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만물관 - 역사를 바꾼 77가지 혁명적 사물들
피에르 싱가라벨루.실뱅 브네르 지음, 김아애 옮김 / 윌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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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유통업에 종사했던 건 행운이었다. '잡화점'은 오만가지 생활용품을 매입, 판매한다. 판매자에게 받은 '인보이스(Invoice: 송장)'를 취급하다보면 현지인들도 모르는 물건이 수두룩했다. 성인이 되고 유학 간 외국인이 현지인에게 이름을 알려주는 짜릿함은 당시 일하는 재미 중 하나였다. 물건의 원가와 판매 방식을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재밌는 것은 '이름'을 아는 것이었다. 당시 매장에서 판매하던 제품에는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로 끈을 넣어 신는 슬리퍼인 '쪼리'가 있었다. 이 쪼리는 '플립플랍(flip-flop)'이라는 슬리퍼인데 해변에서 가볍게 신는다. 알고 있던 영어는 플립플랍(flip-flop)이다. 언젠가 여름이 되었는데, 미국인 관광객이 들어와 플립플랍(flip-flop)을 찾았다. 매장에 아직 진열되기 전이었다. 이후 상품을 들여오고 얼마 뒤, 한 뉴질랜드 백인 남성이 물었다.

"혹시 젠달있나요?(Do you have any Jandals here?)"

"젠달이요? 아니요 없는데요. (Jandal? Sorry, we don't have them.)"

대화는 끝이 나는가 싶었다. 남성은 그럴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매장을 훑어보더니 플립플랍(flip-flop)을 꺼내왔다. 그것을 젠달(Jandal)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 이상한 슬리퍼의 유래는 최초 일본에서 시작한다. 실제는 비슷한 신발은 각 문화권마다 존재했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플립플랍(flip-flop)은 일본에서 유래했다. '쪼리'라고 부르는 이 신발은 'ぞうり (조우리)'가 어원이다. 일본인들은 발가락 사이에 끈으로 연결 고정시킨 나막신을 신고 다녔다. 이 신발은 뒷부분을 고정시키지 않으므로 걸어갈 때마다 '또각 또각'소리가 난다. 이 소리를 미국인들은 플립플랍(flip-flop)이라는 의성어를 이용해 표현했다. 한국에서 일본인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쪽발이' 또한 이 신발에서 유래했다. 한국에는 왼쪽, 오른쪽처럼 갈라진 것을 쪽(side)라고 부른다. 한국인들이 보기에 일본인들의 의복 문화 중 '신발'의 형태가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발이 갈라진 이 형태를 두고 '쪽바리'라고 멸칭했다.

젠달은 Japanese sandal을 일본에서 수입하면서 생겼다. 이는 1957년부터 skellerup이라는 회사가 일본 샌달을 수입하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대일밴드'처럼 상표가 굳어져 고유명사로 사용되는 경우다. 당시 Jandal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고자 했지만 겨우 알게 된 사실은 '뉴질랜드 사투리'라는 정도였다. 가볍게 '그렇구나'하고 넘어갔던 상품의 이름에 이런 역사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백인들과 섞여 지낸 기간이 10년이 가깝다보니, 그들의 문화에서 여러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백인들이 '동양의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관점이다. 실제로 백인들은 '동양인'들에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지혜가 있을 거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동양인들의 물건에는 알 수 없는 지혜가 숨겨져 있고 그들의 식문화는 굉장히 '웰빙식'이라는 인식이 있다. 실제 '초밥(Sushi)'가 대표적인 경우다. 백인들은 초밥을 먹는 이에 대해 '건강한 식문화'를 유지하는 현대적이고 자기관리가 뛰어난 엘리트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중식이나 일식에서 어설프게 젓가락을 쥐고 먹는 행위를 품격있는 것처럼 했다. 이런 젓가락 문화는 한, 중, 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양의 문화다. 현대에 와서는 많은 서양인들의 제법 능숙하게 젓가락질을 하지만 젓가락을 사용하지만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처럼 보인다. 젓가락도 사실 각 문화마다 조금씩 다르다. 중국의 젓가락은 꽤 길고 뭉툭한 편이다. 일본은 짧고 끝이 뾰족하다. 한국은 그 길이가 중간정도 되고 끝도 약간 뭉툭하다. 아마 이것은 한중일 식문화에 따른 차이일 것이다. 대게 중국인들은 여럿이 모여 식사를 했다. 이들의 젓가락은 비교적 커다란 식탁에서 먼거리의 음식을 집기에 편리했다. 일본의 경우는 어류를 즐겼고 생선뼈를 바르기 위해 비교적 끝이 뾰족하고 예리한 젓가락이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세 국가 중 가장 젓가락 활용이 적은 편이다. 실제로 국이나 밥도 젓가락으로 먹는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는 수저를 이용하여 국과 밥을 뜬다. 중국과 일본의 젓가락은 나무를 이용해서 만든다. 반명 한국의 젓가락은 금속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김치나 젓갈 등 강한 양념을 먹는 한국인의 특성에 나무 젓가락은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합리적이다.

