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면 물어라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1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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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통, 화, 불안감에 휩쌓였을 때, 그것이 그저 '상념'이라는 것을 깨우치면 그것으로 족하다. 악몽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단 하나다.

'아, 꿈이었구나' 하고 꿈에서 깨는 것이다.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 눈은 빛깔을, 귀는 소리를, 코는 냄새를, 혀는 맛을, 몸은 감촉을, 뇌는 법을 인지한다.

이런 인식 대상을 육경 즉,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라고 한다. 또한 인식 기관을 육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 한다.

다시 눈이 빛깔과 모양을 인식하는 것을 안식이라하고 귀가 소리를 인식하는 것을 이식이라 하며,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 작용하는 것이 육식이다.

이렇게 감각 기관을 통해 인식 작용이 일어난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카메라와 녹음기라는 입력장치가 기록해 둔 바를 다시 돌려보는 일과 같다. 관제센터에서 녹화된 영상과 소리를 다시 재생하면 지나갔던 그 상황이 마치 다시 일어나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수상행식(色受想行識)'은 불교에서 말하는 오온(五蘊)의 개념이다

'반야심경'은 설명한다. 인간 존재는 다섯가지 요소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 모든 것은 공하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불교 수행의 핵심이다

색(色): 물질적인 요소,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

수(受): 감각적 느낌, 감수작용

상(想): 인식, 개념화, 기억

행(行): 의지적 형성 작용, 정신적 활동

식(識): 분별 작용, 의식

.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인식과 저장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재생하는 작용에 있어서 그렇다.

이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결을 같이 한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이 '물자체'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물자체'란 사물 그 자체를 의미하는데, 우리는 대상에 대해 감각과 인식능력에 의해 해석된 것만 알 수 있지, 대상 그 자체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으로만 알 수 있는데,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현상'일 뿐이며 우리 감각과 인식 구조에 의해서 재구성된 것일 뿐 사물 자체의 본질은 아닐 수 있다.

고로 그것이 객관적 진리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칸트 철학이 말하는 '인식론적 한계'는 불교의 공 사상과 공통된 철학적 입장을 갖는다.

말이 어려워졌지만, 다시 말해서 우리는 눈 앞에 놓여 있는 사과를 두고도 그 '물자체'에 대한 정확한 본질을 알지 못할 수 있다. 하물며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해석은 더 불분명하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만지는 현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지나간 과거와 미래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허무맹랑한가. 결국 그런 의미에서 현실의 모든 것도 사실상 '공'하고, 거짓을 인식하여 저장했던 과거의 기억조차, '공'하며, 그것으로 만들어낸 상념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공'하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지각과 인식이 왜곡되는 신경사례들이 나온다.

자신의 몸이 비상적으로 크거나 작게 느껴지는 증상들이다. 어떤 환자는 자신의 손이 거대해졌다고 느꼈고, 어떤 사람은 반대로 손이 작아졌다고 느꼈으며, 어떤 사람은 내 손이 내 것이 아니라고 느끼기도 했다. 이런 이상 지각증세는 '뇌 손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다리를 보고 '자신의 다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 거울을 보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는 경우 등 체성감각 피질의 이상으로 신체상이 왜곡되어 느껴지는 경우들이 많다.

그들의 지능은 특별하게 우리와 다르지 않다. 다만 인식기관과 해석 기관의 능력차이로 그렇게 느낄 뿐이다. 과연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구조적으로 조금씩 그들과 가깝거나 멀뿐인데, 우리가 느끼는 인식과 해석은 과연 정상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 감각과 인식이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인정해야 한다. 신경학적 사례들을 보면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절대적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우리의 손 조차 사실은 다른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르게 생겼을 수 있고 우리 바라보는 구름도 다른 사람이 보는 바와 다른 색일 수 있다. 고로 이런 허상 위에 생겨난 거의 대부분의 현실, 과거, 미래는 허상에 가깝다. 결국 연기로 만들어진 무언가처럼 잠시 그 형체를 이루다가 사라지는 듯 '공'하다.

고로 모든 것은 일장춘몽과 같다.

