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 래빗홀 YA
추정경 지음 / 래빗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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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를 읽었다. 그때에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 고양이가 되어 '인간'을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고양이 눈에 보여지는 '인간'은 어떨까. '눈'이라는 것은 우리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각이 있다. 너와 내가 모두 존재하듯, 그들도 존재한다.

어느 빌런이 우주선을 타고 사람들을 해치는 '영화'나 '소설'을 보면 그렇다.

'빌런이 지구를 공격하는 것은 지극히 지구를 위한 일이다.'

인간은 '지구'를 자신과 동일시 한다. 다만 인간은 지구의 대표가 아니다. 실제 '지구 온난화'로 피해를 입는 것은 '지구'가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가장큰 피해를 걱정하는 것은 '인간'일 뿐이다. 따뜻해진 지구에는 많은 생물종이 사라지겠지만, 더 많은 종이 생존할 수도 있다.

장난삼아 개미집을 부수거나 숲에 있는 벌집에 화염방사기로 불태우는 일은 우주 빌런이 지구를 침공한 것만큼이나 개미와 벌에게도 재앙이다.

'저 빌런'은 사실 어쩌면 지구를 지키기 위해 '히어로'와 대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예시다. 분명한 것은 이 땅에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인인듯 하지만 인간이 이땅에 들어선 것은 비교적 최근에 가깝다.

농작물을 망치는 '맷돼지'는 2000만년전 부터 존재했다. 기껏해봐야 200만년이 고작되는 '인간'이 '어디 내 땅에 들어와!'라며 총을 쏘는 행위는 여러 각도로 볼 수 있다.

소설은 '천년집사'에 관한 소개를 먼저 한다. 천년집사는 전설처럼 내려 오는 이야기다. 천 년에 한번, 고양이들이 자신들의 고통과 비밀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를 찾아 나선다는 설정이다.

주인공 고덕은 형사다. 범죄와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 다만 우연히 죽어가는 새끼 고양이를 구하려다 고양이들의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 소재가 독특했다. '해리포터'를 보면 뱀과 해리가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고양이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장면과는 꽤 다른 서사다. 이 능력은 고덕을 고양이의 세계로 이끈다. 동시에 고덕은 자신이 평소 보지 못했던 인간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

소설의 장점이라면 시선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은 '본인'이라고 특정한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밖에 살지 못한다. 이 단점은 스스로를 독단적인 인물로 만든다. 다만 소설을 읽을 때, 남성은 여성이 될수도 있고, 여성은 남성이 될수도 있다. 또한 전지적인 시점에서 신이 되기도 하고, 제3의 시선도 갖게 된다.

'지구의 수많은 종'을 대표하는 우주 '빌런'과 '지구파괴'의 주동자 '인간'을 대표 '히어로'의 싸움에서 누구를 지지하는가. 시선의 확장은 이처럼 같은 장면을 보고도 시선을 다르게 만든다.

슈퍼맨, 아이언맨, 스파이더맨이 지구의 평화를 지키고 이렇게 살려진 '인간'은 매 세끼마다 새로운 생명을 접시에 올린다. 엄청난 탄소배출을 일으키고 쓰레기를 버리며 더 많은 생명을 취하고 앗아간다.

알을 깨자마자 갓 태어난 병아리의 암수를 분리하여 한 쪽을 분쇄기에 바로 갈아버린다. 다른 한쪽은 얼굴과 엉덩이만 뚫린 장소에 밀어 넣고 알만 낳도록 한다. 그 효용이 끝나면 뜨거운 물에 담궈 털을 뽑고 식물을 담근 끓는 물에 살갖을 데워 찢어먹어 버린다. 이 잔혹성을 간단히 풀기만 해도 사악한 악마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지극히 인간의 시점으로 맛있는 요리일뿐이다.

