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여름 에디션)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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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름. 휴남동.

소설 속에 등장하는 휴남동은 실제 지명은 아니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휴남동 서점. 이 또한 있을 법하지만 없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경험도 있을 법한 이야기다. 소설은 대표성을 띤다. 우리는 커피가 인간을 마시거나 마우스가 고양이를 클릭하는 언어 와해된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거짓인 걸 알면서도 그럴듯하게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쥬라기 공원이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받은 이유도 실제 불가능한 일들을 다수가 눈 감고 봐줄 만큼 설정적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다수에게 선택받았다. 다수가 공감했다는 의미는 분명 사회적 상징성을 갖는다. 다수가 선택한 '베스트셀러'를 무한적 신뢰하진 않는다. 이는 그저 다수가 선택했을 뿐이지, 나와 맞는다는 보장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의미에서 종종 읽어 볼 만하다. 휴남동 서점이라는 소설은 베스트셀러다. 그 이유는 이 책이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타깃이 무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책을 골라 선택한 이들은 자신의 꿈과 닿아 있는 설정을 좋아했을 것이고, 그 주변 인물들의 고민과 삶이 자신들의 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예전 '불편한 편의점'을 읽었을 때처럼 소설은 사회를 많이 담는다. 그저 사회 비판적인 내용만 담은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는 작가가 인물을 통해 자신의 독서 철학도 함께 담는다. 주제와 좀 벗어난 이야기지만 책을 좋아한다고 서점을 차린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다. '서점' 또한 '비즈니스'다. 책을 좋아하는 이는 훌륭한 구매자이지, 훌륭한 판매자 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소비자의 성향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심취하다 보면 그 시선에 함몰되는 경우도 있다. 판매자는 물건에 대해서만 잘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판매자의 자격 요건 여러 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책을 좋아한다고 서점을 시작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맥도날드의 운영진은 '셰프'가 아니고, 스타벅스의 운영진은 '바리스타'가 아니며, 애플의 운영진은 '기술자'가 아니다.

책 좋아하는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카페'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아마 그들이 환상을 갖는 이유는 '훌륭한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 내면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돈 벌기 위해서는 '책'파는 일보다 '술'을 파는 일이 더 효과적이다. 15,000원짜리 책 한 권이면 최소 일주일이나 한 달을 이용하는 구매자보다, 친구 몫까지 칵테일 두 잔을 시키는 고객이 다음 매출도 일으킬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다. 서점이 가진 이런 특성 때문에 소설은 인물들의 내면을 중심으로 잘 서술해 나간다. 극적인 사건과 스토리라인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니다. 인물 하나하나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들이 가진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이 소설의 특징이다. 모든 걸 '열심히' 살아가는 이가 자신의 삶의 템포를 낮추기 위해 찾은 비즈니스가 '서점'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찾아보고, 적당한 음악을 들으며 책 좋아하는 이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정도로 살겠다 마음. 그것으로 시작한 일에 하나 둘, 자신만의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여든다. 가만 사회라는 것은 그렇게 움직인다. 자주 방문하는 '마트'만 보더라도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인다. 지금은 희화된 '가족 같은 분위기'는 사실 업무상 존재할 수 없다. 모두 밖으로 꺼내지 않는 내면을 숨기고 업무에 충실할 뿐이다. 표면적인 관계에서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적다. 그런 의미에서 '책'과 '술'은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이 둘은 종이와 알코올이라는 표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로 내면을 이끌어 내는 매개체다. 간혹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소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질문자는 가볍게 던진 질문이지만 답변자는 이 질문에 굉장히 당황스러워한다. 사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자신'이 골라도 실패하는 게, 책 선정이다. 가족과 친구에게도 만족스러운 선택을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일부 질문자는 묻는다.

"책을 정말 많이 읽으시네요. 저희 어머니 선물하기 좋은 책 하나 추천해 주세요."

가벼운 질문이지만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엄청난 대화가 오고 가야 한다.

'나이는 어떻게 되고, 평소 책은 몇 권이나 읽으시는지, 관심사가 어떠신지, 심리 상태는 어떤지, 어떤 이유로 선물을 하는 건지,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떤지, 종교는 무엇인지 등등.'

