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타운대학교의 정치학자 한스 노엘 Hans Noel은 분류는 양극화의 하위 범주일 뿐이라고 말한다." 실용적인 말로 하자면, 그는 이 두가지가 "스펙트럼의 양쪽 끝 사이의 긴장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진다"라고 했다. 이것이 양극화를 설명하는 말이다.
나는 노엘의 말에 동의하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양극화 대 분류 논쟁은 이슈 기반 양극화와 정체성 기반 양극화를 설명하는 것으로 더 잘 이해된다. 대마초와 관련한 두 가지 예는 사람들이 양극 중심으로 결집하는 것을 보여준다. 한 예에서는 사람들이 주변으로 모여드는 극들이 그들의 정책적 의견을 반영하고, 다른 예에서는 그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반영한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양극화는 서로를 강화한다. 이슈에 기반한 양극화는 정치적 정체성 양극화로 이어진다.  - P62

우리는 전문가들이 ‘중도적 다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정치학자 데이비드 브룩먼David Broockman 이 보여주었듯, 소위 중도파가 진보주의자나 보수주의자보다 더 ‘극단적인‘ 의견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는 방식은 이렇다. 여론조사에서는 사람들에게 대마초 합법화, 이라크전쟁, 전 국민 의료보험, 동성결혼, 세금, 기후변화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물어본다. 사람들의 응답은 우파적이냐또는 좌파적이냐로 구분되어 코드화된다. 우파적인 답과 좌파적인 답이 혼재하는 사람들은 평균해서 중간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중도파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들은 중도적이지 않다. 그들은 그저 분류가 되지 않은 것뿐이다. 개별적인 답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치적 주류에서 한참 벗어난 의견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브룩먼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이 영국처럼 국가가 운영하는 보편적인 의료보험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모든 불법이민자들을 즉시 추방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종종 게이와 레즈비언에게 매우 가혹한 조치들이 16~20%의 지지를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중도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왜 극단적입니다."
양극화가 정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추동될 때는 중도적일 수 있다. 정당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길 원하므로, 투표에서 승리를 안겨줄 생각들을 옹호하려고 한다. 어느 한쪽 정당에 애착이 없는 사람은 훨씬 더 대중적이지 않은 의견을 자유롭게 가질 수 있다. - P65

인구 통계가 변하면 가치도 변한다. 2002년에는 공화당원의 50%, 민주당원의 52%가 도덕적인 사람이 되려면 신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에는 이 말에 동의하는 공화당원의 비율이 47%로 약간 감소했지만, 민주당원의 비율은 64%까지 치솟았다."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 와 대니얼 지블랫Daniel Ziblatt 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세금과 정부 지출과 같은 전통적인 정책 이슈보다 더 큰편협성과 적대감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는, 두 개의 깊게 양극화한 이슈인 인종과 종교를 두고 두 정당은 현재 분열되어 있다"라고 썼다. 나는 여기에 약간 수정을 가하고 싶다. 두 정당은 편협함과 적대감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는 근본적인 정체성들을 두고 분열되고 있으며, 이슈 갈등은 단지 그러한 분열의 한 표현일 뿐이다.
인종과 종교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지리에 의해서도 분류되어 있다.  - P68

변하는 것은 우리의 심리가 아니다. 변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심리가 정치나 삶에서의 다른 선택들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동되는지다. 정당 간의 차이가 명확해짐에 따라, 정당의 생각과 인구 통계의 마치 자석 같은 끌어당김은 ‘심리적으로 정렬된 사람들‘에게는 더 강해졌다. 이것은 ‘심리적으로 대치되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더 강해지는 것과 같다. 헤더링턴과 뮐러는 <프리우스 혹은 픽업트럭>에서 ‘유동적‘ 혹은 ‘고정된‘이라고 일컫는 심리적 척도를 사용한다. 그들은 이렇게 썼다.

