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이 된대도 할 수 없는 일이지."
"그게 정말로 장로님의 진심일 수가 있습니까?"
"진심일 수 있지. 우리 우리가 할 일을 다했을 뿐이고, 우리들한테 땅을 조금이라도 나눠주고 안 나눠주고는 다음번 일을 맡아간 사람들의 일이니까. 설사 그 사람들이 우리한텐 한 조각의 땅도 나눠주고 싶지 않다 해도 그 역시 이젠 그 사람들의 일이거든."
"이 섬 5천 원생들의 생각도 모두가 장로님처럼 태연스러울 수 있을까요?"
"같지 않아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아, 원장도 알지 않은가? 문둥이들이란 원래가 그런 식으로 살아온 걸 말야. 그런 건 다들 벌써 익숙해 있을 거야."
"••••••."
"그렇다고 뭐 그 문둥이들을 너무 안되어할 것도 없는 일이지. 안되어할 게 없는 것이 언젠가 그 문둥이들은 남 위해 일하는 법 없다고 말했지만 문둥이들도 이 일을 해오면서 벌써 제 누릴 몫의 은혜는 다들 누려온 셈이거든. 문둥이들이 제 힘으로 일하면서 제 힘으로 살아갈 땅을 얻겠다고 이 몇 년 동안 제법들 땀을 흘려보지 않았나 저마다 제가 살 천국도 그려보고. 그만만 해도 문둥이들한텐 대단한 은혜지. 너무 못미더워 안되어할 건 없어. 내 원장이 아직 잘모르고 있을 게란 것도 바로 그 점이지. 그 점을 잘못 알고 있길래 원장은 여태도 그 사람들하고 쓸데없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게야.
그야 기왕지사 섬을 떠나게 된 마당에 원장으로서도 일을 좀 만족스럽게 마무리지어두고 싶긴 하겠지. 그걸 나무랄 순 없을 게야. 하지만 내 보기엔 그게 아무래도••••••."
"그게 아무래도 제가 이 섬 사람들의 공로를 온통 저의 것으로 만들어 또 다른 동상을 짓고 싶어하는 증거가 아니냔 말씀이시지요." - P329

"바로 저 나무뿌리가 그런 것 중의 하나지요. 산에만 올라가면 저런 고목나무 뿌리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모두가 땅속에 숨어 있어요. 놔두면 제물에 썩어 없어져버릴 것들이지요. 하지만 내가 올라가 땅을 파고 썩어가는 뿌리를 찾아주면, 저것들은 제 몫의 아름다움을 되찾아 지니고 저렇게 내게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요즘 사람들 현상의 실체가 뭔가를 찾아낸다고 생유리창을 주먹으로 두들겨깨기도 하고, 새끼줄을 이리저리 얽어매는 따위의 별스런 짓까지 하는 모양입니다만, 이 나무뿌리는 그렇게 힘이 들 필요가 없어요. 일부러 뭘 만들어낼 필요가 없어요. 제가 원래 지닌 아름다움이 있거든요. 그 숨어 묻혀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주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놔두면 그냥 땅속에서 썩어 없어질 나무뿌리를 찾아내주기만 하면 그만이란 말이다. 그게 예술이 안 됩니까. 그래선 예술 작품이안 되는 거웨까?"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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