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가 거의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말씀드리는 거예요. 토미. 아버지는 전쟁에나가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돼서는 안 될 사람이었어요.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아버지는 그 일을 했고, 끔찍한 일들을 했고, 그래서 아버지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났던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는 자기 안에서 살아갈 수가 없었어요. 토미. 저는 그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다른 남자들은 그럴 수 있었겠지만, 아버지는 그럴 수 없었어요. 그 일이 아버지를 망가뜨렸고, 그리고......" - P32

"저런 어쩜." 패티가 한숨을 쉬고 뒤로 기대앉았다.
앤젤리나의 어머니는 몇 년 전 일흔넷의 나이에 이탈리아에 사는 거의 스무 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려고 타운을-남편을떠났다. 패티는 그 사실에 대해 앤젤리나에게 굉장히 큰 연민을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좀 들어봐! 루시 바턴의 어머니는 끔찍했고, 아버지는...... 오, 맙소사, 아버지는...... 하지만 루시는 그들을 사랑했다. 그녀는 어머니를 사랑했고, 어머니도 그녀를 사랑했대! 우리 모두 너나없이 엉망이야. 앤젤리나,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사랑은 불완전해. 앤젤리나,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 P75

패티는 앤젤리나가 자기 이야기를 무척 하고 싶어하는 것을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패티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렇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해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주된, 그리고 가장 큰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시비만은 예외여서 그는 그녀에게 관심을 두었고, 그녀 또한 그에게 엄청난 관심을 쏟았다. 그것이 사람들을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피부였다자신의 인생을 공유하는 또다른 누군가의 사랑이. - P76

소녀가 크고 슬퍼 보이는 눈으로 패티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마침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 어쩜." 소녀가 말했다. "음. 선생님에 대해 그런 엿같은 말을 한 거 죄송해요. 선생님이 어떻다는 말이요."
패티가 말했다. "너는 열여섯 살이야."
"열다섯 살이에요."
"너는 열다섯 살이야. 나는 어른이고 잘못한 사람은 나여야 해."
패티는 소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놀랐고, 소녀는 손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그냥 피곤해서요." 라일라가 말했다. "그냥 너무 피곤해서요."
패티가 일어서서 상담실 문을 닫았다. "얘야." 그녀가 말했다. "내 말 잘 들어, 얘야. 내가 너를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너를 대학에 보내줄 수 있다고. 돈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아까 말했듯이 네 등급은 훌륭해. 나는 네 등급을 보고 깜짝 놀랐고, 네 성적은 정말로 뛰어나. 나는 너만큼 등급이 좋지 않았어. 그런데도 내가 대학에 간 건 우리 부모님이 나를 대학에 보내줄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야. 나는 네가 대학에 가게 해줄 수 있고, 그러면 너는 가는 거야."
소녀가 패티의 책상에 올려놓은 자기 팔에 머리를 내려놓았다. 소녀의 어깨가 들썩였다. 잠시 뒤 소녀가 젖은 얼굴로 고개를 들고 말했다. "죄송해요. 하지만 누군가가 저한테 잘해주면...... 오 이런, 그러면 마음이 미칠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아." 패티가 말했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소녀가 다시 울었고, 계속 소리를내어 훌쩍였다. "오 이런." 소녀가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패티가 화장지를 건넸다. "괜찮아.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다괜찮아질 거야."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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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스강 유역에서는 기원전 3200년경에 히말라야산맥 기슭을 따라 죽 뻗은 골짜기 분지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문명과 함께 세계 최초의 3대 문명인 하라파 문명이 나타났다.
판들의 충돌은 높은 산맥(인도판이 유라시아판과 충돌하면서 생겨난히말라야산맥 같은)을 만들어내지만, 그 주변의 지각이 산맥의 엄청난 무게에 짓눌려서 침강하는 저지대 분지도 생겨난다. 히말라야산맥에서 흘러내려오는 인더스강과 갠지스강은 그 앞쪽에위치한 이 분지(전면 분지)를 지나가면서 산에서 싣고 내려온 퇴적물을 쌓아 초기의 농업에 유리한 기름진 토양을 만들었다. 따라서 하라파 문명은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의 충돌이 낳은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아라비아판이 유라시아판 아래로 섭입할 때 (104쪽 그림 참고) 생겨난 자그로스산맥의 무게에 짓눌려 침강하는 전면 분지 위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지나간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의 토양 역시 이 산맥에서 침식되어 내려온 퇴적물이 쌓여 매우 비옥했다. 아시리아 문명과 페르시아 문명은 둘 다아라비아판과 유라시아판이 교차하는 이 지점 위에서 생겨났다.미노아 문명과 그리스 문명, 에트루리아 문명, 로마 문명도 모두 판들이 복잡하게 활동하는 지중해 분지 환경에서 판의 경계에 아주 가까운 지점에서 발달했다. 메소아메리카에서는 기원전2200년경에 마야 문명이 나타나 멕시코 남동부 대부분과 과테말라, 벨리즈 지역으로 뻗어나갔고, 코코스판이 북아메리카판과 카리프판 아래로 밀고 들어가면서 생겨난 산맥들 사이에 큰 도시들을 많이 건설했다. 후기 아즈텍 문명은 동일한 수렴 경계에가까운 지점에서 번성했는데, 아즈텍 사람들은 지진과 포포카테페틀산(‘연기가 나는 산‘이라는 뜻) 같은 화산에 큰 두려움을 느끼녀 살아갔다. - P45