난생처음 보는, 혹은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일도 없는 이에게 책을 추천하는 것은 고로 노력 대비 실패할 확률이 엄청나게 높다. 소설 '휴남동 소설'에는 책 좋아하는 이들이 평소에 겪을 만한 소소한 경험들을 함께 공유한다.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1000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가 1000만인 이유는 그 영화가 300만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젊은 남자들의 시답잖은 농담으로 살짝 지나가던 내용은 소설 후반부에 비중 있게 다시 등장한다. 사실 가장 좋은 마케팅은 '베스트셀러'라는 마케팅이다. 사람들은 많은 사람이 샀다는 이유로 그 상품을 고른다. 고로 한 번 베스트셀러에 등극만 하면 그 상품은 몇 주고, 몇 개월이고, 심지어 몇 년이고 내려오지 않는다. 책은 자장면이냐, 짬뽕이냐를 고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실패할 확률이 높은 옵션에서 엄청나게 많은 기회비용을 버리고 선택하는 일이다. 성인이 한 달에 한 권도 읽지 않는 나라에서 그 한 번의 선택은 분명 리스크를 피해야 할 것이다. 다른 기호 활동에 비해 분명 저렴한 비용으로 꽤 긴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제품이다 보니, 혹여 첫 도입에 실패를 확신한다면 그 책을 읽지 않는 걸 떠나서 다시 책을 구매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한 일을 고르는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가능하다. 잊힌 책들은 갑작스럽게 어떤 연예인이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슈화되기도 한다. 그 책이 정말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책 좋아하는 이들은 베스트셀러 코너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래 머물고 있다. 심지어 오디오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이 책을 고를 것이고,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통해 이 책은 더 오래 베스트셀러에 머물 것이다. 작가가 우려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현실화될 것이다. 분명 그럴 가치는 있다. 인물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책이 어떤 식으로 각색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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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 쌓이는 말, 100일의 기적 - 100일 뒤, 어디서나 존중받는 사람이 된다
이마이 가즈아키 지음, 이주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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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는 죽을 때까지 무명화가 였다. 그는 언제나 불행했고 외톨이었고 항상 실패하는 화가였다. 궁핍했고 그림은 판매되지 않았다. 극도로 예민한 성격이었다. 고흐는 조울증과 강박증을 갖고 있었다. 그가 바라본 세상은 어땠을까. 그가 사망하고 100년 뒤, 고흐가 그린 '폴 가셰 박사의 초상화'는 8천 300만 달러, 지금 우리 돈 1,200억 원에 팔렸다. 누군가는 그 위대함과 성공을 찬양하겠지만 자신의 그림이 1,200억 원에 팔릴거란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조금 다른 선택들을 하고 않았을까. 알 수 없다. 그렇다 믿으면 그렇고, 아니다 믿으면 아닌 것이다. 생활고에 성사된 고갱과의 만남도 그렇다. 만약 이 둘이 자신의 미래를 먼저 봤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갈등이나 불안에서 벗어나 조금 더 긍정작인 방향으로 인생을 설계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이름은 큰 존재일 것이나, 인간으로써 그들의 삶이 부럽진 않다. 죽음 뒤에 얻게 되는 명성이나 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삶은 '살음'의 준말로 살아 있을 때로만 존재한다. 내가 죽은 뒤에는 하루 뒤에 우주가 종말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이라지만 아니다. 우주는 내가 태어나면서 생겨났고 내가 죽으면서 사라진다. 무존재가 알아차리는 세상이란 있을 수 없다. '무존재'에게 '존재'는 '무존재'다. 인생은 그렇다. 고달프다고 생각하든 행복하다고 생각하든 스스로 정한 방향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름에 태어난 하루살이에게 '눈'은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는 행과 불행을 결정한다. 인생에는 실패란 없다. 배움과 경험만 있을 뿐이다. 에디슨은 필라멘트를 만들기 위해 식물 탄화 실험을 6천번 실패했다. 축전지를 만들 때는 3만 번 실패했고 천연고무 실험에서는 무려 5만 번이나 실패한다. 어느날 꾸준하게 실패만 하는 에디슨에게 물었다. 어째서 실패만 하게 되는지, 그러자 에디슨은 답했다.