예전에 한 일본인이 '100일 후에 먹히는 돼지'라는 영상을 올린 적 있다. '카루비'라는 한국식 이름을 짓고 100일 간 산책도 하고 애정을 쏟는다. 다만 이 애완 돼지는 100일 뒤에 잡아 먹힐 예정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불과 몇 시간 전, 몇 일 전 혹은 방금 전까지 맛있는 식사 메뉴로 '이름 모를 돼지'를 먹고서 유튜브를 비난했다. '가여운 돼지'를 잡아먹는 야만적인 행위를 즉각 멈추라고 말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사랑'을 주고, 이름을 준다는 행위는 '신의 권력'과 같다. 인간의 '사랑'과 '이름'을 부여 받은 돼지는 '죽지 않을 수 있는 정당성'을 일부 부여 받은 것이다. 인간은 어떤 대상은 가엽게 여기고, 어떤 같은 대상은 무심하게 여기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고양이들은 고덕에게 도와달라 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을 고백하면서 선택의 여지를 남긴다. 천년 집사의 과정이 단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천년 집사는 생명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소설은 단순 판타지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생명'이라는 주제는 꽤 복잡하다. 언젠가 TV에서 인간이 '소'와 '돼지'를 먹는 것에 대한 '당위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익숙해진 관습과 사고방식으로 우리는 '생명'을 경시하는 시선을 얻게 됐다. '돼지'라면 살갖이 썰려서 마트 진열대 위에 놓여 있어야하고 같은 건물에는 귀엽게 생긴 살아 있는 동물이 주인을 기다린다. 인간이 선별적으로 '필요'에 의해 살리고 죽이고 먹이고 사랑한다.

우리의 삶은 어쨌건 어떤 다른 생명을 취한, 그 위에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은 언제나 '모순'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생명의 존엄을 해하며 생존하고 있지만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자각을 언제나 해야한다. 제3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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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기 전에 공부정서를 키워야 합니다
김선호 지음 / 길벗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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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피터슨'의 '열두 가지 인생의 법칙'을 보면 '훈육'에 관해 나온다. 교수는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적당한 훈육과 체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폭력적 체벌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체벌'과 '훈육'은 필수라고 말한다. 사랑을 핑계로 훈육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부모로써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한 권의 책에서 한 줄의 문장만 건질 수 있어도 그 책은 좋은 책이다. '열두 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솔직히 다른 부분은 기억 나질 않는다. 언급한 그 부분이 꽤 충격적이었다.

왜 그런가.

당연한 '본질'을 말해서 그렇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인정할 수 없는 사회분위기에 대한 인지부조화 때문이다.

본질에 대한 확신이 덜 할수록 획기적인 방법을 찾는다. 본질을 두고 본질보다 더 빠르고 쉬운 방법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모두가 안다.

그것이 본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면, 건강한 식습관, 규칙적인 운동,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하다.

좋은 성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과서 위주의 예습 복습, 분명한 목표 의식, 엉덩이를 붙이고 오랫동안 앉아 있을 만한 인내력. 그것이 중요하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근검절약, 자기계발을 통한 능력 향상, 좋은 투자처를 향한 꾸준한 장기투자. 그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우리는 '더 획기적인 방법'을 찾는다. 더 획기적이고 빠르고 쉬운 방법. 그런 것들은 실제로 더 문명화 된 사회를 만들었고 더 고도화 된 기술을 발면하긴 했으나 육아, 건강, 공부 따위에 갖다 붙일 수는 없다.

그것은 계발에 해당하는데, 계발은 지속, 빈번, 반복이라는 꽤 고전적인 방법이 정답일 뿐이다.

'지켜야 할 본질적 핵심'이 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획기적인 방법으로, 혁신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역사'와 '성공 신화들'을 보며 우리는 기존 방법에 회의감을 느낀다.

더 빠르게 달성할 수 있는 것들을 찾다보니 본질이 흔들린다. '훈육'과 '체벌'하지말라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아이는 건강하게 자란다고 믿는다. 그 과정에 부모는 자책과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가 가질 상처를 무기로 '부모'가 자책하면 그것은 아이에게 좋은 일인가.

솔직히 아이를 키우며 목소리 키우지 않을 수 없다. 간혹 육아를 해보지 않은 '전문가'들이 혹은 자신의 육아에서도 달성하지 못했던 전문가들이 '부모'들의 죄책감을 유도한다.

혹여라도 목소리가 커진다면 '내가 왜 그랬을까'하며 자책을 한다. 그것은 '보육자'로써 자기 확신이 떨어지는 목소리다. 자기 확신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더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

부모는 원칙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잘못했을 때, 단호한 원칙을 기준하는 것이다.

