수 없는 것들 속에서, 우리나라는 국장, 최고훈장, 대통령 휘장,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뱃지, 법원 휘장, 경찰관과 교도관의 계급장 등 거의 모든 국가 상장에 무궁화를 사용한다. 심지어 애국가에도 들어간다.

선생님은 학창시절, 일본 놈들이 대한민국의 정기를 끊기 위해, 우리 땅 이곳 저곳에 말뚝을 쳐 박아 두었다고 했다. 사실 일본인들이 박았던 건, 우리의 정기를 끊기 위한 말뚝이 아니라, 근대적 토지 측량을 위한 측량용 말뚝이었다. 이는 현대에도 토지 측량을 위해 박는다.

일본 놈들은 대한민국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악마같은 짓들만 하고 갔다고 철저하게 교육 받고 자랐다. 성인이 되고 다시 생각해봤다. 국가 운영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 아무런 이득도 요하지 않고 불필요한 인력과 재산을 사용하여 악의적인 악마 짓만 남길 이유가 있을까?

사실, 우리가 '일본놈'들이 한 짓이라고 하는 대부분은 1930년 대의 '민족말살정책'으로 불리는 정치의 정책 중 하나였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6년 뒤인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다시 4년 뒤인 1941년 최대실수를 저지른다. 중국과의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뜻하지 않게,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벌이며 전선이 이중화 된 것이다. 이런 부담은 국력의 소진으로 번져갔다. 그들은 일본의 인력과 자원만으로 전쟁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한국을 전쟁물자의 보급창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또한 '병참기지화'정책을 펴가면서 '내선일체' 정책으로 통치 방식을 바꾼다.

즉, 조선과 일본은 하나의 나라라는 뜻이다. 그로 인해, 창씨개명이나, 강제 징용, 신사참배 강요, 조선어 교육 폐지와 일본어 상용 등의 정책들이 줄지어 행해졌다. 그로 일본은 자원 활용이 극대화 되기를 고대했다. 일본이 행했던 악행들에 대해 그것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근간에는 없애지 못한 잔재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일' 감정만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바꿔 가야 한다. 제주 감귤창고들은 이제 남아져 있던 감귤창고의 흔적을 아예 지워 버리거나 특색을 살리거나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그 소품과 아이템들이 유래는 제대로 한다. 감귤창고였다는 역사 마저 부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일본의 잔재라 하더라도 남겨야할 건 남기고, 뿌리채 뽑아야 할 것들은 뽑아야 한다.

특히 애국가와 무궁화는 일장기 위해 파란물감과 검은 물감을 덧칠해 태극기를 만든 것처럼 그저 임시적 충전재일 뿐이다. 충전재는 광석이나 석탄을 캔 공간이 무너지지 않토록 때우는 땜질용 재료이고 거대 공사가 완료되면 임시로 때웠던 재료를 치우던 다시 깔끔하게 정리하던 후속 정리가 필요하다.

학명이 Grus Japonesis라는 학이 500원에 올라간 건, 100원에 들어있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이제 대한민국은 '벌만큼 버는' 나라가 됐다. 어쩔 수 없이 기존 소품을 이용해야 했던 감귤창고가 그 특색으로 여유를 찾았다면 최소한 그냥 돈벌이로 활용했던 이전 잔재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라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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