얼굴을 붉히는 것도, 어떤 고통, 화, 불안감에 휩쌓이는 것도, 모두 '공'하다는 것을 깨우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이 악몽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이고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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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했던 그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 한국출판문화 진흥재단 2024년 상반기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추천도서
구론산바몬드 지음, 루미 그림 / 홍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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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대한민국 국민을 수능 등급으로 나눈다면 1, 2등급은 고작 760만명이다.

'공부 좀 했다'는 등급을 2등급까지라고 하면, 국민 나머지 4,300만 명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도 국제 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일본이나 이탈리아, 스페인보다 높아 꽤 부유하게 사는 편이다. 그러니 공부라고 하는 것은 잘하면 좋은 것이지만 그렇게 못했다고 사람구실 못하고 산다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공부 못했던 그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의 작가 '구론산바몬드'는 1980년대 학창시절을 보냈던 X세대다.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이후 군대를 전역하고 영어 교육과로 전과한다. 우여곡절 끝에 임용고시를 치룬 그는 결국 영어교사가 된다. 20년간 교직이 있으며 그는 현재 중학교 교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다.

이 책은 '어떻게 살고 있냐?'하고 묻는 전화 통화으로 시작한다. 학창시절 공부 좀 했다는 친구로부터 걸려 온 전화다. '과연 공부 못했던 그녀석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하는 호기심으로 전화를 했을 것이라는 작가의 추측을 시작으로 '수필'은 시작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약간의 자격지심 같은 것이 일어났단다.

책은 학창시절부터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된다. 공부 못했던 과거를 이야기하며 점차 성장해가는 과정을 기록한다. 제목과 다르게 수필은 '공부'에 관한 주제는 아니다.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단순 이야기가 아니라 '에피소드 모음집'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꽤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 소재들이 워낙 자극적인 내용이 많기에 '아, 이래서 필명을 사용하셨구나' 싶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건데 학창시절 성적이 인생 성공의 등식은 아니다. 어쩌면 방정식에 가깝다. 분명 거기에는 '미지수'가 포함되어 있다. 그 미지수에 어떤 값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변수라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또한 굳이 비교해보자면 입력값에 출력값이 달라지는 '상자속 함수값'을 모르고 사는 바와 같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입력값이 아니라, 입력값을 변환하는 함수 속 숫자다. 다 같은 공부를 해도 다른 결과값을 내놓는다. 빌게이츠는 법학을 공부했지만 '컴퓨터 관련 회사'를 창업했다. 스티브잡스도 철학을 공부하고 '컴퓨터 회사'를 창업한다.

입력값이 전혀 출력값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곧 패배자라는 인식은 학교에서 강제로 심어진다. 어떻게든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 '공교육'이 '패배주의'나 '열등감'을 만들어 놓는 듯하다.

동기부여 할 수 밖에 없는 우리네 교육 현실이 안타깝다. 독일의 경우에는 진로가 빠르게 결정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현장에 투입되기도 한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괜찮은 편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불완정한 미래로 인해 '일단 능력을 최상으로 끌어 올리고 보자'에 집중한다. 그러니 목적이나 본질 없이 경쟁만 치열해진다. 언제 겨울을 맞이 할지 몰라, 에너지만 축적하고 보는 살찐 야생곰 같다.

다시 책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수필은 적절한 허풍과 과장이 섞여 있다. 직접적인 표현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소설을 읽는 내내 즐겁게 했다.

'그렇지, 공부가 아니라 이런 마인드가 중요한 거지.' 생각해보면 삶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게 재밌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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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별사
정길연 지음 / 파람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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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갈 수 없으면 그립고 다가오면 버거운것, 이는 제 홀로만 아는 이의 ㅂ라걸음이 아닐는지요. 가깝든 멀든, 무겁든 헐겁든, 수많은 관계가 그리움과 버거움의 중간 그 어디쯤에서 어긋납니다. 한 치 사람 속 알 길 없다는데, 그 마음이란 것이 한바탕 휘저어놓은 감탕밭처럼 어지러운 까닭이지요.'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책은 독자의 손을 떠나지만 문장은 남는다. 정길연 작가의 '안의, 별사'는 그런 책이다. 손을 놓아도, 페이지를 덮어도, 문장들은 한동안 머리속을 떠돌며, 끊어진 듯 그렇지 않은 어떤 인연인듯 묘하다.