인간은 정착생활을 하며 '사유물품'을 소유했다. 한 번 쓰고 버리던 떠돌이 시절을 벗어나 그 자리에서 같은 물건을 사용해야 하는 정착생활에서는 물건을 조금 더 자신에게 맞게 사용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자녀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과 생각을 넘겨 주곤 한다. 부동산이 될 수도 있고 반지나 목걸이 같은 귀중품이 될 수 도 있지만, 이렇게 부모와 자식에게 넘겨주는 상하 교류 뿐만 아니라 옆 마을 혹은 옆 국가에서 넘어오는 좌우 교류도 활발하게 이어졌겠다. 상하 좌우로 자신의 물건을 넘기고 받으며 점차 그것의 활용을 자신에게 맞게 바꾼다. 마치 '맥도날드'의 '불고기버거'처럼 어느 순간, 상대의 것과 내것이 적절히 융합하면 그것은 또다른 정체성이 된다. 가장 그 시대와 그 지역의 색깔에 적합한 것들이 남고 전달되다보면 거기에는 역사와 흔적, 이야기가 남는다. 역사를 배우는 방식은 다양한다. 전쟁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 경제를 통해 배우기도 하며 대게 정치를 통해 배운다. 다만 정치는 그 시대를 온전하게 담아내기 적합하지 못하다. 현대 정치에 못마땅한 현대인들은 얼마든지 있으며 그런 다수가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소수보다 훨씬 많다. 다수의 역사는 이처럼 정치, 경제의 거시적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물건처럼 사소하지만 다수가 쓰고 남긴 흔적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모든 것은 사실 연결되어 있다. 거시적 역사와 미시적 역사도 따지고보면 모두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역사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과정도 역사와 이야기를 즐기는 하나의 포인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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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크럼볼츠.라이언 바비노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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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에서 6이 나올 확률은 16.7%다. 확률이 극히 적다. 이 확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주사위의 6면을 3면으로 만들거나 숫자를 모두 6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다만 그런 변칙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어떤 방법이 있을가. 주사위를 2번 던진다면 33.4%, 3번 던지면 50%로 올라간다. 고정된 확률이 아니라 도전 횟수를 올릴수록 100%에 수렴한다. 즉 게임의 룰을 그대로 두고 도전 횟수만 늘리면 성공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실패라는 것은 다음 도전 시, 성공 확률이 2배 가까이 올라갔음을 의미하는 신호다. 실패를 두려워 한다는 것은 '도전'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고 앞서말한 16.7%의 확률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의미다. 실패는 다음 도전 확률이 높아졌음을 알리는 신호다. 최대한 빨리 시작하고 실패하며 빈번히 도전해야 한다. 우리가 당면하는 대부분의 목적은 성공률이 낮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예측력을 자부한다. 이는 당연하다. 모든 상황은 부정적으로 예측할 때, 맞아 떨어질 확률이 높다. 우스께소리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상황을 부정적으로 예측할수록 우리의 예감은 맞을 확률이 높다. 누군가의 도전에 섣불리 예측하지 말라는 이유는 이와 같다. 누군가의 도전에 부정적인 예측을 하면 할수록 당신의 말이 맞을 확률이 높다. 다만 생각해보면 '예측'이라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미리 결과를 때려 맞췄다는 희열 말고는 그것이 주는 인생의 어떤 장점도 없다. 야구 선수가 방망이를 휘두를 때마다, '홈런일 리 없다'라고 예측할수록 예측력은 높아진다. 다만 본질은 '미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어떤 도전을 할 때, 성공률이 극히 적음을 빨리 인정해야한다. 도전을 예측하는 이들에게 "나도 알아."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도전하는 이유는 그것이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 아니라, 성공이 주는 달콤함 때문이다. 어떤 도전을 하더라도 실패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

