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무궁화 - 국가상징 바로잡기
강효백 지음, 김원웅 감수 / 이담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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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는 감귤보관 창고가 많았다. 구멍난 현무암 돌덩어리가 더덕 더덕 붙어있는 흙벽의 제주 전통 건물 양식대로, 현무암 돌덩어리다 더덕 더덕 붙어있는 시멘트벽으로 만들어진 감귤보관 창고는 어디서든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2000년 대가 넘어가면서, 제주의 전통산업인 1차 산업의 규모가 3차 산업보다 작아지면서 제주는 3차 산업이 1차 산업이 배해 7배가 큰 산업이 되었다. 감귤을 보관하던 창고는 조금씩 제 역할을 잃고, 빈 공간이 되어졌다. 제주 이곳 저곳에서 놀고 있는 감귤보관창고가 생겨났지만 시간이 지나자, 제주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그중 제주다운 카페로 이름이 많이 나는 카페들은 대부분이 옛 감귤보관창고를 개조한 카페들이다.

농지와 창고 외에는 특별한 자본이 없는 제주도에 이런 카페가 들어선 이유는 특별한 리모델링 없이, 쉽게 이전 창고의 분위기를 살리며 커피를 팔 수 있는 것이었다. 카페들은 감귤 상자나 농장 주변에 있는 살아있는 감귤 나무들을 그대로 두면서 카페를 활성화 시켰다. 제주의 창고가 커다란 리모델링이나 재축조없이 값싸고 빠른 시간에 카페로 바뀔 수 있었다. 타지방의 세련된 카페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지만, 금전적으로도 저렴하고 빠르게 변화했던 제주는 3차 산업, 즉 관광산업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일본이 나간 자리. 일본이 36년 간, 통치한 자리를 재빠르게 또한 값싸게 새출발하는 장소로 만들어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해방당시 대한민국의 GDP는 2800달러로 세계적인 빈국이었으며, 겨우 국가의 틀을 형성해야 할 시기 2년 만에 세계대전 급 대규모 전쟁이 발발했다. 그리고 1953년 휴전 당시 대한민국의 GDP는 67달러로 세계 최빈국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비어있는 땅에 최대한 빨리 기틀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주의 감귤 창고처럼, 기존에 있던 것들을 긁어 보아 돈벌이 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일제의 잔재인지, 무엇이 한민족 고유의 문화이고 전통인지 구별할 능력도 여유도 없는 시대에 대한민국은 유신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 30년 간, 유신정부와 군사 독재 등의 정권이 들어서고 3S를 비롯한 우민화 정책과 공포정치가 시작했다. 누구도 정부가 하는 일에 건전한 비판이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날조의 역사가 덮히고 쌓이고, 다시 덮히며 우리는 근간을 잃어버렸다. 비단 일본만 욕할 일은 아니다. 전에 사용하던 창고 주인의 흔적을 모두 지우지 못한 건, 전 주인만 탓할 일은 아니다. 우리도 우리만의 사정이 분명하게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무궁화가 국가의 꽃이 아니다'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도 어린시절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살면서 무궁화를 실제 만나 본 적이 거의 없는 세월을 살면서, 학교에서는 무궁화가 삼천리 금수강산에 피어있는 우리나라의 꽃이라고 했다.

TV가 화면조정시간으로 넘어가기 전, 나오는 애국가는 태극기가 경건하게 펄럭이며 무궁화 꽃이 오버랩되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나는 무궁화가 왜 우리나라 꽃인지에 대해 궁금증을 해결할 틈도 없이, 정신 없이 바쁘게 흘러갔던 우리나라의 역사 처럼, 중고등 입시의 불구덩이로 던저졌다.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인가? 아닌가를 고민해 볼 겨를도 없이, 애국가 4절을 암기하고 시험 봐야 했으며, 굳이 대한민국 애국가에 '하느님'이라는 용어를 써야 했는가도 의문이었다. (*하느님은 하나님과는 다르다는게 주장. 하지만 문맥상, 유일신으로 보여지는 하느님 또한 또다른 의미의 하나님이라고 생각)

뭐가 맞는지 당쵀 알 수 없는 것들 속에서, 우리나라는 국장, 최고훈장, 대통령 휘장,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뱃지, 법원 휘장, 경찰관과 교도관의 계급장 등 거의 모든 국가 상장에 무궁화를 사용한다. 심지어 애국가에도 들어간다.