우리가 ‘고정된 세계관‘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진 사람들은 잠재적인 위험을 더 두려워하며, 모든 위협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명확하고 변함없는 규칙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고방식은 계층과 질서가 팽배한 사회구조를 지지하도록 이끈다. 대조적으로, 우리가 ‘유동적 세계관‘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위험하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작다. 더 나아가 그들은 각 개인이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사회구조를 지지할 것이다. 그들은 한 사회의 안녕이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탐구하고, 진짜 자아를 발견할수 있는 더 많은 자유를 준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 P78

<열림 대 닫힘>에서 존스턴, 페데리코, 러빈은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수준과 다양한 심리적 경향성을 시험했다. 그들이 몇 번이고발견한 사실은 심리가 정치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의 정치적의견을 예측해주지 못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정치적 의견을 예측하는 강력한 예측 변수라는 것이다. 정치에 관심이없는 사람들에게서는 "기질에 따른 분류가 거의 없지만, 정치 참여도가 높은 사람들에게서는 그 효과가 매우 크다. 다양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은 정당 정체성에 있어서 거의 모든 다른 요소들을 압도했다.
이러한 발견에 기반해서 세 연구원들은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했다. "의견을 형성할 때, 정치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이 던지는 질문은 ‘이 정책이 나에게 무슨 이득이 되는가?‘이다. 하지만 정치 참여자들은정체성을 내세워 반응한다. 정치 참여도가 높은 시민들이 던지는 질문은 ‘이 정책에 대한 지지는 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이다.
다시 말해 심리적 분류는 정체성 정치의 강력한 원동력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핵심적인 심리적 전망과 결부시킬 정도로 충분히 정치에 신경을 쓴다면, 정치는 당신의 심리적 자기표현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심리에 의해 정치적 연합체들이 나뉘면서, 한쪽 또는 다른 쪽에서의 회원 자격은 내가 누구고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선언이자 신호가 된다. 우리가 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에 참여할 때, 거래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정치에 참여할 때, 정치는 정체성이 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정치와 맺는 관계, 그리고 서로와 맺는 관계가 변한다. - P79

타이펠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가 속한 집단의 내부 사람들은 호의로 대하고 외부인에게는 적대감을 느끼는 본능을 너무 깊게 학습하는데, 그러한 본능은 사회적 경쟁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우리는외부인에게 등을 돌리기 위해 그들을 일부러 미워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 등을 돌려서 어떤 이득이 따라올 필요도 없다. 우리가 그들을 ‘그들‘로 분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일단 ‘그들‘로 분류하면, 그들에게 의구심을 갖고 대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으로 대하려고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치 추위에 반응해 소름이 돋는 것과 같은 자동 반응이다.
타이펠의 이론은 암울하긴 해도 훌륭하다. 타이펠은 이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보았고 두 가지 가설을 제기했다. 첫 번째는우리가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분류하는 데 너무 익숙해 있어서 아주 미미한 신호만 주어져도 그렇게 하리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분류하고 나면, 우리는 우리가 소속한 집단에대해서는 호의적으로 행동하고 외부 집단은 차별하리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이러한 가설을 발판 삼아 타이펠은 일련의 실험을 시행했고, 그 결과는 오싹하고 소름끼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 희극적이었다.
••••••
일부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두 구성원 가운데서나 외부 집단의 두구성원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때는 행동을 추동하는 집단 경쟁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결과가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소년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두 구성원에게 돈을 줄 때 외부집단의 두 구성원에게 줄 때보다 더 많이 주었다. 돈을 줄 내부 집단 구성원이 없는 상황에서도 소년들이 외부 집단 구성원들을 벌주기로 한결정에 대한 타이펠의 묘사는 지금 읽어도 놀랍다. 그들이 여전히 외부집단을 벌주기로 선택한 것은 ‘불필요한 차별을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였다. 
타이펠은 이러한 결과를 반영한 1971년 논문에 집단 갈등이 자원이나 권력을 둘러싼 제로섬적 충돌 때문에 생겨난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고 썼다. 그는 "차별적인 집단 간 행위가 오로지 ‘객관적‘ 이해 충돌측면에서만 고려된다면, 그것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의 연구에 참여한 소년들은 허술하고 잘못된 기준에 근거해 분류되었고, 소속 집단이 다른 이들을 벌줘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때로는심지어 잃을 것이 있었다). 소년들의 행동은 소속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순수한 욕망과는 거리가 있었고, 종종 자신의 집단과 외부 집단사이의 격차를 키우려고 불이익도 감수했다. 타이펠은 돈이 주된 동기가 아니며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승리"라고 썼다.
다시 말하지만, 이 결과는 서로를 알고 있다거나, 무작위로 분류된무의미한 집단에 대한 애착이 사전에 없었고, 자신은 결코 얻을 수 없는 돈을 배분하는 일을 맡은 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 P84

