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는 죽을 때까지 무명화가 였다. 그는 언제나 불행했고 외톨이었고 항상 실패하는 화가였다. 궁핍했고 그림은 판매되지 않았다. 극도로 예민한 성격이었다. 고흐는 조울증과 강박증을 갖고 있었다. 그가 바라본 세상은 어땠을까. 그가 사망하고 100년 뒤, 고흐가 그린 '폴 가셰 박사의 초상화'는 8천 300만 달러, 지금 우리 돈 1,200억 원에 팔렸다. 누군가는 그 위대함과 성공을 찬양하겠지만 자신의 그림이 1,200억 원에 팔릴거란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조금 다른 선택들을 하고 않았을까. 알 수 없다. 그렇다 믿으면 그렇고, 아니다 믿으면 아닌 것이다. 생활고에 성사된 고갱과의 만남도 그렇다. 만약 이 둘이 자신의 미래를 먼저 봤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갈등이나 불안에서 벗어나 조금 더 긍정작인 방향으로 인생을 설계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이름은 큰 존재일 것이나, 인간으로써 그들의 삶이 부럽진 않다. 죽음 뒤에 얻게 되는 명성이나 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삶은 '살음'의 준말로 살아 있을 때로만 존재한다. 내가 죽은 뒤에는 하루 뒤에 우주가 종말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이라지만 아니다. 우주는 내가 태어나면서 생겨났고 내가 죽으면서 사라진다. 무존재가 알아차리는 세상이란 있을 수 없다. '무존재'에게 '존재'는 '무존재'다. 인생은 그렇다. 고달프다고 생각하든 행복하다고 생각하든 스스로 정한 방향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름에 태어난 하루살이에게 '눈'은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는 행과 불행을 결정한다. 인생에는 실패란 없다. 배움과 경험만 있을 뿐이다. 에디슨은 필라멘트를 만들기 위해 식물 탄화 실험을 6천번 실패했다. 축전지를 만들 때는 3만 번 실패했고 천연고무 실험에서는 무려 5만 번이나 실패한다. 어느날 꾸준하게 실패만 하는 에디슨에게 물었다. 어째서 실패만 하게 되는지, 그러자 에디슨은 답했다.
"실패를 한게 아닙니다. 5만가지 방법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과정을 아름답게 만들지만, 그 결과도 아름답게 만든다. 실패를 모르는 사람들은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것이 '실패'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인간은 누구나 실패를 경험한 큰 좌절을 한다. 다만 '실패'를 했음에도 그것이 '실패'인지 모르는다면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을 지속하게 된다. 방송인 노홍철은 방송에서 항상 웃는 얼굴로 등장한다. 그가 항상 말이 있다.
"좋아. 가는거야!"
이 말은 상당히 의미있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긍정적인 말을 한다. 그 사람을 대표하는 '캐치프라이즈'가 하나씩 있을 정도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도 그렇다.
"이봐, 해봤어?"
말버릇처럼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그들의 인생에서 단 한 차례만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항상 같은 '말'을 구호처럼 사용한다. 요즘 젊은층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오히려 좋아."라는 말이다. 어떤 부정적인 상황에서 자기 합리화를 통해 되려 잘됐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말이다. 이 말은 대게 현실을 부정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은 그것이 실패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 최선이다. 사람의 뇌는 거짓말에 잘 속는다. 실제로 인간의 뇌는 가짜 웃음과 진짜 웃음을 구별하지 못하여 거짓으로 웃는다고 하더라도 신체 분비하는 호르몬은 가짜 웃음에서도 똑같이 분비한다. 즉 인간의 뇌는 스스로 한 거짓말에서 쉽게 속아 넘어간다. 일본의 내과 의사 '이마이 가즈아키'는 의사로 근무하면서 약을 사용하지 않고 환자를 치료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에 자신이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철학을 글로 작성한다. 그것은 '언어'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게 하는 것을 일본에서 '펩토크'라고 부른다. 사실 이 '펩토크'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했는데, 스포츠 심리학 용어로 상대방에게 힘과 활력을 주는 기술이다. 쉽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이 있다. 바로 유리잔에 반이 채워진 물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물이 반밖에 없네'라는 말을 하고 '누군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말을 한다. 인식의 차이는 그 미래 가능성을 점처보게 한다. 물이 반밖에 없다는 사람은 같은 물을 받았음에도 불만과 불평을 이어갈 것이다. 물이 반이나 있다고 말한 사람은 물에 대한 감사함을 깨칠 것이다. 누군가는 헌정된 '삶'이라는 자원을 '불평과 불만'으로 채울 것이고 누군가는 '감사한 마음'으로 채울 것이다. 어떤 삶이 더 행복하고 가치 있을지는 보나마나 뻔하다. 억지로라도 자신에게 혹은 상대에게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의학적 결과도 달랐다. 이들은 단어 하나 하나가 자신의 마음 건강에 도움을 주는 걸 깨치고 이것이 신체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느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 중, 론다 번의 '더 시크릿'이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은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이 '끌어당김의 법칙'을 통해 상황을 끌어 당긴다고 설명한다. 이를 누군가는 '유사과학'으로 분류하지만 어쨌건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할수록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꽤 증명됐다. 여러가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질 때마다, '더시크릿'의 허무맹랑함을 깨우치지만 그것이 분명 효과가 있을 거라는 것도 깨우친다. 살다보면 반사적으로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공감능력이 상실된 것 처럼 느껴질 정도의 그들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그들의 말은 꽤 일리가 있으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더 가볍고 긍정적 일수록 삶을 밝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봤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에게 언제나 좋은 말만 할수는 없다.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 나오는 말들은 뱉고나서 '아.. 왜 그랬지?' 할 때도 많다. 사실 모든 것은 습관이다. 반복된 의식이 무의식이 되면 그것은 습관처럼 스며 나온다. 인간이 숨쉬는 활동만큼 많이 하는 것이 '생각'과 '말'이다. 습관의 관성은 분명 벗어나기 힘들지만, 다른 습관과 다르지 않게 반복하고 수정하고, 고치다보면 언젠가 몸에 스며들 것이다. 좋은 언어습관은 숨 쉴 때마다 몸속에 좋은 기운을 불어 넣는 것과 같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습관 형성 100일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금 깨닫는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