선생님은 학창시절, 일본 놈들이 대한민국의 정기를 끊기 위해, 우리 땅 이곳 저곳에 말뚝을 쳐 박아 두었다고 했다. 사실 일본인들이 박았던 건, 우리의 정기를 끊기 위한 말뚝이 아니라, 근대적 토지 측량을 위한 측량용 말뚝이었다. 이는 현대에도 토지 측량을 위해 박는다.

일본 놈들은 대한민국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악마같은 짓들만 하고 갔다고 철저하게 교육 받고 자랐다. 성인이 되고 다시 생각해봤다. 국가 운영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 아무런 이득도 요하지 않고 불필요한 인력과 재산을 사용하여 악의적인 악마 짓만 남길 이유가 있을까?

사실, 우리가 '일본놈'들이 한 짓이라고 하는 대부분은 1930년 대의 '민족말살정책'으로 불리는 정치의 정책 중 하나였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6년 뒤인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다시 4년 뒤인 1941년 최대실수를 저지른다. 중국과의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뜻하지 않게,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벌이며 전선이 이중화 된 것이다. 이런 부담은 국력의 소진으로 번져갔다. 그들은 일본의 인력과 자원만으로 전쟁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한국을 전쟁물자의 보급창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또한 '병참기지화'정책을 펴가면서 '내선일체' 정책으로 통치 방식을 바꾼다.

즉, 조선과 일본은 하나의 나라라는 뜻이다. 그로 인해, 창씨개명이나, 강제 징용, 신사참배 강요, 조선어 교육 폐지와 일본어 상용 등의 정책들이 줄지어 행해졌다. 그로 일본은 자원 활용이 극대화 되기를 고대했다. 일본이 행했던 악행들에 대해 그것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근간에는 없애지 못한 잔재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일' 감정만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바꿔 가야 한다. 제주 감귤창고들은 이제 남아져 있던 감귤창고의 흔적을 아예 지워 버리거나 특색을 살리거나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그 소품과 아이템들이 유래는 제대로 한다. 감귤창고였다는 역사 마저 부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일본의 잔재라 하더라도 남겨야할 건 남기고, 뿌리채 뽑아야 할 것들은 뽑아야 한다.

특히 애국가와 무궁화는 일장기 위해 파란물감과 검은 물감을 덧칠해 태극기를 만든 것처럼 그저 임시적 충전재일 뿐이다. 충전재는 광석이나 석탄을 캔 공간이 무너지지 않토록 때우는 땜질용 재료이고 거대 공사가 완료되면 임시로 때웠던 재료를 치우던 다시 깔끔하게 정리하던 후속 정리가 필요하다.

학명이 Grus Japonesis라는 학이 500원에 올라간 건, 100원에 들어있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이제 대한민국은 '벌만큼 버는' 나라가 됐다. 어쩔 수 없이 기존 소품을 이용해야 했던 감귤창고가 그 특색으로 여유를 찾았다면 최소한 그냥 돈벌이로 활용했던 이전 잔재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라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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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의 비밀 연대 - 위기의 시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향한 새로운 시선
페터 볼레벤 지음, 강영옥 옮김, 남효창 감수 / 더숲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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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진 능력은 날카로운 이성 밖에 없다는 작가의 말이 인간을 대표한 자소서의 서문 같다. 우리의 기능은 실제로 어떤가? 우리는 우리가 하등하다 여기는 여타 다른 동물 혹은 식물에 비해 그닥 좋은 능력이 없는 듯하다.

