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발검무적 지음 / 파람북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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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어떤 사람일까.

해외에서 10년 간 농도 깊은 생활을 했다. 농도 깊은 생활이란 꽤 현지 깊숙한 곳에서 생활했다는 의미다. 내가 살던 곳은 한국인은 고사하고 동양인 자체를 본 적 없는 백인들의 동네였다. 나 또한 길을 가다 우연히 보게 되는 동양인을 보면 신기한 눈으로 보게 될 정도였으니, 농도 깊은 해외생활이라는 것이 과장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한국인들은 '아시아인의 스테레오 타입'의 전형인 '내향성'과 '외향성'을 둘다 갖고 있다. 특히 '한국인'을 친구로 두고 있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아는 한국어가 있다며 다가와서 하는 첫 말은 대부분 '욕'이다.

'어디서 배웠느냐' 물으면 한국인 친구가 알려줬단다. 한국어를 알려 달라는 외국 친구들에게 '나는 바보입니다'를 비롯해 다양한 비속어와 욕을 알려주는 한국인들의 예외없음에 가끔 웃음이 날 정도다.

'한국인'하면 또 떠오르는 말은 무엇이 있을까.

한국인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말이 '빨리빨리'다. 극강의 효율을 자랑한다. 이런 효율성은 식문화부터 시작한다. 우리에게 '식가위'는 전혀 어색한 도구가 아니다. 고기를 굽고 잘라 먹는 모습은 '효율성'의 극강이다. 식탁 위에 올라가 있는 두루마리 휴지도 그렇다. 가위는 보통 재봉의 목적으로 사용한다. 휴지는 식탁이 아니라 변기 위에 비치되는 물품이다. 이런 것들이 극강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한국이 아니라면 흔치 않다.

초고효율을 위한 삶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다. 최근 이슈가 되는 7세 고시가 그렇다. 고등 입학 전, '수능 영어'를 마스터하는 고효율을 택하면, 차후 국어와 수학에 전념할 수 있다. 이런 대입 전략이 한국에서 유행하는 것도 어찌보면 그럴싸하다. 다만 삶에 효율이라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결국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나, 하는 회의감에 빠진다. '삶'의 초고효율은 '죽음'이다. 그런 이유에서 한국인의 '자살률' 또한 최고에 이른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삶을 위해 달려가다 '삶의 끝'에 무엇이 있느냐는 물음에 닿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각은 허무주의와 연결된다. 사실 우리 사회 전체가 '최고효율'을 향해 달라가고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전체가 우울하고 낭만없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유튜브 쇼츠를 보다보니, 만화가 김풍 작가의 말이 나왔다.

"낭만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만화가 '김풍'은 답했다.

"낭만은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효율적인 것과 가장 거리가 먼..."

'당췌 그게 무슨 도움이 되는데, 무슨 돈이 되는데..'하는데 그냥 하는 것. 그것을 '낭만'이라고 볼 수 있단다. 그럴싸하다.

그 말을 듣고, 난 뉴질랜드에서 보았던 어느 일요일 오후가 떠올랐다. 공원 벤치에 앉아 아무 목적도 없이 두어 시간 햇빛이나 쬐고 돌아왔다. 거기에 나와 있는 다수의 사람들도 그러했다. 한국이었다면? 아마 그 시간에 단어를 외우거나, 자기계발서를 읽거나 했을 듯하다. 어쩌면 '뭐라도 유익한 콘텐츠'를 보며 시간을 '활용'했을지 모른다. 그 곳에서는 누구도 '시간 아깝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햇살이 좋으니 앉아 있는 것이고, 바람이 좋으니 아무 말 없이 있을 뿐이었다. 삶을 그 자체로 사는 것도 괜찮았다.

실제로 효율과 전혀 무관한 삶 그것이 '낭만'인 듯하다.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인은 효율성과 경쟁, 성취 지향성이 몸에 배어 있다. 이게 교육과 노동, 인간관계 전반에까지 확장된다. 폭탄주를 만들어 최대한 빨리 취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며, 가장 많이 노는...

어쩌면 유치원에서 시작된 경쟁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어쩌면 죽는 순간, '그래 이겼다.' 혹은 '그래, 졌다'라는 의미 없는 승패를 나눌지 모른다. 그 부질 없는 효율에 대해 장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한국인의 특성은 치열한 근대화, 짧은 시간 내 압축 성장으로 이어졌다. 다만 모두가 '경쟁자'가 되고 '낙오되면 죽는다'라는 공포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결국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나 역시 10년 넘게 해외에서 살고 돌아왔다. 다만 여전이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한국인은 스스로는 고통 속에 있지만 겉으로 완전한 존재들이다. 이런 '외부'에 대한 인정을 위한 최우선 시 하는 문화가 한류의 뿌리가 됐을 지도 모른 것이다.

어떻게 5,100만의 사람들을 일반화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분명 외부 혹은 내부에서 말하는 일반화 속에 우리의 모습이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글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는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숙제의 시작일지 모른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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