"실패를 한게 아닙니다. 5만가지 방법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과정을 아름답게 만들지만, 그 결과도 아름답게 만든다. 실패를 모르는 사람들은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것이 '실패'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인간은 누구나 실패를 경험한 큰 좌절을 한다. 다만 '실패'를 했음에도 그것이 '실패'인지 모르는다면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을 지속하게 된다. 방송인 노홍철은 방송에서 항상 웃는 얼굴로 등장한다. 그가 항상 말이 있다.

"좋아. 가는거야!"

이 말은 상당히 의미있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긍정적인 말을 한다. 그 사람을 대표하는 '캐치프라이즈'가 하나씩 있을 정도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도 그렇다.

"이봐, 해봤어?"

말버릇처럼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그들의 인생에서 단 한 차례만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항상 같은 '말'을 구호처럼 사용한다. 요즘 젊은층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오히려 좋아."라는 말이다. 어떤 부정적인 상황에서 자기 합리화를 통해 되려 잘됐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말이다. 이 말은 대게 현실을 부정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은 그것이 실패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 최선이다. 사람의 뇌는 거짓말에 잘 속는다. 실제로 인간의 뇌는 가짜 웃음과 진짜 웃음을 구별하지 못하여 거짓으로 웃는다고 하더라도 신체 분비하는 호르몬은 가짜 웃음에서도 똑같이 분비한다. 즉 인간의 뇌는 스스로 한 거짓말에서 쉽게 속아 넘어간다. 일본의 내과 의사 '이마이 가즈아키'는 의사로 근무하면서 약을 사용하지 않고 환자를 치료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에 자신이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철학을 글로 작성한다. 그것은 '언어'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게 하는 것을 일본에서 '펩토크'라고 부른다. 사실 이 '펩토크'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했는데, 스포츠 심리학 용어로 상대방에게 힘과 활력을 주는 기술이다. 쉽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이 있다. 바로 유리잔에 반이 채워진 물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물이 반밖에 없네'라는 말을 하고 '누군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말을 한다. 인식의 차이는 그 미래 가능성을 점처보게 한다. 물이 반밖에 없다는 사람은 같은 물을 받았음에도 불만과 불평을 이어갈 것이다. 물이 반이나 있다고 말한 사람은 물에 대한 감사함을 깨칠 것이다. 누군가는 헌정된 '삶'이라는 자원을 '불평과 불만'으로 채울 것이고 누군가는 '감사한 마음'으로 채울 것이다. 어떤 삶이 더 행복하고 가치 있을지는 보나마나 뻔하다. 억지로라도 자신에게 혹은 상대에게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의학적 결과도 달랐다. 이들은 단어 하나 하나가 자신의 마음 건강에 도움을 주는 걸 깨치고 이것이 신체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느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 중, 론다 번의 '더 시크릿'이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은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이 '끌어당김의 법칙'을 통해 상황을 끌어 당긴다고 설명한다. 이를 누군가는 '유사과학'으로 분류하지만 어쨌건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할수록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꽤 증명됐다. 여러가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질 때마다, '더시크릿'의 허무맹랑함을 깨우치지만 그것이 분명 효과가 있을 거라는 것도 깨우친다. 살다보면 반사적으로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공감능력이 상실된 것 처럼 느껴질 정도의 그들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그들의 말은 꽤 일리가 있으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더 가볍고 긍정적 일수록 삶을 밝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봤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에게 언제나 좋은 말만 할수는 없다.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 나오는 말들은 뱉고나서 '아.. 왜 그랬지?' 할 때도 많다. 사실 모든 것은 습관이다. 반복된 의식이 무의식이 되면 그것은 습관처럼 스며 나온다. 인간이 숨쉬는 활동만큼 많이 하는 것이 '생각'과 '말'이다. 습관의 관성은 분명 벗어나기 힘들지만, 다른 습관과 다르지 않게 반복하고 수정하고, 고치다보면 언젠가 몸에 스며들 것이다. 좋은 언어습관은 숨 쉴 때마다 몸속에 좋은 기운을 불어 넣는 것과 같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습관 형성 100일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금 깨닫는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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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물리학 -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
해리 클리프 지음, 박병철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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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파이를 만들어보자. 일반 밀가루 400g, 설탕 2스푼, 소금 약간... 아차. 아주 근본부터 시작해 보자. 아프가니스탄이 원산지인 볏과 한해살이풀을 재배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아차. 더 근본으로 가야 한다. 더 근본으로 가보자. 사과파이를 만드는 근본적인 재료는 이렇다. 약간의 시공간, 쿼크 6개, 렙톤장 6개, 힉스장 1개, 암흑물질....