 블라이드는 "듀크대학교나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둘 중 하나에 대한 충성을 통해 살아가고 죽는 것은경기와 팬덤을 통해 재현되는 것 못지않게 현실적이다"라고 썼다.
나는 이 문구가 마음에 든다. "충성을 통해 살아가고 죽는다."이 말이 과장되게 들린다면, 이 감정적인 경험이 합리적일 수도 있음을 고려해보라. 인간은 무리 지어 살도록 진화했다. 집단의 일원이 되고 집단이 번창하는 것은 생존을 의미했다. 집단에서 추방당하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이 적에게 짓밟히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우리가 집단 소속감과 지위를 죽고 사는 문제로까지 인식하도록 진화한 것이 정말 이상한 것일까? 외로움에 대한 과학적인 발견은 강력한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는 사회적 고립이나 명예의 실추를 단지 심리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공동체에서 버림받았다는 느낌이나 다른 사람들의 비난은 실제로 신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외로움이 비만이나 흡연보다 나쁘다는 통계를 들어봤을 것이다. 미국 공중보건위생국장을지낸 비벡 머시Vivek Murthy 같은 의료 전문가들은 사회적 고립이 질병이나 부상에 준하며, 이러한 심리적 상태는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 메커니즘은 진화적이다. 우리의 뇌는 생존하기 위해 집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집단에서 쫓겨났다고 느낄 때, 몸 전체에 엄청난 스트레스 반응을 촉발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우리는 사회적 생물로 진화했다. 신뢰와 협력의 관계를 구축하는 우리의 능력은 오래전부터 안정적인 식량 공급과 일관된 보호를 받을기회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수천 년 동안 사회적 관계의 가치는 우리의 신경 체계에 주입되어, 사회적 관계의 부재는 신체에 스트레스를 주었다. 외로움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장기적 혹은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핵심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더 잦은 상승으로 이어진다. 또한 외로움은 신체에 염증을 일으키고, 결국 혈관과 다른 조직을 손상시켜 심장병, 당뇨병, 관절병, 우울증, 비만, 조기 사망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또한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의사 결정, 계획, 감정 조절, 분석, 추상적인 사고를 지배하는 뇌의 전두엽 피질을 고장낼 수 있다. - P90

2015년, 패트릭 밀러 Patrick R. Miller와 패멀라 존스턴 코노버 PanelaJohnston Conover는 「마음의 빨간 상태와 파란 상태Red and Blue States of Mind」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공화당원들과 민주당원들이 (그리고 어느 한 정당으로 기우는 무당파들이) 선거 기간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본다. 그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무엇인가? 그들은 무엇을 느끼는가? 무엇이 그들을 정치에 참여하게 하는가? 논문의 결론은 이렇다.
"열성 당원들의 행동은 더 큰 선을 위해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사려 깊은 시민들의 행동이라기보다는 스포츠 팀원이 소속 팀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과 유사하다. 시쳇말로 ‘헐‘이다!
밀러와 코노버는 당원들의 행동을 두 단계로 나누어 시험했다. 첫번째 단계에서는 상대 당에 대한 분노와 경쟁심이라는 프리즘을 통해당파적 행동을 관찰했다. 그들은 엄청나게 많은 자료와 선거 전후 여론조사를 이용하여 사회적 이슈에 관한 입장, 이념, 나이, 교육, 정치 지식, 교회 출석, 성별, 당파적 정체성, 인종 등 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있는 것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그들은 정책과 사상, 이념 같은 고매한 요소들이 열성 당원의 감정에 어느 정도 역할을 했지만, 압도적인 동인은 당파적 정체성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밀러와 코노버는 이렇게 썼다. "선거는 정당일체감을 가지는 사람들의 팀 정신을 두드러지게 하여 그들에게 반복적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을 ‘우리와 그들‘로 비교하게한다. 이것은 선거에서 패배하면 잃을 것(지위를 잃게 된다)에 주목하게한다. (…) 결국 경쟁과 분노 둘 다를 낳는다."
밀러와 코노버가 생각한 다음 질문은 그러한 감정이 행동으로 이어졌는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이 공화당원이나 민주당원이 선거운동을 돕거나 실제로 투표하도록 이끄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시행했다. 이번에도 사회적 이슈나 이념 같은 추상적인 것보다 당파적 정체성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 후 밀러와 코노버는 흥미로운 작업을 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상대편에 대해 얼마나 많은 분노, 경쟁심, 무례함을 느끼는지 떠올려보라고 요청했다. 이 질문이 추가되자, 다른 모든정치적 요인의 영향력은 급락했다. - P94