그것이 본질이다.

'좋은 부모'라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다수의 부모가 아이를 방관한다.

사랑과 공감과 이해.

말은 좋다.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물건을 훔친 아이에게 '우리 아이가 물건을 훔치고 싶었구나.'하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차도 위에서 노는 아이에게 덤프트럭이 달려오고 있다면 아이를 걷어차서라도 일단 차도에서 구해내야 한다. 그 위급한 상황에 사랑의 눈빛과 다정다감한 목소리는 필요없다.

김선호 작가의 '늦기 전에 공부 정서를 키워야 합니다'에는 '조던 피터스'와 같은 아주 현실적인 조언이 담겨 있다. 고로 속이 후련하다. 모두가 알지만 그렇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적혀 있다.

솔직히 우리는 신화를 기대한다.

선행학습 없이 '서울대'에 입학한 아이, 스스로 좋은 대학에 입학한 이야기 등 그렇다.

그러나 현실을 바라보면 그렇지 않다.

실제로 국영수 과목에서 1등급 비율이 높은 아이들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고 사교육 참여율도 높다. 선행 비율도 상당하다. 이들의 대부분은 '선행학습'을 통해 이미 초등시절에 두각을 나타내고 초등에 두각이 나타난 아이들은 중등, 고등에서 여지없이 더 승승장구한다.

미디어는 꼴등이 1등으로 졸업한 이야기, 사교육 없이 명문대에 입학한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다만 '통계'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현실 데이터와 통계는 이상적인 동화를 부정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과정을 선행한 이들은 이미 차별화된 학습환경을 누린다. 단순 개인의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다. 이런 이야기를 누구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 뻔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로 작가, PD, 프로듀서들은 '팔릴만한 이야기'를 싣는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진리란 부정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작동하는 것이다. 믿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막대한 '학습량'은 어린시절부터 수반되야 한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에서 중학교부터 스마트폰을 뺏고 성적을 만들어내라는 요구를 가 당황한 요구다.

과도한 욕심은 지양해야 한다. 다만 기본에 충실히 인내심을 가지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이기지 못한다. 인간의 육아는 다른 동물과 다르다. 육아는 사람을 기르는 일이다. 하나의 인간을 기르기 위해서는 '기를 육' 여섯이 필요하다.

지식과 학문을 가르치는 교육

도덕과 윤리를 심어주는 덕육

건강한 신체를 기르는 체육

풍요로운 정서를 기르는 심육

세상의 아름다움을 탐미할 수 있는 미육

타인과 어울리고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사회육이다.

고로

'공부 안해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는 균형적인 육아가 아니다.

육아는 사람을 고르게 성장시키는 일이다. 학문을 기르기 위해 정서를 망쳐서도 안되고, 정서를 기르기 위해 학문을 망쳐서도 안도니다.

균형적인 육아를 위해서는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기르려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체로 그것은 '요령'이 아니라 쌓이는 하루 하루의 일상, 즉 본질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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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1 스토리콜렉터 114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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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레 노이하우스'라면 독일 대표적인 범죄 소설 작가다. 그녀의 이름이 익숙한 이유는 이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라는 소설이 꽤 성공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독일책'이 어렵고 딱딱할 것이라는 편견을 깬 작가다. 독일스럽지 않게 문체가 아름답고 섬세하다. 그녀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체는 여성 작가로서의 섬세한 관점 덕분일지 모른다. 또한 법학, 역사학, 독문학을 전공한 그녀의 배경도 한 못햇을 것이다.

그녀는 광고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미스터리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자비 출판으로 출간을 시작했으나 타우누스 시리즈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타우누스 시리즈'는 '해리포터 시리즈'와 경쟁하면서도 꽤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스릴러'라는 비인기 장르에서 이룬 쾌거라 꽤 의미가 있다.

