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 없는 관계는 없습니다 - 상처뿐인 관계를 떠나지 못하는 당신에게
임아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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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팔고(人生八苦) 중, '원증회고(怨憎會苦)'. 불교에는 사람이 면하기 어렵다고 하는 여덟가지 고통을 구분했다. 그중 원증회고(怨憎會苦). 원수와 함께 살아야만 하는 고통을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애별리고)과 고통의 크기는 같다. 원수와 함께 해야하는 고통. 그것은 크나 크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관계를 맺는다. 자신을 중심으로 관계의 얽힘은 확장된다. 게중 선택 밖의 관계도 존재한다. '가족'이 그렇다. 부모, 형제, 자녀와 같이 선택하지 않은 관계. 천륜으로 이어진 관계.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가 그렇다. 관계에서 상처 받길 계속한다면 자신과 상대를 위해 떠남을 결정해야 한다. '이별'을 조금 더 순화된 말로 하자면 '독립'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부모자식 간의 이별도 예외는 아니다. 자연계에는 '부모자식의 관계'가 지속적이지 않다. 자녀가 성체가 되면 이들은 이별한다. 다름 표현으로 독립한다. 부모의 밥그릇을 탐하는 자녀에게 부모는 이빨을 드러낸다. 그것은 반댓쪽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예외다. 사회가 묶어 놓은 시스템은 '자연계'의 그것을 거스른다. 공자는 유교의 개념에서 '효사상'을 중요하게 여겼다. 부모를 공경하고 궁휼히 여기는 이 사상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게 했다. 국가와 사회에 부담이 되는 '노인'에 대한 책임을 시스템을 통해 '개인'의 윤리적 책임으로 두었다. 이것을 부정하는 일은 사회에 지탄을 받는다. 유교의 영향력과 무관한 서구에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성인 이후로 달라진다. 서양 부모에게 육아의 최종 목적은 '독립'이다. 동양에서는 다르다. 동양에서 관계는 죽음 직전까지 이어진다.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이 시스템은 다음 자녀가 자신을 공경한다는 믿음으로 지탱된다. 시대가 달라지며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자녀세대가 태어났다. 흔히 MZ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자신의 삶의 무게에서 '적어도' 하나의 부담은 줄이고 싶어한다. 이 세대간의 간극 덕분에 현대는 세대간의 갈등이 극심하다.

가족 간의 관계 뿐만 아니다. 자신이 직접 선택한 관계도 떠날 수 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실수라면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옳지만 그 실수가 자신과 상대의 본질마저 흔들 정도라면 과감하게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라면을 끓은 양은냄비의 손잡이를 잡는다. 젖은 행주로 쥐어도 뜨끈함이 올라온다면 손에 화상을 입더라도 끝까지 들고 있거나 내려 놓아야 한다. 내려 놓았을 때, 더 큰 부상의 위험이 있다면 손이 데일 각오를 해야하고, 그렇지 않다면 최대한 빨리 내려 놓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실수를 떠안아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선택을 번복한다. 친구와의 관계나 사제 간의 관계, 직장에서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다만, 자신의 실수를 담담하게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 상대에게 잘못이 있을 수도 있고, 잘못이 나에게 있을 수도 있다. 때로는 그저 서로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을 잘 살펴 봐야한다. 가끔 살다보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다. 상황을 대처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범인들은 가장 쉽고 이기적인 방식을 택한다. 바로 상대를 바꾸는 일이다. 부부는 대게 살아 온 환경이 다르다. 누군가는 머리를 말린 수건을 방 안에 걸어 두길 원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세탁기에 넣어두길 원한다. 상대에게 한 두번 말을 해도 상대가 바뀌지 않는다. 세탁기에 넣어두길 원하는 쪽은 상대를 바꾸고자 노력하고 상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런 사소한 갈등은 대부분 하나 둘 쌓이고 결국 다툼이 된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답은 쉽다.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면 된다. 상대를 바꾸는 것은 흔히 말하는 성인들도 이루지 못했다. '예수,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라고 하는 4대 성인의 제자 중에는 그들을 배반하거나 실망시키는 일이 적잖았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그들도 이루지 못했지만 우리가 그들을 성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문제 해결 방식을 바꿨다. 그들은 상대를 바꾸지 않고 자신을 바꿨다.

