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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 김규식 평전 - 투쟁과 협상의 지도자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다양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일어나고 있고 다양한 영화와 대중매체를 통해서 많은 인물들에 대해서 접할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무력항쟁을 통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그동안에 우리들이 이러한 업적에 대해서 알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외교적노선을 담당했던 인물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해서 열심히 자신을 헌신하신 분들에 대해서 상대적인 평가는 있겠지만 많은 부분에 대해서 공로를 쌓은신 분에 대해서 우리가 잘 알아야 할 부분도 많이 있을 것이다.
우사 김규식 선생은 이러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지도자로서 광범위한 지역을 넘나들면서 외교적인 역할을 담당하시고 광복 이후에는 반분단 통일국가수립을 위한 좌우합작 납북협상을 추진하면서 하나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온 분이라고 할수 있다. 영어 중국어와 관련된 어학적인 능력이 탁월해서 우리나라의 상황을 알리는데 이끄는데 중점을 두면서도 독립운동의 노선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우리 민족을 위해서 많은 헌신을 하셨다고 볼수 있다.
김규식 선생은 어린시절 어머니와 아버지릴 여의고 고아의 처지로 살아왔지만 언더우드 부부가 세운 고아원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영특함으로 영어와 각종 공부에 능숙함을 가지고 있어서 서양문화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 보다도 빠르게 인지를 하고 받아드릴수 있었던것 같다.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1896년에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는데 이후에도 학업에 대한 정진을 통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 고국에 돌아오게 되었지만 경술국치를 맞이하게 되고 다양한 진로에 대한 고민끝에 중국으로 가서 독립운동에 관련된 일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거의 드물정도였으니 김규식 선생은 꼭 독립운동이 아니더라도 다른 길을 선택할수 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그의 판단은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는데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파리강화대회 대표 및 파리와 워싱턴에서의 외교활동과 모스코바 극동민족회의 참석등 독립운동을 위해서 선생이 다니지 않은 곳이 없을정도로 전세계를 오가면서 열심히 진두지휘 하는 역할을 보였는데 다른 무력투쟁을 한 독립운동가들과는 또 다른 삶의 여정이었다. 광복 이후에도 분열된 남북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좌우합작을 시도하였으나 여러가지 난관을 보이면서 김일성과, 김두봉의 연서를 보내면서 남북협상을 추진하는 과정을 보였다. 하지만 625전쟁 이후 북한으로 납북이 되면서 그곳에서 생애를 마감하게 되었다.
우사 김규식 선생의 묘소가 북한에 있다는것은 이 평전을 읽고 처음 알게 되었는데 저자께서 2007년 묘소를 찾아가서 찍은 사진이 무엇인가 우리 남북분단의 현실을 아프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김규식 선생은 몸의 허약증으로 인해서 강력한 지도자로서 조직에 정착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실천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꾸준하게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있기 때문에 독립운동과 해방 이후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인물은 분명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의 삶에는 강인함이 있어서 우리 현대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이 책을 통해서 선생님의 생애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알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