누군가는 이를 긍정적인 마인드라고 말한다. 실패하더라도 심리적 데미지를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1회 도전에 실패한다면 가차없이 포기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하하. 그럴 줄 알았지!"

성공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이러니하게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실패를 당연하게 생각할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이순신 장군은 이처럼 말했다.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 '죽고자 하면 살 것이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자신있게 예측한 것과 결과는 언제나 반대로 진행된다. 그렇다. 살고자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어떤 일에든 기대치를 지나치게 낮춰야 한다. 인간은 기계와 다르다. 어떤 도전 뒤에 내려지는 성과에 심리적 데미지를 입는다. 자신의 기대치가 높다면 그것을 이루지 못할 때, 실망감을 갖는다. 실망은 사전적 의미로 희망을 잃어버렸음을 말한다. 이는 원하는 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는 마음이다. 인간이 실패 뒤에 갖는 '실망'이라는 감정이 희망을 잃어 버렸을 때, 갖는 감정이라지만, 역설적으로 실패 뒤에는 '희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실패할 확률'이 사라진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실패를 하면 할수록 성공 확률은 100에 수렴한다. 유튜브에 새제품의 리뷰를 몇 차례 업로드한 적 있다. 언박싱 영상들이다. 누군가 내 언박싱 영상을 보며 말했다.

"지금 막 구매한 새제품인데 너무 막 다루시네요."

그렇다. 나는 새제품일수록 막다룬다. 얼마 전, 출고를 오래 기다렸던 '전기차'가 나왔을 때, 출고하자마자 흙 묻은 '감귤 컨테이너'를 실었다. 스마트폰은 액정필름을 떼어버린다. 그밖에 값비싼 카메라나 전자기기, 소지품 등. 그 첫인상을 '막' 이용해 버린다. 이 철학은 사실, 학창시절 갖게 됐다.

초등학교 시절, 학기를 새로 시작하면 접힌 곳 없는 반짝 반짝한 교과서를 받는다. 아버지는 반들거리는 흰 달력으로 교과서가 때묻지 않게 잘 싸주셨다. 그것을 소중하게 사용하라는 의미일지 모른다. 이유가 그것 때문인지, 어린시절부터 새로운 것을 접하면 더럽혀지지 않게 조심하게 사용했다. 새옷, 새책, 새가방 등. 그러다보니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가령 책이 더러워질까봐 메모도 하지 않고 접거나 펴는 일도 조심스러워졌다. 가방이나 옷이 구겨질까봐 밖으로 나갈 때 잘 착용하지 않게 됐다. 어느날은 스프링 노트를 구매했다. 첫장을 쓰고 마음에 들지 않는 글씨체 때문에 첫장을 찢었다. 처음처럼. 다시 첫장을 썼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그 장을 찢었다. 처음처럼. 그러다보니 거의 사용하지 않고 깨끗한 것들 투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용감'을 최소화하는 '사용'이 본질일리 없다. 그 뒤로 최대한 첫날 막 써버린다. 제품 박스나 포장지는 가차없이 뜯어버린다. 대상에게 주종관계를 확실하게 알려준다.

"내가 주인이야. 내 손 때와 흔적이 묻는걸 더렵혀졌다고 여기지마!"

대상을 그렇게 대하면 물건은 '주종관계'를 확실히 이해하고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다. 주인도 종을 편하게 쓴다. 물건을 모시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야 말로 본질을 다하는 것이다. 이는 '실패'와 '성공'에서도 비슷하다. 가장 어설프고 멍청하게 시작한다. 그것이 당연히 실패할 것을 인지하고 도전하며 상대에게 내가 프로답지 못한 사람임을 분명하게 언급한다. 실패확률 0%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도전하지 않는 것보다 분명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으며 더 많은 성취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구글을 통해 찾은 바이어에게 메일을 보낸 적 있다.