우리가 잘 아는 LED 액정 화면에 코를 박고 들여다 보면 청색, 녹색, 적색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니터나 TV 화면이 뿜어내는 다양한 색을 모조리 한 점이 구현해 낼 수는 없을 터이다. 나처럼 기술에 문외한 이라면 청색과 녹색, 적색의 세가지 색상만 있으면 모든 색을 재현 할 수 있기 때문에 LED가 세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있다. 이중 인간이 녹색과 적색을 구분 할 수 있는 이유는 원추세포가 있기 때문다. 인간이 이런 능력을 발달했기 때문에 숲은 푸르게 보인다.

책에는 청색과 녹색을 구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능력에 대해 '문화'라는 기준점이 영향을 줬을 거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상록수도 푸르고 낙동강도 푸르다. 이처럼 녹색과 청색을 구분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만은 아닌듯 하다. 문화가 먼저인지 감각이 먼저인지 나 스스로는 불명확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와 같이 청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않는 나라가 많다는 걸 봐서, 청색과 녹색의 계열에는 어떤 접점이 있는 건 분명한 듯 하다. 직립보행이 인간의 후각 발달에 불리한 조건이었다는 사실도 멋진 추론이다. 땅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을 일이 없는 인간의 후각은 날이 갈수록 퇴화되어졌다. 생각해보니, 후각에 집중하는 일이 일상에서 많지는 않다.

인간의 감각을 설명하는 글 중에 '맛'에 관련해서는 인간이 인공재배를 시작한 이후 과일이나 채소의 맛이 점점 달아지고 쓴맛이 나는 물질이 줄어들고 있다는 견해를 봤다. 우리 농장은 '하우스 시설' 농장이다. 때문에 나무에게 들어갈 강수량을 조절 할 수 있고 영양분도 조절 가능하며 토양도 가꿀 수 있다. 적절한 시기에 하우스 뚜껑을 개방하면서 좋은 햇볕을 맞출 수도 있다. 이렇게 재배하는 걸, 우리는 '농법'이라고 부르지만 글에서 인간이 쓴맛을 없애고 인간의 감각을 속인다는 대목을 보니, 어쩐지 기분이 묘~하다. 사실 인간과 자연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벗어나 소비자와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자연대로 키운 씁쓸한 과수를 키울 수는 없지 않을까.

저자는 숲과 친해지기를 꾸준하게 제의한다. 숲에는 도시처럼 강도패거리도 없고 동물의 공격도 없으며 희귀해진 독사들도 없다. 밤의 숲이 더 안전하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도심의 밤이 숲 속보다 더 많은 위험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숲을 두려워하되 도시를 안전하다고 느낀다. 도시에서 죽거나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숲에서 만나게 될 작은 곤충을 두려워 도시로 간다면, 커다란 자동차와 전철, 혹은 강도패거리를 만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내가 모르던 재밌는 상식들도 참 많이 알게 한다. 가령, 상어가 100억 분의 1로 희석한 물고기의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인간의 피냄새는 맡지 못한다는 내용이나 나무는 뿌리 네트워킹을 통해, 코끼리는 발을 통해 인간이 들을 수 없는 불가청 영억의 소리를 수킬로미터 까지 소통할 수 있다는 내용이 그렇다. 이런 식의 내가 모른던 상식들은 접하게 되면 어릴 적 향수가 떠오른다.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동물의 습성을 맞추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당시 우리는 나 뿐만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 상당히 순수했지 않았나 싶다. 많은 시청자로 부터 그 프로그램은 사랑을 받았다. 나는 그 프로그램의 알짜베기를 모아놓은 책을 용돈을 모아 구매하여 읽고 또 읽었다.

