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수익률을 높여라 - 성공적인 자녀교육과 자기계발을 위한 교육투자 가이드
박경인.권준모 지음 / 크리에이티브탱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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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투자와 같이 해야 한다.

'주식 투자'라는 말이 세속적으로 들릴 수 있지겠만 우리네 '교육'도 주식투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저평가 우량주를 선택하고 자신의 철학대로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문이나 기타 정보에 흔들리지 않으며 진득하니 시간과 자본, 정성을 투여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박영옥 대표'를 가장 좋아한다. 흔히 '주식농부'라고 불려지는 인물인데, 단순히 '주식' 분야가 아니라도 배울 부분이 충분히 있다. 그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키워드는 '농부'라는 키워드다. 농부는 단기 수확을 원하지 않는다. 실제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보면 가장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여유다. 마치 씨를 뿌리고 농산물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기다림이 필수적이다.

감정적으로, 분위상 휩쓸려서, 혹은 불안으로 따라가는 일은 주식이나 교육에서나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이 두 분야 모두에 감정이 아니라 '전략'이 필요하고 '희망'보다는 '분석'이 중요하다.

지난 10년간 3,000명이 넘는 학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시간 대비 성과나 비용 대비 효과, 정서적인 안정감, 자기주도적 학습 가능성까지 포함하여 ROI, 즉 교육 투자 수익률 개념을 도입했다. 투자대비 적정한 교육 수익을 우리는 만들어 내고 있는가.

결과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첫째, 사교육비 대비 성과가 크지 않다.

둘째, 과목 선택과 시기, 방법에 따라 수익률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셋째, 자기주도 학습과 독서습관이 고비용 사교육보다 장기 수익률이 더 높다.

전설적인 투자자 '피터린치'는 '사명이 지루한 회사의 주식을 사모으라'고 말한 바 있다.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서 당췌 뭐하는 회사인지 알 수 없는 회사를 피하라는 의미다. 이 말은 '성명학'에 기초를 두고 한 이야기가 아니다. 본질과 정체성이 명확한 회사에 투자하라는 의미다.

쉽게 말해 공부의 본질은 '자기주도'고 학습의 기본은 '문자'이다. 즉 책을 읽는 일을 피하면서 학습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신기술, 휘향찬란한 학습법 따위는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한 마케팅 술수일 가능성이 높다.

업종의 기술과 상품이 아니라, 빈껍데기 주식이나 비싼 가격에 되팔려는 '마케팅'처럼 우리 교육에도 거품 가득한 마케팅 술수가 있다.

2021년 부터 2023년 서울과 분당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룹을 둘로 나눠 월 사교육비가 150만원 이상인 그룹과 30만원 이하의 그룹을 비교한 것이다. 다만 후자의 경우에는 매일 30분씩 독서를 하는 그룹이었다. 그 결과 1년 뒤에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에서의 차이는 전혀 없었고 되려 30만원의 사교육과 독서를 하는 그룹의 스트레스 지수와 자존감 지수가 고가의 사교육을 하는 그룹에 비해 긍정적이었다.

그렇다고 우리의 사교육의 별의미가 없냐,하면 그렇진 않다. 사교육 쪽의 성과는 없는 쪽에 비해 우세한 편이다. 다만 중요한 바는 '투자대비' '효용'이다. 오르긴 오르되, 투자대비 오른 값이 의미있는 차이가 아니라는 의미다. 또한 눈에 띄는 결과는 '독서'다. 나이가 어릴수록 국영수보다 독서와 신체활동의 영향이 더 컸다. 독서량 상위 10%와 하위 10%의 국어, 수학 점수는 중학교 1학년 기준으로 평균 180%나 차이가 났다. 그리고 이 차이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줄어들지 않았다. 되려 더 벌어지는 편이었다.