"감귤은 있는데 살사람이 없다."

이런 식이다. 이 아마추어 같은 시작은 어떻게든 진행하게 만들었고 첫 메일을 보낸 주, 주말에 나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소매 마트 본사에서 '수출미팅'을 진행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고, 당연히 실패할 것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의 수많은 도전도 분명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뭐든 저지르면 시작은 된다. 시작이 되면 수정이 가능하다. 일단 시작하고, 차차 완성해 가면 그만이다. 최근 읽는 책들이 너무 좋다. 아마 다독의 장점일 것이다. 역시 다작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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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 - 당신의 모든 선택에서 진짜 원하는 것을 얻는 법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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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나 자서전에는 함정이 있다. 판단하는 자가 한 명이라는 사실이다. 쉽게 자서전이 그렇다. 814만 분의 1의 확률이라는 로또를 예로 들어보자.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 분의 1의 확률이지만 1등 당첨자에게 묻는다면, 당첨될 확률은 100%일 것이다. 모두는 814만의 다른 실패자들보다 성공한 1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나 자서전은 자신이 선택한 '성공 판타지'에 불과하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나 현대 정주영 회장에게 성공하는 법을 묻는다면 그들은 자신의 노하우를 말할 것이다. 노하우는 놀라울 테고 실제로 그들은 그 방법을 통해 100% 성공했다. 그것에는 반드시 함정이 있다. 성공한 이의 단편적인 이야기만 편집적으로 듣는 것은 전체를 간과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사실'보다 '감정' 혹은 '도덕'의 영역에 더 영향을 받는다. 가령 '외모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거나 '술보다 독서가 행복을 증진시킨다'거나, '학력과 지능은 유전자와 무관하다'라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등이 그렇다. 다만 이것은 다 틀렸다. 실제 이성에게 선택받기 위해서 마음보다 외모가 중요했고, 독서보다 술이 행복을 증진시키며, 학력과 지능은 유전자와 깊은 관련있다. 이것은 데이터가 말하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 상당수는 불쾌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불쾌함을 주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존재할 뿐이다. 불쾌한 감정을 갖는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를 위해 변해주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데이터'는 '도덕'과 '감정'을 배제한다. 다수의 정보를 취합하고 사실만 말한다.

부모의 학력과 직업, 소득은 자녀의 학력에 영향을 끼칠까. 이 물음에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을 원한다. 다만 부모의 능력은 자녀에게 거의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서울대 재학생 76%의 부모는 월소득이 922만원 이상이었다. 정시를 통해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의 78%가 수도권 출신이고 합격생 중 무려 36%가 강남 8학군 지역 학생이었다. 숫자가 말하는 '사실'을 기반으로 할 때,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부모의 영향력'은 무지막지하게 제한적이다. 서로 다른 부모에게 입양된 일란성 쌍둥이를 조사한 결과 이들은 각자 다른 환경과 부모의 영향력 밑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직업과 취향, 소득 등이 거의 같았다. '육아 서적'을 보면 어떻게 자녀를 교육했는지 알리는 방법론이 많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고 실제로는 태어나면서 갖고 있는 본성에 영향을 더 끼친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사' 정도다. 부모의 육아방침이나 철학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동네'에 거주하는가다. 실제로 고소득, 고학력자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데이터는 말한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불가항력적 고민에 머리를 싸매고 에너지를 사용하지만 실제로 아이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4년제 나온 옆집 아줌마일 가능성이 크다. 그밖에 몸에 벌레가 기어가 듯, 끔찍한 사실들은 숫자로 보여준다. 실제 170cm의 남성이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기 위해선 190cm의 남성보다 연소득이 3억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사다. 실제로 미국에 거주하는 아시아 남성은 고소득인 경우가 많지만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가 없다.