따져 들자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된다. 오른쪽으로 가려는 자와 왼쪽으로 가려는 자가 동등하게 힘의 균형이 있을 때, 우리는 이것을 대립이라고 부른다. 대립된 상태에서는 모두가 제자리에서 힘을 소진한다. 오른쪽이던, 왼족이던 사실상 '재앙'에 가까운 결말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내가 상대의 방향에 맞춰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상대에게 고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잣니이 고치면 그만이다.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다. 고로 누군가와 대립관계에 있다면 상대에게서만 문제를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도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한 여자는 남편이 술을 좋아하는 것을 문제로 삼는다. 남편은 워낙 술을 좋아했고 여자는 그것이 못마땅하다. 여자가 술을 먹지 말길 남편에게 말해도 남편은 어느정도 약속을 지키다가 다시 원래로 돌아온다. 이 갈등에 여자도, 남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관점을 바꿔 여자가 '술을 먹기로 한다면' 갈등은 사라진다. 남녀는 서로 좋아하는 취미를 갖고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금연' 또한 마찬가지다. 담배 냄새가 심하다면 상대가 끊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흡연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흡연은 좋지 않기에 자신과 상대를 위해 금연을 권유하겠지만, 흡연으로 인한 건강의 문제와 부부관계의 악화 중 차악을 택하면 된다. 물론 억지 일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이 그런 선택을 쉽게 하기 어려운 것처럼 상대 또한 자신을 바꾸는 것을 어렵다고 느낀다. 이미 존재하는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상대에게 맞추는 것, 다른 하나는 그 관계를 종료하는 것이다. 떠날 수 없는 관계는 없다. 한 번 이어진 인연이 불가분의 인연이 되어 영원히 따라 올 것이라는 관념은 쌀농사를 짓던 전체주의 동양사회에서 있던 문제다. 한, 중, 일 삼국의 자살률은 비정상적으로 높다. 이것은 국가 법이나 사회체계의 문제라기보다 윤리로 얽혀 있는 복잡한 관계 때문일 것이다. 윤리와 비윤리. 그것은 분명 살아가는데 중요하지만, 죽음보다 선행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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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프랑스 - 당신을 위한 특별한 초대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창용 지음 / 더블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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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4분, 영화는 2시간, 드라마는 50분. 일반적 러닝타임이다. 각각 역사를 살펴보면 어떤 것은 과거에 비해 길어졌고, 어떤 것은 짧아졌다. 예술과 문화는 독자적으로 개발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영향을 주는 것은 '기술발전'이다. 음악은 '라디오, 티비'와 함께 발전했다. 라디오, TV는 광고를 통해 매출을 발생한다. 방송은 호흡이 긴 음악을 선호하지 않는다. 시간이 곧 매출에 직접적 영향인 방송의 특성상 음악은 러닝타임이 짧아야 했다. 이제는 2분 대의 음악도 등장한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길어졌다. 1906년의 '켈리 갱 이야기'의 러닝 타임 60분이었다. 1937년에는 100분을 돌파했다. 2000년대 초반에 1시간 40분으로 정착했는데 VHS 비디오 테이프의 등장 때문이다. VHS 비디오도 물리적 한계는 있었다. 2시간을 담기 위해서 250m의 길이가 필요했다. 이후 DVD가 등장했고 러닝타임은 더 길어졌다. 현재는 스트리밍으로 송출함으로 물리적 제약이 사라졌다. 지금의 영화는 2시간이 넘는 경우가 많다. 선수보호 차원 일수도 있으나 스포츠도 짧아졌다. 19세기 축구는 전후반 1시간 씩, 총 2시간이 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전후반 45분 총 90분의 러닝시간이 자리잡았다. 드라마도 러닝 타임이 짧아지다가 요새는 간접 광고를 통해 광고 노출이 늘어나며 시간이 길어졌다. 산업화 된 국가들은 대게 야구 경기가 인기가 있다. 야구는 호흡이 길고 중간 광고를 삽입하기 꽤 괜찮은 컨텐츠다. 미술에서 사실주의는 왜 인상주의로 넘어갔을까. 카메라의 발견이다. 카메라가 발견되면서 인간은 눈에 비치는 사실을 기계만큼 담기 어려워졌다. 인간은 기계가 담지 못하는 것을 담아야 했다. 미술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담기 시작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로댕 미술관까지 프랑스 곳곳의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작품은 그저 '그림'이 아니다. 거기에는 '역사'와 '기술', '문화'가 담겨져 있다. 과거 미술가에게는 현대인들이 생각치 못한 장애가 하나 있었다. 바로 직접 물감을 조제하여 사용했다는 점이다. 흔히 생각하는 튜브형 물감은 비교적 최근은 19세기에나 나왔으며 나사형 뚜껑도 시간이 지나서 나왔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리던 중 같은 색을 만들어야 하는 당혹스러움에 마주했다. 그들은 각종 재료로 직접 물감을 만들고 사용했다. 정확한 농도를 맞추지 않으면 같은 색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기술의 발전은 그들의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왔다. 흔히 예술가하면, '배고픈 직업'으로 알고 있다. 다만 '모네'만 보더라도 꽤 큰 규모의 개인 저택과 정원을 소유하고 있었다. 알려진 유명 예술가들은 편견과 다르게 귀족인 경우가 많다. 반 고흐 또한 '배고픔'의 대명사로 알려졌으나 그 뒤를 조금 더 살펴보면 아이러니한 부분이 없지 않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미술이나 음악, 집필에 종사하는 이들은 편견과 다르게 부유한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현대에 와서 이들이 부유해진 것이 아니라, 풍요로움이 주는 영감도 적잖은 몫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네의 루앙대성당은 얼핏 채도를 다르게 하여 그린 같은 그림 같아 보이지만 이것은 시간에 따른 '빛의 작용'을 표현한 그림이다. 미술가는 어떤 것을 표현해야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라질 것만 같은 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자시계가 나왔지만 고급 손목시계는 아직도 아날로그로 작동된다. 신용카드와 각종 스마트폰 지불 서비스가 나왔음에도 고급 지갑은 역시 가죽으로 만든다.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그 시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은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해 나갔다. 석기시대가 청동을 개발했다고 해도 인간은 21세기에도 건축자재로 돌을 사용한다. 석기시대는 돌이 떨어져 끝난 것이 아니다. 기술이 발전했기에 '돌'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AI 인공 지능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고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에 전시된 여러 예술 작품들은 최근 개발된 고화질 스마트폰 보다 훨씬 선명도가 떨어진다. 그러나 매년 수 천 만 혹은 수백만이 방문하는 명소다. 인상파 화가들의 붓질을 더 면밀히 살펴본다. 그들이 남긴 인위적인 흔적에 더 인간다움을 느끼고 작가가 담으려고 했던 내면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을 상상한다. 기계가 묘사하지 못하는 깊은 내면은 작가의 인생과 철학을 알고 나서야 더 깊이 있어진다.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은 기술에 자리를 뺏기지 않고 더 깊은 것을 담아냈다. 이미 죽은지 수 세기가 지난 이들의 그림을 보고 현재와 미래를 함께 느끼게 됐다. 수입이 적고 근로환경이 열악한 미술 작가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유럽에서는 추급권을 도입했다. 추급권이란 작가와 화랑, 미술관 간에 표준 계약성을 작성하고 미술 작품이 재판매될 때, 작가에게 보험을 비롯한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3천 유로(390만원) 이상의 미술품에 한해서는 0.25~4%를 제공한다. 인세를 받는 여타 작가나 음악가에 비해 판매하면 더이상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미술가들을 위한 유럽의 제도다. 선진국들 중에 유독 한국이 아직 추급권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어쩐지 이들에게서 훌륭한 미술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사회적 배경도 한몫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미술은 역사, 기술, 문화와 더불어 사회도 담는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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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여름 에디션)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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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름. 휴남동.