8인분의 사과파이의 조리법. 그것은 대략 500쪽으로 간략하게 요약했으나 부족하다. 이것의 조리시간은 대략 138억 년이다. 처음에는 약간의 소우주를 만들고 이를 약 10의 마이너스 32제곱 초동안 10조x1조 배로 팽창 시키는 일부터 하면 된다. 대략 이런 저런 과정을 생략하고 중간부터 다시 이야기해보자, 일단 수소와 헬륨으로 이뤄진 큰 구름을 만들고 이 자체 중력으로 '별'을 빗는다. 이것의 중심부에는 수소가 헬륨으로 변한다. 헬륨은 탄소로 변한다. 이 연속되는 융합반응으로 철이 만들어지면 융합이 멈춘다. 이것의 수명이 거기서 끝나면 이 '별'은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고 그 동안 만들어 놓은 무거운 원소가 우주공간으로 흩뿌려진다. 대략 그 뒤 90억 년이 지나고 2세대 별과 초신성, 충돌하는 중성자별에서 철보다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진다. 한숨 돌리고 사과파이를 만들기를 다시 시도해보자. 이제 절반도 만들지 않은 레시피는 500쪽에 걸쳐 사과파이를 만들어간다. 사과파이의 구성이 어떤지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은 분자에서 원자, 쿼크, 힉스, 끈 등으로 파고 들어간다. 가끔 살다보면 그런 일을 겪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을 했는데, 어느 순간 "어? 어쩌다보니 내가 이런 것도 하고 있지?" 하는 일 말이다. 대표적으로 육아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별거 없는 가벼운 우연의 시작인데 정신을 차려보면 오른발로 한 아이의 흔들침대를 흔들고 오른손으로 다른 아이의 우유를 물리고 왼손으로 아이를 토닥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을까?"의 수준은 이미 아득하게 넘었지만,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을 일을 몰라서, 멋도 모르고 하고 있다.

'해리 클리프', 이 책의 저자는 나에게 '사과파이' 만드는 법을 알려 주겠다고 했다. 솔깃하고 들었다. 어느 순간 제대로 된 재료를 구하기 위해 그는 사과파이를 분해했고 그 구성을 살폈다. 그 속이 뭘로 채워져 있는지 탐구했고 어떻게 이뤄졌는지 서술했다. 그러다보니 물질은 그 구성을 쪼개고 쪼개고 쪼개어 알지 못하는 세계로 인도했다. 물질의 본질을 살피던 저자는 물질입자로 들어가면서 전자와 원자로 이뤄졌다는 것을 알렸다. 여기서 원자는 위 쿼크와 아래 쿼크로 이뤄져 있고 이들은 전자뉴트리노와 함께 1세대 입자를 형성한다고 알려줬다. 위 커크, 아래 쿼크는 괜찮다. 예쁨 쿼크, 야릇한 쿼크, 진실 쿼크, 맵시 쿼크 등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오지도 않을 이상한 이름의 물리학 전문 용어를 들어가며 사과파이를 만드는 법을 알렸다. 당연히 이 책을 훑어보거나 중간 부분을 펴서 읽었다면 혀를 내두르고 덮어두고 읽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순진무구한 독자의 손을 잡고 '사과파이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며 이끌려 들어간 이야기에 독자는 처음에는 화학을 만나고, 물리학을 만나더니 상대성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가볍게 지난다.