'사실'이라는 것은 '진실'과 다르며 그것에 '가치가 있다거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사실일 뿐이다. 태양은 내가 싫다고 해서 빨리 떨어져 주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떠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객관적 사실'에 불쾌함을 갖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다른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다수의 정보가 말하는 사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데이터는 편견에서 자유롭다. 흥미로운 결과는 더 있다. 바로 '예술가'와 '작가'에 대한 관점이다. 사람들은 예술가와 작가가 가난하고 불안한 직업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다만 의외로 예술가와 작가는 풍요로운 고소득인 경우가 많다. 사실 이들은 다른 조사에 따르면 직업 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이기도 하다. 물론 조사에 포함되지 않는 많은 예술가와 작가가 숨어져 있지만 어쨌건 우리의 편견과 다른 부분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부를 얻기 위해 사업과 취업 중 무엇이 맞냐는 질문에는 '사업'이 더 적합하다. 사업 중에서도 지루한 사업이 더 부자가 되기 적합하다. 가령 부동산이나 자동차 판매, 금융투자, 작가와 같은 분야에 종사할수록 부자가 될 확률이 높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업가들은 어린 나이에 창업하여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제 대부분의 사업가들은 40대에서 60대 쯤에 창업한 이들이 우량기업을 만들어낼 확률이 높다. '남의 밑에서 일하기 싫다'고 창업하는 이들에 비해 실제로 창업 후 성공한 이들은 사회생활에 잘 적응해가는 편이 많으며 대부분 천재적인 선택보다는 무식할 정도의 다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세스 스티븐슨 다비도위츠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의 저자다. 전작은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데이터 베이스를 남겼다. 사람들은 전작에서 수많은 밑줄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수집했는데, 이 정보를 바탕으로 다수가 판단한 '자기계발서'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전편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이유라고 본다. 여러가지 일이 오고가는 과도기에 너무 적절한 시기에 만난 행운과 같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두고 두고 읽어 볼 필요가 반드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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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다카다 아키 엮음, 이진아 옮김 / 베가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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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그 속에서 코로나는 어떻게 움직였고 사회는 어떻게 변화하나. 2019년 이전의 질서가 끝났다. 어서 코로나가 종식되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여길지 모른다. 다만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말하는 미래는 '뉴노멀의 시대' 즉, 새로운 표준이 자리잡는 시대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양말'을 신지 않고 남의 집 방바닥을 누비는 것과 같다. 마스크는 '의약품'이 아니라 '의류'로 자리했다. 개인은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디자인과 색을 고르고 바지 치수를 파악하듯 마스크 사이즈를 알아야 한다. 14세기 유럽에는 흑사병이 유행했다. 당시 영국 귀족들은 재채기 할 때, 꺼내 쓸 수 있게 왼쪽 가슴 호주머니에 천이나 면 등 가벼운 원단을 넣고 다녔는데 이 '행커치프'는 현재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없던 문화가 생기고 그것이 '노멀'로 자리를 잡는 새로운 '뉴노멀 시대'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대비하고 있을까. 매일 그날의 날씨보다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코로나 감염자 및 사망자 통계'는 조간 신문처럼 전국민에게 문자 배송된다.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거나 하루를 시작하는 간단한 인사처럼 '확진자 통계'는 '숫자' 이상의 문화로 자리잡는다. '오는 날씨 좋네요' 처럼 '오늘도 확진자 많네요'가 일상 인사처럼 굳어지는 시대. '밥 먹었어?'나 '좋은 아침'처럼 우리의 인사도 점차 뉴노멀로 변해간다. 과인 연결은 이 문화적 변화와 확산을 빠르게 한다. 사람과 바이러스의 연결, 국가와 국가의 연결, 타인과의 연결 등 복잡하게 다중적으로 얽혀 있는 사회의 연결 고리를 통로 삼아 코로나 바이러스는 '감염 확산' 뿐만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확산'을 일으킨다.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문제'는 '흑과 백'의 문제였다. 물론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도 없지 않으나 역사적으로 보자면 흑인에 대한 차별을 떠올린다. 다만 팬데믹에 의해 등장한 새로운 차별 문제가 생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원지로 꼽히는 '중국인' 즉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그렇다. 유럽 내에서도 남유럽인들에 대한 차별도 발생한다. 코로나는 백인들이 대규모 사탕수수 밭을 가꾸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을 사고 팔며 그들에게 가졌던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처럼 새로운 역사적 고정관념을 생성하며 인종차별을 만든다. 대체적으로 '마르쿠스 가브리엘'이라는 독일 철학자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케인즈주의자로 보여진다. 문제에 대해 여러 방향으로 고민해보는 '철학자'의 시선은 좋았으나, 개인적으로 찾아보기에 논리적 모순이 적지 않았다. 다양한 관점이 들어나 좋았으나 대소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강하게 묻어 있는 책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여지의 주장이 다소있다. 생각이 다른 저자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 보는 것 또한 '독서'가 가진 매력이자 장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고 나의 생각과 비교해가며 상대의 논리를 바라보고 자신의 논리와 비교해 보기에 얇지만 찬찬히 사색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게중에는 공감되며 또다른 인사이트를 불러 일으키는 대목도 있다. 바로 '통계'에 관한 이야기다. 코로나 초기가 지난 이후, 코로나 확진자 추이 통계를 보여주는 일을 불편하게 여겼다. 