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 별사
정길연 지음 / 파람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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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갈 수 없으면 그립고 다가오면 버거운것, 이는 제 홀로만 아는 이의 ㅂ라걸음이 아닐는지요. 가깝든 멀든, 무겁든 헐겁든, 수많은 관계가 그리움과 버거움의 중간 그 어디쯤에서 어긋납니다. 한 치 사람 속 알 길 없다는데, 그 마음이란 것이 한바탕 휘저어놓은 감탕밭처럼 어지러운 까닭이지요.'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책은 독자의 손을 떠나지만 문장은 남는다. 정길연 작가의 '안의, 별사'는 그런 책이다. 손을 놓아도, 페이지를 덮어도, 문장들은 한동안 머리속을 떠돌며, 끊어진 듯 그렇지 않은 어떤 인연인듯 묘하다.

관계란 무엇인가. 가까이 다가서면 부담스럽고, 멀어지면 그리운 것. 이 모순 속에서 불안과 외로움의 적정선을 찾아 타협하는 것이 아닐가.

관계나 인연이라는 것은 꼭 '사람 간'에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인연(因緣)에서 인(因)은 '원인'이나 '이유'를 뜻하는 한자다. 연(緣)은 '연결됨'이나 '인과관계'를 뜻하는 한자다. 이 한자 어디에도 '사람'은 없다.

우리가 흔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할 때, '인연'이라는 말을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인연(因緣)의 한자에 사람(人)이 사용될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사람과는 전혀 관계없는 한자다. 굳이 따지자면 '인할 인(因)'은 '에워쌀 위 口)'에 '사람이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인 큰대(大)'가 합쳐진 말인데, 이는 사람이 무언가에 기대어 의존하고 있는 모습을 뜻한다. 여기에 사람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된다.

그렇게 보면 '인연'은 내가 기대고 의존하고 의지하고 있는 연결된 무언가를 뜻한다. 그것은 '공간'일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때로는 '도구'일수도 있다.

연암 박지원은 '허생전'이라던지, '연하일기'로 이미 유명하다. 박지원은 조선의 외교 사절단인 '연행사'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북경과 열하를 방문했다. 그의 나이 45세 때 일이다. 이후 그의 나이 55세에 '안의 현감'으로 4년 2개월을 재직한다. '안의'는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이다. 북경 여행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현감시절 물레방아와 풍구 등의 선진 농기구를 제작하고 보급했다. 또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는데 힘을 쓰거나 제사 시설을 정비하고 수취 제도을 개선하기도 했다.

소설 '안의, 별사'는 그 시공간을 '재구성'한다. 현감으로 일하던 '박지원'이 안의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남기는 글. 안의 별사는 '인연'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소설에서 '박지원'은 '책'과 인연이 깊다. 문구를 인용하자면 '세상이 곧 책이다. 책이 없다면 나도 없을 것이다'하며 규장각 검서인 박제가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자연은 계절에 따라 감흥이 다르고, 하루에도 절정을 보여주는 시간이 다르다. 사람은 어제와 내일이 다르고,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르다. 자연을 일러 천변만화라고 하며, 사람을 일러 심무소주, 즉 줏대가 없다고 한다. 누구나 자연을 좇아 살기를 원한다. 자연을 좆아 산다는 것이 몸을 자연에 둔다는 것이 아니라, 속세의 티 없이 사는 것임을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아, 나는 어떠한가.'

'안의'는 산과 계곡이 특히 많은 지역이다. 영남 제일의 동천이라는 '안의삼동'이라는 표현이 있는 걸로 봤을 때, 박지원에게 '안의'란 자연과 뗄 수 없는 장소인 듯하다.

그가 보기에 자연은 계절마다 그 모습을 다르게 한다. 4년이라면 그 변화무쌍함을 네번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자연은 계절마다 변하고 또 하루마다 변한다. 사람도 자연과 다르지 않게 아침의 기분과 저녁의 기분이 다르다. 자연과 닮아 변화무쌍하다. 박지원의 입장에서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저 물리적인 공간을 자연으로 옮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그 본성을 함께 하는 것이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다.

소설은 실존 인물인 박지원과 가상의 인물인, 이은용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이 더해진 내용이다. 몰입도가 높고, 문체는 아름답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독특하게도 화자가 번갈아가며 서술되는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실재와 상상이 교차하는 '안의,별사'는 단순 역사소설이 아니다. 관계와 인연을 곱씹게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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