"어..어..어?? 지금 내가 어딜 가고 있는 거지? 맞게 가고 있나?" 하는 사이에 가벼운 농담 몇 개를 던지며 별거 아닌 듯, 다시 양자역학과 빅뱅이론과 초끈이론까지 후다닥하고 가버린다. 비로소 책의 마지막에 드디어 사과파이를 슬슬 만들기 시작한다. 이 괴상망측한 물리학책은 확실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보다 시적인 부분은 덜하지만 훨씬 유머러스하고 쉽고 재밌다. 책은 유머러스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고 또 역사와 인문학적 내용을 포함하지만 애둘러 표현한 내용 중 어째서 결국 '동양철학'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빛과어둠', '하늘과 땅' 처럼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입자와 천체로 갈수록 반드시 반대쪽의 존재가 '공식'처럼 나타난다. 물질에는 반물질이, 쿼크에는 반쿼크가, 깊게 파고 들수록 명확해지는 '+'와 '-'를 보며 전체를 아우르는 '음양이론'의 위대함을 깨닫게 한다. 잘 모를 때는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는 일들이 많다. '대단한 사람들이 알아서 발견해 주겠지' 싶은 원리들은 머리가 아파서 올라오는 호기심을 꾹하고 참게 한다. 묻지 않을 질문에 대해 저자는 '그거? 별거 아니야'라고 하며 그냥 심심하게 설명해 버린다. 어떻게 작은 물질을 쪼개어 확인했는가. 단순하다 엄청난 전기 에너지로 소립자를 가속해서 그 두 개를 충돌 시키는 것이다. 거기서 깨져 나오는 파편을 통해 그 소립자의 구성을 살핀다. 단순하다. 너무 극미하기에 결코 증명할 방법이 없는 '초끈이론'의 내용도 상당히 흥미롭다. 수학적으로 희안하게 계산 가능하지만 그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전무한 이론. 이 이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 무려 9차원에서만 서술이 가능하다. 끈이론자들이 여분차원을 다지는 방법의 수는 10의 500제곱 개나 된다. 인간이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것은 눈으로 지켜본 것이 아니라 모두 수학으로 가능하다. 인간은 3차원이 넘어가는 세계를 이해 할 수 없다. 능력있는 물리학자도 이는 불가능하다. 다만 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인간의 머리가 아니라 '수학이다. 인간은 상하좌우의 공간에서 산다. 이것이 3차원이다. 다만 그 방향 외에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이 더 있다면 4차원, 5차원처럼, 고차원이 된다. 초끈이론이 가능하기 위해선 무려 9차원이어야 한다. 이것이 가짜라고 할 수 없지만 증명하기 꽤 힘들다. 고차원 공간도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만히 앉아서 책상 앞에서 깔끔한 식 몇 개로 우주의 규칙을 정의하는 것은 '경이롭다'는 표현 밖에 사용하기 힘들다. 이 책의 묘미는 저자와 역자가 주고 받는 묘미에 있다. 책을 번역하는 이들 중에서 책이 꽤 재밌다 싶으면 '강영옥' 님의 번역인 경우가 많았다. 이번의 역자는 '박병철' 님이다. 이 책에서 저자의 농담에 '박병철' 님의 받아치는 농담은 적정한 선에서 피식하고 웃게 한다. 500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과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물리학 이론'이지만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으며 볼 수 있었다. '코스모스', '사피엔스', '총균쇠'에 이은 역작(*제목만 원제로 돌려주시면.. 더 좋았을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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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물리학 -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
해리 클리프 지음, 박병철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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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 번만 소개하는 건, 핵분열 에너지로 라면 끓여 먹는 것과 같다. 지금껏 아무리 벽돌 같은 책이라고 하더라도 완독하기 전에는 절대 리뷰하지 않았다. 그것이 철학이었으나 이번은 그것을 깨겠다. 책은 절반이 조금 넘은 정도를 읽었다. 나머지 절반은 내일 완독할 예정이다. 우주 만물의 역사와 원리를 담았는데, 고작 그것을 한 장으로 요약하는 일은 내 능력 밖이다. 책의 깊이를 감탄하려면 사실 두 번의 리뷰도 부족할 정도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만약 당신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사과파이를 만드려고 한다면, 먼저 우주를 만들어야 한다."

