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특파원 중국문화를 말하다 - 베이징 특파원 13인이 발로 쓴 최신 중국 문화코드 52, 개정3판
홍순도 외 지음 / 서교출판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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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으로 특허 분류 체계를 통일 시킬 목적으로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협정'이 체결 되었다. 이는 1975년 10월 공표되었다. 이 전 1954년 12월 19일 유럽조약이 작성되고, 유럽의정서에 의해 특허의 국제 분류 됐다.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883년 공업소유권 보호를 위한 파리협약 됐다. 우리는 특허에 대한 저작권을 기준으로 그 국가가 세계에 기여한 바를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저작권을 허가 없이 사용하는 것을 불법이라고 단정하고, 그러한 국가에게 '짝퉁 제조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겨주었다.

우리가 말하는 '특허'는 서부(유럽)의 임의에 의해 결정되었다. 누구도 종이, 화약, 나침반, 마취약 등에 특허를 운운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특허법상 존속기간은 20년이다. 이 또한 서구의 일방적 규정이다. 저작권 보호기간 70년도 마찮가지다. 이 법들은 현재 상식이고 인류의 과학에 공헌한다고 한다. 이 모든 상식 또한 시대상의 상식일 뿐, 시대가 달라지면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

의미야 없지만, 산업 혁명 이전까지 동아시아는 서구 유럽보다 문명국에 속했다. 1820년 청나라 국내 총 생산은 전세계 생산의 1/3에 달했다. 중국 내륙을 기준으로 중국 역사를 설명하자면, 한나라나 명나라, 송나라, 원나라 , 명나라, 청나라 모두가 각 시대마다 세계 총생산의 1/3을 담당했다. 현재 미국의 GDP가 전 세계 GDP의 25%를 넘고 있지 못하니, 중국이라는 대륙국가의 저력이 보인다.

내가 말하는 '중국'은 '중화민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무너진 뒤 공산당과 국민당의 충돌에서 국민당이 이겼다고 하더라도 아마 중국은 다시 성장했을 것이다. '중국 대륙'이 갖고 있는 힘은 엄청난 인구이다. 인구는 생산력을 갖추며 동시에 대단한 소비력을 가진다. 우리는 이런 중국과 근접하기 때문에 엄청난 혜택을 누려왔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사책에서는 종주국인 중국에 '조공을 받쳤다'라는 식의 서술만 하고 있다. 하지만, 조공은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 관계에서 종국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정기적으로 중국에 사절을 파견하여 바치는 예물이었다. 이는 시대상 관행이고 질서였다. 다만, 이는 일방적 헌상이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조공에 대한 답례로 하사품을 반드시 보내야 했다. 만주, 몽고, 안남, 서장, 일본을 비롯하여, 유럽국가들인 영국과 프랑스 또한 19세기에 이르러 중국과 통상하기 위해서 조공을 받쳐야 했을 정도다. 중국이란 시장을 열기 위해 주변국은 조공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열어주는 시장의 혜택을 얻어갔다. 이런 시대 보편적인 질서 속에서 '조선'은 모범국이었다.

조공을 많이 보내던 국가는 더 많은 하사품을 받게 되었디. 이는 현대의 질서에서 수출과 수입으로 불린다. 우리는 '책봉'이라는 그 시대 질서에 충실하게 임하였다. 그 또한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다. 책봉은 동아시아 외교의 편입을 증명하고 국제적인 승인의 관계였고 이에 대해 종주국은 주변국으로 부터의 안전을 중국에게 보장받고 상호불가침의 외교적 약속을 보장받았다. 대통령이 취임하고 해외 순방하는 것과 빗슷하다. 특히 최우방국이라는 타이틀로 우리는 미국 대통령을 극진하게 대하고 있다.

현대 '한미 상호 방위 조약'과 '수출', '수입'이라는 단어만 살짝 바꿔 부르자면, 현대의 국제질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시기, 미국의 역할은 중국이였고, 소중화 역할을 하고 있던 국가는 조선이었다. 그 질서는 청나라가 빠르게 무너지며 바뀌었다. 그 뒤로 2세기 동안 패권대륙은 동양에서 서양으로 넘어갔다. 사실상 동서양의 문명 충돌이라고 볼 수 있는 '아편 전쟁'으로 전근대적 중국의 질서가 영국이라는 합리주의로 교체 되었다. 그로 중국이 세웠던 국제 질서는 서양에 의해 재편되었다.

불과 2세기 밖에 되지 않은 국제 질서가 영세적이라고 하기엔 인류 전체의 역사 속에서 너무 작다. 인류의 역사에서 동양은 항상 문명의 중심이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국력은 보통 군사력과 그 국가의 생산력에 비례하는데, 군사력과 생산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구'이다.

나는 중국이 언젠가 다시 그들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란 걸 믿고 있다. 내가 말하는 중국은 앞서 말한 시진핑 주석이 운영하고 있는 '중화민국'이 아니다. 청나라는 여진족의 나라고, 원나라는 몽고의 나라였듯. 그 대륙에 입성하게 되는 정권의 운영능력의 유무에 따라 중국은 엄청난 매력이 있는 나라다. 때문에 우리는 최소한 '중국'에 대해서 만큼은 잘 알고 있어야한다.