대부분의 학업 능력 격차는 초등 고학년부터 시작한다. 이는 학습 습관에 의해 좌우된다. 다시 말해서, 학습의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투자한 시간이 주요하며, 이는 사교육으로 인한 시간이나 스스로 학습 시간을 가져 얻게 되는 시간이나 매한가지라는 의미다.

과목별로도 접근 전략이 다르다. 수학의 경우에는 '선행학습'이 성과에 영향을 주는 편이다. 영어는 '누적 노출 빈도'가 더 중요하다. 누적 빈도와 노출 시간은 짧은 시간에 집중될수록 성과가 있었다.

대개 이런 류의 책을 보면, 듣기 좋은 이야기가 많은 편인데, 이 책의 경우에는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여러 측면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윌라오디오북'을 통해 들어서 독서 간 메모를 하지 못하여 다양한 예시를 들지는 못하지만 분명 재독이 필요한 책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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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 - 도전과 모험을 앞둔 당신에게
김재철 지음 / 콜라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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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가다가 강력한 태풍이 불면 사람들은 선원들이 파도를 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선원들은 파도가 아니라 선장의 얼굴을 본다. 선장의 표정에서 자신감과 담담함이 읽히면 선원들은 두려움을 억누르고 지시에 따른다. 그렇게 배는 폭풍권을 빠져나간다.

리더란 그런 것이라 여겨진다. 어떤 상황에서 리더가 되면 실제로 적잖게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리더의 눈에서 보여지는 담담함과 표정에서의 여유는 사실 굉장한 삶의 무게가 중심을 꾹 하고 누르고 있을 때 생긴다. 내면에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는 의미다. 오케스트라가 조화롭게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지휘자의 지휘에 있듯, 리더의 역량은 겉에서 풍겨지는 기품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그런 기품은 어디서 출발하는 걸까. 모르긴 몰라도 그 여유로움이란 '여유로운 삶'에서 나오는 바는 아니다. 떨고 있는 아이에게, '떨지마. 사실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은 그 공포를 넘어섰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리더'는 가장 먼저 위기를 맞이해 본, 혹은 다양한 견문으로 넓어진 통찰에서 나오는 지 모른다.

시력이 나쁜 사람이 바로 앞 평탄길도 더듬어 가듯,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때는 비록 그 길이 탄탄대로라고 하더라도 불안투성이다. 다만 처음 딛는 길이라 하더라도 조금 더 넒은 시야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비탈길이라도 그저 걸어 나갈만 한 길일 뿐이다.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태어난 김재철은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비록 농고를 졸업했지만 '서울대'를 입학할 성적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수산대 어로학과'를 서낵한다. 특별한 경력도 스펙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원양 어선에 무급 실습 향해사로 승선한다. 당시만 해도 원양어선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돈을 받기는커녕, 살아서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값진 일이었따.

김재철은 무급 향해사로 시작했다. 일을 배우며 파도에 시달렸다.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바다는 잔인했고 그러나 그는 끝내 그것을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됐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선장이 된다. 다시 선장을 넘어 선단장이 된다. 배 한 척이 아니라, 배 여러 척을 지위하는 책임자가 됐다는 말이다. 사람의 뇌는 학습을 통해 단련되고 사람의 심장은 고난을 통해 단련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학습을 통해 뇌를 단련하고 고난을 통해 심장을 단련한다. 고난이라는 것이 '훈련'으로 '성장'의 도구로 여긴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성공 스토리 인물들과 사고방식이 같다.

1969년, 김재철은 동원산업을 설립한다. 그리고 남들이 가지 않는 원양어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말하기를 '쉬운 길'에는 '유능한 경쟁자'들이 몰리는 법이란다. 그렇다. 인간이라면 '쉬운 길'과 '어려운 길' 중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대부분 '쉬운 길'을 택하고, 개중 경쟁에 자신 있는 유능한 자가 그 '쉬운 길'의 승자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장기적으로 누구나 가는 길에는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는다. 그의 고민은 길지 않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단어는 '나중'이고, 가장 생산적인 단어는 '지금'이다.