과학하는 사람들이 괴짜 같은 건 알고 있었지만, 책은 정말 사과파이로 부터 우주를 만들어 나간다. 우주라고 표현했지만 만물을 이야기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생각했던 이야기 중 하나는 '도대체 이 잡다한 구성이 우주랑 뭔 상관이야'였지만 사실상 우주는 우리을 뛰어 넘어 대기권 밖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주는 우리 손톱 밑이나 발가락 사이에도 존재하고 모든 순간과 티끌, 모든 공간이다. 진짜 사과파이를 만들어보자. 사과를 먼저 구해야 하겠지만 아니다. 진짜 사과파이는 사과를 먼저 기르는 것 부터 시작한다. 농장에서 시작할까. 아니다. 사과나무가 열리기 위해선 토양과 태양광에서 출발해야 한다. 태양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태양은 헬륨과 수소로 이뤄져 있다. 그럼 수소는 무엇이고 헬륨은 무엇이고 그것들은 어디서 왔을까. 사과파이를 만들기 위해서 분자를 알아야 하고, 분자를 알다보니 원자를 알아야 한다. 원자를 구성하는 것이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 임을 알아야 하고 다시 그것 또한 공간 임을 이해하며 그 공간에는 위쿼크, 아래쿼크, 야릇한 쿼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재료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한다는 것을 보면 이 엄청난 분량의 우주 물리학 도서가 사실은 '사과파이 레시피북'으로 분류해야 하나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산소와 탄소, 수소와 헬륨 따위를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생각해보면 학교 과학시간에 그것을 알려주진 않았다. 과학 시간에는 아득한 주기율표에 영문과 한글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문자의 나열들이 있으며, 그것들이 있으니 일단 외우라는 지도를 받았다. 그것이 왜 그렇게 됐는지 물론 궁금해 하지도 않았지만 알려주지 않았고 왜 궁금해 하지 않는지 묻는이도 없었다. 세상 모든 지식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학교에서 받은 교육에는 '호기심'이 없기 때문에 내 눈에는 '사과파이'는 그저 '사과파이'로 존재했을 것이다. 다양한 원자와 구성을 밝히는 일들은 이 책에 의하면 역시나 사과파이에서 시작한다. 사과파이를 통해 탄소를 얻는 실험. 탄소를 통해 이산화탄소와 산소를 확인하는 과정. 헬륨과 수소를 통해 핵융합이 일어난 과정. 도서 제목은 '다정한 물리학'이지만 개인적으로 원제인 'How to make an apple pie from scratch'가 참 센스 넘치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원제에서 '물리학'을 가늠하지 못할지 모르는 독자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이 들지만, 개인적으로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해결하지 못한 현대 물리학의 나머지 퍼즐을 맞춰 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처음 책을 집어들고 100 페이지를 읽었을 때, 드는 생각은 이랬다.

"우리 아이가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어쩌지..."

두 번 째 생각은 이랬다.

"읽었으나 이해를 하지 못하면 어쩌지..."

물론 나또한 천재 물리학자들의 업적을 최대한 쉽게 표현했음에도 다양한 용어가 익숙치 못해 완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역시 책이란 '기호'이기 때문에 어떤 누군가가 미지근한 리뷰를 올리는 것들도 봤다. 나의 시선에서는 책을 읽을 때마다 '경이롭다'라는 말이 새어나왔다.

우주의 조각을 맞추는 물리학자들의 도전이 경이롭다. 이것은 유튜브에서 보게 되는 황당한 우연 모음집 같다. 수 백 번의 도전 중 우연히 성공한 영상만 짜집어 편집한 영상 말이다. 생각없이 보는 영상 중에는 그런 영상들이 있다. 정확히 같은 사이즈의 구멍에 구슬을 집어 넣거나, 보지 않고 던진 공이 농구 골대에 들어가는 깔끔하게 달성되는 우연들. 서로 다른 과학자들이 아무렇게나 던진 공이 정확히 목표 지점에 깔끔하게 떨어져 들어가는 희열은 현대 물리학의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근원'을 생각하지 않고 행하는 것들이 참 많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며 가거나, 어디서 왔는지 모르니,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른다. 물리학이 중요한 이유는 오른쪽으로 던진 공이 왼쪽으로 가지 않는 것처럼 '신'이 만들어낸 규칙에 '근원'을 고민하는 '지적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왜 일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공부하는 학생들은 자신이 왜 공부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것은 '본질'에 대한 탐구가 없기 때문이다. 물리학은 우주의 움직임을 숫자로 풀어내는 이들을 바라보며 신의 위대함을 탐구하는, 인간의 위대함도 알게 된다. 우주를 이해하다 보면 칼 세이건의 말처럼 우리가 별에서 부터 시작했음을 느껴 볼 수 있다. 어떤 별이 터지며 흩어진 원자들은 우리를 구성하는 재료가 됐다. 다시 말하자면 하찮은 발 뒤꿈치의 굳은 살 조차 경이로운 우주의 조각 중 하나이며 우리는 무한한 공간과 시간에서 발생한 수많은 우연과 우연이 만들어낸 복합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가치는 그렇게 매겨진다. 나뿐만 아니라, 바닥 위를 기어가는 개미 새끼 한마리도 우주의 한 조각이다. 오늘 저녁, 내일 어쩌면 일과 시간과 휴식시간 틈틈히 이 책을 놓지 못할 것이다. 남은 반절도 너무 기대가 된다.