'타우누스 시리즈'는 독일 타우누스 지방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이 시리즈는 형사 피아 키르히호프와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넬레 노이하우스' 뿐만 아니라 '추리 스릴러' 작가들은 이처럼 '배경과 인물'을 고정하고 시리즈물로 내는 경우가 많은데 독자들에게 익숙함과 연속성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외국 소설을 읽다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지명과 사람 이름 때문에 소설 진입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독일 소설 역시 주인공의 이름, 오죽하면 작가의 이름도 생소하고 어려운데 '타우누스 시리즈'도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 그녀의 소설을 읽었던 이들은 조금 더 작품을 읽는데 안정감이 있을 것이다.

'타우누스 지방'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이곳은 독일 특유의 풍광과 서사를 담아내는 장소다. 이 배경적 특징은 소설과 사건의 전개를 더 깊이 있게 만든다. 타우누스 지방은 짙은 안개가 잦은 고즈넉한 마을이다. 이런 분위기가 사건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특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서 어두운 숲은 단순한 무대 이상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공간처럼 그려진다.

피아와 올리버라는 인물 역식 단순한 형사가 아니다. 이 두 사람은 꽤 인간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고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이 이 시리즈를 더욱 몰입감 있도록 한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몬스터'는 '사적 제재'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있다. '사적 제재'라면 현대 우리 사회에서 적잖게 들을 수 있다. 법망에 어긋나지 않으며 '도덕적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중은 '사법기관'의 미온한 처벌에 불만을 가지고 흔히 말하는 '사이다식 결말'을 원한다.

소설은 16세 소녀인 리시 뵐레펠트의 실종신고로 시작한다. 누군가 시신을 봤다는 신고가 들어오며 사건은 도입부터 강결하게 독자를 끌어당긴다. 피아와 올리버는 사건 현장으로 출동하지만 실종된 소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사건은 단순 실종 사건이 아니다. 이에 뒤따르는 연속적인 실종과 폭로가 이어진다.

수사가 점차 사적 제재에 관한 이야기로 빠지기 시작한다. 최근에 읽었던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나, 최근 봤던 '모범택시'라는 드라마가 떠오른다. 더 나아가 '인문서인 정의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한다.

사건이 진실에 가까워지면서 점차 법이 무력화된 사회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플롯은 등장인물 뿐만 아니라 독자인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할 꺼리를 준다. 소설은 14일간의 미스터리로 엮이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데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의문'이 들었던 '몬스터'라는 소설의 제목이 단순한 '괴생명체'가 아님을 알게 된다. '악'이란 특별하거나 극단적이지 않다. 악은 우리가 매일 스치는 얼굴 속에서도, 익숙한 제도와 관습 뒤에서도 숨어 있을 수 있다. 누군가의 친절함 뒤에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도, 사회라는 시스템 속에서도 언제나 존재한다. 결국 소설을 읽으면서도 악의 평범성에 대해 여러번 생각하게 된다.

소설, 몰입감있고 꽤 재밌게 읽힌다. 분량이 조금 많다고 생각 될수도 있다. 다만 주말 동안 몰입해서 읽으면 단순히 스릴러 이상의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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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옷을 입은 자들
최석규 지음 / 문학수첩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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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규 작가'의 소설은 나의 취향에 꼭 맞아 떨어지는 모양이다. '왜 이렇게 글을 잘쓰지.', '왜 이렇게 낯익지?'해서 찾아봤더니, 4년 전 '최석규' 작가의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읽고 '극찬'했던 기록이 나왔다.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단편 소설집'이었는데 소설 전개할 때, 사용하는 표현,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직업'과 '소재'가 '툭,툭' 던져진다.

도서리뷰에 좋다, 나쁘다,하는 가치판단을 잘 내리지 않으려는 편인데, 지난 도서리뷰 도입부터 '감탄' 일색이라 '작가 이름'을 몇번이나 되새겼다.

'최석규', '최석규', '최석규'

자, 그렇다면 이번에는 왜 검은 옷이 었을까.

'최석규'라는 이름과 연결시켜 볼 때, '검은 옷'이라는 제목은 소설의 가장 큰 복선이다.

소설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전혀 감을 잡지 못할 만한 주제다.

소설은 묵자 철학을 기반으로 한다. 선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동양 철학, 그중에서도 '묵자'라니,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가 없다. '묵자'라면 공자나 맹자에 비해 그 알려짐이 덜하다. 그러나 소설은 초반부터 '묵자'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한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철학 이야기를 늘어 놓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소설의 배경은 '대한민국'이며 시대는 '현대'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 스릴러의 소재가 '묵자'라니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가 없다.