 <열림대 닫힘>에서 가장 참여가 적은 유권자들은 물질적 이득이라는 렌즈를 통해 정치를 보는 경향이 있지만(‘이 정책이 나에게 무슨 이득이 되는가?‘), 가장 깊이 참여하는 유권자들은 정체성의 렌즈를 통해 정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이 정책적 입장에 대한 지지는 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는 좌파 진영에서 오랫동안 고민해온 현상, 왜 노동자 계층 유권자들이 공화당을 지지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왜 노동자 계층이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삭감하고 빈곤층을 보호하는 노조를 무너뜨리는 정당에 투표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느냐는것이다. 존스턴, 러빈, 페데리코가 발견한 것은 사람들이 정치에 더 많이 참여하고 투자함에 따라 만족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이익‘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경제적 부가 정치적 행동에 있어서 유일하고 합리적인 동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실수다. 더 정치적이 될수록 자기표현과 집단 정체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다. 존스턴, 러빈, 페데리코는 "시민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 의견을 형성할 때 물질적인 관심사가 목표가 아닌 경우가 많다"라고 썼다. 
물론 정치인들이 모든 유권자에게 똑같이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가장 깊숙이 참여하는 유권자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둔다. 그들에게 투표하고, 그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그들에게 기부할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유권자를 더 많이 끌어모으려면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정치인인지 알리는 것으로 부족하고, 상대편 정치인이 얼마나 나쁜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공동의 적만큼 집단을 단결시키는 것은 없다. 상대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을 없앤다면, 정치인은 지지자들의 열정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 P96

오바마는 이렇게말했다. "미국 정치가 실제 사람들이 그런 것보다 더 양극화하는 데 기여한 것을 꼽자면, 적어도 두어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정치적 스펙트럼상에서 완전히 반대편에있는 가족이나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있습니다. 그렇긴 해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렇죠? 우리 모두는 축구 경기를 하러 가거나. 아니면 자녀들이 축구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코치 노릇을 하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부모들도 만납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정치적인 언급이라도 하면, 갑자기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라는 반응을 보이게 돼죠."
여기서 오바마는 정치적 정체성이 우리의 유일한 정체성은 아니라는 점을, 그리고 우리의 다른 정체성(어린이 야구 팀 코치, 학부모회 회원, 부모 등등)은 정치적 정체성보다 훨씬 덜 양극화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 P1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행자- 심시선씨, 유일하게 제사 문화에 강경한 반대 발언을 하고 계신데요. 본인 사후에도 그럼 제사를 거부하실 건가요?
심시선- 그럼요, 죽은 사람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봤자 뭐하겠습니까? 사라져야 할 관습입니다.
김행래- 바깥 물 좀 드셨다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 아닙니다. 전통문화를 그리 우습게 여기고 깔보면 안 돼요.
심시선-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입니다. 그것도 순전 여자들만, 우리 큰딸에게 나 죽고 절대 제사 지낼 생각일랑 말라고 해놨습니다.
진행자- 아, 따님에게요? 아드님 있으시잖아요.
심시선- 셋째요••••••? 걔? 걔한테 무슨 나 죽고 나서 모든 대소사는 큰딸이 알아서 잘할 겁니다.
김행래- 몹쓸 언행은 아주 골라서 다 하시는군요.
심시선- 선생 생각이랑 내 생각이랑 어느 쪽이 더 오래갈 생각인지는 나중 사람들이 판단하겠지요.
-TV토론 <21세기를 예상하다>(1999)에서 - P9