*판의 경계 지점에서 초기 문명들이 나타난 이 패턴에서 벗어나는 대표적인 예외 두 가지는 이집트 문명과 중국 문명이다. 하지만 이집트 문명은 비옥한 퇴적물을 정기적으로 실어다주는 나일강의 범람에 큰 도움을 받았는데, 이 퇴적물은 판의 활동으로 생긴 에티오피아와 르완다의 지구대 주위에 위치한 산들에서 침식되어 흘러내려왔다. 그리고 중국 문명은 남쪽의 양쯔강 유역으로 퍼져가기 전에 황허강 평원에서 시작되었는데, 두 강 모두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의 충돌로 솟아오른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 흘러내려온다. 따라서 이집트 문명과 중국 문명은 판의 경계에 위치하지는 않았지만, 농업(그리고 부)의 발달은 판의 활동에 큰 도움을 받았다. - P47

 사람들은 충상 단층이 공급하는 물과 판의 경계를 따라 지나가는 교역로에 끌려 수천 년 전부터 이러한 충상 단층 위에 정착해왔다. 이곳에 발달한 오늘날의 대도시들은 이 지질학적 유산 때문에 특히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다.
우리는 판의 활동이 낳은 자식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대도시들 중 일부는 판의 활동이 만든 단층 위에 세워져 있고, 역사를통해 많은 초기 문명이 지각을 구성하는 판들의 경계 지점에 세워졌다. 더 기본적으로는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난 판들의 활동은 호미닌의 진화에 그리고 지능과 적응 능력이 특별히 높은 우리종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P50

셋째, 지구의 자전축이 약 2만 6000년을 주기로 뒤뚱거리며 도는 팽이처럼 원을 그리는데, 이 현상을 세차라고 부른다. 세차는 북반구와 남반구가 태양을 향해 기울어지는 시기에 변화를가져오는데, 따라서 계절이 찾아오는 시기도 변화시킨다(세차는분점 세차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서 분점은 춘분점과 추분점을 가리킨다). 현재 북극점은 북극성을 향하고 있지만(8장에서 보겠지만, 이사실은 항해자들에게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약 1만 2000년 뒤에는 지구의 자전축은 빙 돌아 새로운 북극성인 직녀성 (베가)을 향하게될 것이다. 그리고 북반구의 여름은 12월에 찾아올 것이다.
따라서 지구의 궤도 이심률, 자전축의 기울기와 그 흔들림은모두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주기적으로 변한다. 이 주기적 변화들을 앞 장에서 짧게 언급한밀란코비치 주기라고 부른다. 이 우주적 주기성이 지구의 기후에 어떻게 변화를 초래하는지 설명한 세르비아 과학자 밀루틴밀란코비치 Milutin Milankovit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밀란코비치 주기는 지구가 일 년 동안 태양 주위를 도는 동안 지표면에 쏟아지는햇빛의 전체 양에는 아무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하지만 태양열이 남반구와 북반구에 분포되는 양상에 변화를 가져오며, 따라서 계절의 강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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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