하이에나가 썩은 고기를 먹어야 하는 이유, 사자가 코끼리 똥을 좋아하는 이유 등 동물의 세계에서 재미난 상식을 배우며 우리는 자연을 알아가고자 했다. 요즘은 무언가 많이 달라졌다. 시선이 환경과 자연에서 인간에게 옮겨져 왔다. 얼핏 예능 프로그램에서 동물과 자연의 이야기가 많이 사라졌다. 인간들끼리의 체육활동, 음악활동, 미술활동, 사교활동에만 온 촛점이 맞춰진 예능판을 보자면, '드디어 우리 인간이 고립을 택했구나' 하는 불안감도 들기도 한다.

저자는 꾸준히 나무와 소통하는 일에 관심을 보인다. 심장이 뛰고 있는 나무 혹은 의사소통을 하는 나무는 인간과 그 반응 속도만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어릴 적 우리 농장에는 커다란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스피커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틀어져 있었다. 지금은 활용하고 있지 않지만, 당시 농법 중에 나무에게 음악을 들려주면 나무가 빨리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농장에 설치했던 것이다. 실제로 농장에는 물을 주고 비료도 뿌려야하고 여러가지 여건상 음악을 계속 틀거나 관리하는 것이 힘들어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간 지켜보면, 얼핏 의미가 있는 것 같으면서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인간은 즉각적인 효과에 반응한다. 가령, 떼쓰는 아이에게 회초리를 쓰는 일은 효과가 즉각적이다. 아이의 입을 막고 순간을 모면 할 수 있다. 뚱뚱한 이는 '단식'을 함을 그날 하루 약간의 몸무게 변화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즉각적인 효과만으로는 깊은 맛을 내는 된장이나 와인의 풍미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모든 건 시간이 들어가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자연으로 부터 그런 걸 배울 수가 있다. 사람에게 풍기지 않는 깊은 풍미는 자연으로 부터 배울 수 있다.

잎이 빛을 모으는 것으로 보아 수정체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인간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며 통각을 갖고 뿌리가 뇌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숲 사랑과 이론에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우리는 추운 겨울 장작을 떼면서 우리가 불에 집어 넣고 있는 것들이 어떤 생물의 사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사용하는 의자나 테이블 혹은 연필 등을 보면서, '목재'는 '생물'의 권리를 잃어버린 존재로 인식한다. 미세하게 갈려진 나무에 접착제를 섞고 압축한 파티클 보드는 어떻게 보자면 잔인한 행동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나무를 바라볼때 그들은 통각이 있는지 과학적으로 불분명하고, 시각이 있는지 과학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대로 생각해버리는 오판들은 어쩌면, 그들의 입장에서 잔혹한 대량 학살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른다고 '아닌'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그들은 생명을 부여 받은 생물이며 밤낮을 구별하고 성장하며 번식한다. 우리에게 그들은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책이 좋다 하고 읽어보면 항상 이 번역가 님이 번역을 하시는데... 번역을 잘하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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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어휘력 - 말에 품격을 더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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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어휘력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 본 적은 많이 없었던 듯 하다. 수 천 자 짜리 영어 단어장을 가지고 다니며 암기하면서도 아무도 모국어인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우리가 앞으로 인생에서 '중국어가 중요하다.', '영어가 중요하다.' 해도 결국은 모국어가 가장 중요하다. 영어와 중국어는 외국인과의 소통에 조금 더 수월해지기 위해 공부해야하는 도구일 뿐이다. 즉, 외국어는 플러스 요인이 되지만 못한다고 마이너스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국어는 다르다. 모국는 모자랄수록 마이너스가 된다.

대한민국 헌법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파면을 명하던 날, 나는 크라이스트 처치에 있었다. 69년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라는 대한민국 현대사 중 커다란 사건인 이 사건을 많은 사람들이 눈여겨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고개를 갸우뚱 했다. 탄핵 소추의결서를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전달 했다는 내용을 접할 때 쯤이었는데, 과연 누구에게 뭘 전달 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였다.

단순 감기 같은데, 어린시절 병원에 가면 나를 앉혀 놓은 의사 선생님이 종이에 영어인지 한국어인지 모를 말을 휘갈기곤 했다. 멀뚱하게 쳐바 본다. 나는 그냥 '목이 아프다.'라고 말했는데 의사선생님은 무언가 영어 같은 걸 휘갈겨 쓴다.