소설 속에 등장하는 휴남동은 실제 지명은 아니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휴남동 서점. 이 또한 있을 법하지만 없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경험도 있을 법한 이야기다. 소설은 대표성을 띤다. 우리는 커피가 인간을 마시거나 마우스가 고양이를 클릭하는 언어 와해된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거짓인 걸 알면서도 그럴듯하게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쥬라기 공원이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받은 이유도 실제 불가능한 일들을 다수가 눈 감고 봐줄 만큼 설정적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다수에게 선택받았다. 다수가 공감했다는 의미는 분명 사회적 상징성을 갖는다. 다수가 선택한 '베스트셀러'를 무한적 신뢰하진 않는다. 이는 그저 다수가 선택했을 뿐이지, 나와 맞는다는 보장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의미에서 종종 읽어 볼 만하다. 휴남동 서점이라는 소설은 베스트셀러다. 그 이유는 이 책이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타깃이 무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책을 골라 선택한 이들은 자신의 꿈과 닿아 있는 설정을 좋아했을 것이고, 그 주변 인물들의 고민과 삶이 자신들의 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예전 '불편한 편의점'을 읽었을 때처럼 소설은 사회를 많이 담는다. 그저 사회 비판적인 내용만 담은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는 작가가 인물을 통해 자신의 독서 철학도 함께 담는다. 주제와 좀 벗어난 이야기지만 책을 좋아한다고 서점을 차린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다. '서점' 또한 '비즈니스'다. 책을 좋아하는 이는 훌륭한 구매자이지, 훌륭한 판매자 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소비자의 성향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심취하다 보면 그 시선에 함몰되는 경우도 있다. 판매자는 물건에 대해서만 잘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판매자의 자격 요건 여러 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책을 좋아한다고 서점을 시작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맥도날드의 운영진은 '셰프'가 아니고, 스타벅스의 운영진은 '바리스타'가 아니며, 애플의 운영진은 '기술자'가 아니다.