어업을 한마디로 말하면 석유를 바다로 싣고 나가 물고기로 바꿔 오는 것이다. '단순히 물고기를 많이 잡야아 한다.'는 어업인으로의 마인드가 아니라 석유 공급에 대한 고민을 그는 한다. 당연히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기에 행동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니 결과가 다르다.

2008년까지 동원은 스타키스트라는 미국 브랜드에 참치를 납품했었다. 이는 세계 최대 참치 브랜드였다. 2008년 그는 과감히 자신이 납품하던 회사를 인수해버린다. 당시 스타키스트는 미국 시장을 넘어 세계 참치 시장을 지배하던 브랜드였다. 그 거대한 회사를 한국의 동원이 삼킨 것이다. 현재 이 브랜드는 동원의 계열사 중 하나가 되었다.

바다를 보는 눈은 국강을 가리지 않는다. 과거 바다를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곤 했다. 실제로 바다를 지배하는 국가들은 국경과 산업의 벽을 넘어섰다. 이후 동원은 수산업 이외에도 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 다양한 길을 모색한다.

2003년에는 한국투자금융을 인수하고 이후 한국투자증권으로 재탄생했다. 뿐만아니라, 성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카메라 산업'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 분야에 도전한다.

그가 과거 수산대에 입학하기 전, '서울대'를 포기하고 '수산대'를 입학할 만큼 안정적인 선택과는 거리가 먼 선택을 한다. 그의 선택은 모두가 성공적인 것은 아니였디만 꾸준하게 도전하고 실패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젊음은 저축되지 않는다. 젊은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매순간 소비하고 사라져 버린다. 고로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그 본질이 아니다.

그의 삶을 보면, '애지중지 안정적으로 살고자 하는 우리네 삶이 때로는 더 불안하고 위태로워질 때가 있다. 사업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불어오는 파도가 아니다. 우리는 밖이 아니라 중심을 잡아 줄 선장의 얼굴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어떠한 얼굴을 하고 살아가는 가는 때로 우리 스스로를 높은 파고에서도 안전하게 항해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도록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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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과학동아 2024.11 - The NOBEL PRIZE 과학동아 467
과학동아 편집부 / 동아사이언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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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집중하여 글을 읽기 어렵다.

수면 부족인가...

자는 시간은 대략 새벽 한 두시 정도 되는데, 아이들이 일어나는 시간이 5시 50분이다보니, 함께 일어난다. 수면시간이 4시간 밖에 되지 않는 듯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아이들 수학과 한자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책을 편다.

짧은 시간에 뭔가를 몰입하여 읽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다. 숙제하는 아이들의 집중력이 워낙 짧기 때문이다. 대략 5분 단위로 무언가 이벤트가 일어난다. 거실 식탁에 앉아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가 무릎에 앉았다가, 어떤 경우에는 자리를 비키라고 아우성이다.

그 정신없는 사이에는 '소설'을 읽기도 애매하고, 인문서적을 읽기는 더 애매하다. 다만 아침에 무언가를 읽는 가정 문화를 만들기 위해, 그럼에도 꾸준하게 책을 펴 앉는다.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 '독서'를 함께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

아이를 위해서..., 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그런 루틴을 가지고 싶어서 그렇다. 조용히 아침에 책을 읽으며 간단한 식사를 하고 싶다.

아무튼 집중하지 않고 무언가를 가볍게 볼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그러다 '네이버 시리즈'에서 '데스노트'를 구입했다. 아이패드로 한참을 봤다. 재미있다. 그러나 어쩐지 아이패드를 바라보는 모습이 '독서' 같지 않다. 눈도 피로하고 꽤 다른 유혹이 쉽게 온다. 그런 이유로 '컬러 이북'을 샀다. 그러나 얼마 보다가 그냥 중고로 처분했다. 독서의 느낌이 들지는 않아서 그렇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잡지'는 어떨까..., 하여 '동아사이언스'의 '과학동아'를 찾게 됐다. 구성이 어떤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네이버에 '과학 동아'를 검색했다. 그랬더니, '어린이 수학동아, 어린이 과학동아, 과학동아'를 샘플로 한 권씩 받을 수 있단다. 일단 신청했다.