염을 할 때 보았다. 그 희미한 흉터를. 20세기에 생겨 21세기에 불타사라진 흉터에 대해 회수는 자주 오래 생각했다.
빈 찻잔을 앞에 두고 허벅지가 불편할 때까지 앉아 있었더니, 액자에 햇빛이 들어 반사가 심해졌다. 화수는 액자 유리에 비친 자신을 보았고 관자놀이와 턱, 목 아래로 이어지는 흉터를 살폈다.
분노로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테이블을 손바닥으로밀며, 한 발을 딛고 또 한 발을 디뎠다. 무릎과 어깨가 어색하게움직였지만 무시하고 벽을 짚었다. 숨을 고르고 욕실로 걸었다.
분노를 연료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비웃어주고싶었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나와 내 할머니만 알고 있다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십 분쯤은 활기가 지속될 것이었다. - P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신이 맡은 일에서 어떻게든 잘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되고 이기적인 일인가요? 그게 설사 남에게 피해를 주는일이라는 걸 알았더라 하더라도 말이에요. 하지만 그걸 알고서야누가 그러겠어요? 그 정도까지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우리는 근시안적이었고 무관심했어요.
- 브룬힐데 폼젤, 2013년 뮌헨

브룬힐데 폼젤은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들 중 한 사람, 즉나치의 대표적 나팔수 노릇을 한 요제프 괴벨스의 최측근이었다. 그녀는 제국 선전부 소속으로 괴벨스의 속 타자수겸 비서로 일했다. 처음엔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직후 제국 방송국에 취직하려고 NSDAP(국가 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나치)에 입당했다. 그러다 1942년에 국민 계몽선전부로 자리를 옮겼고, 1945년 5월 항복 선언 때까지괴벨스 선전부 장관의 비서실과 국가 사회주의 엘리트 수뇌부에서 일했다. 소련군이 베를린에 진입해서 시가전을벌이던 전쟁 막바지에도 도주할 생각을 하지 않고 벙커에서 타자를 쳤고, 심지어 히틀러의 공식 항복을 알리는 깃발을 만들었다. 그 후 70년이 넘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 P10

폼젤의 이야기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공감능력과 연대감의 상실을 수반하는 광범한 시민 계층의 정치적 무관심이 나치의 비상과 성공을 부른 한 원인이었다는 점이다. 비록 그녀 자신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고,
인식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브룬힐데 폼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 지금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만든다. 폴란드작가 안드르제이 스타시우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유권자들이 불안에 떨수록 우리는 더 큰 겁쟁이들을 뽑게 된다.
그러면 불안을 관리해야 할 이 정치인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와 우리 나라, 우리의 유럽 대륙을 제물로 삼는다.> 우리는 이대로 비겁하게 숨을 것인가 아니면 맞서 싸울것인가? - P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것은 한마디로 원장님과 섬사람들의 길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원장님이 아무리 섬사람들을 생각하고 섬을 위해 노고를 바치고 계셨다 해도 원장님은 결국 그 섬 사람들과 같은 운명을 사실 수는 없었기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원장님께서 꾸미고자 하신 섬사람들의 나가 원장님과 섬사람들의 공동의 천국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장님은 저들의 천국이라 하고 저들은 원장님의 천국이라 말하게 되겠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이 그 거리가 얼마나 깊고 멀다는걸 전 섬을 나온 후로부터 더욱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전 섬을나온 이후부터 이것저것 참 여러 가지 일을 해봤습니다. 일을 통해 육지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 속으로 자신을 섞여들어보려구요. 하지만 섞일 수가 없었습니다. 섬 생각이 사라지게 하질 않았어요. 육지 사람들이 절 그렇게 만들었고, 저 자신이 저를 그렇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흔적 없이 섞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억지로 섞여들면 숨는 꼴이 되었구요. 초인적인 인내와 용기가 없는 한 운명을 같이하기란 그토록 힘이 드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전 저 자신에게서나마 숨어산다는 생각이 가실 때까지 이 육지를 견뎌보려고 오늘까지 이 안간힘을 써가며 버티고 있는 꼴입니다. - P379