책 좋아하는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카페'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아마 그들이 환상을 갖는 이유는 '훌륭한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 내면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돈 벌기 위해서는 '책'파는 일보다 '술'을 파는 일이 더 효과적이다. 15,000원짜리 책 한 권이면 최소 일주일이나 한 달을 이용하는 구매자보다, 친구 몫까지 칵테일 두 잔을 시키는 고객이 다음 매출도 일으킬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다. 서점이 가진 이런 특성 때문에 소설은 인물들의 내면을 중심으로 잘 서술해 나간다. 극적인 사건과 스토리라인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니다. 인물 하나하나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들이 가진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이 소설의 특징이다. 모든 걸 '열심히' 살아가는 이가 자신의 삶의 템포를 낮추기 위해 찾은 비즈니스가 '서점'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찾아보고, 적당한 음악을 들으며 책 좋아하는 이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정도로 살겠다 마음. 그것으로 시작한 일에 하나 둘, 자신만의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여든다. 가만 사회라는 것은 그렇게 움직인다. 자주 방문하는 '마트'만 보더라도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인다. 지금은 희화된 '가족 같은 분위기'는 사실 업무상 존재할 수 없다. 모두 밖으로 꺼내지 않는 내면을 숨기고 업무에 충실할 뿐이다. 표면적인 관계에서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적다. 그런 의미에서 '책'과 '술'은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이 둘은 종이와 알코올이라는 표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로 내면을 이끌어 내는 매개체다. 간혹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소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질문자는 가볍게 던진 질문이지만 답변자는 이 질문에 굉장히 당황스러워한다. 사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자신'이 골라도 실패하는 게, 책 선정이다. 가족과 친구에게도 만족스러운 선택을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일부 질문자는 묻는다.

"책을 정말 많이 읽으시네요. 저희 어머니 선물하기 좋은 책 하나 추천해 주세요."

