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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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도 가물해진 책이지만 다시 읽어도 좋은 책.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 P21

진모가 나 못지않은, 아니, 나를 훨씬 능가하는 문제아로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에도 나는 그 애의 삶에 참견하지 않았다. 진모의 삶은 진모의 것이었고 진진이의 삶은 진진이의 것이었다.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삶의 공식인가 말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었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이었다.
누군가 내게 그런 실례의 발언을 하는 것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과는 두 번 다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상처받은 내 자존심이 용서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 P51

"해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이 저권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안진진,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본 적 있니? 낮도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 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 지고 마는 거야...." - P95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 P127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생애에 되풀이 나타나는 불행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극복되었다. - P152

진모 때문에 나는 울지 않았지만, 김장우는 자신의 형 때문에내 앞에서 눈물을 비쳤다. 진모의 일을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은 말이아니었다. 상처는 상처로 위로해야 가장 효험이 있는 법이었다. 당신이 겪고 있는 아픔은 그것인가, 자, 여기 나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어쩌면 내 것이 당신 것보다 더 큰 아픔일지도 모르겠다, 내불행에 비하면 당신은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닌가...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 P188

세상의 모든 잊을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뒤에 남겨져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 과거를 버릴 수 없는 것인지도 - P191

사랑이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고 무심히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다. 자신의 얼굴에 대해생애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의 눈과 코와 입을그윽하게 들여다보는 나. 한없이 들여다보는 나.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준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 P210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ㅇ은 인생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 P218

행방불명으로 먼 세상을 떠돌던 한 인간이 속세로 귀향하기에이만한 날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런 말을 알고 있다. 인생은 짧다고,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고, 아버지는 참으로 긴긴 인생을 살았다. 그것이 진정 아버지가 원했던삶이었을까. - P268

이모가 죽고도 세월은 흘렀다.
이모를 죽인 겨울이 지나고 봄은 무르익어서 사방에 꽃향기가난만했다. 겨울이 있어 봄도 있다.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 P291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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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배신 - 머릿속 생각을 끄고 일상을 회복하는 뇌과학 처방전
배종빈 지음 / 서사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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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책중에 작고 얇은 책이지만 충분히 읽을만큼 알차다.

부정적인 생각의 반복은 우리 뇌를 생존의 위협을 느꼈을 때의 뇌와 같은 상태로 변하게 한다. 우리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관한 생각을 반복하면 우리 뇌는 그 상황을 실제로 반복해서 경험했다고 착각한다. - P27

그런데 우리 뇌는 무언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도 여전히활발하게 움직인다. 흔히 ‘아무것도 안 할 때 오히려 잡생각이 많아진다‘라고 하는데, 실제로도 뇌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휴식할 때 동시에 활성화되는 뇌 영역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 부르는데, 이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거나 미래에 대한 상상, 자기 인식,
타인과의 관계 등을 살피게 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대인 관계를 원활히 맺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이 기능이 과하게 작동하여 뇌가 지쳐버리게 된다. - P33

부정적인 생각을 반복하는 것은우리를 우울하고 불안하게 한다. 그런데도 왜 뇌는 이러한 생각을 반복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생각을 반복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고, 뇌는 우리의 행복보다 생존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 P35

행복을 바라보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지금 느끼는 감정으로서의 행복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카너먼Daniel Kahneman은 행복을 현재 여기서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으로 정의한다. 이와 같은 의미의 행복은 우리가 즐거운 일을하거나 무언가에 몰입할 때 느껴지는 긍정의 감정을 말한다.
다음으로는 자기 삶에 대한 평가로서의 행복이다. 사회학자뤼트 베인호번Ruut Veenhoven은 자신의 전반적인 삶에 대한 만족감으로 행복을 정의한다. 순간의 즐거움을 자주 느낀다고 해서 반드시 삶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삶이 행복하다고 여기기 위해서는 즐거운 감정을 자주 느끼는 것 외에도 자신의 현재 상황이나,
지위, 관계, 건강 상태 등이 만족스러워야 한다. - P54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가진 심리적 자원을 아끼고이를 필요한 곳에 사용하여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데도 도움을준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물론 나이와 체력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비슷한 수준이다.
그 때문에, 에너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에 따라 각자의성취가 달라질 수 있다. 생각에 빠지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많은 에너지를 불필요한 생각을 하는 데 사용한다. 물론 그중에는삶에 도움이 되는 생각들도 있겠지만, 뚜렷한 목표 없이 떠도는대부분의 생각은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 P59