사회적 방언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사회 계층에 따라 다른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같은 한국인이지만 변화사가 사용하는 어휘랑 의사가 사용하는 어휘가 다르고 사업가가 사용하는 어휘와 선생님이 사용하는 어휘가 다르다. 때문에 앞서 말한 탄핵 소추의결서를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전달 했다는 내용을 접하더라도 어떤 누군가가 접했느냐에 따라 천 가지, 만 가지의 다른 사고의 확장을 가져다 준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어려운 정치나 경제 뉴스 기사를 쉽게 설명해주는 이들이 있다. 그만큼 사람들은 같은 한국어도 번역과 통역이 필요하다.

책에는 책 읽는 이유에 대해 굉장히 시적인 표현이 적혀 있었다. 책을 읽는 행위란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할 이들에게 당도할 시간으로 미리 가 잠깐 산다는 대목이다. 책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고 유영할 수 있는 마법과 같은 일을 벌이게 하는 매개체다. 사용 가능한 어휘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더 넓은 공간을 유영할 수 있고 더 많은 시공간을 뛰어 넘을 수 있다. 어휘는 그래서 중요하다.

책을 읽다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책을 붙들고 있으면서 어쩌면 이 시간 마저 시간낭비는 아닐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책이 잘못 만들어진건지 내가 잘못 만들어진건지 알 수 없는 책장을 넘기며 비로소 이해하지 못한 한권을 마무리 짓는 때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해하지 못해도 어느날 문뜩 그것이 머릿속에서 이해될 날이 있을 거라고 한다. 그 때 다시 읽으면 그 이야기는 내것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 책을 읽다보면 도저히 이해 못하고 넘어가는 책들도 있다. 하지만 다른 책을 읽다보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고 다시 이해 못했던 전 책을 봤을 때는 이상하게도 술술 읽힌다.

"그... 뭐냐.. 지난 번에.. 걔가 말했던 그거 있잖아~"

혹시 살면서 우리는 이런 식의 문장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진 않을까? 저자가 말한 어휘력이 부족하면 발생되는 현상에서 지시대명사의 남발은 너무나도 공감되는 나의 일상이다. 글을 쓸 때도, 한참을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네이버 검색창에 비슷한 단어가 뭔지 한참을 뒤지고서 적당한 단어를 찾아내기도 하는 나는 실제로 이런 식의 대화가 나만의 습관은 아닌 것 같다.

명확한 명사가 떠오르지 않아 지시대명사만 남발하는 언어 습관은 사람의 말에 신뢰를 잃게 만든다. 저자가 말한 73초만에 1만 4000미터 상공에서 공중 폭발한 챌린저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챌린저 호에 탑승한 우주인들 중 의 한 가족이 챌린저 호를 바라보고 있던 사진이 있었다. 보도 사진에 있던 챌린저 호에 탑승자의 가족들의 슬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진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사진은 폭발 직전에 찍힌 감격의 눈물이고 보도 자료에서 슬품의 눈물이라는 것은 거짓이었다. 이 이야기는 객관성을 증명하는 사진이라는 자료를 객관적이지 않다고 반박하는 듯하다.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진이 실제로는 폭발 전에 찍힌 감격의 눈물이었다니...

영상 매체가 커저가면서 활자 매체를 대체 할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영상 매체는 '시각'과 '청각'만 충족시킨다.

[어제 만난 진우는 성격이 고지식했다.]

라는 표현이나

[나의 슬픔이 투영된 유리구슬]

따위의 표현은 절대 영상매체로 표현할 수 없다. 이는 활자 매체만이 가능하다. 우리의 감각은 오감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주라고 한다.

듣고, 말하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맡는다.

