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의 거장들
박찬국 지음 / 이학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맑스, 키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하버마스, 푸코, 비트겐슈타인, 포퍼.
이러한 현대철학자들의 철학을 이해하기 쉽고 깔끔하게 정리한 책이다.
이제 쪼금 깊은 내용을 공부하고 싶게 하는 책이다.

맑스는 인류의 역사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따라서 변화한다고 본다. 맑스에게 있어서 생산력의 발전은 단순히 경제적인 물량의 증대란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본질적인 능력의 창조적 실현을의미하며, 따라서 노동은 단순히 생존 수단의 확보라는 의미를 넘어서 인간의 창조적인 자기실현을 의미한다. 아울러 맑스에 따르면 인간은 이러한 자신의 본질적 능력을 항상 특정한 역사적 사회관계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귀족과 노예, 봉건영주와 농노,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 대립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 생산관계하에서 실현해나간다. <맑스 -자본주의의 혁명적인 변혁>
- P37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는 존재라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최대의 문제가 되는 것이 자기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 개개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여기는것이자기자신이며 자기 자신의 삶이라는 사실은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악착같이 자신의 물질적인 안락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사실은 자신의 삶을 가장 저질스럽고 값싸게 만드는 자이며 자신의 삶에 가장 해독을 끼치는 자일수 있다. 오히려 인간은 이러한 이기적인 삶에 대해서는 만족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공허감과 우울함에 사로잡힐수밖에 없다.
HAPP우리 인간은 자신이 그 누구에 의해서도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하고고귀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이러한 생각에 걸맞게 자신의 삶을 소중하고 고귀한 형태로 살고 있는가? 우리는 우선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삶을 이런 방식으로 살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서 보통 느끼는 기분은 역겨움이나 죄책감 등의 부정적인 기분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기분은 단순한 기분을넘어서 우리가 우리의 본래적인 존재에 걸맞게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드러내주는 개시적인 차원을 갖는다. 
<키르케고르 - 실존의 도약> - P69

그러나 피안에 대한 그리고 유토피아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을 통하여 니힐리즘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을 금할 경우에 니힐리즘으로부터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존재할 것인가?
이러한 길이 피안이나 미래 등의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내부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니힐리즘의 극복은인간의 자기 강화, 인격의 강화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자신의 내적인 힘을 강화해야만 이러한 니힐리즘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이러한 내적인 힘이 약할 경우에 인간은 항상 피안 세계나 미래의 이상 세계 등의 신기루를 만들고 거기서 구원을 찾으려 한다. 이 현실의 무상함과 고통을 진정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환상들이 아니고, 그러힐 무상함과 고통을 긍정하고 오히려 그것들을 자신을 강화하고 자신의 힘을 즐기 수 있는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다. 이러한 정신력을 니체는 "힘에의 의지"라고 부르고 있다. 니체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현실은 이러한 힘에의 의지이다.
<니체 - 니힐리즘의 극복> - P125

이러한 능동적 니힐리즘은 모든 가치의 전환die Umwertung allerWerte을 목표로 한다. 니체가 말하는 모든 가치의 전환이란 기존의가치들 대신에 새로운 가치들을 정립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치들의본질에 대한 규정이 변화된다는 것, 다시 말해 가치 정립의 원리가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형이상학적인 가치정립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의미한다. 그것은 가치를 기투하되 오직 ‘지금 여기의‘ 이 지상의 세계만을 현실로 인정하면서 가치를 기부하려고 한다. 새로운 가치 정립은 지상의 모든 존재자의 본래의 성격인 힘에의 의지를 억압하고 경멸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철저히 긍정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으면안 된다.
<니체 - 니힐리즘의 극복> - P134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목전에 두지 않고서라도 어느 순간 삶에 대한 무상감에 강하게 사로잡힐 때가 있다. 이 순간에는 우리가 그동안 소중하게 생각해온 모든 것이 무가치해지고 그러한 것들에 집착해온 삶 전체가 무의미하고 공허해진다. 이러한 무상감은 우리가 느끼고 싶어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찾아와서우리의 삶과 세계를 전적으로 다르게 드러내는 기분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기분을 불안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불안이야말로 죽음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본래적인 방식이라고 본다.
불안이란 기분을 통해서 우리가 그동안 안주해온 일상적인 세계는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사태를 불안이란 기분에서 일상적인 세계가 무화에 떨어지게nichtig werden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의 친숙한 세계가 이렇게 의미를 잃고 무너질 때, 우리는 고독한 단독자로서 자신 앞에 서게 된다.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존재 의미를 구할 수 없는 자기, 다시 말해 그 이전에 친숙했던 세계가 제시하는 어떠한 가능성에도 의지할 데 없는 자기를 발견한다.
<하이데거 - 존재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 P181

존재는 이른바 보편적 이성의 입장을 잠칭하는 세상 사람으로서의 우리가 아니라 세상사람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단독자인 우리 각자에게 자신을 고지해온다. 존재 자체는 탄생과 죽음에서 벗어나 있는 이른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이성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탄생과 죽음에 던져져 있고 죽음 앞에서 전율하는 ‘철저하게 시간적인 존재‘인 구체적인 인간을 통해서 개현되는 것이다. 존재 자체는 이렇게 철저하게유한하고 시간적인 존재인 구체적인 각자의 인간을 통해서 개현하기 때문에 전통 형이상학이 생각한 것처럼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불변적으로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이고 역사적으로 자신을개현하는 것‘이다.
<하이데거 - 존재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 P188

하버마스 역시 근대의 두드러진 현상이 이러한 목적 합리성의 과도한 지배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근대에는 그러한목적 합리성만이 발전해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근대에는또 다른 이성적 능력, 즉 의사소통 합리성이 발전되어왔다고 생각한다. 목적 합리성이 자연뿐 아니라 인간마저도 지배 대상으로 관찰하고 이용하는 이성이라면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인간들이 서로를 자율적이고 이성적이며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 인격으로 보면서 서로대화하는 능력이다. 의사소통적 이성이란 다시 말해서 어떤 상황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외부로부터의 강제 없이 자유로운 토론으로 합의에 도달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이성이다.
<하버마스- 의사소통적 이성의 회복> - P208

인간의 인식과 이성 자체의 관심을 구성하는 것은 이러한 해방적관심이다. 해방적인 관심은 이성의 자기실현에 대한 관심이며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을 포함한 모든 인식 행위를 주도하는 관심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기술적 관심과 실천적 관심은 해방적 관심의 구체적인 두 계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해방은 첫째로 자연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다. 인류는 노동을 통해서 자연재해, 질병등을 비롯하여 자연이 인간에게 가하는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성취해나간다. 다른 한편 인류의 해방은 제2의 자연으로서의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인류는 부당한 권력의 지배에 대한 투쟁을통해 지배 없는 의사소통 관계를 성취해나간다.
<하버마스- 의사소통적 이성의 회복>
- P2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