우리 뇌는 매일 수만 가지의 생각을 만들지만, 대부분 일시적으로 우리의 의식을 붙잡았다가 금세 흩어진다. 그런데 그중 몇몇 생각은 우리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랑하는 연인과의만남을 생각하면 기대되고, 즐거운 감정이 함께 경험된다. 은행대출을 어떻게 갚을지 생각하면 답답하고 불안한 감정이 올라온다. 이처럼 어떤 생각들은 감정과 함께 기억되어, 그 생각을 떠올리면 감정이 함께 떠오른다.
다양한 감정 중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생각들은 유난히 우리 머릿속에 자주 떠오른다.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면 좋은일보다 나빴던 일이 더 강하게 기억되는 것도 뇌가 가진 특징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우리 뇌는 생존에 유리하도록 설계돼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생각을 더 자주, 더 쉽게 떠올림으로써, 생존의 위기에 처할 가능성을 낮추려는 것이다. - P65

생각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모든 생각은 중요하고 의미 있다는 잘못된 신념이 작용하고 있다. 생각은 합리적인 생각과 비합리적인 생각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중요하고 의미 있고 이성적인 생각들도 있지만, 아무 의미 없고우리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들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생각에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뚜렷한 목적이 없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의 80% 이상은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사라진다. 그런데 모든 생각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메타인지적 신념을 가진 사람의 경우, 모든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생각이 자연스럽게 흘러 사라지는 대신 우리의 의식에 잡혀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 P72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를 자꾸만 생각하는 이유는 이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치 않으면 끊어버릴 수 있는 가벼운 관계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같이 가까운 상대와의 문제는 해결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관계를 끊을 수도 없는 딜레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통제감을 상실한다. 통제감을 상실하면 우리는 불안해지고 상대에 관한 생각을 반복하게 된다.
타인에 관한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왜 그런행동을 하는지 생각하기보다는 그 행동에 내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내 생각과 행동은 내가 결정할수 있다. 관계 자체는 어떻게 하지 못하더라도 관계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정 할 수 있는 것이다. - P95

상대방과의 대화가 두려운 것은상대방과의 대화 중 불편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두려워서다. - P95

그러므로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방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오더라도 견딜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 P96

능동적인 생각을 일으키는 뇌 부위와 몸을 움직이게 하는 뇌 부위는 함께 활성화되고 서로의 연결 또한 강화되어 있다. 생각이 행동을 일으키는 것처럼,
행동이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다.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 행동과 감정의 관계다. 흔히, 감정이 행동을 유발한다고 생각하지만, 심리학자들은 행동이 감정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심리학자인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은 《지금 바로 써먹는 심리학》에서 좋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행복한 생각을 떠올리는 것보다 좀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행복감을 높여준다고 이야기한다. 행동이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행동은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행동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어떤 자세로 어떤 행동을 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P164

목적을 정하고 생각하면 스트레스 반응을 줄일 수 있다. 때로는 싫어도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인간관계에서갈등이 있는 경우, 관계를 유지하고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 갈등에 관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분노, 불안감, 무력감 같은 다양한 부정적 감정이 일어나고 스트레스 반응도 나타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생각, 감정, 스트레스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갈등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을 목표로 정하면, 주체가 되어서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감정 반응과 스트레스 반응이 줄어든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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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테인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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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은 좀 지루했지만 역시 2권부터는 필립로스답게 몰아치듯 써 내려간 글들에 매혹되고 말았다.
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지울수 없는 오점이나 실수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아주 재미있는 소설.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모두가 알고 있다니...
어떤 일이 어떻게 해서 그런 식으로 일어나는지를 안다고? 인간사를규정하는 사건들, 불확실성들, 사고들, 불화, 충격적인 부조리의 연속인 난맥상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도?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요. 루 교수
"모두가 알고 있다"라는 말은 상투어를 이용한 호소인데, 경험을 진부하게 만들어버리는 출발점이다. 무엇보다 못 견디게 싫은 것은, 상투어를 내뱉는 자들의 위선적인 진중함과 권위의식이다. 우리가 유일게 아는 것은, 상투적이지 않은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아는 것도 실은 알지 못한다.
의도? 동기? 결과? 의미? 모르는 건 전부 놀랍게 느껴진다. 하지만 더놀라운 건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들이다. - P17