가벼운 질문이지만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엄청난 대화가 오고 가야 한다.

'나이는 어떻게 되고, 평소 책은 몇 권이나 읽으시는지, 관심사가 어떠신지, 심리 상태는 어떤지, 어떤 이유로 선물을 하는 건지,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떤지, 종교는 무엇인지 등등.'

난생처음 보는, 혹은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일도 없는 이에게 책을 추천하는 것은 고로 노력 대비 실패할 확률이 엄청나게 높다. 소설 '휴남동 소설'에는 책 좋아하는 이들이 평소에 겪을 만한 소소한 경험들을 함께 공유한다.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1000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가 1000만인 이유는 그 영화가 300만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젊은 남자들의 시답잖은 농담으로 살짝 지나가던 내용은 소설 후반부에 비중 있게 다시 등장한다. 사실 가장 좋은 마케팅은 '베스트셀러'라는 마케팅이다. 사람들은 많은 사람이 샀다는 이유로 그 상품을 고른다. 고로 한 번 베스트셀러에 등극만 하면 그 상품은 몇 주고, 몇 개월이고, 심지어 몇 년이고 내려오지 않는다. 책은 자장면이냐, 짬뽕이냐를 고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실패할 확률이 높은 옵션에서 엄청나게 많은 기회비용을 버리고 선택하는 일이다. 성인이 한 달에 한 권도 읽지 않는 나라에서 그 한 번의 선택은 분명 리스크를 피해야 할 것이다. 다른 기호 활동에 비해 분명 저렴한 비용으로 꽤 긴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제품이다 보니, 혹여 첫 도입에 실패를 확신한다면 그 책을 읽지 않는 걸 떠나서 다시 책을 구매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한 일을 고르는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가능하다. 잊힌 책들은 갑작스럽게 어떤 연예인이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슈화되기도 한다. 그 책이 정말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책 좋아하는 이들은 베스트셀러 코너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래 머물고 있다. 심지어 오디오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이 책을 고를 것이고,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통해 이 책은 더 오래 베스트셀러에 머물 것이다. 작가가 우려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현실화될 것이다. 분명 그럴 가치는 있다. 인물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책이 어떤 식으로 각색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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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 쌓이는 말, 100일의 기적 - 100일 뒤, 어디서나 존중받는 사람이 된다
이마이 가즈아키 지음, 이주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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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는 죽을 때까지 무명화가 였다. 그는 언제나 불행했고 외톨이었고 항상 실패하는 화가였다. 궁핍했고 그림은 판매되지 않았다. 극도로 예민한 성격이었다. 고흐는 조울증과 강박증을 갖고 있었다. 그가 바라본 세상은 어땠을까. 그가 사망하고 100년 뒤, 고흐가 그린 '폴 가셰 박사의 초상화'는 8천 300만 달러, 지금 우리 돈 1,200억 원에 팔렸다. 누군가는 그 위대함과 성공을 찬양하겠지만 자신의 그림이 1,200억 원에 팔릴거란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조금 다른 선택들을 하고 않았을까. 알 수 없다. 그렇다 믿으면 그렇고, 아니다 믿으면 아닌 것이다. 생활고에 성사된 고갱과의 만남도 그렇다. 만약 이 둘이 자신의 미래를 먼저 봤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갈등이나 불안에서 벗어나 조금 더 긍정작인 방향으로 인생을 설계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이름은 큰 존재일 것이나, 인간으로써 그들의 삶이 부럽진 않다. 죽음 뒤에 얻게 되는 명성이나 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삶은 '살음'의 준말로 살아 있을 때로만 존재한다. 내가 죽은 뒤에는 하루 뒤에 우주가 종말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이라지만 아니다. 우주는 내가 태어나면서 생겨났고 내가 죽으면서 사라진다. 무존재가 알아차리는 세상이란 있을 수 없다. '무존재'에게 '존재'는 '무존재'다. 인생은 그렇다. 고달프다고 생각하든 행복하다고 생각하든 스스로 정한 방향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름에 태어난 하루살이에게 '눈'은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는 행과 불행을 결정한다. 인생에는 실패란 없다. 배움과 경험만 있을 뿐이다. 에디슨은 필라멘트를 만들기 위해 식물 탄화 실험을 6천번 실패했다. 축전지를 만들 때는 3만 번 실패했고 천연고무 실험에서는 무려 5만 번이나 실패한다. 어느날 꾸준하게 실패만 하는 에디슨에게 물었다. 어째서 실패만 하게 되는지, 그러자 에디슨은 답했다.