하지만 이는 실제 체험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감각들이다. 이 오감은 결국 이미지로 우리의 두뇌에 저장된다. 때문에 어차피 오감은 이미지로 가는 인풋의 재료일 뿐이다. 독서는 오감을 통하지 않고, 바로 뇌에 직접 자극을 주어 이미지로 연결 시킨다. 이런 작용을 활발히 하기 위한 어휘력은 갓난아이나 고3이 아닌 우리 성인에게 더 필요한 일일 지도 모른다.

책 하단에 있는 단어의 뜻을 정리해 놓은 부분은 또한 많은 도움이 된다. 마치 언어문제집을 보는 듯 하지만, 실제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문맥상 넘어가는 단어들의 진짜 뜻을 이해 할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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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은 왜 홍대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할까 -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디자인경제
장기민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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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사뭇 호기심을 이끈다. 책의 표지에는 '디자인경제'라는 말이 있다. 나름 경제를 좋아하지만 처음 들어보는 용어이다. 책 제목과 앞에 기술된 '디자인 경제'라는 용어는 책을 읽으면서 추측컨데 쉽게 '생활 속 경제학'을 이야기 하는 듯하다. 쉽게 말해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경제학'은 꽤나 어려울 수 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실증경제학'이며, '규범경제학'이며 '이론경제학'이며 등등의 당최 국적을 알 수 없는 어려운 용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경제학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우리 인간의 경제 활동에 기초를 하고 있는 사회적 질서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이다. 때문에 우리의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민첩한 학문이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평소 삶을 넘어서 관심의 범위를 넓혀간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크게 관심을 갖게 되는 건, 환경과 질병, 경제, 국제관계 등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 부터, 우리 시대의 키워드는 4차 산업혁명이나 사물인터넷과 같은 첨단 시대로 이끄는 단어들이었다. 그러면서 공유경제나 구독경제와 같은 사회 현상을 대변하는 경제 용어들이 신문과 언론을 통해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경제학'은 이제 누군가의 '전공' 과목을 넘어 우리의 피부에 와닿고 있는 필수 학문이 되었다. 이런 경제학을 조금더 쉽게 접할 수 없을까 고민할 때 읽어 볼 만한 책인 듯 하다. 사실 실제 경제를 좋아하거나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읽거나 전공을 했던 독자라면 조금 쉽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한다면 쉬운 책에 대중적이다.

아마 경제에 관심이 없던 분들이 이제 슬슬 어떤 건지 맛만 봐볼까? 한다면 이 책은 읽을만 하다. 중간 중간 일러스트가 들어가 있어 이해가 쉬울 뿐더러, 책에서 드는 예시들은 유튜브, 넷플릭스, 애플, 방탄소년단, 편의점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것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홍대 앞은 왜 홍대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할까' 책 제목은 앞서 말한대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한 물음이다. 이 물음이 있다면 사회현상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어 할 것이고, 그 답에 대한 접근을 경제학으로 풀어낸다. 이 책의 저자인 장기민 작가는 한양대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뒤 국민대에서 공간 디자인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아마 책에서는 경제와 디자인을 적절하게 섞어 쉽게 많은 독자들에게 설명해주고 싶었던 듯 하다. 청소년을 위한 디자인경제 칼럼을 작성하는 그의 이력답게 책은 쉽게 간결하게 풀어낸다.

굳이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사회에 현재 이슈되어지는 여러가지 경제 현상을 훑어 봄으로써 다음 번에 그 용어를 만날 때는 대략의 감을 잡게 도와준다. 요즘처럼 세상이 격변하는 시기에는 더 많이 공부하는 사람이 더 많이보게 되고 세상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는다. 아마 이 책이 그 첫 발걸음을 떼어줄 좋은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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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요시미 슌야 지음, 서의동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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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가 이미 꺾여 있던 2000년대에도 일본의 경제 위엄은 실로 엄청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제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일본 패션이나 제품은 그 때까지도 많은 이들의 동경경의 대상이었다. 나의 첫 핸드폰은 '산요'에서 나온 폴더 폰이었다. 당시 75만원이라는 거금으로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그 핸드폰은 당시 주변인들 사이에서 관심의 대상이곤 했다. '일제' 하면 일단 고품질로 인정하던 시기를 지나 우리는 지금 일본과 무역 전쟁을 할만큼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유학을 하던 시기에도 한국은 일본의 아류국가 정도였다. 마치 우리가 캐내다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미국'과 비슷하지만 작다라는 이미지 인것 처럼 한국은 일본과 비슷하지만 조금 저렴하고 규모가 작은 나라일 뿐이 었다.

