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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1
윌리엄 포크너 지음, 김명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평점 :
엄마의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그 먼길을 떠나야 했을까.
그 모든 이유들이 꼭 헤프닝 같다.
그리고 윌리엄 포크너의 글들은 지금 읽어도 굉장히 세련된듯 하다.
듀이 델은 침대 옆에 서서 애디에게 부채를 부쳐주고 있다. 우리가 방에 들어서자 애디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본다. 그녀는 이렇게 열흘 동안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죽음이 일종의 변화라면 그 변화를 막는 일조차 오랫동안앤스의 몫이었다. 난 어릴 적, 죽음을 단순히 몸의 변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난 죽음을 마음의 변화로 이해한다. 즉 사별을 견디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 말이다. 허무주의자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하고, 근본주의자들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상죽음이란, 가족 또는 세들었던 사람이 집이나 마을을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 P53
듀이 델은 천천히 일어선다. 그러곤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본다. 베개 위에 놓인 얼굴은 빛바랜 청동 주상 같고, 오로지 손만이 생명을 간직한 것 같다. 무기력하나 뭔가삐뚤어지고 꼬부라진 느낌. 모든 게 소진되었으나 아직도경계하는 그 무엇 때문에 피로, 기진맥진, 고통이 미처 떠나지 않은 듯하다. 어머니의 손은 마치 죽음 이후 영면의현실성을 의심이라도 하듯이, 결코 지속되지 않을 정지의순간, 즉 죽음을 경계하려는 듯하다. - P61
죽은 바람은, 마찬가지로 죽은 듯한 어둠 속에서 죽은 땅을 훑고 지나간다. 눈이 미치는 곳보다 휠씬 멀리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땅은죽은 채 누워 있다. 온기가 나를 감싸며 내 옷을 뚫고 속살에 닿는다. 내가 말했다. 당신은 걱정이 무엇인지도 몰라.나도 모른다. 난 내가 걱정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걱정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울 줄도 모른다. 내가울려고 애쓰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뜨거운 흙 속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젖은 씨앗이 된 것 같다. - P77
그래서 난 앤스를 받아들였다. 캐시를 임신했음을 알게되었을 때 나는 사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실감했고, 임신이 바로 그 증거임을 알게 되었다. 말이란 전혀 쓸모없다는 사실도 그때 깨닫게 되었다. 말하려고 하는 내용과 내뱉어진 말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캐시가 태어났을때, 모성이란 말은, 그 단어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 의해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가진 엄마는 그런 단어가 있든 없든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공포라는 말도 공포를 단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자존심이란 말도 마찬가지로 자존심이 없는사람이 만들어낸 것이고. 내가 매질한 것은 아이들이 더럽게 코를 흘리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입에서 나온 줄로 대들보에 매달려 흔들리고 스스로 꼬이면서도 서로 닿는 법이 없는 거미들처럼, 말을 통해 서로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회초리를 휘두름으로써 내 피와 그들의 피가 하나 되어 흐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고독이 매일 되풀이해서 깨지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캐시가 오기까지 나의 고독이 한번도 깨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앤스와 나눈 밤 역시 나의 고독을깨지는 못했다. - P198
그리고 그는 죽었다. 그는 자신이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아름다움, 하느님의죄에 대해 캄캄한 땅이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앤스 곁에누워 있곤 했다. 캄캄한 침묵의 소리였다. 그 안에서 말은행위가 되고, 또 다른 말이 되기도 했다. 말과 행위가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사람들 사이에는 틈이 생긴다. 늘 그렇듯이 무서운 밤, 거친 어둠으로부터 들리는 거위의 울음소리처럼 언어는 떨어져내린다. 누군가 군중 속의 두 얼굴가리키며, 너의 엄마다 혹은 아빠다 말할 때, 정신없이 그얼굴을 찾아 헤매는 고아처럼, 말은 그것이 가리키는 행위를 찾아 헤맨다. - P201
너의 삶이 시간 속으로 풀려 간다면 그건 멋진 일이지. 그저 시간 속으로 환원된다면, 멋진 일이고말고. - P240
가끔씩 난 확신할 수가 없다. 누가 미치고 누가 정상인지 알게 뭐란 말인가. 어느 누구도 완전히 미치거나, 완전히 정상일 수는 없을 거다. 마음의 균형이 제대로 잡히는것이 쉽진 않으니까.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 P268
그러나 누가 미치고 누가 정상인지 말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 있는지, 난 확신할 수 없다. 정상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갖가지 일을 저지른 후, 다시금 똑같은 공포와 놀라움으로 자신의 광기 어린 행위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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