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의 글들은 항상 나에게 공부하게 하고 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분석은 그 본능을 더 높은 목적에 이용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그와 같은 ‘승화‘가 요구되는 한도 내에서, 그리고 개인에게 그럴 능력이 있는 한도 내에서 작업을수행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자신의 인격 전체를 소유한다는 건유익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억압된 욕망이 가장 심각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의 가장 취약한 바로 그 지점에서 솟아나 우리의 앞길을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편이 훨씬 낫다. 어려움을 환상 속에서 끝없이 되풀이하면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하는 것보다는, 내면의 어려움을 현실적 어려움으로 변환하는 편이 훨씬 낫다. 그러면 적어도 그는 삶을 살게 될것이고, 무의미한 투쟁으로 자기 자신을 소진시키지 않게 될 것이다.
- P53

한 유형의 근본적인 기능은 느낌이고,다른 유형의 근본적인 기능은 사고인데, 첫 번째 유형은 대상을 느끼려 하지만, 두 번째 유형은 대상에 대해 생각하려 한다. 그리고 첫 번째 유형은 느낌을 통해 자기 자신을 주변 환경에 적응시킨 뒤 생각하지만, 두 번째 유형은 이해를 최우선시하면서 생각을 통해 자기 자신을 주변 환경에 적응시키려 든다. 또한, 느낌으로 대상에 접근하는사람은 그 대상 쪽으로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 이전시키지만, 반대되는 유형의 사람은 대상에서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 떼어낸 뒤 그 앞에 멈추어 그것에 대해 숙고한다. 우리는 대상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첫 번째 유형을 외향형이라 부르고, 대상을 등지고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 생각한다는 점에서 두 번째 유형을 내향형이라 부른다. - P75

하지만 새로운 관점은 신경증적 갈등이 항상 적응된 주 기능과 미분화된 채 무의식에 잠긴 보조기능 사이의 갈등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갈등은 내향형의 경우 생각과 무의적 느낌 간의 갈등으로 나타나고, 외향형의 경우에는 느낌과 무의식적 생각 간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이로부터 질병의 원인에 대한 또 다른 이론이 파생되어 나온다. 이 이론에 의하면, 생각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적응시키는사람은, 생각으로만 충족시킬 수 없는 세분화된 느낌을 필요로 하는 요구와 마주하게 되었을 때 외상적이거나 병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갈등을 분출시키게 된다. 반면, 느낌으로 세상에 적응하는 사람은 세분화된 생각을 요구하는 문제와 마주쳤을 때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된다.  - P93

즉 내향형은 대상에서 관념을 추상해낸 뒤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반면, 외향형은 대상을 향해 뻗어나가 그 대상 자체를 느껴낸다. 내향형에게는 가치의 강조점이 자아에놓여 있지만, 외향형에게는 대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자의주된 관심사가 자아의 보존이라면, 후자의 주된 관심사는 대상의 보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두 유형은 무의식에 대해서도 다른 태도를 취한다. 즉 내향형이 무의식적 심상의 관념적 측면을 이해하려 드는 반면, 외향형은 그 심상의 물리적 형태를 파악하려 든다.
그리고 내향형이 추상적 관념에 도달하기 위해 물리적 심상이란 견고한 ‘혼합물‘에서 관념적 측면을 최대한 정제해내는 반면, 외향형은 관념으로 뒤덮인 ‘환상적‘ 복합체에서 물리적 심상을 최대한 정제해낸다. 또한, 전자가 자기 자신을 관념의 세계로 끌어올려 무의식의 혼탁한 영향력을 극복하려 하는 반면, 후자는 대상을 향해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무의식의적 심상을 그 대상에 투사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무의식의 힘에서 해방시키려 든다. 무의식의 심상 중 외향형에게 환상적이고 혼탁한 혼합물로 인식되는 바로 그것이, 내향형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순수한 관념을 형성해내는 씨앗으로 인식되며,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즉 내향형에게 물리적 형상의 "불완전한 잔재"에 불과한 것이 외향형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대상과 무의식을 결합시키도록 해주는 실마리이자 다리로 인식된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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