본래 '과학'을 좋아하다보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읽는 책이 과학에 관한 책이 많았다. 사진이나 글이 많은 책을 읽다보니, 아이들이 슬슬 아빠 책에 관심을 갖는다. '해부학'에 관한 책, 바다 생물에 관한 책, 우주에 관한 책 등.

사진과 그림이 많은 책들은 아이들이 가끔 꺼내 본다. 비슷한 책을 서로 읽게 되니, 꽤 공감대가 생긴다. 어떤 경우에는 책에서 본 내용을 이야기 하는데, '그런 게 있었던가...' 할 때가 있다.

'과학동아 샘플'이 배송되는 중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중고 잡지를 구매했다. 대략 4년은 지난 잡지들이다... 그냥 뭐 펄럭 펄럭, 넘겨 보기 좋다.

개인적으로 과학동아나 기타 과학잡지들, 꽤 마음에 든다.

아이들이 관심이 없어 한다면 그냥 '과학동아'만 구독할까 생각 중이다.

왜 지금에서야 이 생각이 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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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마음이 불편해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2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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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술가가 있었다. 그는 공을 들여 예술작품을 만들곤 했다. 어느날, 갑작스러운 홍수가 와서 그가 만들었던 모든 작품이 망가져 버렸다. 그는 깊이 낙담했다. 이 일로 법륜스님을 찾아간 그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때 법륜 스님이 답했다.

"개가 내 똥을 먹는다고 아깝습니까?"

"아니요"

"왜 아깝지 않습니까. 내가 열심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열심히 소화한 끝에 나온 똥인데요."

'똥을 개가 먹든, 밭에 뿌려지든,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모든 필요한 양분을 취했으니까요. 고로 똥을 개가 먹어 치우든 길가에 버려지든 전혀 아깝지 않은 겁니다.

다만 기왕지사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적어도 개천에 흘러들어가 주변을 모두 오염시키느니, 개라도 먹어 쓰임이 있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밭에 뿌려지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면 더 좋겠지요.'

'결과물'이라면 '똥'과 같다. '결과'를 '과정'에 대한 '결실'로 받아 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결과'에 연연하게 된다. 이런 집착은 '결과'를 위해서 '수단'이나 '과정'이 정당화 하도록 한다. 그러나 과정에서 모든 양분을 취한다면 결과는 어떤 의미에서 똥과 같다. 모든 양분을 취하고 남은 찌꺼기일 뿐이다.

생각할꺼리가 많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에 연연해 하는 일이 나에게도 적지 않았다. 결과라고 한다면 '재산', '학위', '성적' 등이 그렇다.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적절한 양분'을 얻지 못하니, '배설'에 연연하게 되는 것이다.

마이크소프트 사의 창업자 '빌게이츠'는 '하버드 대학교'를 입학하고 2년을 다녔지만 자신의 '사업'에 대한 확신이 들자, 대학을 자퇴해 버렸다. 우리가 연연해 하는 대학이 그에게 필요 없는 이유는 '하버드'가 하찮아서가 아니라, '하버드'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그가 얻을 양분은 모두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미련이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하버드 자퇴생’이라는 타이틀이 남았지만, 정작 빌 게이츠 본인은 그 타이틀에도, 하버드라는 간판에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우리가 보기엔 ‘하버드 졸업’이 중요한 결과물일지 모르지만, 그는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이미 얻었고, 이제 더 이상 그 안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을 뿐이다.

그렇다.

