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물리학 -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
해리 클리프 지음, 박병철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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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파이를 만들어보자. 일반 밀가루 400g, 설탕 2스푼, 소금 약간... 아차. 아주 근본부터 시작해 보자. 아프가니스탄이 원산지인 볏과 한해살이풀을 재배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아차. 더 근본으로 가야 한다. 더 근본으로 가보자. 사과파이를 만드는 근본적인 재료는 이렇다. 약간의 시공간, 쿼크 6개, 렙톤장 6개, 힉스장 1개, 암흑물질....

8인분의 사과파이의 조리법. 그것은 대략 500쪽으로 간략하게 요약했으나 부족하다. 이것의 조리시간은 대략 138억 년이다. 처음에는 약간의 소우주를 만들고 이를 약 10의 마이너스 32제곱 초동안 10조x1조 배로 팽창 시키는 일부터 하면 된다. 대략 이런 저런 과정을 생략하고 중간부터 다시 이야기해보자, 일단 수소와 헬륨으로 이뤄진 큰 구름을 만들고 이 자체 중력으로 '별'을 빗는다. 이것의 중심부에는 수소가 헬륨으로 변한다. 헬륨은 탄소로 변한다. 이 연속되는 융합반응으로 철이 만들어지면 융합이 멈춘다. 이것의 수명이 거기서 끝나면 이 '별'은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고 그 동안 만들어 놓은 무거운 원소가 우주공간으로 흩뿌려진다. 대략 그 뒤 90억 년이 지나고 2세대 별과 초신성, 충돌하는 중성자별에서 철보다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진다. 한숨 돌리고 사과파이를 만들기를 다시 시도해보자. 이제 절반도 만들지 않은 레시피는 500쪽에 걸쳐 사과파이를 만들어간다. 사과파이의 구성이 어떤지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은 분자에서 원자, 쿼크, 힉스, 끈 등으로 파고 들어간다. 가끔 살다보면 그런 일을 겪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을 했는데, 어느 순간 "어? 어쩌다보니 내가 이런 것도 하고 있지?" 하는 일 말이다. 대표적으로 육아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별거 없는 가벼운 우연의 시작인데 정신을 차려보면 오른발로 한 아이의 흔들침대를 흔들고 오른손으로 다른 아이의 우유를 물리고 왼손으로 아이를 토닥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을까?"의 수준은 이미 아득하게 넘었지만,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을 일을 몰라서, 멋도 모르고 하고 있다.

'해리 클리프', 이 책의 저자는 나에게 '사과파이' 만드는 법을 알려 주겠다고 했다. 솔깃하고 들었다. 어느 순간 제대로 된 재료를 구하기 위해 그는 사과파이를 분해했고 그 구성을 살폈다. 그 속이 뭘로 채워져 있는지 탐구했고 어떻게 이뤄졌는지 서술했다. 그러다보니 물질은 그 구성을 쪼개고 쪼개고 쪼개어 알지 못하는 세계로 인도했다. 물질의 본질을 살피던 저자는 물질입자로 들어가면서 전자와 원자로 이뤄졌다는 것을 알렸다. 여기서 원자는 위 쿼크와 아래 쿼크로 이뤄져 있고 이들은 전자뉴트리노와 함께 1세대 입자를 형성한다고 알려줬다. 위 커크, 아래 쿼크는 괜찮다. 예쁨 쿼크, 야릇한 쿼크, 진실 쿼크, 맵시 쿼크 등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오지도 않을 이상한 이름의 물리학 전문 용어를 들어가며 사과파이를 만드는 법을 알렸다. 당연히 이 책을 훑어보거나 중간 부분을 펴서 읽었다면 혀를 내두르고 덮어두고 읽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순진무구한 독자의 손을 잡고 '사과파이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며 이끌려 들어간 이야기에 독자는 처음에는 화학을 만나고, 물리학을 만나더니 상대성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가볍게 지난다.

"어..어..어?? 지금 내가 어딜 가고 있는 거지? 맞게 가고 있나?" 하는 사이에 가벼운 농담 몇 개를 던지며 별거 아닌 듯, 다시 양자역학과 빅뱅이론과 초끈이론까지 후다닥하고 가버린다. 비로소 책의 마지막에 드디어 사과파이를 슬슬 만들기 시작한다. 이 괴상망측한 물리학책은 확실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보다 시적인 부분은 덜하지만 훨씬 유머러스하고 쉽고 재밌다. 책은 유머러스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고 또 역사와 인문학적 내용을 포함하지만 애둘러 표현한 내용 중 어째서 결국 '동양철학'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빛과어둠', '하늘과 땅' 처럼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입자와 천체로 갈수록 반드시 반대쪽의 존재가 '공식'처럼 나타난다. 물질에는 반물질이, 쿼크에는 반쿼크가, 깊게 파고 들수록 명확해지는 '+'와 '-'를 보며 전체를 아우르는 '음양이론'의 위대함을 깨닫게 한다. 잘 모를 때는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는 일들이 많다. '대단한 사람들이 알아서 발견해 주겠지' 싶은 원리들은 머리가 아파서 올라오는 호기심을 꾹하고 참게 한다. 묻지 않을 질문에 대해 저자는 '그거? 별거 아니야'라고 하며 그냥 심심하게 설명해 버린다. 어떻게 작은 물질을 쪼개어 확인했는가. 단순하다 엄청난 전기 에너지로 소립자를 가속해서 그 두 개를 충돌 시키는 것이다. 거기서 깨져 나오는 파편을 통해 그 소립자의 구성을 살핀다. 단순하다. 너무 극미하기에 결코 증명할 방법이 없는 '초끈이론'의 내용도 상당히 흥미롭다. 수학적으로 희안하게 계산 가능하지만 그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전무한 이론. 이 이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 무려 9차원에서만 서술이 가능하다. 끈이론자들이 여분차원을 다지는 방법의 수는 10의 500제곱 개나 된다. 인간이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것은 눈으로 지켜본 것이 아니라 모두 수학으로 가능하다. 인간은 3차원이 넘어가는 세계를 이해 할 수 없다. 능력있는 물리학자도 이는 불가능하다. 다만 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인간의 머리가 아니라 '수학이다. 인간은 상하좌우의 공간에서 산다. 이것이 3차원이다. 다만 그 방향 외에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이 더 있다면 4차원, 5차원처럼, 고차원이 된다. 초끈이론이 가능하기 위해선 무려 9차원이어야 한다. 이것이 가짜라고 할 수 없지만 증명하기 꽤 힘들다. 고차원 공간도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만히 앉아서 책상 앞에서 깔끔한 식 몇 개로 우주의 규칙을 정의하는 것은 '경이롭다'는 표현 밖에 사용하기 힘들다. 이 책의 묘미는 저자와 역자가 주고 받는 묘미에 있다. 책을 번역하는 이들 중에서 책이 꽤 재밌다 싶으면 '강영옥' 님의 번역인 경우가 많았다. 이번의 역자는 '박병철' 님이다. 이 책에서 저자의 농담에 '박병철' 님의 받아치는 농담은 적정한 선에서 피식하고 웃게 한다. 500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과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물리학 이론'이지만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으며 볼 수 있었다. '코스모스', '사피엔스', '총균쇠'에 이은 역작(*제목만 원제로 돌려주시면.. 더 좋았을 것 같...)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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