가장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감정선들만으로 형성된 이 남자, 하나의 권력으로서 파란만장한 내력을 지닌 이 유력자, 우아하게 교활하고 서글서글한 매력이 있고 겉보기에는 대장부의 완전체 같은 사람지만 그럼에도 그에게는 엄청난 비밀이 하나 있다. 나는 어쩌다 이런 결론에 이른 것일까? 왜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콜먼이 포니아와 함께 있을 때 뭔가 숨기는 게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있지 않을 때도 그는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 그가 지닌 비밀이 바로 그의 매력이다. 결여된 무언가가 사람을 현혹하고, 그동안 내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만의 비밀로 지니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무언가가. 그는절반의 모습만 보여주는 달처럼 자신을 연출한다. 내게는 그의 모습을완전히 보이게 할 재간이 없다. 공백이 존재한다. 그게 내가 말할 수있는 전부다. 두 사람이 결합하면 공백 한 쌍이 된다. 그녀에게도 공백이 있다. 콜먼은 확실히 저명한 인물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여차하면완강하고 과단성 있는 적자신을 모욕하는 헛소리를 받아들이느차라리 사임하는 쪽을 택한 성난 거물급 교수-이 되기도 하지만, 그에게도 어딘가 공백이 있다. 지워진부분이, 삭제된 부분이 있다. 그게 뭔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사실 이 직감이 이치에 맞는 건지. 아니면 그저 다른 인간에 대한 나의 무지가 비현실적으로 드러난건지 결코 알 수 없지만. - P24

"당신이 훤히 보여요. 콜먼. 정말로 보인다니까요. 내가 뭘 보는지궁금하지 않아요?"
"당연히 궁금하지."
"당신은 내가 당신한테서 노인의 모습을 보고 있는지 궁금하겠죠.
안 그래요? 당신은 내가 당신한테서 노인의 모습을 보고 도망칠까봐두려워하고 있어요. 내가 당신한테서 젊은 남자들과 다른 점들을 볼까봐. 기운 빠진 모습이나 이미 사라져버린 것들을 볼까봐, 그래서 날 잃을까봐 두려워하고 있어요. 당신이 너무 늙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내가 뭘 보고 있는지 당신 알아요?"
"뭔데?"
"어린아이요. 꼭 어린애처럼 사랑에 빠진 당신이 보여요. 그래선 안돼요. 그러면 안 된다고요. 그것 말고 또 뭐가 보이는지 들어볼래요?"
"그럼."
"그래요. 이젠 그게 보여요. 노인이 보여요. 죽어가고 있는 노인이보여요."
"이야기해봐."
"당신은 모든 걸 잃었어요."
"그렇게 보이나?" - P54

"그럼요. 춤추고 있는 나를 뺀 모든 게 보여요. 내가 뭘 보는지 궁금하죠?"
"뭔데?"
"당신이 그런 패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요. 콜먼, 그게보여요. 당신이 노발대발하고 있는 게 보여요. 그리고 그러다 끝을 맞을 거라는 것도요. 성난 노인으로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어요. 나는그게 보여요. 당신의 울분이요. 분노와 치욕이 보여요. 노인으로서 시간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당신이 보여요. 그건 죽음이 가까워지기전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하지만 지금 당신은 이해하게 됐어요.
그래서 두려운 거죠. 되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다시 스무 살이 될 수없으니까요. 그 시절이 다시 오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인생이 끝나는 거죠. 그리고 죽어가는 것보다 더 싫은 것. 죽게 되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게 바로 당신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그 빌어먹을 개자식들이죠. 당신한테서 모든 걸 빼앗아간 자들이요. 당신 안에서 그게 보여요. 콜먼. 내가 잘 아는 일이기 때문에 볼 수 있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걸 바꿔놓은 그 빌어먹을 개자식들. 당신의 인생을 빼앗아 쓰레기통에 던져넣은 놈들. 당신의 인생을 빼앗은 다음 자기들끼리쓰레기통에 던져넣기로 결정했죠. 당신은 당신한테 딱 어울리는 춤추는 여자애를 찾아온 거예요. 그자들은 뭐가 쓰레기인지 정하고, 당신을쓰레기라고 정했어요. 개소리라는 게 뻔한 일을 가지고 한 남자를 모욕하고 명예를 떨어뜨리고 망가뜨린 거죠. 자기들에겐 아무런 의미도그야말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추잡한 말 한마디를 가지고요. 그리고그게 당신을 분노하게 만드는 거예요." - P55

