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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가죽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좀 지루했지만 발자크의 대단한 필력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방탕은분명 시처럼 하나의 예술이야. 그래서 강한 정신을 필요로 하지. 방탕한 삶의 신비로움을 터득하고 그 멋스러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거기에대한 연구에 성실하게 몰두해야 할 필요가 어느 정도는 있어. 다른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방탕도 처음에는 접근을 불허하는 가시밭길이지. 엄청난 장애물들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쾌락을 에워싸고 있어. 가장위대하다고 한 것은 방탕이 주는 구체적인 즐거움을 가리키는 것이아니라, 방탕이 주는 가장 희귀한 감동을 일상적인 감동으로 수립하고, 그것을 요약하며, 자기 삶 안에 또다른 극적인 삶을 창조하고 자기 힘을 최대한도로 신속하게 소진시킴으로써 그 감동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그런 체계를 가리키지. 전쟁이나 권력이나 예술 역시 방탕이그렇듯이 인간의 능력이 미치기 힘든 곳에 있는 심오하고 상궤를 벗어난 타락의 행위들이지. 그래서 그것들은 모두 접근하기 힘든 속성을 가진 거야. 그렇지만 일단 그 위대한 신비에 올라서기만 하면 신세계로 걸어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 장군이나 장관이나 예술가는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들의 존재에 격렬한 일탈의 욕망을 대립시켜 평범한 삶을 벗어나겠다는 욕구가 강렬하기 때문에 방탕의 길로 들어선 것이지. 결국 전쟁은 피의 방탕이고 정치는 이해득실의 방탕인 셈이라네. 모든 방탕은 서로 형제간이야. 이 사회적 괴물들은 강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어서 마치 세인트헬레나 섬이 나폴레옹을 유혹했듯이 그렇게 우리를 심연으로 유혹한다네. 그것들은 현기증을 불러일으키고 매혹적이어서 우리는 이유도 모르면서 그 밑바닥을 보고 싶어하지. 아마도 무한에 대한 상념이 그 심연 안에 존재하는지 몰라. 그래서 그 심연이 인간을 기분 좋게 만드는 모종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걸 거야.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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