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49
짐 크레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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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는 더 중요한 질문을 아직 자신에게 던져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신이 없는 우주, 계속 팽창하는 우주, 시시각각 분산되는 우주의 중력, 가없이 넓어지는 우주공간, 어두워지는 우주 물질 속에서 죽음을 거부하는 삶의 비결을 필요로 하기에는 너무 젊었다. 생명이 존재한다. 생명이 사라진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자명한 진리다. 자라서 어른이 되고 늙어 가면 누구나 그 진리를 깨닫고 당황하게된다. 실비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죽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실비는 그보다 하찮은 질문에 대해서는 적어도 한 가지 대답을 갖고 있었다. 자신에게 할당된 짧은 인생이 나날이 줄어들 때,죽어 가는 사람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실비는 그 일요일 오후에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운명을 보기 위해 해변을 걸었고,
부모가 구원받을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에게 유전자를 공급해 준 이들은 이제 가게문을 닫아 버렸다. 그들의 딸은 다음 차례였다. 차례를 기다리는 행렬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어두운우주에서 주어진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서 숨 쉬고 있는 하찮은 거류자들, 덜덜 떨면서 예배를 보는 이들과 별을 바라보는이들은 천국에 대한 기대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불꽃처럼 타올랐다 스러지는 자신의 짧은 인생을 희생하는 바보들이었다. 아무도 초월할 수 없다. 미래도 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 — 또는 탄생 의 구제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탄생과 죽음 사이의 공간을 끌어안는 것뿐이다. 열심히 살아라. 넓게 살아라. 높게 살아라.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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