결과는 찌꺼기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우리가 소화해낸 ‘양분’이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해보자.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 그것을 하고 있는가?'질문은 간단하다. 다만 대답은 쉽지 않다. 대개 어떤 ‘결과’를 위해서 '지금'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입사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합격’을 위해, 사업을 하는 사람은 ‘수익’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은 ‘출판’을 위해. 그러나 그 결과가 무너지거나, 기대에 못 미치면 낙담하고 좌절한다.

그들에게는 '결과' 외엔 남은 게 없기 때문이다.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얻었는가. 공든 탑이 무너졌다고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다. 탑을 쌓는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 집중력, 인내, 안목, 이런 것들이 남는다. 그런 건 다음 탑을 쌓는 데 반드시 필요한 양분이다.

2012년,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다니엘 길버트'는 이런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사람들에게 두 장의 예술 사진 중 한 장을 고르게 하고, 고른 사진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일부 그룹에겐 나중에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줬고, 다른 그룹은 한 번 고르면 바꿀 수 없다고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바꿀 수 없는 조건의 그룹이 훨씬 더 자신이 고른 사진을 '좋아하게' 되었고, 심지어 그 사진이 자신에게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믿게 됐다.

반면, 바꿀 수 있는 조건의 그룹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후회했다. 이 실험이 말해주는 바는 분명하다. 결과보다 중요한 건 선택 이후의 '태도'라는 것이다.

결과가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불완전함이 우리에게 더 많은 생각거리와 배움을 준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성공은 멀리 있는 무엇이 아니라, 매일매일 얻는 통찰에 있다.'고 말이다.

눈앞에 트로피, 졸업장, 계좌 잔고, 조회수 같은 것에 매달리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안에 숨어 있는 나의 태도, 나의 관점, 나의 성장이다.

결국 진짜 자산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 결과는 흐른다. 수많은 과정과 선택이 쌓여 결과를 만들고, 결과는 다른 과정의 재료가 된다. 어쩌면 우리는 계속해서 '배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블로그 이름이 '해우소'인 이유도 그와 일맥한다. 배설물은 누군가에겐 땅을 비옥하게 하는 거름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쓰레기일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그건 내 손을 떠난 것이다. 내 손에 남은 건 그것을 만들어낸 '내 안의 변화' 뿐이다. 인생의 모든 '결과물'이 누군가에게 쓰이든 말든, 나는 이미 그 과정에서 충분한 양분을 얻었다. 그리고 또 다음의 무언가를 위해, 나는 지금도 양분을 축적하고 있다.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실수하고, 걷고, 실패하고, 또 다시 시도하면서. 어쩌면 지금 이 글조차 누군가에겐 그저 지나가는 배설물 같은 글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이걸 쓰는 과정에서 아주 작은 양분 하나를 얻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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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발검무적 지음 / 파람북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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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어떤 사람일까.

해외에서 10년 간 농도 깊은 생활을 했다. 농도 깊은 생활이란 꽤 현지 깊숙한 곳에서 생활했다는 의미다. 내가 살던 곳은 한국인은 고사하고 동양인 자체를 본 적 없는 백인들의 동네였다. 나 또한 길을 가다 우연히 보게 되는 동양인을 보면 신기한 눈으로 보게 될 정도였으니, 농도 깊은 해외생활이라는 것이 과장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한국인들은 '아시아인의 스테레오 타입'의 전형인 '내향성'과 '외향성'을 둘다 갖고 있다. 특히 '한국인'을 친구로 두고 있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아는 한국어가 있다며 다가와서 하는 첫 말은 대부분 '욕'이다.

'어디서 배웠느냐' 물으면 한국인 친구가 알려줬단다. 한국어를 알려 달라는 외국 친구들에게 '나는 바보입니다'를 비롯해 다양한 비속어와 욕을 알려주는 한국인들의 예외없음에 가끔 웃음이 날 정도다.