88년 세계 10대 기업에서 IBM과 엑슨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일본 기업이었다. 그 뿐만아니라 전세계 50대 기업 중에서 34개가 일본 기업이었을 정도다. 지금 니케이 지수가 20,000포인트를 겨우 넘었던 것에 비해, 이미 89년도 니케이 지수는 거의 4만불에 육박할 정도였다. 정기예금 금리가 8%에 소비지출로 미국을 넘어서고 일본 국영기업인 NTT 하나만으로 독일의 모든 회사의 주식가치를 넘어서는 엄청난 시기를 거쳤던 일본은 이제 힘 빠진 호랑이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 이 책은 잃어버린 30년을 맞이한 일본에 대한 뼈아픈 참회의 책이다.

책은 경제로 시작한다. 나는 일본 경제를 좋아한다. '일본의 경제' 그 자체를 좋아한다기 보다, 일본 경제가 담고 있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거나 유럽의 변방인 포르투칼이 세계 패권을 쥐거나 떠돌이 유목민이었던 몽고가 세계를 지배하듯, 우리는 반전을 좋아한다. 이것이 역사가 재밌는 이유이다. 일본의 반전은 아래에서 위로의 반전도 있지만, 그 반대의 반전도 있다. 현재 진행형인 우리나라를 비롯해 근현대사 100년 가장 다이나믹한 흥망성쇠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기세를 세우던 아시아 패권국에서 1950년대 영국GDP 50% 수준까지 떨어졌던 일본 경제는 다시 반등 하시 시작하여 결국 40만에 영국의 3배 가까운 GDP를 기록할 정도로 급성장한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일본과 경제 전쟁에서 '해볼만하다'라는 의견들이 들려온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성장도 있겠지만 가장 크게는 일본의 빠른 속도의 몰락이 이유이다.

일본의 버블경제와 잃어버린 30년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은 '플라자 합의'를 이야기한다. 마치 미국이 일본의 경제만 망치기 위해 한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버블경제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인의 그리움일 뿐이다. 사실 플라자 합의는 미국의 대규모 재정적자에 대한 조치가 명분이었다. 달러화의 가치 상승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에, 마르크화도 엔화와 마찮가지로 7% 이상 가치 절상되며 경제에 타격이 가해졌다. 하지만 현재 독일과 일본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 힘든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의 건전성을 유지하였던 독일과는 다르게 일본은 기존 자신들에게 영광을 안겨 준 여러가지 방식을 고수했다. 화폐개혁이나, 구조조정 혹은 정권교체도 없이 일본은 가진 것에 대해서만 유지하기 위한 보수적인 정책을 폈다. 이는 일본을 최강국의 자리에서 유지하게 했지만, 성장없이 머물거나 조금씩 침체하게 만들기도 했다.

유럽은 유럽통합이라는 커다란 이벤트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는 행운 적인 요소도 있다. 하지만 그 요인은 결코 그저 행운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독일은 패전 후 각 국가들에 사죄와 반성의 뜻을 빠르게 내비췄고 그로인해 타 국가와의 교역양이 늘어나면서 생필품 가격이 낮아지고 물가 안정과 주택가격 안정이 일어났다. 독일의 실질 부동산 가격은 1975~2007년 사이에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는 점에서 일본과는 전혀 다르다.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정치 뿐만 아니라 외교와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부동산 가격 뿐만아니다. 그와 함께 농산물 가격도 낮게 유지 되었다. 이 또한 남유럽 등지에서 저렴한 가격의 농산물 유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동유럽에서 저렴한 노동자들도 유입되었다. 실질적으로 2차세계대전 전범국이던 독일이 주변 국가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받았단 것이다. 과거에 대한 사죄나 반성의 자세가 외교의 힘으로 그리고 그것이 경제의 힘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주변국은 중국과 한국이다. 사실상 한국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과 노동력은 일본의 물가와 임금을 안정시킬 수 있는 좋은 곳이다. 하지만 일본은 독일과 반대로 주변국 간의 꾸준한 마찰이 있어 왔다.