마치 스포츠 시즌 성과를 비교하듯 국가 순위를 따져가며 누가 더 방어에 선방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정치적 의도를 제외하고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매체는 꾸준하게 감염자와 사망자 그래프를 보여주며 사람들을 위축시켰다. 코로나가 어떤 병인지 파악되기 전, 그 치사율이 극도로 부풀려 예측됐을 때, 사람들은 그 병에 대해 위기 의식을 가졌다. 그것을 경계하고 살폈다. 다면 현재는 그렇지 않다. 코로나 사망자수는 예상보다 적다. 코로나 전염병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것은 물론 좋다. 그것이 국가의 존폐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사안일지도 모른다. 책에는 관련 내용이 없지만, 대한민국의 상황을 봤을 때 관점을 달리 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률'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보고 받아야 할 것은 코로나 확진자수와 사망자수가 아니라 '출산자수'와 '자살자수'다. 코로나는 사실 '연결된 세계'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다. 심각한 유사 상황에 개인과 국가, 세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움직여야 하는지 팬데믹 사태를 통해 시뮬레이션 했다. 국가 비상사태에 국가는 자신들만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법을 신속하게 제정하며 민관이 공동으로 움직여 다수의 안전에 힘썼다. 이 이후 사회는 당연히 코로나를 통해 배웠던 경험을 실제로 사용해야 한다. 국가와 국가, 타인과의 연결이 어떤 식으로 작동되는지를 전세계가 경험한 이때, 정치는 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자신들의 실수를 반성하고 복기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철학을 거침없이 쏟아 부었지만 실제 내 주장과 부딪치는 부분은 상당했다. 공감되는 부분도 분명했다. 다만 비슷한 사람의 생각만 편집적으로 받아드리는 것 또한 '민주주의의 역행'과 같다. 아마 책을 읽고 누군가는 무릎을 치며 공감할 것이고 누군가는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생각이 자유롭게 허용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다. 경제, 정치, 문화 등 여러면에서 젊은 독일 철학자와 생각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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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사피엔스 생존기 - 선사 시대에서 우주 시대까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인류 인싸이드 과학 2
프랑수아 봉 지음, 오로르 칼리아스 그림, 김수진 옮김 / 풀빛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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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처음 읽었을 때가 기억난다. 인류를 3인칭으로 바라보며 진행한 하던 전개가 몹시 흥미로웠다. 거기에는 문명의 발전 수준으로 인류를 구분하지 않았다. '원시인', '고대인', '중세인'이 아닌 '사피엔스'라는 통일된 명칭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당시 서술 방식이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600쪽이 넘는 분량을 단숨에 절반을 읽고 아꼈다가 다음 날 읽었을 정도다. 그 뒤로 '사피엔스'는 원서로 읽고 전자책도 원서와 국문 두 가지로 가지고 다녔다.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 지구에는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과 에렉투스 등 적어도 6종의 인간 종이 살고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에렉투스에서 분기된 종인데 현생 인류는 '사피엔스 종'으로 인간 종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종이다. 우리가 인종이라고 부르는 흑인, 백인, 황인은 모두 이 호모 사피엔스에 속한다. 네안데르탈인은 갑자기 3만 년 전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사피엔스와 5,000년이나 공생했다. 이들이 사라진 이들에 대한 호기심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들은 사피엔스보다 지능이 떨어진다는 증거도 없고 도구 개발이나 그밖에 기술적인 차이도 거의 없다. 현재 유럽인들의 DNA에 그들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는데 대략 1~4%의 DNA가 숨겨져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사피엔스와 이종교배를 통해 사피엔스 종에 흡수됐다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들이 우리 DNA와 혼합된 건 초기부터 였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대부분 '이동의 역사'로 볼 수 있다. 사피엔스는 엄청난 지구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이동했다. 이 이동의 역사 얼마나 대단한지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로 넘어가 번창하기 시작한 걸 보면 '생명력의 왕'이라는 바퀴벌레와 우리가 큰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종이란 개와 늑대처럼 약간은 다르지만 유전자 교환이 가능한 경우를 말한다. 근연종이란 다른 종이라 유전자 교환이 불가능하지만 계통분류학으로 볼 때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는 에렉투스로부터 분기했다. 이 둘은 최초 아종이었으나 점차 근연종으로 떨어져 나아간다. 최초에는 이종교배를 통해 아이를 낳았겠지만 점차 근연종으로 후손이 불임이 되는 다른 종으로 나눠진다. 진화론적으로 봤을 때 우리 양극화된 두 계층이 심화되면 이처럼 다른 종으로 현생인류도 분화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사피엔스의 과거를 보면 역시나 미래를 볼 수 있다. 활자로만 바라본 인간은 이처럼 수십 만년을 훑을 수 있고 독자로 하여금 광활하게 열린 가능성의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게도 한다. 사피엔스의 역사적 특징을 볼 때, 이들은 지독한 역마살을 갖고 태어났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분화하고 이동한다. 선사시대뿐만 아니라 중세에도 인간은 광활한 바다로 굳이 뻗어 나갔다. 지금은 더 광활한 우주로 뻗어 나간다. 이처럼 이동하고자 하는 사피엔스의 특징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알게 했고 그로 인해 네안데르탈인이 적응하지 못한 극한의 환경에도 적응하며 살아남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인지 혁명'이다. 인간은 '인지 혁명'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을 가졌다. '국가', '종교', '경제' 등 현생 인류들을 떠받들고 있는 것들은 이 인지 혁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전혀 연관 없는 '타인'과 유대관계를 갖게 할 수 있던 인지 혁명으로 인해 '문명'은 커다란 확장을 시작한다.