여기 너희 천국이 마련되어 있는데 원장님께서는 이미 섬을 빠져나가려는 원생들을 이 섬과 동환에 대한 배신자로 낙인찍고 계십니다.
문둥이들만을 위한 천국- 여기에 또한 원장님의 그 눈에 보이지않는 또 다른 모습의 철조망이 마련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불행한 병을 앓는다 하더라도 저들에게도 온갖 인간적인 소땅과 자기 생의 실현욕은 근본적으로 여느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을것입니다. 기구한 생의 역정을 걸어온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저들이 기구해온 천국이 여느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수는 없습니다. 저들이 비록 그것을 망각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저들에게 그것을 다시 찾아주어야 합니다.
원장님께서는 그러나 저들에게 그냥 인간의 천국을 지어주시려는것이 아니라, 문둥이의 천국을 지으려 하고 계십니다. 원장님의 천국계획은 처음부터 이 나라의 나환자를 한데 모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섬 원생들이 섬을 떠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섬안에 낙토를 꾸미시겠다는 원장님의 계획은 섬을 나가기만 하면 육지사람들의 무서운 복수를 면할 수 없으리라는 협박으로 원생들의 발목을 섬 안에 붙들어두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소망과 방법이 다를 뿐 효과에 있어서는 목적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저들을 그냥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특수한 조건과 양보 위에 그것을 수락할 수있는 문둥병 환자로서만 이해하려 하심으로써 오히려 저들로 하여금 원장님 자신의 문둥이 천국을 짓게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야 가난한 자의 천국은 우선 재산을 누리는 곳에서, 병을 앓는자의 천국은 건강을 되찾는 곳에서 먼저 만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재산이나 건강은 그것이 극도로 결핍된 처지에서나 어떤 특수한 천국의 내용이 될 수 있을 뿐, 그것들이 언제 어디서나 모든인간의 궁극적인 천국의 내용일 수는 없습니다. 너희는 이 세상 누구에게서도 너희 병을 용서받아보지 못한 가엾은 문둥이들이므로-. - P387

도대체 어떤 절대 상황 안에 격리된 인간 집단 안에서는 그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협의 관계에 의한 지배 질서란 궁극적으로 그 상황의 벽을 무너뜨리는 순교자적 용기와 희생 없이는 가능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스리는 자의 선의나 정의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그의 지배권이 어디에서 연유했든 그것만은 끝끝내 절대 전제가 되어 있는한 다스림을 받는 쪽은 항상 감당해낼 수 없는 상황 자체의 압력 때문에 스스로가 무력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행한 사회의 질서란 우리가 흔히 믿고 있듯이 다중의 희망이나 기도 같은 것과는 일단 상관이 없이 우선은 그 지배자 한 사람의 책임과 각성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슬픈 결론입니다.
결코 장로회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원장님께서는 다만그 원장님의 천국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섬을 나갔을 때 그들이 육지사람들로부터 당하게 될 지주와 학대를 적절히 설명하심으로써 원생들 스스로 그들의 울타리를 높여가게 하고, 그 울타리 안에 고정된 적절한 상황의식을 되풀이 환기시켜줌으로써 그 장로들과 섬사람들을얼마든지 뜻대로 조작해오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 결국 이 몇 년 동안 원장님과 원생들의 관계에서 한 선의의 지배자와 피지배자들 사이의 어떤 대등한 상호 지배 질서, 만인 공유의화창한 지배 질서가 탄생하는 것을 본 것이 아니라, 한 지배자가 어떤불변의 절대 상황 속에 갇힌 다수의 인간 집단을 얼마나 손쉽게 그리고 어느 단계까지 저항 없는 조작을 행해갈 수 있는가 하는 슬픈 지배술의 시범을 보아왔던 셈입니다. 그 지배자가 최초에는 아무리 성실한 인간성과 선의의 명분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 갇힌인간의 무리가 아무리 그들의 지배자를 바로 경계한다 하더라도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다 함께 그들을 가두고 있는 울타리에대한 깊은 각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다스리는 자는 결국 그의 무리를 일방적으로 조작해나가게 마련이며, 다스림을 당하는 자들 또한다스리는 자의 뜻을 재빨리 수락하고 그것에 봉사해나갈 수밖에 없게된다는 말씀입니다. - P397