관계란 무엇인가. 가까이 다가서면 부담스럽고, 멀어지면 그리운 것. 이 모순 속에서 불안과 외로움의 적정선을 찾아 타협하는 것이 아닐가.

관계나 인연이라는 것은 꼭 '사람 간'에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인연(因緣)에서 인(因)은 '원인'이나 '이유'를 뜻하는 한자다. 연(緣)은 '연결됨'이나 '인과관계'를 뜻하는 한자다. 이 한자 어디에도 '사람'은 없다.

우리가 흔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할 때, '인연'이라는 말을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인연(因緣)의 한자에 사람(人)이 사용될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사람과는 전혀 관계없는 한자다. 굳이 따지자면 '인할 인(因)'은 '에워쌀 위 口)'에 '사람이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인 큰대(大)'가 합쳐진 말인데, 이는 사람이 무언가에 기대어 의존하고 있는 모습을 뜻한다. 여기에 사람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된다.

그렇게 보면 '인연'은 내가 기대고 의존하고 의지하고 있는 연결된 무언가를 뜻한다. 그것은 '공간'일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때로는 '도구'일수도 있다.

연암 박지원은 '허생전'이라던지, '연하일기'로 이미 유명하다. 박지원은 조선의 외교 사절단인 '연행사'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북경과 열하를 방문했다. 그의 나이 45세 때 일이다. 이후 그의 나이 55세에 '안의 현감'으로 4년 2개월을 재직한다. '안의'는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이다. 북경 여행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현감시절 물레방아와 풍구 등의 선진 농기구를 제작하고 보급했다. 또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는데 힘을 쓰거나 제사 시설을 정비하고 수취 제도을 개선하기도 했다.

소설 '안의, 별사'는 그 시공간을 '재구성'한다. 현감으로 일하던 '박지원'이 안의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남기는 글. 안의 별사는 '인연'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소설에서 '박지원'은 '책'과 인연이 깊다. 문구를 인용하자면 '세상이 곧 책이다. 책이 없다면 나도 없을 것이다'하며 규장각 검서인 박제가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자연은 계절에 따라 감흥이 다르고, 하루에도 절정을 보여주는 시간이 다르다. 사람은 어제와 내일이 다르고,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르다. 자연을 일러 천변만화라고 하며, 사람을 일러 심무소주, 즉 줏대가 없다고 한다. 누구나 자연을 좇아 살기를 원한다. 자연을 좆아 산다는 것이 몸을 자연에 둔다는 것이 아니라, 속세의 티 없이 사는 것임을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아, 나는 어떠한가.'

'안의'는 산과 계곡이 특히 많은 지역이다. 영남 제일의 동천이라는 '안의삼동'이라는 표현이 있는 걸로 봤을 때, 박지원에게 '안의'란 자연과 뗄 수 없는 장소인 듯하다.

그가 보기에 자연은 계절마다 그 모습을 다르게 한다. 4년이라면 그 변화무쌍함을 네번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자연은 계절마다 변하고 또 하루마다 변한다. 사람도 자연과 다르지 않게 아침의 기분과 저녁의 기분이 다르다. 자연과 닮아 변화무쌍하다. 박지원의 입장에서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저 물리적인 공간을 자연으로 옮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그 본성을 함께 하는 것이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다.

소설은 실존 인물인 박지원과 가상의 인물인, 이은용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이 더해진 내용이다. 몰입도가 높고, 문체는 아름답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독특하게도 화자가 번갈아가며 서술되는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실재와 상상이 교차하는 '안의,별사'는 단순 역사소설이 아니다. 관계와 인연을 곱씹게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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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0 시대 - 글로벌 대격변이 시작된다
박종훈 지음 / 글로퍼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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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디커플링(Decoupling), 국가 간 경제적 연결이 악화되고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그렉시트'라는 용어가 생기기 시작했다. 언론에서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탈퇴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이 정도로 파편화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렉시트가 거의 완전한 용어로 정착할 쯤, 난데없이 '브렉시트'라는 용어기 신문에서 나왔다.

