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천재들 - 물리학의 한계에 도전하는 바다 생물의 놀라운 생존 기술
빌 프랑수아 지음, 발랑틴 플레시 그림,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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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명명할 것이 마땅치 않아 음식으로 취급하는 '고기'를 생물에 직접적으로 붙인다. 과학 저술가 '룰루 밀러'는 19세기 자연사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를 추적하며 그가 물고기를 분류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서술했다. 조던은 수많은 물고기를 발견했고 그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자 했다. 다만 물고기라는 범주가 과학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분류 체계'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주관적일 수 있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내용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꽤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도서의 주제다. 주제가 말하는 바와 같이 '물고기'라는 범주를 정의하지 못한 채, 우리는 그것들을 과학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도서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후 '빌 프랑수아'의 '바다의 천재들'이라는 도서를 읽게 됐다.

흔히 '어류'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해 정확한 명명을 못찾은 인류가 그들을 '바다의 천재'라고 명명한 것은 꽤 인상 깊다. 그들이 천재라는 사실은 도서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까지 완전하게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된다.

앞서 말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도서가 인간의 불완전함을 꼬집는 책이었다면 이 책은 우리의 '공감능력'을 꼬집었다고 볼 수 있다. 이유는 이렇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물고기'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었던가. 분명컨데 대부분의 인류가 그들에 대한 공감적 정서를 갖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게 '고기'라는 명칭을 둔 것을 볼 때, 그들은 그저 '먹을 수 있는 살갖'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물고기의 세계는 '작은 물고기'와 '큰 물고기'로 나눌 수 있다. 이 둘은 공존하며 아름다운 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믿을 지 모른다. 그러나 물고기 중에는 고래상어나 개복치처럼 무게와 크기가 수턴, 수 미터가 넘는 것들도 있고 난쟁이 망둥어처럼 다 자라도 새끼손톱만 한 것도 있다. 이 둘은 모두 '물고기'로 부른다.

우리는 물고기가 액체의 관성을 이용하여 추진력을 얻어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액체 관성을 이용하여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몸이 어느정도는 커야 한다. 헤엄은 물 분자들의 집단적 움직임의 결과다. 생각해보자. 각각의 물분자는 너무나 작다. 그것은 우리가 헤엄치는데 전혀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너무 작은 생명체라면 어떨까. 너무 작은 동물은 각각의 물분자의 움직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쉽게 말하면 작은 물고기에게 '바다'란 야구공만한 '볼풀'이 가득한 불풀장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다.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물은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유체가 아니라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물분자들의 집단이다. 이들은 볼이 가득한 볼풀장에서 볼을 밀어내며 움직여야 한다. 고로 더 많은 힘을 요하고 속도는 느려질 수 밖에 없다. 또한 크게 움직이는 '볼'들의 움직임에 의해 휩쓸리거나 큰 물고기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들에게 '물'이란 우리가 느끼는 물과 크게 다르다. 작은 물고기에게 물은 점성이 매우 높은 물질처럼 느껴질 것이고 끈적거리는 꿀 속에서 헤엄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반면 큰 물고기도 그만한 불편함이 있다. 큰 물고기들은 물의 난류와 유체 저항이 증가하면서 마치 단단한 물질과 충돌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큰 물고기나 빠르게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물이 더 밀도 높고 단단한 매질처럼 느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바람이 많이 부는 어느날 우산을 펴고 바람을 마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과 비슷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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