*내일 도서 완독 후 두번째 리뷰 작성하겠습니다.

(처음으로 리뷰를 두 번에 나눠 쓰네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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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하는 마음 - 이상하고 아름다운 블로그 세계
이효진(새벽보배)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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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신동엽은 말했다.

"저는 내기를 하면 '한국이 진다'에 겁니다." 그는 어떤 스포츠 국제 경기에서 언제나 한국이 진다는 쪽에 건다고 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한국이 이기면 돈은 잃지만 기쁘고, 한국이 지면 슬프지만 돈을 따게 된다. 그 논리는 가벼운 웃음으로 시작했지만 뾰족하게 다가왔고 묵직하게 내려 앉았다. 지금의 나의 철학이 된 이 말을 언제나 기억한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라는 산문집에서 실패담을 하나 소개한다. 비자 없이 중국으로 떠났다가 공항에서 추방되는 내용이다. 그의 산문집은 역시나 훌륭했으나 다른 모든 기억들을 상쇄 시킬만큼 이 실패담은 크게 다가왔다. 소설을 쓰기 위해 오랜기간 중국에 체류할 예정으로 떠났던 여행에서 어이없게 그는 추방됐다. 황당하고도 어이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또한 소재가 됐다.' 그렇다. 좋으면 좋은대로 좋고, 나쁘면 나쁜대로 좋아야 한다. 블로그는 그런 역할을 한다. 최악의 하루는 굉장히 스펙타클한 이야기 소재가 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타이타닉'은 재난 영화지만, 보는 입장에서 '재밌다'라고 평가하고 본다. '라이언 일변 구하기'는 전쟁 영화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흥미롭게 본다. 술에 술 탄듯, 물에 물 탄듯한 영화나 드라마보다 무언가 역동적인 이야기가 말 그대로 '이야기'가 된다. 힘든 하루는 어쩌면 그냥 힘든 하루로 내 안에 쌓여 곪을 수 있다. 다만 이것이 글이 되면 '수필'이 되고 누군가의 오락거리가 된다. 20대 초반부터 10년에 가까운 기간 해외생활을 하며, 상상조차 하지 못할 시련이 있었다. 신발이 찢어져서 신발을 사러 가야하는데, 신을 신발이 없었다는 이야기부터 영양실조에 걸려서 아파트 바닥에 쓰러져 한 동안 누워 있던 이야기, 돌아 올 버스비 없이 알바를 떠났다가 버스에서 잠들어서 다섯 시간을 걸어 돌아온 이야기 등. 이 이야기들은 당시에 죽을 만큼 힘든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다만 당시 썼던 일기들을 잘 모아 출간된 것이 나의 첫 책인 '앞으로 더 잘 될거야'다. 좋으면 좋은대로 좋고, 나쁘면 나쁜대로 좋아야 한다.

운 좋게 블로그에 관한 강연을 하게 된 적 있다. 당시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쓸게 없다고 생각하곤 했다. 다만 메뉴만 분류해주면 알아서 지속하여 썼다. 블로그 수업 첫날, 내 주문은 이랬다. 펜과 노트를 꺼내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으라고 했다.

1. 내가 좋아하는 것(3가지)

2. 내가 잘하는 것(3가지)

