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처럼 세지 않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에겐 확실히 셌다. 결정적인 한 방이 가해지는 순간에 예외없이 고개를 돌렸던 것 같다. 예전엔 미이케 다카시의 피가 난무하고 내장이 쏟아지는 영화를 낄낄거리며 봤는데 갈수록 이런 장면을 마주하는게 힘들어진다. 극장에서 나와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집에 돌아와 가족들의 웃는 얼굴을 보며 마음을 간신히 추스려야했다. 그런데 이게, 그러니까 이 불편한 감정이 단순히 영화에서 보여주는 액션의 강도의 세기 때문인지 의심스럽다.

먼저, 이해할 수 없는 죽은 주연의 동생의 첫 등장의 방식. 수현의 약혼녀 주연이 시체로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만) 발견된 후. 벤치. 주연의 아버지 장반장이 담배를 태우고 있다. 수현이 그에게 다가와 옆에 앉는다. 잠시간 둘의 대화 후 장반장은 수현의 손을 잡고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자신의 딸에게 미안하고, 수현에게도 미안하다고 한다. 가까이에서 이 둘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여기서 문득 멀리 빠져나가 이들을 바라보는 어느 여자의 등 뒤에서 둘을 바라본다. 갑자기 등장한 어느 여자의 등. POV. 일반적으로라면 여기서 다음 숏은 이 여자의 얼굴을 보여주어야 하는게 맞다. 하지만, 카메라는 여자의 얼굴을 건너뛰어 곧바로 화장터 안으로 들어가 타들어가는 주연을 보며 오열하는 가족과 수현을 보여준다. 즉각 떠오르는 질문.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지? 그리고 다시 납골당에서의 수현. 그런 수현을 ‘형부’라고 부르며 다가와 위로하려는 여자. 그제서야 우리는 먼저 보았던 뒷모습의 주인이 (아마도) 이 처제일 것이라 짐작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짐작’할 뿐이다. 이 주연의 화장터 시퀀스에서 주연의 여동생, 그러니까 수현의 처제(가 될 여자. 주연과 수현은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가 등장하는 두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왜 굳이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처음 그녀의 뒷모습이 등장했을 때 만약 다음 숏에서 그녀의 얼굴로 이어진다면 이 ‘처제’의 존재가 느닷없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부상하는 효과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그냥 건너뛰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이유라면 애초에 그녀의 뒷모습을 건 그 숏은 없었어야한다. 혹시 우리가 바라 본 시점은 처제의 그것도, 우리의 그것도 아닌, 죽은 주연의 자리에서 우리가 둘을, 혹은 셋을 바라봄이 아닐런지.

이후에도 처제는 몇 번 더 등장하여 수현으로 하여금 그녀의 눈치를 보게 한다. 난 여기서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 수현은, 그리고 주연의 아버지 장반장은 처제의 , 딸의 눈치를 그토록 보는 것이고 어찌보면 그녀의 반응에 저리 쩔쩔매는 것일까. 마치 나쁜 짓을 하다 선생님께 들킨 아이들처럼 말이다. 화장터 이후 그녀가 처음 등장하는 씬은 장반장이 수현에게 유력한 용의자 정보를 주고 있을 때이다. 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처제가 들어오고 수현과 장반장은 급히 탁자 위의 자료들을 숨긴다. 그리고 처제에게 말을 돌리는 수현의 모습은 다소 말을 더듬기까지 하는 느낌. 그의 직업이 국정원 경호요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나치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다른 가족에게 안좋은 일을 보여주지 않기 위함이라고 이해한다고 해도 여전히 좀 지나친 면이 있다. 국정원 요원들은 비밀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는게 일상인 사람들이다. 두번째 등장. 차를 타고 가는 수현에게 장반장이 전화를 걸어 이제 그만하자고, 그러는게 좋겠다고 한다. 여기서 그의 표정과 말투는 마치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은 듯한 느낌이기까지 하다. 그럴 수 없다는 수현의 대응에 수화기 너머에서 장반장의 수화기를 가로채는 것은 옆에 함께 있는 처제이다. 처제는 이제 의미 없는 복수는 그만두라 한다. 처제의 목소리를 들은 수현은 또 당황하고 애써 침착해하며 이것은 의미없는 복수가 아니라고 한다. 선생님께 결정적으로 들켜 꼼짝없이 혼나는 아이들. 한 아이는 교무실에 벌서고 있지만, 다른 아이는 선생님은 이해 못한다며 투정을 부리고 있다. 복수를 꿈꾸는 둘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한편으론 그 둘을 그만두게 하려는 처제의 몸짓. 혹은 죽은 주연이 내려와 그만두라고 말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경철이 장반장을 죽이기 위해 그의 집으로 찾아와 그를 죽이기 직전 처제가 집에 온다. 뒤늦게 도착한 수현. 다행히 장반장은 죽지 않았다. 뭐? 죽지 않았다고? 일단 다음으로 넘어가자. 분노에 가득차 경철을 쫓는 수현과 경철의 사이로 죽은 처제의 숏이 들어온다. 이불 같은 것에 꽁꽁 싸여서 어딘가에 죽은 채 버려진 모습. 그녀는 장경철의 다른 희생자들과는 달리 신체가 훼손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 숏은 아주 짧게 스치듯이 지나간다. 마치 눈길을 돌려 그녀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처제와 죽은 주연이 자꾸만 겹친다. “하나면 되요?” 칼을 들고 그녀의 옆에 앉은 장경철에게 주연은 자기 팔 하나면 되느냐며 그정도라면 기꺼이 내어줄테니 새 생명을 안고 있는 그녀를 살려줄 것을 부탁한다. 자기가 살고자 부탁하는게 아니라 아이를 살리기 위해 부탁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녀라면 죽어서도 수현이 자신의 복수를 위해 또 다른 악마가 되어가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화장터에서 차마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여동생의 자리에 내려와 수현의 주변을 맴돌며 그녀는 계속해서 사인을 보내는게 아닐까? 이제 그만두라고. 이것은 ‘의미 없는 복수’일 뿐이라고. 처제의 주검은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다. 이야기상 장경철이 수현과 맞닥뜨리기 전에 자수를 하기 위해 급히 일을 처리하느라 그럴 시간이 없었다는게 보이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이상하다. 장경철은 이미 그녀를 한 번 사지절단 하였기에 또 다시 그럴 필요가 없던 것은 아닐까. 주연은 자기를 다시 한 번 죽여서 아버지를 구한게 아닐까. 죽은 자가 다시 돌아와 산 자의 입을 빌어 산 자에게 계속 말을 건넨다. 하지만, 산 자는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를 자꾸만 죽은 자의 자리로 끌어내리려고 한다. 그리고 결국엔 성공한다. 수현이 영화에서 죽지는 않지만 과연 그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살아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장반장은 이 일의 후에도 살아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장경철의 절단된 목을 부둥켜 안아야 했던 그의 부모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장경철의 아들은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결국, 모두가 죽은 자의 자리로 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영화에서 목격해야 한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가 내내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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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8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허스키 2011-11-23 16:26   좋아요 0 | URL
이 영화를 다시 볼 용기는 나질 않아 확인은 못했지만, 인간아께서 지적해 주신 부분이 맞다면 이 글은 상당히 수정이 필요한, 혹은 폐기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