우리는 오점을 남긴다. 우리는 자취를 남기고, 우리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불순함, 잔인함, 학대, 실수, 배설물, 정액- 달리 이 세상에 존재할 방법이 없다. 불복종과는 상관없다. 은총이나 구원 혹은 속죄와도 상관없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내면에 존재한다. 내재되어 있다. 타고난 것이다. 규정지어진 것이다. 밖으로 드러나기 전에 이미 오점은 존재한다. 아무런 신호도 없이 이미 존재한다. 오점은 표지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본질적이다. 오점은 불복종보다 선행하고, 불복종을 포함하며, 모든 설명과 이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 농담에 지나지 않는 이유이다. 그것도 아주 잔인한 농담. 순수성에 대해 환상을 갖는 건 소름끼치는 일이다. 미친 짓이다.  - P69

마크 실크는 자신이 영원히 증오할 수 있도록 아버지가 계속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증오하고, 증오하고, 증오하고, 또증오하다가, 제 분이 좀 풀리면, 어쩌면 비난 장면이 최고조에 달해서자식으로서의 불만이라는 응어리로 콜먼을 초주검이 되도록 채찍질하고 난 다음에야 용서하기로 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연극이 끝까지 상연될 때까지 콜먼이 이 세상에 머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과콜먼이 실제 인생이 아니라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남쪽 산허리에 있는 디오니소스에게 바쳐진 노천극장 위에 서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 P179

는 있을까? 하지만 삶이란 목적이 숨겨져 있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 관습이란 고찰을 허락하지 않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 사회란 심한 결함이 있을지 몰라도 그 자체의 모습에 전념하는 것이라는 생각, 개인이란 그 사람을 규정하는 사회적 요인들과 완전히 별개로 그 요인들을넘어 실재하는 것이고 사회적 요인들이 실제로 그 개인에게는 실재하지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요컨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모든 혼란들은 유서 깊은 규칙 목록에 대한 그녀의 확고부동한헌신에서 다소 벗어난 곳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206

그렇게 콜먼의 정체를 알게 되자 나는 그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점점더 알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참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니스틴에게 들어 알게 된 사실이 원래 내가 콜먼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과 통합되는 대신 콜먼을 미지의 인물로, 더욱이 일관성 없는 인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의 비밀이 어떤 비율로, 어느 정도로까지 그의 일상을 결정하고, 그의 일상적 사고에 침투했던 걸까? 그 강렬했던 비밀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덤덤하게 느껴지고, 결국엔 아무 중요성 없는 것으로, 오래전 자신과 한 내기나 대담하게 실행했어야 했던 무언가로 바뀌어 잊히고 말았을까? 그는 그 결정으로 자신이 추구하던 모험을 손에 넣었을까, 아니면 결정 자체가 모험이었을까?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재미있었던가,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하는 걸 무척 좋아했던 걸까, 거짓 신분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그에겐 여행 같았던 걸까?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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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테인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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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 극단적인 은둔의 실험을 고독하지만 모자람 없고완전한 생활로 바꿔놓은 다음에, 왜 갑작스럽게 내가 외로워야 하는가? 무엇에 대한 외로움인가?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다. 엄격한 생활 태도를 누그러뜨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자제하고 있던욕망을 원상태로 되돌린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정확히 무엇에 대한외로움인가? 간단하다. 내가 혐오감을 갖게 된 것에 대한 외로움이다. 내가 등을 돌렸던 것에 대한 외로움이다. 삶에 대한 외로움이다.
삶의 번잡함에 대한 외로움인 것이다. - P90

소포클레스에게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자신과 같이 위대한 재능을 갖지 못한 인간에게는 전혀 무용지물인 생각 말이다. 그건 운명이라는 게 얼마나 겹치고 겹쳐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가…………… 혹은 운명에서 도망칠수 없게 될 때 그것이 얼마나 우연에 의한 것인가 따위의 생각이었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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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질문 - What is Your Wish?
오나리 유코 글.그림, 김미대 옮김 / 북극곰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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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함께 걷다가 당신이 뒤돌아보니까
내가 커다란 나무로 변한거야
말하는 여자나무가 된거지.

음.... 그렇다면
이 집을 팔고 그 나무 옆에 텐트를 치고 살꺼야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옷을 가지마다 걸어줄께
내가 나무를 좀 타는 편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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