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모자를 깊이 눌러 쓴 남자가 먼저 올라타 있다. 하루코는 타지로 출장을 가는 남편을 아이와 함께 배웅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잔뜩 주눅 든 사람처럼, 혹은 뭔가 숨기려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 아이가 장난을 치다 남자와 부딪히고 하루코와 남편은 그에게 사과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간다. 아이는 잠시 사라졌다 이내 나타나고, 하루코와 아이는 남편을 떠나보낸다.
여기까지가 <골든 슬럼버>의 첫 시퀀스이다. 다음 숏은 건널목에 서있는 아오야기. 아오야기는 대학 친구 모리타를 오랫만에 만나고 그에게서 이상한 말을 들은 후 총리의 암살범으로 몰려 쫓기기 시작한다. 여기서 의문점. 첫 시퀀스의 하루코는 영화가 한참 진행된 후에야 다시 나타난다. 왜 굳이 그녀가 아이와 함께 남편을 배웅하는 씬, 그러니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엘리베이터에서 이상한 남자와 마주치는 그 씬은 왜 굳이 맨 처음 나타나는 것인가. 이야기의 순서 상 아오야기와 모리타의 재회가 먼저 나와야 하는게 아닐까? 심지어, 엘리베이터 씬과 그에 이어지는 하루코의 남편 배웅씬은 필요없는 잉여의 씬,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는 씬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잠시 이 엘리베이터 씬에서 또 하나 이상한 점. 여기에서 카메라는 처음엔 마치 CCTV의 그 앵글로 이 세 사람을 바라본다. 마치, 어떤 범죄 현장의 증거 화면처럼.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와서 우리가 하루코의 남편으로부터 듣는 바에 의하면 아마도 이 즈음 연쇄 살인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 숏. 낮은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앵글. 우리는 한 번도 이 공간에서 그들을 정상적인 각도로 바라보지 못한다. 좁은 공간에서 촬영해야 한다는 기술적 문제? 우리는 이 엘리베이터 씬과 이어지는 하루코가 남편을 배웅하는 씬, 그러니까 이 첫 시퀀스가 이야기의 순서상 가장 마지막이라는 것을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된다. 다시 한 번 질문. 왜 이야기 순서상 가장 마지막에 와야 할 시퀀스를 이야기의 맨 처음에 가져다 놓은 것일까. 물론, 이러한 방식은 영화의 끝에 ‘사실은 이러했다’라는 식으로 관객들이 무릎을 탁 치게 만들기 위해 종종 보이는 방식이긴 하다. 하지만, <골든 스럼버>에서의 이 방식은 왠지 이상하다. 총리 암살범으로 몰린 아야나기가 도주를 계속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영화는 하루코와 아이가 총리가 암살되는 순간 집에서 TV를 보는 씬으로 넘어간다. 하루코는 (타지로 출장을 가 있는)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 더 빨리 돌아올 수 없느냐고 묻는다. 아직 영화의 끝을 보지 못한 우리는, 그러니까 영화의 첫 시퀀스가 지금 여기서 하루코와 남편의 전화상의 대화보다 이야기상 더 나중에 위치한다는 것을 모르는 우리는 이 씬을 당연히 첫 시퀀스에서 출장을 가는 남편의 모습과 이어서 생각하게 된다. 의도적인 속임수. 단순히 마지막에 놀라움을 배가시키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굳이 남편이 출장가는 모습을 처음 보여주고, 남편이 출장 간 사이 하루코가 총리 암살을 목격하여 (다른 시간에)출장을 가있는 남편과 전화 통화를 하게 했는지. 또 다른 가능한 설명. 하루코로 하여금 조금 더 자유스럽게 사건에 개입할 수 있도록 남편을 부재 상태로 만들기 위해. 그러나, 이것도 역시 뭔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결국 <골든 슬럼버>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플래시 백과 같다. 첫 시퀀스 이후, 그러니까 하루코가 남편을 배웅하고 나서부터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은 첫 시퀀스의 플래시 백이다. 과거를 되돌아 보는 플래시 백. 과거를 회상하는 아오야기, 모리타, 카즈, 그리고 하루코. 과거로 돌아가려는 고위층. 골든 슬럼버. Once there’s a way to get back home. 어쩌면 거대한 하나의 불꽃놀이. 그 아래에 모여 앉아 어깨동무를 하고 옛날을 생각하는 친구들. 하지만, 마치 성형수술을 하고 다른 얼굴이 된 아오야기처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아오야기의 손목에 찍히는 ‘참 잘했어요’ 도장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게 고하는 작별 인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