'갖다 붙이기도 나름이구나'하는 나름의 비판을 하고 넘어갔다. 실제 영국인들이 '유로존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칠 때까지, '브렉시트'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에 얼마나 확신이 들고 있었던지, 국민투표가 발표되는 날, 투자하고 있던 주식의 요동도 그닥 신경쓰이지 않았다.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있던 날, 나는 새벽 같이 뉴스를 보고 있었다. 영국인들이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세상 멍청한 결정을 할리 없다는 확신이었다. 개표는 새벽부터 시작했고 오전 7시쯤 BBC에서 탈퇴 선언이 나왔다. 주식은 장이 열리자마자 황당할 정도로 내리 꽂혔다. 그때는 그게 그냥 사건이라고 여겼지만 지금보면 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알린 '한발의 총알'같은 순간이었다.

브렉시트는 내가 경험한 디커플링의 첫 사례다. 브렉시트 이전만 하더라도 EU는 세계화의 상징이었다. 다국가 단일시장, 관세 없는 무역, 자유로운 인력과 자본 이동. 교과서에서 배우던 '세계화'의 표본과 같았다. 다만 영국은 글로벌 경제 블록에서 탈퇴하여 자국 중심의 독립 경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후 세계는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선택을 하고 있다. 두 번째 사례가 미국의 트럼프 등장이다. 힐러리와 트럼프가 대선을 할 때, 소위 '전문가'라고하는 사람들은 TV에 나와 '트럼프'라는 괴짜에 대해 비웃었다. 트럼프라는 재밌는 현상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실제로 2017년 트럼프가 당선 됐고 2018년 미중 무역 전쟁이 개시됐다. 2018년 미국과 멕시코에 장벽을 세우겠다거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매기겠다는 황당한 공약, 동맹국에게 '방위분담금'을 요구하겠다는 공약도 당시 헛웃음나는 공약들이었다. 그렇게 비웃던 전문가들도 이제는 꽤 진중한 표정이되어 트럼프의 공약에 골똘해 한다. 그런 걸 보면 '세계 파편화'는 '해프닝'이 아니라, '주요 흐름'이다.

세계화는 단순환 논리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확장판과 같다. '분업화'라는 개념을 세계에 적용한 사례다. 각 국가마다 지정학적 이유로 경제적 강점이 다르다. 무역이 활발하지 않던 시기, 서로의 것을 갖기 위해서는 '전쟁'이 유일한 답이었다. 다만 2차세계대전에서 '석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미국은 중동으로부터 '석유'를 안전하게 공급 받아야하는 하는 문제를 가졌다. 안전한 석유 공급을 위해 미국이 해상 패권을 장악하면서 세계는 항로를 이용한 자유 무역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

미국은 '석유'를 가져 올 때, 사우디아라비아 왕조의 안보를 책임져 주는 대신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사우디는 지급받은 달러로 미국의 채권을 매입했다. 이렇게 서로가 각자의 국익에 따라 꽤 평화로운 관계를 이어갔다.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통상 거래에서 달러를 사용하자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이 시스템과 정확하게 맞아가며 세계화는 더 가속화 됐다.

내가 더 가진 것을 내놓고 남이 가진 것을 가져오는 자유무역, 세계화가 시작한 것이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문제가 발생했다. 자유무역은 태생적으로 불균형한 산업구조를 만든다. 가령 분업화한 개인도 자신의 업무 외에 다른 업무를 보지 못하는 바와 같다.

그렇게 한 국가에 대한 핵심 기술, 에너지, 군사적 의존도가 높아졌다. 곧 이를 무기화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중국의 일본 희토류 제재라던지,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화가 만들어낸 결과가 경제적, 안보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세계가 되면서 이를 무기화하는 사례는 속속 늘어났다. 코로나19가 발발하자 중국에서는 공장이 멈추고 전세계 공급망은 마비될 정도였다. 러우전쟁도 에너지 가격을 폭등시켜 유럽에 심각한 경제적 안보적 위협을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디커플링'은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하나의 전력인 셈이다.