자, 그렇다면 묵자는 누구인가.

묵자는 고대 중국의 사상가다. 묵자는 '동양의 예수'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묵자'가 '예수'보다 400살이나 많다. 묵자가 '동양의 예수'라고 불린 이유는 기독교 철학과 그 사상이 비슷한 면이 있어서 그렇다. 묵자는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라는 '겸애'와 '평화'를 강조한 '비공'의 사상을 설파했다. 그의 가르침은 인간 간의 평등과 공정을 바탕으로 한다.

묵자의 '묵'이 '묵'이라는 이름을 가진데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개중 얼굴이 검다, 하여 '묵'을 썼다는 이야기가 유력하다. 묵자는 정황상 높은 신분의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철학과 사상은 민중 중심적이며, 현실적 문제 해결에 초섬을 두었다. 그는 공자의 '예' 중심 철학과 달리, 실질적이고 실천적 가르침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의미에서 '검은 옷'은 단순한 상징적 장치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묵자 철학을 따르는 조직원들의 의지와 신념을 나타낸다.

소설은 꽤 현실적인 이야기와 '오컬트적' 요소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전개된다. 묵자는 공자나 맹자와 달리 '귀신'에 대한 언급을 피하지 않았다. 묵자는 귀신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행동을 촉구한다. 사람들이 도덕을 지키면 귀신이 복을 내리고, 악행을 저지르면 벌은 준다고 설면한다. 소설은 이러한 묵자 사상을 '굉장히' 현대적인 방식으로 설명한다.

'권선징악'

누구나 믿고 따르고자 하지만 살면서 적잖게 의심하는 결론을 '묵자'의 철학을 대신한 수행자들의 활동으로 설명한다. 묵자의 철학은 '권선징악'으로 간단하게 요약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주장한 선행은 단순히 개인적 미덕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사회적 평등과 집단적 조화를 통해 모든 인간이 서로를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제자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집단적 선을 신청하고자 했으며 소설에 등장하는 '수행자'들은 이 철학을 근간으로 움직인다. 이를 현대적 방식으로 해석하기 위해 작가는 과학적 지식과 논리적 설득력을 만들애 냈다.

개인적으로 '오컬트적 소재'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작가의 필력이 이끌려 후반부까지 읽게 된다. 후반부가 되서는 '오컬트적 요소'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해소함으로 현실적인 요소로 돌아온다.

소설이 군더더기가 없어 쉽고 빠르게 읽히며 앞선 복선들이 하나 둘 제자리를 맞춰가며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이어진다.

흥미로운 소재, 적잖게 등장하는 인문학적 배경 지식

완전히 취향 저격이다.

최근 '제자백가 사상'에 대한 글을 읽었던 적이 있어서 더 흥미롭게 읽혔다. 이런 '작가'는 독자를 위해 반드시 '다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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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식 영단어 초등 3~4학년 초등 경선식 영단어
경선식 지음 / 경선식에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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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식 영단어.

단어책으로는 굉장히 유명하다.

나를 보자면 '경선식 영단어'로 공부하진 않았다. 다만 아이들의 영어 교재로 '경선식 영단어'를 선택했다. 파닉스도 아니고 '경선식 영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우연히 서점에서 단어장을 뒤적거리다가 '경선식 영단어'를 집었다. '휘리릭' 페이지를 넘기다가 Approach'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Approach, '앞으로 췩~' 접근하다.

'피식'하고 넘어갔다. 그 일은 20년도 넘었지만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앞으로 췩~' 접근하다라니...

단점은 당연히 존재한다. '발음'이 문제다. Approach는 실제로 '어프뤄취'에 가깝다.

경선식 영단어 책을 보던 아이에게도 발음상 오류가 생겼다. Bull(황소)는 '뿔'이라고 적혀 있다. 아이가 'Bull'을 보며 '뿔'이라고 발음한다.

'어엇?'

영상을 찾아봤다. '경선식 선생님'이 발음을 교정한다.

음...