'한국인'하면 또 떠오르는 말은 무엇이 있을까.

한국인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말이 '빨리빨리'다. 극강의 효율을 자랑한다. 이런 효율성은 식문화부터 시작한다. 우리에게 '식가위'는 전혀 어색한 도구가 아니다. 고기를 굽고 잘라 먹는 모습은 '효율성'의 극강이다. 식탁 위에 올라가 있는 두루마리 휴지도 그렇다. 가위는 보통 재봉의 목적으로 사용한다. 휴지는 식탁이 아니라 변기 위에 비치되는 물품이다. 이런 것들이 극강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한국이 아니라면 흔치 않다.

초고효율을 위한 삶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다. 최근 이슈가 되는 7세 고시가 그렇다. 고등 입학 전, '수능 영어'를 마스터하는 고효율을 택하면, 차후 국어와 수학에 전념할 수 있다. 이런 대입 전략이 한국에서 유행하는 것도 어찌보면 그럴싸하다. 다만 삶에 효율이라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결국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나, 하는 회의감에 빠진다. '삶'의 초고효율은 '죽음'이다. 그런 이유에서 한국인의 '자살률' 또한 최고에 이른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삶을 위해 달려가다 '삶의 끝'에 무엇이 있느냐는 물음에 닿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각은 허무주의와 연결된다. 사실 우리 사회 전체가 '최고효율'을 향해 달라가고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전체가 우울하고 낭만없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유튜브 쇼츠를 보다보니, 만화가 김풍 작가의 말이 나왔다.

"낭만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만화가 '김풍'은 답했다.

"낭만은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효율적인 것과 가장 거리가 먼..."

'당췌 그게 무슨 도움이 되는데, 무슨 돈이 되는데..'하는데 그냥 하는 것. 그것을 '낭만'이라고 볼 수 있단다. 그럴싸하다.

그 말을 듣고, 난 뉴질랜드에서 보았던 어느 일요일 오후가 떠올랐다. 공원 벤치에 앉아 아무 목적도 없이 두어 시간 햇빛이나 쬐고 돌아왔다. 거기에 나와 있는 다수의 사람들도 그러했다. 한국이었다면? 아마 그 시간에 단어를 외우거나, 자기계발서를 읽거나 했을 듯하다. 어쩌면 '뭐라도 유익한 콘텐츠'를 보며 시간을 '활용'했을지 모른다. 그 곳에서는 누구도 '시간 아깝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햇살이 좋으니 앉아 있는 것이고, 바람이 좋으니 아무 말 없이 있을 뿐이었다. 삶을 그 자체로 사는 것도 괜찮았다.

실제로 효율과 전혀 무관한 삶 그것이 '낭만'인 듯하다.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인은 효율성과 경쟁, 성취 지향성이 몸에 배어 있다. 이게 교육과 노동, 인간관계 전반에까지 확장된다. 폭탄주를 만들어 최대한 빨리 취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며, 가장 많이 노는...

어쩌면 유치원에서 시작된 경쟁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어쩌면 죽는 순간, '그래 이겼다.' 혹은 '그래, 졌다'라는 의미 없는 승패를 나눌지 모른다. 그 부질 없는 효율에 대해 장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한국인의 특성은 치열한 근대화, 짧은 시간 내 압축 성장으로 이어졌다. 다만 모두가 '경쟁자'가 되고 '낙오되면 죽는다'라는 공포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결국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나 역시 10년 넘게 해외에서 살고 돌아왔다. 다만 여전이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한국인은 스스로는 고통 속에 있지만 겉으로 완전한 존재들이다. 이런 '외부'에 대한 인정을 위한 최우선 시 하는 문화가 한류의 뿌리가 됐을 지도 모른 것이다.

어떻게 5,100만의 사람들을 일반화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분명 외부 혹은 내부에서 말하는 일반화 속에 우리의 모습이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글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는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숙제의 시작일지 모른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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