인력, 기술, 산업이 한 국가로 점차 쏠리면서 심각한 문제가 전 세계 곳곳에 생겼다. 기업들은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곤 했는데 그 국가 중 하나가 '중국'이다. 중국이 '제조업'을 흡수하듯 가져가는 과정에서 미국은 자국 내 제조업이 약화되고 일자리가 줄어 들었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혹은 '조선', '자동차', '석유산업' 은 20세기에 미국의 주요 산업중 하나다. 이들은 현재 모두 유럽과 동아시아로 산업이 이전 된 상태다. 미국내에서 산업 공동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안보와 직접적으로 얽혀 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엄청난 생산력으로 선박을 찍어 찍어내던 국가다. 미국은 사실상 해양국가이기 때문에 해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와중에 세계의 조선업 1위가 중국이 된 셈이다.

21세기에는 인공지능과 같이 더 심각한 안보적 위협이 될 기술이 중국으로 흡수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2010년 초반, 세계화에 발목이 잡혀 있던 미국에게 기회가 생겼다.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은 생산 가격이 급격하게 낮아지고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많아지기 시작한다. 2018년, 미국이 사우디보다 원유생산량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분기로 미국은 더이상 자신들의 세금으로 세계경찰 노릇을 할 이유가 사라졌다. 세계화는 미국에게 책임만 많고 이익이 없는 계륵 같은 것이다. 여기에 철저하게 '손익'을 계산하는 사업가가 대통령이 됐으니 세계를 보는 시각도 대차전표 보듯 하게 됐다.

미국은 식량, 에너지, 군사력, 첨단기술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국가다. 일부 해외 의존도가 있는 높은 산업도 있다. 다만 다행히 이들 대부분은 '일본',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유럽', '캐나다'는 '미국'과 산업 구조가 겹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국에서 충족가능한 산업을 갖고 있는 상대국가인 셈이다. 세계가 '트럼프의 위협'을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보고 있는 다수의 언론이 '서방언론'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 다만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핵심 산업을 보유하고 있고 경쟁 관계보다는 협력 관계에 놓여 있는 분야도 많다. 이런 분야는 공급망 개편 과정에서 오히려 호황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최근에 미국이 한국이나 일본의 기술을 가져오기 위한 리쇼어링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술을 빼앗거나 대체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완전한 대체는 거의 불가능하다. 반도체나 배터리 생산에는 수많은 소재, 부품, 장비가 필요하다. 공장을 짓는다고 해도 공급망 문제나 인력 문제, 생산문제는 지속성을 잃게 만든다.

실제로 우리는 탈세계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다만 정확히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파악하면 꼭 트럼프의 당선이 위기라고만 할 수는 없다.

트럼프2.0은 더 강력해진 트럼프 시대를 설명한다. 가볍고 가독성도 좋다. 요즘 같이 '미국에 관한 뉴스'가 쏟아지는 시대에 이 책을 안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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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배불리 먹지 말 것 - 성공과 행복을 이루고 싶다면!, 개정판 세기의 책들 20선, 천년의 지혜 시리즈 4
미즈노 남보쿠 지음, 서진 엮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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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통 관상가이자 명리학자인 미즈노 남보쿠는 '사람의 운명'을 '식생활'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그는 과식을 하면 인생이 망가지고 절제를 하면 운명이 길해진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다소 '동양철학적 이론'에 기인하고 있지만 음식과 운명의 상관관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적게 먹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판단력이 좋아진다. 반대로 많이 먹으면 정신이 혼탁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진다. 실제로 '식곤증'의 발생 원인을 보면 알 수 있다. 식사 후에는 위와 장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소화를 돕기 위해 많은 혈액이 위와 장으로 몰리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든다. 뇌의 산소 공급이 줄어들면 졸음이 느껴지는 것이다.

식사 후에 소화기관으로 피가 몰려 뇌의 활동이 둔해지는 현상을 주기적으로 느낀다면 뇌는 어떻게 되나.