그것만은 아니다 'Bull'을 보고 아이는 '황소'가 아닌 '뿔'을 기억했다. 단점이긴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공부법이 재밌다는 사실이다.

물론 멋진 영국, 미국식 발음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어휘'가 첫인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언어를 배울 때는 모국어 조차 불완전한 발음으로 시작한다. 이후 차츰 비슷한 단어에 노출되며 교정된다. 경선식 영단어로 시작은 했으나 팝송이나 영화, 유튜브 등에서 아마 비슷한 단어를 많이 접할 가능성이 크다.

이 방법의 다른 가장 좋은 점이라면 '소리'로 배운다는 것이다. 소리로 배운 언어는 이후 '표음문자'의 원리만 파악하면 대략 쓰고 읽을 수 있게 된다. 애초에 언어에서 '소리'가 먼저 발생하고, '문자'는 최근에 발명됐다.

초등 경선식 영단어는 기껏해봐야 40일 완성이다. 길게 끌어도 한달 반이면 완성한다. 즉, 1년 동안 6번은 반복할 수 있다. 다음 1년 간 발음교정이 가능하다. 또한 다양한 예문을 이후에 익혀도 전혀 늦지 않다.

공부의 기본은 '일단 하는 것'이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잘못된 공부법'으로 공부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애초에 공부 자체를 안하기 때문이다.

방법은 상관없다.

일단 자주보고 많이보고 흥미를 갖는 것이 최고다.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혹은 '운동을 해야 하는가'

바보같은 질문이다.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좋은 음식도 먹고 운동도 해야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좋은 자세를 유지하거나, 수면 시간을 지키는 일, 건강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것도 포함된다.

즉, '건강해지고 싶다'는 '바람'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을 잠재적으로 의식하면 모든 방법을 스스로 찾는다.

어원으로 공부하면 좋다. 듣는 것이 먼저다. 많이 쓰는 것이 좋다. 많이 읽는 것이 좋다. 연상법이 좋다. 그런 것과는 별개다. 뭐든 시작하는게 최고다.

어느 정도하게 잘 아는 수준까지만 오면 잘하고 싶어진다. 원래 사람은 잘아는 주제가 나오면 입이 근질근질해진다. 말하고 싶어 안달난다. 그러한 주제를 좋아한다. 그러한 주제를 좋아하면 더 잘 알게 되고 잘하고 싶어진다. 그러면 입이 또 근질 근질해진다. 선순환이 작용된다. 잘하고 싶어지면 방법은 알아서 찾는다. 잘못된 방법으로 하고 있더라도 스스로 교정하게 된다.

예전에 '찍먹'이나 '부먹'이냐,에 대한 논란에 한 코미디언 문세윤님이 말했다.

고민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먹어라.

맞다.

어떻게 외워야 할지, 스스로 방법이 맞는지 고민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보는게 최고다. 그냥 앉아서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습을 한다는 '습관'만 챙겨가도 만족이다.

아이는 학교 가기 전에 5분동안 10개의 단어를 외우고 학교를 갔다.

경선식 영단어 후기를 찾아봤다. '우려스러움'이 많았다.

그들의 우려는 비슷했다.

글들을 쭉 살펴보다가 '내가 감내할 수 있겠다.' 결론이 나고 '경선식 영단어 수강 신청'을 결제했다. 시작이 반이다.

Start now Get perfet later.

일단 시작하고 나중에 완성시켜라.

정말 시작이 반이다. 일단 시작을 하고 천천히 완성해 나가면 된다.

발음은 교정해주면 된다. 개인적으로 '미국식', '영국식'으로 나눠지는 '발음'에 대한 환상이 없다.

해외에서 10년 간 일하면서 '한국식 발음'으로도 규모가 큰 사업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을 많이 봤다. 인도인들 대부분은 인도식 발음으로 비즈니스를 했고 세계적 그룹의 리더가 되기도 한다. 중국인들 대부분은 중국식 발음으로 하고 마찬가지다. 마윈만 보더라도 중국식 발음이지만 당당하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발음의 문제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중요한 건 언어 자체가 아니다.

언어가 담고 있는 문화, 역사, 컨텐츠다.

좌로 가나, 우로 가나 크게 보면 다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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