"자유나 사랑을 행함에는 차이가 큰 일이었지요. 섬사람들과의 한운명 단위 속에서 서로 믿음을 얻고 나면 일단 그 자유나 사랑을 함께 행해나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무엇으로 행해가겠소, 사랑은 무엇으로 행해가겠소. 자유나 사랑을 행함에는 절대로힘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힘이 없는 자유나 사랑은 듣기 좋은 허사에 불과할 뿐입니다. 자유나 사랑으로 이룩해져나감은그 자유나 사랑 속에 깃든 힘으로 해서일 겁니다. 사랑이나 자유의원리가 바로 힘이 아니더라도 그것들이 행해지고 그것들이 이룩해나가는 실현성이나 실천성의 근거는 그 힘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자유나 사랑이나 다 같이 그 실천적인 힘에 근거하여 비로소 제 값을 지닐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선 두 가지가 같은 차원의가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이겠구요. 내 말은 결국 같은 운명을 삶으로 하여 서로의 믿음을 구하고, 그 믿음 속에 자유나 사랑으로 어떤 일을 행해나가고 있다 해도 그 믿음이나 공동 운명 의식은 그리고 그 자유나 사랑은 어떤 실천적인 힘의 질서 속에 자리를잡고 설 때라야 비로소 제 값을 찾아 지니고, 그 값을 실현해나갈 수있다는 이야깁니다."
"원장님께서는 결국 원장으로 다시 섬을 들어오지 못하셨기 때문에, 원장의 권능으로 섬을 다스릴 수 없었기 때문에 또다시 그 자우와 사랑을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운명을 같이하지 않는 한에서의 어떤 힘의 질서는 무서운 힘의 우상을 낳을 뿐이겠지요. 하지만 운명을 같이하려는 작정이 있은 다음엔 내게 그 원장의 권능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 허심탄회한의 질서 속에서 섬의 자유와 사랑이 행해져나가야 했었어요. 하지난 이미 이 섬 병원의 원장이 아니었어요." - P408

결혼식 아침날은 기대했던 대로 남해안 특유의 따스하고 화창한 봄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산간을 뻗어 돌아간 황톳길들은 밤사이 함성처럼 피어난 벚꽃 무리로 하여 불을 켠 듯 환하게 뚫려나가고, 벌판을 휘돌아 어우러진 보리밭의 푸르름은 바야흐로 한창 봄의 약동을 합창하고 있는 듯했다. 십자봉을 비껴 흐르는 하늘은 정봉의 소나무 가지보다도 드높았고, 섬을 휘감아 돌아간 득량만의 물빛은 어느새 그 선뜩선뜩하고 암울스런 겨울빛을 말끔히 벗고 있었다. - P413