만성적인 뇌혈류 감소는 신경전달 물질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주기적으로 뇌로 들어가는 산소와 포도당 공급이 줄어들면 일시적인 집중력 저하와 뇌기능 저하가 일어난다. 기억력 감퇴, 집중력 저하, 만성적인 사고력 저하 또한 학습과 업무에서 효율이 저하된다. 인생이 변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식사 후에는 부교감신경이 활성화 된다. 부교감 신경은 휴식 중에 활성화 되는데, 휴식과 소화를 담당한다. 몸이 긴장을 풀고 소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혈압과 심박수를 낮춘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만족감'을 갖지만 대체로 현대인들에게 이런 만족감은 때로 '게으름'이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다시말해서, 먹는 음식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실제로 '원시인류'는 '육식'을 시작하면서 '뇌'의 크기가 커졌다. 육식은 에너지가 밀집된 음식이라 적은 양으로도 많은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었다. 채식의 경우는 소화가 오래 걸리고 칼로리가 적은 편이다. 반대로 고기는 소화가 빠르고 에너지가 풍부하다. 즉 적은 음식으로도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뇌발달을 가능하게 했다. 진화 과정에서 '식습관'은 중요했다. 원숭이가 인간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하나가 '식'의 변화다.

다만 현대인에게 '고기'가 좋지 않다. 이유도 같은 원인이다. 너무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면 뇌에서 에너지 과부하가 걸린다. 실제로 칼로리를 30%를 줄인 실험군의 인지능력이 더 좋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즉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적당히'에 머무는 것이다.

빵이나 밥, 면과 같은 탄수화물은 '식곤증'을 유발한다. 고기나 생선, 두부와 같은 음식도 인슐린을 자극하여 졸음을 유발시킨다. 다시말해서 이런 음식을 폭식하거나 과식하게 되면 일상 생활에서 내려야 할 판단에 오류가 잦아진다. 반면 섬유질이 많은 채소는 혈당이 급격하게 오르지 않는다.

미즈노 남보쿠의 설명에 따르면 '음식'은 그 어떤 '보물'보다 값지다. 금은보화가 없어 죽은 사람은 없으나 '한끼 식사'가 없어 죽은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이런 값진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면 시간의 차이가 발생하겠지만 반드시 '변'으로 나온다. 즉 '값진 것을 똥'으로 만드는 이 일을 반복하는 것은 '빈곤'해지는 길 중 하나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입은 화장실이다. 입으로 넣었던 것은 다시 뱉어내도 더럽기는 마찬가지다. 그 맛있고 좋은 음식을 결국 변소에 갖더 버리는 일을 하는 셈이다. 시간 차이는 있겠지만 반드시 입으로 들어간 것은 '변기'를 향하게 되어 있다.

'음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것에서 '절제'는 중요하다. 흔히 '검소함'이라고 하는 것은 절제력의 결과물이다. '검소한 사람'치고 '과식'이나 '폭식'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절제 능력은 식사를 통해 알수 있는데, '남보쿠'는 사람의 식생활을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배가 모두 차지 않은 상태에서 숟가락을 내려 놓는 일은 보통사람에게 힘든 일이다. 그만한 절제력은 성공과 출세, 발전과 행복, 운과 부귀영화, 자식과 가문의 안정, 건강과 긴 수명에 필수 요소다.

음식을 탐하는 것을 두고 '남보쿠'는 불에 뛰어드는 걸 좋아하는 날발레와 같다고 말한다. 불에 들어가면 '타닥'하고 타버릴 것을 알고 있으면서 '본능'을 절제하지 못하고 몸을 '불속'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고로 그는 음식을 앞에 둔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두라고 말한다.

'애초에 음식이란 생명'이다. 다시 말하자면 '음식'은 '타생명'을 섭취하여 자신의 생명을 얻는 일이다. 고로 음식을 버리는 행위는 '생명'을 경시 여기는 것이다.

고대부터 인간은 '신'에게 받치는 '생명'을 받치곤 했다. 즉 음식을 신께 바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밥 세공기를 먹는 사람이 두 공기만 먹고 나머지 한 공기는 신께 받친다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줄여 나가는 것이다. '남보쿠'는 이를 '공양'이라고 했다.

참 역설적이게 나는 이 책을 야식으로 배가 불러 잠을 설쳤던 다음날 아침 읽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식'을 할 때는 그 음식의 맛을 느끼며 먹지만 과식이나 폭식을 할 때는 그 '맛'의 예민함이 사라지는 듯하다. 결국 '소식'이라는 것은 '건강'을 위해서도 맞지만 인생 전반의 '운'을 길들이기 위해 중요한 습관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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