토미 거프틸은 한때 낙농장을 소유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 낙농장은 일리노이주 앰개시 타운에서 2마일쯤 떨어져 있었다. 그 일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토미는 낙농장이 홀랑 불타버린 그날 밤 느꼈던 두려움에 휩싸인 채 한밤중에잠을 깨곤 했다. 집도 깡그리 불탔다. 바람이 헛간에서 멀지 않은 그의 집으로 불똥을 날려보냈다. 그것은 그의 실수였다-그는 늘 자신의 실수였다고 생각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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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크리시가 내 지금의 남편에 대해 말했다. "아저씨가좋아요. 엄마. 하지만 아저씨가 잠을 자다 죽고 새엄마도 죽어서엄마와 아빠가 다시 합치면 좋겠어요." 나는 아이의 정수리에 키스한 뒤 생각했다. 내가 내 아이에게 이런 짓을 했구나.
내가 내 아이들이 느끼는 상처를 아느냐고? 나는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우리가 아이였을 때 품게 되는 아픔에 대해, 그 아픔이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며 너무 커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갈망을남겨놓는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꼭 끌어안는다. 펄떡거리는 심장이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끌어안는다.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 P217

요즘 나는 가을에 우리의 작은 집을 둘러싼 농장에서 해가 지던 장면을 이따금 떠올린다. 어디를 봐도 지평선이 보여, 내가한 바퀴 빙 돌면 지평선도 한 바퀴 원을 그렸다. 해는 등뒤에서지고, 눈앞에 펼쳐진 하늘은 그 아름다운 변신을 멈출 수 없다는듯 은은한 분홍빛을 자아내다 슬며시 푸른 기운을 띤다. 이윽고지는 해에 가장 가까운 땅이 한 줄 오렌지색 선을 그리는 지평선을 배경으로 어두워지다 거의 컴컴해진다. 하지만 돌아서면 땅은 여전히 부드러운 형체를 희미하게 드러내며 몇 그루 나무와, 흙을 갈아엎고 간작 식물을 심은 고요한 들판을 보여주고, 하늘은 머뭇거리다. 머뭇거리다 마침내 완전히 어두워진다. 그런 순간에는 영혼도 조용히 지켜볼 것만 같다.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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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빠를 그 전해에는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뒤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낯선 사람 같았고,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내 세상의 많은 부분과 무관하게 느껴졌다. 나는 정말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두려운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바턴 집안의 식구들. 우리 다섯명-줄곧 그랬듯 정상적이지 않은-이 하나의 구조물로 내 머리 위에 떠 있고, 심지어 다 끝날 때까지 나는 그것이 거기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셨을때 오빠와 언니가 어땠는지, 두 사람의 얼굴에 떠올랐던 당혹감이 자꾸 생각났다. 우리 다섯 식구가 정말로 건강하지 않은 가족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러다 어느순간 나는 우리의 뿌리가 서로의 가슴을 얼마나 끈질기게 칭칭감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남편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가족들을 좋아하지도 않았잖아." 그뒤로 나는 더더욱 두려워졌다. - P194

야구장! 내가 야구장을 보고 감탄했던 게 기억나고, 선수들이안타를 치고 달리던 게 기억나고, 관리인들이 밖으로 나와 흙을판판하게 고르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가장 생생한 기억은 해가지면서 햇빛이 근처 빌딩들, 브롱크스 지역의 빌딩들에 가 닿던장면이다. 그렇게 햇빛이 그 빌딩들을 비추고 나면, 이어 여기저기 도시의 불빛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내 앞에 그 세상이 돌연 펼쳐진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말은 그것이다.
남편과 헤어지고 여러 해가 지났을 때, 나는 72번가를 걸어 이스트 강까지 산책을 하러 다녔다. 그 길을 따라가면 이스트 강이 바로 나오는데, 나는 거기서 그 강을 바라보며 오래전에 우리가 함께 구경하러 간 야구 경기를 떠올렸고, 내 결혼생활의 다른기억들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종류의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그런 행복한 기억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하지만 양키스 경기에 대한 기억은 그렇지 않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나는 전남편과 뉴욕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부푼다. 나는 지금도 양키스의 팬이지만, 내가 야구장에 다시 갈 일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은 다른 삶이었다. - P203

대학 시절 내 룸메이트는 자기 엄마가 자기한테 잘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룸메이트는 엄마를 유난히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 그애 엄마가 치즈를 소포로 보냈는데, 우리 둘 다 치즈는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룸메이트는 그 치즈를 없애지 못했고, 다른사람에게 줘버리지도 못했다. "이 치즈를 그냥 둬도 괜찮을까?" 그녀가 물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준 거라서." 나는 이해한다고말했다. 그녀는 치즈를 바깥 창턱에 올려놓았고, 치즈는 그렇게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마침내 치즈 위로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우리 둘 다 치즈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었는데, 봄이 되자 치즈가 다시 형체를 드러냈다. 결국 그녀는 자기가 수업을 들으러갔을 때 치즈를 치워달라고 내게 부탁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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