첫 중국인과 식사를 하게 된 것은 뉴질랜드에서 였다. 어쩌다보니 중국인들만 있는 모임에 나만 덜렁 참석하게 되었다. 하루종일 이곳 저곳을 끌려다니며, 엄청난 중국어를 듣고 나니, 내가 중국을 유학 온 건지 뉴질랜드를 유학 온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러다 중국식당을 들어갔다. 책에서 설명한대로 중국 식당은 대체로 둥근 원형을 갖고 있다. 그리고 서로 둘러 앉아 밥을 먹는다.

이것이 인상 깊은 건, 다름 아닌, 동학농민 운동 당시의 사발통문이 생각 났기 때문이다. 그 누가 먼저가 될 수도 누가 위와 아래가 될 수 없도록 사람의 이름을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쓰지 않고 둥근 사발 모양으로 감싸듯 쓴 글들은 그들이 철저히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 중 하나라는 인식을 주었다. 어쩌면 누구나 비슷한 거리에 눈을 맞추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게 한 이런 자리는 상석이 존재하는 우리나라 밥상 문화와 전혀 달랐다.

식탁을 휘~ 휘 돌려가며 먹을 만큼 떠먹는 음식 문화에서 오랫동안 차까지 마시며 한참을 이야기 하는 문화는 중국이 식사 문화와 술 문화가 얼마나 그들의 인맥 형성에 큰 도움이 되는지 알려주었다.

책은 '중국 문화'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전자책과 병행하며 읽었는데, 재판되는 과정 중 내용이 수정 되었는지, 전자책 내용이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생겨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은 중국의 뇌물에 관한 내용이다. 뇌물 규모가 '억' 단위만 되어도 매스컴에서 난리가 나는 우리나라와 달리, 그 규모가 기본 '조'단위가 되어지는 중국의 규모는 엄청나다.

공무원들이 공금으로 벌이는 술값으로만 매년 85조 원을 쓰는 나라라는 사실은 정말, 이 나라가 얼마나 큰 규모의 나라인지 실감도 나지 못하게 한다. 술값으로 85조라니.. 85조면 현대차(33조)+LG전자(14조)+포스코(17조)+SK(14조)를 더하고도 6조가 남는다.

세계 3대 투자자로 불려지는 '짐 로저스'는 앞으로의 미래가 아시아에 있다며, 싱가포르로 이민을 갔다. 자신들의 두 딸에게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배우게 하기 위해서 이다. 그는 앞으로 한반도가 가장 역동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그 시작을 통일로 보았다. 물론 현재로서는 다소 현실성 있어 보이지 않는 가정이긴 하지만, 중국가 국경을 맞닿게 되면, 우리는 중국, 미국, 일본으로 통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 이다.

명청교체기는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누르하치가 흥경성에서 후금을 건국한게 1616년이고, 후금과 명이 전쟁을 버린게 1619년, 그리고 조선에게 형제국의 고나계를 군신 관계로 바꾸길 요구한 것이 1636년이니, 사라므로 치자면 한 세대가 흘러간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의 등소평이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표방하다 1978년 개방 정책을 시행한 뒤로 40년 정도가 흘렀다. 이제 G2라는 자리로 올라가 미국의 옆구리까지 차올라와 있다. 언제 세상이 뒤집어 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순히 영어를 가르치는 일만으로 수 천억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고 수 천 명을 동시에 입실 시킬 수 있는 레스토랑이 많은 이 나라는 내가 유학 할 때, 조차 놀랍게 만들었다. 실제로 내가 유학하던 시기, 비행기 값은 200만원이 훨씬 넘는 금액이었다. 학교에서 일주일 짜리 단기 방학이 있었는데 당시 같이 유학하던 친구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일주일 짜리 단기 방학동안 부모님을 봬러 중국을 간다고 하던 그 친구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듯 말했다.

"니들은 왜 안가?"

"돈" 때문 이라는 것을 녀석은 생각도 못해 본듯 했다. 외국에 조금만 거주하면 이런 일은 쉽게 볼 수 있다. 참 별거 없던 녀석이 외국에서 뚜껑이 열리는 BMW 스포츠카를 타고 나타나는가 하면, 난데 없는 명품을 들고 다니는 일은 부지기수다. 대충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지출 수준은 대략 상식적으로 가늠이 되지만, 중국친구들의 지출 수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대다수가 그렇진 않고, 아주 극소수가 그러하였지만 말이다.

나는 제갈공명, 유비, 장비가 나오는 삼국지 소설을 좋아했다. 충의와 지략이 넘쳐나는 그 세상을 보고 중국에 호감을 가졌다. 하지만 유학 후 만나게 된 비매너적이고 시끄럽고 지저분하던 중국인들에 너무나 실망했다. 하지만 그렇게 중국에 색안경을 끼고 살던 어느날 갑자기 천지가 개벽한 듯 중국의 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명과 청이 교체 되던 그 마지막 순간까지 청을 오랑케라고 부르던 우리 선조들의 시선을 나는 갖고 있던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이 교체가 되던 되지 않던, 우리가 중국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은 몹시 불리한 일이 아닐까 싶다. 책은 400쪽에 가까웠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대략 만 2일 정도 걸려 읽었는데, 읽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책이다. 저자는 딱딱하게만 서술하지 않고 재밌는 필력을 자랑하며 글을 서술해간다. 그 이유로 딱딱할 뻔 했던 중국 문화에 대한 설명이 재밌고, 그의 경험은 마치 중국에서 경험한 기억을 훔치듯 알찬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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