인간의 혁명 중에는 '인지 혁명' 그뿐만 아니라 '농업혁명'도 있다.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을 '사기'라고 규정한다. 실제로 인간은 작물생산을 시작하면서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전염병이 확산됐으며 인구가 증가한 반면 개인은 빈곤해졌다. 단일 작물을 생산하면서 영양 불균형이 일어나기도 하고 기후변화에 취약하기도 했다. 대게 안정적인 정착과 동물의 가축화로 풍요로운 발전을 했을 거라는 시각을 벗어난 것은 당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쨌건 실제로 인간은 단일 작물을 재배하고 남은 여분으로 가축을 기르며 효율적인 경제를 가졌지만 분뇨처리가 미숙하여 전염병을 만들기도 했다. 인간을 위협하던 가장 위험한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전염병'이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사피엔스' 즉 슬기로운 사람으로 분류했다. 이런 자신감은 현대 달로 인간을 보내고 화성 탐사를 하는 오늘에 와서 관용된다. 다만 전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낭떠러지를 알면서도 오늘날 역사상 최대의 탄소 배출을 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를 '슬기롭다'라고 끝까지 부를 수 있기 위해선 미래를 대하는 시선에 조금 더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도서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임에도 불구하고 장대한 분량 덕분에 청소년들이 쉽게 접하기 어렵다. '슬기로운 사피엔스 생존기'는 이를 조금 더 쉽게 풀어 설명하고 '도서'보다 '잡지'와 같은 구성을 지닌 도서다. 일러스트가 풍부한 이 도서를 통해 먼저 우리에 대해 짧은 개념을 잡고 나면 다음 우리를 바라보는 역사에 더 깊은 통찰을 청소년들이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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