"실패를 한게 아닙니다. 5만가지 방법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과정을 아름답게 만들지만, 그 결과도 아름답게 만든다. 실패를 모르는 사람들은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것이 '실패'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인간은 누구나 실패를 경험한 큰 좌절을 한다. 다만 '실패'를 했음에도 그것이 '실패'인지 모르는다면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을 지속하게 된다. 방송인 노홍철은 방송에서 항상 웃는 얼굴로 등장한다. 그가 항상 말이 있다.

"좋아. 가는거야!"

이 말은 상당히 의미있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긍정적인 말을 한다. 그 사람을 대표하는 '캐치프라이즈'가 하나씩 있을 정도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도 그렇다.

"이봐, 해봤어?"

말버릇처럼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그들의 인생에서 단 한 차례만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항상 같은 '말'을 구호처럼 사용한다. 요즘 젊은층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오히려 좋아."라는 말이다. 어떤 부정적인 상황에서 자기 합리화를 통해 되려 잘됐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말이다. 이 말은 대게 현실을 부정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은 그것이 실패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 최선이다. 사람의 뇌는 거짓말에 잘 속는다. 실제로 인간의 뇌는 가짜 웃음과 진짜 웃음을 구별하지 못하여 거짓으로 웃는다고 하더라도 신체 분비하는 호르몬은 가짜 웃음에서도 똑같이 분비한다. 즉 인간의 뇌는 스스로 한 거짓말에서 쉽게 속아 넘어간다. 일본의 내과 의사 '이마이 가즈아키'는 의사로 근무하면서 약을 사용하지 않고 환자를 치료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에 자신이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철학을 글로 작성한다. 그것은 '언어'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게 하는 것을 일본에서 '펩토크'라고 부른다. 사실 이 '펩토크'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했는데, 스포츠 심리학 용어로 상대방에게 힘과 활력을 주는 기술이다. 쉽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이 있다. 바로 유리잔에 반이 채워진 물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물이 반밖에 없네'라는 말을 하고 '누군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말을 한다. 인식의 차이는 그 미래 가능성을 점처보게 한다. 물이 반밖에 없다는 사람은 같은 물을 받았음에도 불만과 불평을 이어갈 것이다. 물이 반이나 있다고 말한 사람은 물에 대한 감사함을 깨칠 것이다. 누군가는 헌정된 '삶'이라는 자원을 '불평과 불만'으로 채울 것이고 누군가는 '감사한 마음'으로 채울 것이다. 어떤 삶이 더 행복하고 가치 있을지는 보나마나 뻔하다. 억지로라도 자신에게 혹은 상대에게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의학적 결과도 달랐다. 이들은 단어 하나 하나가 자신의 마음 건강에 도움을 주는 걸 깨치고 이것이 신체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느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 중, 론다 번의 '더 시크릿'이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은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이 '끌어당김의 법칙'을 통해 상황을 끌어 당긴다고 설명한다. 이를 누군가는 '유사과학'으로 분류하지만 어쨌건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할수록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꽤 증명됐다. 여러가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질 때마다, '더시크릿'의 허무맹랑함을 깨우치지만 그것이 분명 효과가 있을 거라는 것도 깨우친다. 살다보면 반사적으로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공감능력이 상실된 것 처럼 느껴질 정도의 그들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그들의 말은 꽤 일리가 있으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더 가볍고 긍정적 일수록 삶을 밝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봤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에게 언제나 좋은 말만 할수는 없다.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 나오는 말들은 뱉고나서 '아.. 왜 그랬지?' 할 때도 많다. 사실 모든 것은 습관이다. 반복된 의식이 무의식이 되면 그것은 습관처럼 스며 나온다. 인간이 숨쉬는 활동만큼 많이 하는 것이 '생각'과 '말'이다. 습관의 관성은 분명 벗어나기 힘들지만, 다른 습관과 다르지 않게 반복하고 수정하고, 고치다보면 언젠가 몸에 스며들 것이다. 좋은 언어습관은 숨 쉴 때마다 몸속에 좋은 기운을 불어 넣는 것과 같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습관 형성 100일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금 깨닫는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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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물리학 -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
해리 클리프 지음, 박병철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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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파이를 만들어보자. 일반 밀가루 400g, 설탕 2스푼, 소금 약간... 아차. 아주 근본부터 시작해 보자. 아프가니스탄이 원산지인 볏과 한해살이풀을 재배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아차. 더 근본으로 가야 한다. 더 근본으로 가보자. 사과파이를 만드는 근본적인 재료는 이렇다. 약간의 시공간, 쿼크 6개, 렙톤장 6개, 힉스장 1개, 암흑물질....

