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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송 - A Love Song for Bobby Lon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후텁지근한 여름의 뉴올리언스. 화면 위의 뉴올리언스엔 왠지 모를 무료함과 느긋함이 함께 한다. 사람들은 모여 앉아 기타를 치며 포크송을 부르고, 맥주를 마시고, 웃고 떠든다. 그러나 동시에 바비 롱, 퍼슬레인, 로슨이 함께 있는 집에선 매일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 없을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오래 전에 - 하지만 '오래 전'이라고 해봐야 그녀는 이제 열 일곱, 열 여덟 정도의 나이일 뿐이다 - 고향을 떠났던 것으로 보이는 퍼슬레인은 어머니 로레인의 죽음을 계기로 고향에 돌아온다. 돌아온 어머니의 집엔 어머니의 친구라는 두 남자, 바비 롱과 로슨이 기거하고 있고, 퍼슬레인은 이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영화는 각자의 아픔과 기억을 지닌 채 한 공간에서 서로 부딪히고, 때로는 서로 감싸며 상처를 치유해 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몸을 부대끼는 공간은 좁게는 퍼슬레인의 죽은 어머니가 남긴 집이고, 넓게는 뉴올리언스이다. 뉴올리언스. 그곳엔 재즈와 슬픈 역사가 있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이 흑인 노예 짐과 함께 뗏목을 타고 여행을 하며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배워가던 미시시피강이 흐르는 곳이 바로 이 뉴올리언스이다. 18세기에 정착한 노예의 후손인 흑인 인구가 2/3이상인 뉴올리언스와 그곳의 사람들은 저 밑바닥에 흐르는 아픈 역사의 기억을 품고 살며, 그 정서는 그들의 거리, 음악, 그리고 얼굴에 새겨져있다. 바로 이 속으로 감독은 각자의 묻고 지나가고 싶은 기억을 간직한 인물들을 끌고 들어간다. 퍼슬레인과 바비 롱, 그리고 로슨은 그들만의 아픈 기억을 품고 산다. 퍼슬레인은 아픔을 덮고자 자신만의 기억을 만들어내고, 가짜 기억은 진짜 기억과 뒤섞여 어떤게 진짜고 어떤게 가짜인지 심지어는 퍼슬레인 본인조차도 모르는 지경에 이른다. 그 기억을 안고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뉴올리언스로 불려 들어온다. 한때 영문학 교수였던 바비 롱과 그의 조교였던 로슨은 학교를 떠나 뉴올리언스로 들어와 그들의 아픔을 덮고자 매일 술을 마시고 강가에 앉아 체스를 두며 서로에게 집착한다. 그러나 기억은, 아픈 역사는 결코 모른 척 덮어버리고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장막을 거둬내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극복하고, 마침내 건너뛰어야 할 대상이다. 그들은 죽은 로레인이 남긴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것을 배워나간다.
뉴올리언스는 재즈의 본고장으로 알려져있다. 루이 암스트롱의 바로 그곳이다. 루이 암스트롱이나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 혹은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 연주는 이미 그들의 솔로 연주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그러나, 종종 훌륭한 연주자들이 모여 서로 주고 받으며 하모니를 이루어 낼 때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여러 악기가 서로 주고 받으며 그 속에서 화음을 이루어내며 하나의 연주를 탄생시키는 과정은 어쩌면 뉴올리언스의 바비 롱, 퍼슬레인, 로슨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인물들이 한 장소에서 서로 할퀴고 때론 감싸며 하나의 인생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다. 말하자면, 바비 롱이 뉴올리언스의 후텁지근한 여름 날씨를 꼭 닮은 목소리로 얘기하다가 문득 트럼펫을 연주하면 로슨이 그 옆에서 색소폰으로 돕고, 그 리듬 위에 퍼슬레인이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얹는다. 처음엔 엇나가던 연주도 그들이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호흡을 배워감에 따라 하나의 잘 어우러지는 완성된 연주로 탄생한다. 이처럼 세 인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끈적끈적한 화학작용이 언뜻 대단할 것 없는 그저그런 하루 하루를 보여주는 영화에 동력을 더해주는 요인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후반부에 찾아온다. 부치지 못한 편지와 그로인해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 이렇게만 말하면 이건 우리 안방 저녁시간대에 찾아오는 수없이 반복되는 TV 드라마의 설정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출생의 비밀이라는 설정 자체를 문제 삼으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밝히는 방식과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퍼슬레인은 죽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부치지 못하고 모아놓은 편지 상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바비 롱이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강가로 곧장 달려가 바비 롱에게 그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밝힌다. 그러한 사실을 역시 알지 못했던 바비 롱은 퍼슬레인으로부터 자신이 그녀의 아버지임을 듣고 둘은 진한 포옹과 함께 사랑스러운 부녀의 관계를 회복한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딸은 아버지를 얻고, 가족을 잃고 방황하던 아버지는 잃었던 - 혹은 없었던 - 딸을 얻는다. 마침내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가족을 이룬다. 진실을 알려주는 메세지는 상자 속에서 그냥 툭하니 튀어나오고, 진실을 접한 사람들은 아무런 갈등 없이 그것을 받아들인다. 이건 마치 세 인물이 한 공간에서, 한 집에서 서로 부딪히고 껴안으며 후텁지근한 날 햇빛 아래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듯한 기분으로 읽던 소설이, 갑자기 예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요정이 나타나 마술봉을 뿅하고 내리치며 '사실 너희 둘은 부녀였어'라고 알려주자 둘이 눈물을 흘리며 껴안는 동화로 변질되어 버리는 느낌이다. 달리 말하자면, 미시시피 강가에 있었는데 갑자기 디즈니랜드에 도착한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