하지만 이제 자기 목소리에 열이 오를대로 오른 조원장은 자신이 이미 식장의 시간을 늦은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시간이이미 늦어버린 가운데에 그 조원장의 능청스런 축사 연습은 그리고자신의 광기에 못 이긴 기이하고도 진지한 연기는 아직도 한동안이나 더 도도하게 계속돼나갔다.
"이제 두 분에 대한 저의 당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비로소 윤해원과 서미연 두 사람에 대한 그의 당부라는 것을말하기 시작했다.
"두 분에 대한 저의 당부라는 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앞서도 이미말했듯이 두 분은 기왕에 남다른 사랑과 용기로 이 일을 이룩하였으니 앞으로도 계속 자신들의 방을 허물어뜨리지 말고 누구보다 굳세게 그를 지키고 살찌워나가주시라는 것입니다. 벽을 허물어뜨리고그 벽 대신 따뜻한 인정이 넘나들 믿음과 사랑의 다리가 놓여야 할곳은 많습니다. 다리의 이쪽과 저쪽이 한 동네 한 마을로 섞이고 화목해야 할 자리는 많습니다. 제가 두 분의 신접살림을 직원 지대와병사 지대의 중간에 마련케 하고자 했던 것도 사실은 그런 뜻에서였습니다. 두 분의 결합과 정착지를 시발점으로 하여 하루빨리 이 섬에서부터 두 마을이 하나로 합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 분의 정착지가 하루빨리 새로운 마을로 번창하여 이 섬 안엔 건강 지대와병사 지대가 따로 없는 하나의 마을로 채워지기를 빕니다. 이제 두사람으로 해서 그 오랜 둑길이 이어지고 길이 뚫렸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이웃은 힘을 합해 그 길을 지키고 넓혀나갈 것입니다••••••." - P4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관이 된대도 할 수 없는 일이지."
"그게 정말로 장로님의 진심일 수가 있습니까?"
"진심일 수 있지. 우리 우리가 할 일을 다했을 뿐이고, 우리들한테 땅을 조금이라도 나눠주고 안 나눠주고는 다음번 일을 맡아간 사람들의 일이니까. 설사 그 사람들이 우리한텐 한 조각의 땅도 나눠주고 싶지 않다 해도 그 역시 이젠 그 사람들의 일이거든."
"이 섬 5천 원생들의 생각도 모두가 장로님처럼 태연스러울 수 있을까요?"
"같지 않아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아, 원장도 알지 않은가? 문둥이들이란 원래가 그런 식으로 살아온 걸 말야. 그런 건 다들 벌써 익숙해 있을 거야."
"••••••."
"그렇다고 뭐 그 문둥이들을 너무 안되어할 것도 없는 일이지. 안되어할 게 없는 것이 언젠가 그 문둥이들은 남 위해 일하는 법 없다고 말했지만 문둥이들도 이 일을 해오면서 벌써 제 누릴 몫의 은혜는 다들 누려온 셈이거든. 문둥이들이 제 힘으로 일하면서 제 힘으로 살아갈 땅을 얻겠다고 이 몇 년 동안 제법들 땀을 흘려보지 않았나 저마다 제가 살 천국도 그려보고. 그만만 해도 문둥이들한텐 대단한 은혜지. 너무 못미더워 안되어할 건 없어. 내 원장이 아직 잘모르고 있을 게란 것도 바로 그 점이지. 그 점을 잘못 알고 있길래 원장은 여태도 그 사람들하고 쓸데없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게야.
그야 기왕지사 섬을 떠나게 된 마당에 원장으로서도 일을 좀 만족스럽게 마무리지어두고 싶긴 하겠지. 그걸 나무랄 순 없을 게야. 하지만 내 보기엔 그게 아무래도••••••."
"그게 아무래도 제가 이 섬 사람들의 공로를 온통 저의 것으로 만들어 또 다른 동상을 짓고 싶어하는 증거가 아니냔 말씀이시지요." - P329

"바로 저 나무뿌리가 그런 것 중의 하나지요. 산에만 올라가면 저런 고목나무 뿌리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모두가 땅속에 숨어 있어요. 놔두면 제물에 썩어 없어져버릴 것들이지요. 하지만 내가 올라가 땅을 파고 썩어가는 뿌리를 찾아주면, 저것들은 제 몫의 아름다움을 되찾아 지니고 저렇게 내게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요즘 사람들 현상의 실체가 뭔가를 찾아낸다고 생유리창을 주먹으로 두들겨깨기도 하고, 새끼줄을 이리저리 얽어매는 따위의 별스런 짓까지 하는 모양입니다만, 이 나무뿌리는 그렇게 힘이 들 필요가 없어요. 일부러 뭘 만들어낼 필요가 없어요. 제가 원래 지닌 아름다움이 있거든요. 그 숨어 묻혀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주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놔두면 그냥 땅속에서 썩어 없어질 나무뿌리를 찾아내주기만 하면 그만이란 말이다. 그게 예술이 안 됩니까. 그래선 예술 작품이안 되는 거웨까?" - P3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