8인분의 사과파이의 조리법. 그것은 대략 500쪽으로 간략하게 요약했으나 부족하다. 이것의 조리시간은 대략 138억 년이다. 처음에는 약간의 소우주를 만들고 이를 약 10의 마이너스 32제곱 초동안 10조x1조 배로 팽창 시키는 일부터 하면 된다. 대략 이런 저런 과정을 생략하고 중간부터 다시 이야기해보자, 일단 수소와 헬륨으로 이뤄진 큰 구름을 만들고 이 자체 중력으로 '별'을 빗는다. 이것의 중심부에는 수소가 헬륨으로 변한다. 헬륨은 탄소로 변한다. 이 연속되는 융합반응으로 철이 만들어지면 융합이 멈춘다. 이것의 수명이 거기서 끝나면 이 '별'은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고 그 동안 만들어 놓은 무거운 원소가 우주공간으로 흩뿌려진다. 대략 그 뒤 90억 년이 지나고 2세대 별과 초신성, 충돌하는 중성자별에서 철보다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진다. 한숨 돌리고 사과파이를 만들기를 다시 시도해보자. 이제 절반도 만들지 않은 레시피는 500쪽에 걸쳐 사과파이를 만들어간다. 사과파이의 구성이 어떤지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은 분자에서 원자, 쿼크, 힉스, 끈 등으로 파고 들어간다. 가끔 살다보면 그런 일을 겪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을 했는데, 어느 순간 "어? 어쩌다보니 내가 이런 것도 하고 있지?" 하는 일 말이다. 대표적으로 육아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별거 없는 가벼운 우연의 시작인데 정신을 차려보면 오른발로 한 아이의 흔들침대를 흔들고 오른손으로 다른 아이의 우유를 물리고 왼손으로 아이를 토닥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을까?"의 수준은 이미 아득하게 넘었지만,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을 일을 몰라서, 멋도 모르고 하고 있다.

'해리 클리프', 이 책의 저자는 나에게 '사과파이' 만드는 법을 알려 주겠다고 했다. 솔깃하고 들었다. 어느 순간 제대로 된 재료를 구하기 위해 그는 사과파이를 분해했고 그 구성을 살폈다. 그 속이 뭘로 채워져 있는지 탐구했고 어떻게 이뤄졌는지 서술했다. 그러다보니 물질은 그 구성을 쪼개고 쪼개고 쪼개어 알지 못하는 세계로 인도했다. 물질의 본질을 살피던 저자는 물질입자로 들어가면서 전자와 원자로 이뤄졌다는 것을 알렸다. 여기서 원자는 위 쿼크와 아래 쿼크로 이뤄져 있고 이들은 전자뉴트리노와 함께 1세대 입자를 형성한다고 알려줬다. 위 커크, 아래 쿼크는 괜찮다. 예쁨 쿼크, 야릇한 쿼크, 진실 쿼크, 맵시 쿼크 등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오지도 않을 이상한 이름의 물리학 전문 용어를 들어가며 사과파이를 만드는 법을 알렸다. 당연히 이 책을 훑어보거나 중간 부분을 펴서 읽었다면 혀를 내두르고 덮어두고 읽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순진무구한 독자의 손을 잡고 '사과파이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며 이끌려 들어간 이야기에 독자는 처음에는 화학을 만나고, 물리학을 만나더니 상대성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가볍게 지난다.

