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유통업에 종사했던 건 행운이었다. '잡화점'은 오만가지 생활용품을 매입, 판매한다. 판매자에게 받은 '인보이스(Invoice: 송장)'를 취급하다보면 현지인들도 모르는 물건이 수두룩했다. 성인이 되고 유학 간 외국인이 현지인에게 이름을 알려주는 짜릿함은 당시 일하는 재미 중 하나였다. 물건의 원가와 판매 방식을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재밌는 것은 '이름'을 아는 것이었다. 당시 매장에서 판매하던 제품에는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로 끈을 넣어 신는 슬리퍼인 '쪼리'가 있었다. 이 쪼리는 '플립플랍(flip-flop)'이라는 슬리퍼인데 해변에서 가볍게 신는다. 알고 있던 영어는 플립플랍(flip-flop)이다. 언젠가 여름이 되었는데, 미국인 관광객이 들어와 플립플랍(flip-flop)을 찾았다. 매장에 아직 진열되기 전이었다. 이후 상품을 들여오고 얼마 뒤, 한 뉴질랜드 백인 남성이 물었다.
"혹시 젠달있나요?(Do you have any Jandals here?)"
"젠달이요? 아니요 없는데요. (Jandal? Sorry, we don't have them.)"
대화는 끝이 나는가 싶었다. 남성은 그럴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매장을 훑어보더니 플립플랍(flip-flop)을 꺼내왔다. 그것을 젠달(Jandal)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 이상한 슬리퍼의 유래는 최초 일본에서 시작한다. 실제는 비슷한 신발은 각 문화권마다 존재했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플립플랍(flip-flop)은 일본에서 유래했다. '쪼리'라고 부르는 이 신발은 'ぞうり (조우리)'가 어원이다. 일본인들은 발가락 사이에 끈으로 연결 고정시킨 나막신을 신고 다녔다. 이 신발은 뒷부분을 고정시키지 않으므로 걸어갈 때마다 '또각 또각'소리가 난다. 이 소리를 미국인들은 플립플랍(flip-flop)이라는 의성어를 이용해 표현했다. 한국에서 일본인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쪽발이' 또한 이 신발에서 유래했다. 한국에는 왼쪽, 오른쪽처럼 갈라진 것을 쪽(side)라고 부른다. 한국인들이 보기에 일본인들의 의복 문화 중 '신발'의 형태가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발이 갈라진 이 형태를 두고 '쪽바리'라고 멸칭했다.
젠달은 Japanese sandal을 일본에서 수입하면서 생겼다. 이는 1957년부터 skellerup이라는 회사가 일본 샌달을 수입하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대일밴드'처럼 상표가 굳어져 고유명사로 사용되는 경우다. 당시 Jandal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고자 했지만 겨우 알게 된 사실은 '뉴질랜드 사투리'라는 정도였다. 가볍게 '그렇구나'하고 넘어갔던 상품의 이름에 이런 역사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백인들과 섞여 지낸 기간이 10년이 가깝다보니, 그들의 문화에서 여러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백인들이 '동양의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관점이다. 실제로 백인들은 '동양인'들에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지혜가 있을 거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동양인들의 물건에는 알 수 없는 지혜가 숨겨져 있고 그들의 식문화는 굉장히 '웰빙식'이라는 인식이 있다. 실제 '초밥(Sushi)'가 대표적인 경우다. 백인들은 초밥을 먹는 이에 대해 '건강한 식문화'를 유지하는 현대적이고 자기관리가 뛰어난 엘리트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중식이나 일식에서 어설프게 젓가락을 쥐고 먹는 행위를 품격있는 것처럼 했다. 이런 젓가락 문화는 한, 중, 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양의 문화다. 현대에 와서는 많은 서양인들의 제법 능숙하게 젓가락질을 하지만 젓가락을 사용하지만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처럼 보인다. 젓가락도 사실 각 문화마다 조금씩 다르다. 중국의 젓가락은 꽤 길고 뭉툭한 편이다. 일본은 짧고 끝이 뾰족하다. 한국은 그 길이가 중간정도 되고 끝도 약간 뭉툭하다. 아마 이것은 한중일 식문화에 따른 차이일 것이다. 대게 중국인들은 여럿이 모여 식사를 했다. 이들의 젓가락은 비교적 커다란 식탁에서 먼거리의 음식을 집기에 편리했다. 일본의 경우는 어류를 즐겼고 생선뼈를 바르기 위해 비교적 끝이 뾰족하고 예리한 젓가락이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세 국가 중 가장 젓가락 활용이 적은 편이다. 실제로 국이나 밥도 젓가락으로 먹는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는 수저를 이용하여 국과 밥을 뜬다. 중국과 일본의 젓가락은 나무를 이용해서 만든다. 반명 한국의 젓가락은 금속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김치나 젓갈 등 강한 양념을 먹는 한국인의 특성에 나무 젓가락은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합리적이다.
인간은 정착생활을 하며 '사유물품'을 소유했다. 한 번 쓰고 버리던 떠돌이 시절을 벗어나 그 자리에서 같은 물건을 사용해야 하는 정착생활에서는 물건을 조금 더 자신에게 맞게 사용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자녀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과 생각을 넘겨 주곤 한다. 부동산이 될 수도 있고 반지나 목걸이 같은 귀중품이 될 수 도 있지만, 이렇게 부모와 자식에게 넘겨주는 상하 교류 뿐만 아니라 옆 마을 혹은 옆 국가에서 넘어오는 좌우 교류도 활발하게 이어졌겠다. 상하 좌우로 자신의 물건을 넘기고 받으며 점차 그것의 활용을 자신에게 맞게 바꾼다. 마치 '맥도날드'의 '불고기버거'처럼 어느 순간, 상대의 것과 내것이 적절히 융합하면 그것은 또다른 정체성이 된다. 가장 그 시대와 그 지역의 색깔에 적합한 것들이 남고 전달되다보면 거기에는 역사와 흔적, 이야기가 남는다. 역사를 배우는 방식은 다양한다. 전쟁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 경제를 통해 배우기도 하며 대게 정치를 통해 배운다. 다만 정치는 그 시대를 온전하게 담아내기 적합하지 못하다. 현대 정치에 못마땅한 현대인들은 얼마든지 있으며 그런 다수가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소수보다 훨씬 많다. 다수의 역사는 이처럼 정치, 경제의 거시적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물건처럼 사소하지만 다수가 쓰고 남긴 흔적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모든 것은 사실 연결되어 있다. 거시적 역사와 미시적 역사도 따지고보면 모두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역사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과정도 역사와 이야기를 즐기는 하나의 포인트가 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