3. 내가 해야 하는 것(3가지)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는다. 고민해 보지 않는다기보다 일상의 급류에 휩쓸려 정신없이 노를 젓다보니 그런 정리를 할 새가 없는 모양이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무엇을 잘 하는지 모르며, 무엇을 해야하는지 몰랐다. 혹은 자신이 해야 하는 것만 명확하게 알고,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으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블로그는 결국 자신을 들들 볶고 뼈와 골수까지 우려 완전히 내야 한다. 글쓰기라는 장기 전에서 초기 몇 번은 상대를 속일 수 있으나 1년, 2년, 3년이 지나가는 와중에는 어쩔 수 없이 자신만 아는 '찌질함'과 '열등감', '무능함'이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미국의 수필가 '리베카 솔닛'은 글쓰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사람들이 함께 공감해 줄 것이고, '내가 잘하는 것'은 사람을에게 정보를 줄 것이고, '내가 해야 하는 것'에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다. 블로그에 메뉴 설정을 할 때, 글의 갯수가 몇 개인지 보이도록 설정해 둔다. 이유는 앞서 말한 3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만해서도 안되고, 잘 하는 것만 해서도 안되며, 해야 하는 것만 해서도 안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책읽기'고 잘 하는 것은 '영어'이며, 해야 하는 것은 '육아'다. 이것은 균형이 필요하다. 만약 메뉴의 갯수가 '책읽기'만 비정상적으로 많다면 이 균형이 깨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을 했었다.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 연주를 좋아했고, 물리학을 잘 했지만, 생활을 위해 취업을 해야 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과학 저널에 올린 4편의 현대 물리학 논문은 1905년에 완성됐는데, 이를 '기적의 해'라고 부른다. 이 기간 아인슈타인은 '특허청' 직원으로 일하며 논문을 작성했다. 누군가가 물었다.

"블로그로 돈 벌 수 있나요?"

그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떠나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누군가는 어린 나이에 은퇴했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듯 말하고 다닌다. 사람들은 그것을 '경제적 자유' 혹은 '파이어족'이라고 하지만 별로 그 말을 좋아하진 않는다. 순진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사회는 '돈벌기'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대게 세계 최고의 부자들은 이미 보통의 우리보다 일하는 시간이 길다. 일론 머스크는 주 120시간의 일을 했고 이는 대략 하루 17시간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돈에 대한 욕심'이나, '뜨거운 열정'을 기대했으나 그의 대답은 '그냥 하는 겁니다.'가 전부였다.

앞서 말한 '레베카 솔닛'의 말처럼 글쓰기란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 대게 일과를 마치고 편안한 복장으로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장문 나열한다. 영화 리뷰나 도서 리뷰인 경우도 있고 때로는 삶의 철학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날은 맥주 한 잔하고 알딸딸한 상태로 쓰는 경우도 있고 아이와 콩순이를 함께 보며 대충 휘갈기는 적도 있다. 이런 저런 글들은 대게 혼자 조용한 시간에 쓰여지지만, 간혹 내 글들은 여기 저기 퍼져 공유되기도 하고 출간되어 수 천 명이 보기도 했다. 많진 않지만 가끔 나의 글을 필사하는 분도 계시고 알림 설정을 통해 찾아 보는 분도 계시다. 조용히 혼자하는 일이지만 그 밖에 세계 이곳 저곳에서 소통하는 분들도 더러 생겼다. 누군가는 메일을 통해 협업 제안을 주시기도 하고 출간 제의도 받는다. 이런 일들은 바쁘게 명함을 돌리고 얼굴을 알리려 발품발고 뛰어 다녀서가 아니라, 일과가 끝난 저녁 조용하게 글을 써서 발생한 일들이다. 누군가가 기대하듯 애드포스트를 통해 큰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방송사에서나 취급하는 '광고'가 내 넋두리 앞과 뒤에 붙어 소소한 광고료 수입도 만들어 낸다. 큰 돈은 아니지만 쓰지 못한 커피 쿠폰도 적잖게 쌓인다. 누군가는 "광고 포스팅 한 번에 얼마쯤 받으세요?"라고 묻지만 대답은 '받지 않는다'이다. 100명에게 1만원을 받으면 100만원이지만 10만명에게 20원을 받으면 200만원이다. 내가 알고 있는 돈의 특성은 사람을 복종 시키는 일이다. 한 사람에게 1000만원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복속되지만 1000 사람에게 1원을 받으면 누구에게도 복속되지 않는다. 나에게 돈을 주는 사장님이 착한 사람일지, 나쁜 사람일지 나는 관여할 수 없다. 운 좋게 좋은 사람을 만난 경우에는 '월급'이나 '큰 광고료'를 받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더 많이 알려주세요'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적은 비용을 받는 편이 낫다. 나에게 블로그는 '돈'과 전혀 상관없다. 스스로를 정리하고 누군가에게는 선의의 영향력을 줄 수 있으며, 나 자신도 좋은 영향을 받는다. 누군가가 꾸준히 일기 쓴 댓가로 출간제의와 강의 제의, 협업제의를 한다면 그것을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일기를 쓰는 이유는 돈벌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를 정리하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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