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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세계사 - 세계를 뒤흔든 결정적 365장면 속으로!
썬킴 지음 / 블랙피쉬 / 2024년 12월
평점 :
'그 총 무겁지 않나요? 빨리 쏘세요'
이국적인 외모의 네덜란드 출신 무용사로 그녀의 이름은 '여명의 눈동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마타 하리'는 20세기 초 유럽의 상류층을 매혹시킨 전설적인 인물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녀는 단순한 무용가 수준을 넘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정치적 음모와 첩보 활동이라는 꽤 영화 소재 같은 인생을 살았다.
1917년 10월 15일 파리 근교, 그녀는 프랑스 당국에 체포되어 '총살' 당한다. 그녀의 매력적인 인생과 외모처럼 꽤 인상 깊은 유언을 남겼는데 그 말이 앞서 말한 '총 무겁지 않나요? 빨리 쏘세요' 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날짜 때문이다. 날짜는 1917년 10월 15일. 지구가 태양을 주변으로 70번을 돌고 정확히 그 자리에 다시 섰을 때 내가 태어났다. 누군가가 생을 마감하던 날, 태어나는 것은 그닥 특별한 일은 아니다. 모두가 모르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있고, 누군가는 죽고 있을 것이다.
살면서 '마타 하리'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녀의 간략한 이력 정도는 들어 알지만 언제 그녀가 처형 당했는지 알 턱이 없다. 다만 그녀의 처형 날이 나의 태어난 날과 겹치며 그녀의 죽음과 나의 삶에 어떤 인연이 생겨버린 느낌이다.
이렇게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특별한 날을 살아가고 있다. 소설 '가시고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당신이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날은 특별한 날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태어난 날이고, 누군가에게는 죽은 날이며, 누군가에게는 결혼 기념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이별한 날일지 모른다. 이런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사라지고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날짜'라는 숫자 밖에 없다.
10월은 꽤 선선한 날이다. 이날, 어떤 사람은 아직 반팔을 입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일찍 긴팔을 꺼내 입었을 것이다. 월과 일을 두고 '년'을 바꾸면 그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대체로 비슷한 느낌의 풍경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글을 쓰는 1월 9일 오후 10시, 제주에는 꽤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 거의 첫눈이라고 보여지는 이 눈을 뚫고 2시간은 걸었다. 잡히지 않는 택시를 탓하고 걷다가 고개를 돌리는 미끌어지는 택시 한대가 앞에 서 있는 승용차를 들이 박는다.
'어이쿠'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미끌어지는 택시를 보니, 어쩌면 택시가 잡히지 않는 이유를 알 것 만 같았다. 모두가 나와 같을 것이고 모두가 택시를 찾고 있지는 않을까. 같은 계절을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요구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1905년 1월 9일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무려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한 비극이 벌어졌다. 80년 전 오늘이다.'먹을 것을 달라'는 비무장 농민과 노동자 시위대에게 러시아군이 발포 명령을 내린 것이다. 여기보다 더 혹독한 날씨에 많은 노동자들이 본능처럼 들고 있어났을 것이다. 이 추위에 얼어 죽을 것 같던 비무장 농민들은 거리로 나와, 군대의 총알로 죽는다. 이들은 곧 혁명을 일으키고 러시아를 멸망시킨다.
그렇다. 따뜻한 어떤 날에는 아무 문제도 없던 것이 추워 견디기 힘든 날이 되면 그 인내는 다른 인내의 수용력도 갉아온다. 오늘이면 그럴 수 있었겠다, 고개가 끄덕여지며 어떤 역사가 오늘처럼 쉽게 다가온다.
썬킴의 '그날의 세계사'는 1년 365일을 다양한 역사로 구성하고 있다. 내용을 봐서 알겠지만 정독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본인의 생일, 너무나 힘든 하루, 의미 있는 날, 간간히 들쳐보며 인류의 역사는 오늘 무슨 일기를 써 내려갔는지 보는 일이 꽤 흥미롭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