'헤이세이'와 '쇼와'는 이는 일본의 연호이다. 이는 아키히토 일왕 시대의 연호인데, 우연찮게도 일본이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1989년부터다. 책은 이 시대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른다. 첫번째 장에서 경제를 설명하고 두번째 장에서 정치를 설명한다. 경제는 참으로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정치부분을 읽을 때는 조금 어렵긴 했다. 아무렴 일본에 대해 정치는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책을 중반부까지 읽으면서 느꼈던 건, 우리가 생각하는 잃어버린 30년에 관한 관념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30년을 이야기할 때 보통, 경제에 관하여만 떠올린다. 하지만 일본은 정치, 경제, 문화, 생활 전반적으로 후퇴해가고 재난을 겪는다.

그무렵 동일본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포함하여, 일본 사회 전반에 암울한 기운을 만드는 여러가지 이벤트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일본은 경제 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가혹한 시간을 맞이한다. 이런 가혹한 시간에 대해 일본인들은 '옴 진리교'를 포함하여 이색적인 돌파구를 찾았는다. 그 괴이한 사회적 활동들이 일본사회에 일어나며 일본이 얼마나 암울하게 변했는지를 대변해 준다. 이책은 일본사회가 갖고 있던 두려움을 전반적으로 훑어준다. 얼핏 미야자키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들이 많아지며, 우리는 극단적인 사건과 일본을 동일시 하기도 한다.

책이 단순 경제 서적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판단을 자세와 함께 고쳐앉고 저자가 말하려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간의 사회 상실감에 대해 접했다. 격차사회나 소자화 사회 등 일본의 몰락은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현실이 과거가 아닌 현재 진형이라는 것이다. 지금 일본은 해결되지 않은 원전 문제와 코로나라는 국제적인 이슈에 대한 부담도 껴앉고 있다.

얼핏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부유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누구나 있는 듯하다. 하지만 막상 일본의 참혹한 내면을 바라보니 그런 일본에게도 동정심이 생기기도 한다. 어쩌면 썩어가는 내부를 숨기기 위한 자격지심이 외교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은 어쨌거나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동반자이다.

주변 국가가 모두 망하고 나서는 대한민국이 혼자 그 대륙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기는 쉽지 않다. 마치 아프리가 대륙 한 가운데 일류국이 생성되지 못하는 것 처럼 우리가 더욱 잘되기 위해서는 주변국가들이 함께 상생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다만, 일본의 완전한 몰락보다는 비등비등하지만 대한민국이 조금 더 살기 좋고 외교력이나 경제력에서 일본에게 큰소리 칠수 있는 위치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우리는 흔히 일본을 '악'이라고 분류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국가의 관념에서의 라이벌은 존재할지라도 일본인 개개인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반인일 뿐이다. 이 책은 일본인이 일본을 바라보는 가감없는 반성문이다. 읽고서 괘씸한 일본사회가 빠져있는 절망에 통쾌하다고 시작했다가 결국은 연민의 마음이 한 켠에 들게 했다. 조금 안타까운 게 있다면, 일본 한자 식 번역이 가끔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그 또한 일본의 저자가 썼다는 감정이입이 되어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어쨌던 싸우지 않을 수 있다면 싸우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일단 싸우게 된다면 이겨야 한다. 일본은 우리의 적이 아니지만 동아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함께 드높이는 라이벌 국가로써 두 국가가 함께 공생하고 자라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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