"어..어..어?? 지금 내가 어딜 가고 있는 거지? 맞게 가고 있나?" 하는 사이에 가벼운 농담 몇 개를 던지며 별거 아닌 듯, 다시 양자역학과 빅뱅이론과 초끈이론까지 후다닥하고 가버린다. 비로소 책의 마지막에 드디어 사과파이를 슬슬 만들기 시작한다. 이 괴상망측한 물리학책은 확실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보다 시적인 부분은 덜하지만 훨씬 유머러스하고 쉽고 재밌다. 책은 유머러스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고 또 역사와 인문학적 내용을 포함하지만 애둘러 표현한 내용 중 어째서 결국 '동양철학'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빛과어둠', '하늘과 땅' 처럼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입자와 천체로 갈수록 반드시 반대쪽의 존재가 '공식'처럼 나타난다. 물질에는 반물질이, 쿼크에는 반쿼크가, 깊게 파고 들수록 명확해지는 '+'와 '-'를 보며 전체를 아우르는 '음양이론'의 위대함을 깨닫게 한다. 잘 모를 때는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는 일들이 많다. '대단한 사람들이 알아서 발견해 주겠지' 싶은 원리들은 머리가 아파서 올라오는 호기심을 꾹하고 참게 한다. 묻지 않을 질문에 대해 저자는 '그거? 별거 아니야'라고 하며 그냥 심심하게 설명해 버린다. 어떻게 작은 물질을 쪼개어 확인했는가. 단순하다 엄청난 전기 에너지로 소립자를 가속해서 그 두 개를 충돌 시키는 것이다. 거기서 깨져 나오는 파편을 통해 그 소립자의 구성을 살핀다. 단순하다. 너무 극미하기에 결코 증명할 방법이 없는 '초끈이론'의 내용도 상당히 흥미롭다. 수학적으로 희안하게 계산 가능하지만 그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전무한 이론. 이 이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 무려 9차원에서만 서술이 가능하다. 끈이론자들이 여분차원을 다지는 방법의 수는 10의 500제곱 개나 된다. 인간이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것은 눈으로 지켜본 것이 아니라 모두 수학으로 가능하다. 인간은 3차원이 넘어가는 세계를 이해 할 수 없다. 능력있는 물리학자도 이는 불가능하다. 다만 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인간의 머리가 아니라 '수학이다. 인간은 상하좌우의 공간에서 산다. 이것이 3차원이다. 다만 그 방향 외에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이 더 있다면 4차원, 5차원처럼, 고차원이 된다. 초끈이론이 가능하기 위해선 무려 9차원이어야 한다. 이것이 가짜라고 할 수 없지만 증명하기 꽤 힘들다. 고차원 공간도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만히 앉아서 책상 앞에서 깔끔한 식 몇 개로 우주의 규칙을 정의하는 것은 '경이롭다'는 표현 밖에 사용하기 힘들다. 이 책의 묘미는 저자와 역자가 주고 받는 묘미에 있다. 책을 번역하는 이들 중에서 책이 꽤 재밌다 싶으면 '강영옥' 님의 번역인 경우가 많았다. 이번의 역자는 '박병철' 님이다. 이 책에서 저자의 농담에 '박병철' 님의 받아치는 농담은 적정한 선에서 피식하고 웃게 한다. 500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과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물리학 이론'이지만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으며 볼 수 있었다. '코스모스', '사피엔스', '총균쇠'에 이은 역작(*제목만 원제로 돌려주시면.. 더 좋았을 것 같...)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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